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분이 영국의 학벌주의는 어떻냐는 질문을 해주셨는데, 거기에 별 생각없이 답을 달다보니, 뭐랄까.. 좀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쓰게 되는 내가 겪어본 영국의 학벌주의...
한국을 전체적인 학벌사회,라고 한다면 - 계층에 상관없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학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모두 좋은 학벌을 가지기 위해 경쟁하는 구도 - 영국은, 뭐랄까.. 선택적인 학벌사회다. 예전에 영국의 계급사회에 대해 썼을 때처럼, 학벌에 대한 관심역시 계급에 따라 다르단 거다.
1. 워킹클래스에 속하는 이들은, 학업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그보다 기술/먹고 사는 방법 등에 좀 더 관심을 두는 편이다. 정규교육을 이수하긴 하지만, 학교의 수준 같은 것에 관심을 크게 두는 편도 아니고, 정규교육이 끝나고 나면 대부분 근처 카페나 수퍼마켓에서 일을 하거나, 미용이나 기계 등 기술을 배우기 위해 Vocationial training course 등을 밟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식의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어린 나이부터 자기 아버지나 삼촌 등을 따라 보일러나 울타리 등을 고치러 다니며 직접 기술을 배우기도 한다 (실제로 집에 오는 plumber, eletrician, gardner 들은 어린 조카나 아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기술을 익히거나 해서 어릴 때부터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사회에서 대학졸업장이 없다고 불이익을 당하거나 무시 당하지 않느냐, 절대 그런 일은 없다. 도리어 이 사람들이 좀 배웠다는 이들을 보고 'Snobbish'라고 뒤에서 깔지언정;;; 그리고 아무 일도 안하고 어린 나이에 임신해서 정부의 돈을 받으며 먹고 놀거나, gang에 속해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많은 수의 젊은 이들에 비하면 이들은 상당히 존중받는 입장이다.
한국 역시 많은 학생들이 공고나 상고를 가서 그런 트레이닝을 받지만,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전문대라도 가려고 하거나, 나중에 같은 회사에서 훨씬 오래 일했는데도 대학졸업자보다 승진의 기회도 적고, 월급도 적은 그런 경우는 영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 중산층에 속하는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물론 자식의 교육에 관심을 둔다. 가능한 좋은 환경의 State school에 보내려 하고, 정규교육 후 A Level을 통해서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길 바라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모든 부모들이 In Seoul을 외치거나, SKY를 무조건 목표로 잡으려 하는 것과는 달리, 영국의 부모들은 그 기대치가 별로 높진 않다. Manchester에 가도, Bath에 가도, New Castle에 가도, 자기 자식이 스스로 노력해서 원하는 공부를 하기위해 대학에 갔다는 사실 자체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편이다. 물론 그 중 자식이 정말 열심히 해서 옥스브릿지에 입학했을 때, 부모의 자랑스러움이 하늘을 치솟아 입학식날 어머니가 펑펑울었다는 거나, 누굴 만나도 '내 딸이 캠브리지 입학함'이라고 떠들어대서 도저히 고향에 갈 수가 없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 그런 건 한국 부모나 영국부모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3. 중상/상위층에 속하는 영국인들은 뭐 처음부터 다르다. 처음부터 대부분 Private school 이나 Boarding school에 가기 때문에 그 노는 무리가 다르고, 그들의 대다수가 실제로 Oxford, Cambridge로 오며,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은 무리를 형성한다. 그렇지만, 재밌는건, 그들 역시 자식이 굳이 어느 대학을 가든, 대학을 가든 말든 신경을 안쓸때가 많다는 거다. 실제로 친구 중