일주일간 터키에 다녀왔습니다.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더운 날씨, 매일 아침 일어나 커텐을 열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는 파란 하늘과 햇살, 아침부터 사람들은 수영복 차림에 책을 하나씩 들고 호텔 내 수영장 옆의 긴 의자에 누워 책을 보거나 선텐을 하고, 아기는 야자수 사이에 걸린 해먹에서 놀고, 부드러운 모래가 깔린 바닷가에서 아기와 모래성을 쌓거나 (정확히 내가 쌓으면 아기가 부수거나), 물고기가 노는게 바로 보이는 투명한 바닷물에 들어가 아기와 물장난을 치고... .. 뭐 그런 생활을 하다가 기온이 6도까지 떨어지고 부슬부슬 비까지 내리는 월요일 새벽에 브리스톨 공항에 도착했죠. 아...그 느낌... 비행기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다시 오는 동안, 화려한 무늬의 원피스에 까맣게 태운 피부를 자랑하던 할머니들은 모두 스카프로 몸을 감싸고 간혈적으로 기침을 하고.. 한편에서는 담요에 싸인 아기가 울고.. 그 침울한 분위기.. 마치 피난민이 된 느낌이랄까요;;;..........
솔직히 영국에서 9년넘게 살면서 가끔 힘들 때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에 머무는 목표가 있었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곤 했고, 나중에는 영국에 돌아와 회색빛 하늘을 보며 '아, 돌아왔구나'하는 생각에 맘이 편해지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도착해서는 거의 처음으로 '싫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그런 마음에 기름붓듯 몇개 일들이 있기도 했구요. 그래서 투정부리듯 해보는 '이럴 땐 정말 이 나라에 대한 정이 떨어진다' 싶은 이야기...
1. 날씨
캠브리지에 오기 전에 브라이튼에서 잠시 산 적이 있었는데요... 그 겨울에 정말 제대로된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었죠. 오후 4시반만 되면 어두워지고, 늘 비바람이 몰아치고, 쨍한 해를 보기가 극히도 드물었던 날들... 특히 당시 머물고 있었던 호스트 맘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 가능한 집에 늦게 들어가려고 거리를 한정없이 혼자 걷고 있자면.. 정말 우울함이 뼈속깊이 각인되는 기분이였죠. 6시가 되면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고 사람들은 코트깃을 세운체 다들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그런 와중에 내게는 돌아갈 집도, 반겨주는 사람도 없다는 그 기분.... ㅜ_ㅜ 그럴때면 언제나 사람과 불빛이 득실거리는 한국이 못견디게 그리워 지기도 하고, 내가 쉴 수 있는 '내 집', 나를 반겨주는 '내 가족',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내 친구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지죠... 한국이면 혼자라도 따뜻한 카페에 들어가 핫쵸코라도 한잔 시켜마시며 맘이라도 달래겠는데.. 이건 어딜 가나 다 문이 닫혀있고, 펍은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고.. 그리고 집에 들어간들 따뜻하긴 하나요.. 창틈으로 슝슝 찬바람이 스며들고, 라디에이터는 왜 창문 밑에 놓여있는건지.. 라디에이터에 등을 기댔다 뗐다를 반복하며 웅클이고 앉아 있다가, 그나마 난방마저 끊기고 나면 아무리 방이 작아도 그 한기를 피할 수가 없어서, 이불을 뒤집어쓰다가도 추위가 안가시면 옷을 몇겹 다시 껴입고... 어우...
그래서 그 겨울에 심각한 초코홀릭에 걸렸죠 - 정확히는 슈가홀릭에 가깝다고 할까요.. 단게 미친듯이 땡기고, 친구가 떠나면서 남겨준 마쉬멜로우 한 봉지를 그 자리에서 다 비우고도 허기지던 그 날들... 아.. 눈물나네요 ㅠ_ㅠ
물론 시간이 지나고 캠브리지에 있을 때는 비오는 날에 Formal Hall 가기 위해 드레스 다 차려입고도 방수점퍼 입고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하고, 흩뿌리는 비는 비로도 안치고 우산도 없이, 방수점퍼도 없이 잘 돌아다니고, 지금은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아기 유모차에 레인커버 씌우고 꿋꿋이 걸어 다니지만... 그래도 정말.. 어느 순간에는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더라구요. 분명 여름인데도 날씨가 뭣같아서 반팔을 입어본 적이 없을 때, 4월인데도 눈이 내려서 난방이 절실히 그리워질 때 등등... 정말 이 나라에 대한 정을 뚝뚝 잘라내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아무래도 날씨, 이지 않나 싶네요.;;
*** 비가 마구 쏟아지던 수요일날 아침, 방수점퍼에 레인부츠를 신고도 도저히 커버가 안되서 무려 폰초까지 뒤집어 쓴 모습. 제가 진짜... 아우... 이 날 스스로의 모습에 기도 차고, 어이도 없고, 더불어 이넘의 날씨에 진저리를 쳤죠. 한국에서는 장마기간에 투명한 우산 들고서 짧은 바지에 샌달 신고 비 속을 찰박이며 걷는 걸 좋아하던 소녀였는데!!!!!!! 폰초라니.. 이건 무슨.. 비닐하우스 뚫고 나온 몰골이라니!! ㅜㅜ
2. This is England
이 영화 본 적있으신가요?
아니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Harry Brown'은요?
둘다 영국의 젊은 갱스터 문화를 다룬 건데요... 제겐 솔직히 이 영화들이 다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호러스러웠습니다. 아마도 그 사실성 때문이였겠죠. 뭐랄까.. 한국에서 그 많은 조폭 영화들이 있어도, 평범한 생활을 하는 일반 사람이 조폭을 일상생활에서 만나기란 그린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저 영화에 나오는 젊은 이들을 일상 생활에서 아주 친근(!)하게 볼 수 있고, 재수가 없으면 직접 경험해 볼 수도 있습니다. 예전에 런던 서쪽에 사는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 그 집 플랏 메이트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10시쯤에 집에 돌아왔을 때 그때의 충격이란! 싸운 것도 아니고, 돈이 털린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 오다가 10대의 청소년 세명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한 명이 들고 있던 야구방망이로 그의 뒷통수를 치고 사라졌답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대낮에 이층버스 윗칸에 타고 가다가 뒷자리에 몰려앉은 아이들이 낄낄거리며 던져대는 캔들에 맞아 머리며 옷에 콜라가 튀었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서둘러 버스에서 내려야 했구요..
심지어 그 안전하기로 유명한 캠브리지에서도 어느날 밤에 Formal hall을 마치고 친한 여자친구 둘과 컬리지까지 걸어오다가 차를 타고 뒤쫒아오며 추근거리다가 우리가 경찰에 전화하는 모습을 보이자, 차를 우리 앞에 막아서고 내리려 하는 젊은 남자 3명에 놀라 무작정 근처 컬리지에 뛰어들어가 도움을 요청한 적도 있고, 이른 저녁에 모임에 가기위해 나오다가 골목길 앞에 난데없이 고작해야 10살 정도 되보이는 남자애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제게 아주 더러운 사인을 해보이고 다른 아이들과 사라진 경우도 있구요.. 서머타임이 끝나고 저녁 7시에 Christ's Piece공원에서 여학생이 강간당했다는 뉴스가 한 때 컬리지 이메일로 날라오면서 주의하라라는 경고가 뜨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런 건 이제 여기 문화에 익숙해 지다보니, 그들이 주로 출몰(?!)하는 곳을 피하고, 그런 부류들을 알아서 피하면서 왠만큼 적응해 갔는데요... 문제는 전에 영국의 계급 문화에 대해 말했을 때 언급한 것처럼, Working class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웨일즈의 시골에서는 그게 쉽지가 않다는 거죠. 물론 워킹클래스라고 다 그런 부류인건 아니지만, 확률상 그 정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죠. 그리고 아기가 있다보면, 정말... 별별 엄마들/사람들 많이 만납니다...
전 경험의 폭이 넓을 수록 세상을 보는 시선이 보다 정확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아기 역시 왠만하면 참견하지 않고 제 마음에 안드는 엄마라 해도, 아기가 그들의 아기들과 어울리는 걸 막거나 하지 않는 편인데요.. 도리어 여러 타입이 있는 다양한 베이비/플레이 그룹에 데리고 가서 어울리게 하는 편이죠. 그리고 심각하게 폭력적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상, 왠만한 아기들 사이의 부딪침은 그저 바라보는 편이구요... 어쨌건, 그 중 목요일에 자주 가는 플레이 그룹이 있는데요.. 한국의 키즈카페처럼 Softplay cafe에서 운영하는 건데, 그 카페 주인을 아는지라 가게 된 그룹이죠. 오는 아기들은 대부분 기거나 걷는 1살 전후의 아기들인데요.. 언제부터인가 그쪽 부류의 엄마 4-5명이 몰려서 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그들의 아기들 중 2명은 누가 봐도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죠. 여자아이 M의 엄마는 그나마 자기 아기가 다른 아기를 때리는 걸 보면 말리는 편이라 저 역시 제 꼬맹이와 M 사이에 마찰이 있어도 일단 바라보고 있었죠. 반면 남자아이 O의 엄마는 정-----말 아무 것도 안한다고 할까요.. 그래서 O때문에 다른 아기가 넘어져 우는 일도 다반사고, 여자아기들은 머리채를 뜯기기도 하고, 그러다 어제는 꼬맹이가 구석에 있는데 그 아기가 쫒아와 꼬맹이를 덮치면서 꼬맹이 눈쪽으로 손가락을 뻗더군요. 그래서 옆에 가서 부드럽게 그랬죠. 'Be gentle~' (살살해야지~) 그랬는데 이 엄마가 와서는 도리어 제게 막말을 내뱉더군요. 아.... 정말... 그 무례함, 그리고 그 lowness.... 그리고 월요일에 갔었던 다른 키즈카페에서 자기 여동생을 자기 엄마가 안볼때 무지막지하게 발로 차던 6살 가량의 남자아이, 2살가량된 아기가 돌아다니면서 블럭을 다른 아기들에게 던지고 자기보다 작은 아기들을 무작적 밀치거나 하고 다니는데도 자기 친구와 앉아서 수다떨며 신경도 쓰지 않던 그 엄마, 수퍼마켓 앞에서 떼쓰는 아기에게 욕을 섞어 화를 내던 엄마나 더불어 'F' 섞인 욕으로 응답하던 아이.. 아이가 자기 엄마를 미친듯이 발로 차고 때리는데도 그걸 '떼쓰는'거라고 말하던 엄마나, 비슷한 수준의 욕으로 아이를 대하던 그 아이의 아빠....
정말... 안보고 싶어도 봐지는 그런 모습을 일상생활에서 정말 심심찮게 만납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두려워져요. 제가 봐오던 청소년들의 모습이 거기서 겹쳐보이기 때문이겠죠.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London Riot이 일어났을 때도, 터질게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였으니까요. 그동안 감춰둔 영국의 치부가 그대로 드러난 꼴이랄까요.... 아기가 없을 때는 그냥 나만 피하면 된다, 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고개를 돌려버리는 걸로 끝내곤 했는데... 꼬맹이를 보고, 그 꼬맹이가 아무리 경험이 중요하다고 해도, 그런 peer group의 중앙에 던져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기 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런가봐요... 물론 영국에서 영원히 정착해 살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요즘들어 부쩍 영국이란 곳에 대해 고민을 한답니다..
3. 그 외..
음식 - 그 외 외국인들이 많이 불평하는게 영국음식일텐데요.. 전 개인적으론 별로 영국음식에 대해 불만이 있는 편은 아닙니다. 예전에 펍에서 일할 때 주방장과 친했던 까닭에 맛있는 음식을 많이 얻어 먹어서 그런 건진 모르겠는데, 영국 음식자체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지 몰라도 영국만큼 다양한 종류의 식재료를 구하거나,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도 사실 드물죠. 특히 본인이 요리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다면 영국은 그리 나쁜 곳은 아닙니다. 그런데 정말 이 나라는 아이들의 건강에 대해서는 가끔 쥐뿔도 신경안쓴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아요 - 이 나라의 주된 아이들 메뉴가 뭔지 아시나요? Fish finger, Chicken nugget, Jacket potato with Cheese/Baked beans, Ham/Cheese sandwich예요. 정말 어른이 먹는 걸 주는게 훨씬 낫다고 할까요..
사람들 - 영국 사람들은 친해지기 어려운 걸로 유명하죠. 안면있는 사이가 되는 건 쉽지만, 정말 'Friend'라고 부르는 사이가 되기까지는 정말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뭐 그거야 사람마다 다른거니 그렇다 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친해질래야 친해질 수가 없죠. 여자들 같은 경우, 떼를 지어 다니면서 자기 그룹이 아닌 사람은 정말 유령취급하는 여자들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여자들은 어느 나라든 있는 거니까요.. 그리고 영국인들이 차갑다거나 이중적이다, 하는 말도 있는데, 겉으로 보이는 예의를 차리느라 대부분 그렇지 그것 역시 사람마다 다른거니까요. 솔직히 좀 친해진 이후 영국 사람들(특히 나이드신 여자분들)의 신상캐기와 가쉽이란 한국의 아줌마들 뺨을 여러번 치고도 남을 정돕니다;;;
...................
막상 적고 보니.. 저.. 영국이란 곳에 맺힌게 좀 많은 사람이였군요;;;; 다른 분들은 어떨 때 '아 진짜 이 넘의 나라'하는 말이 튀어나오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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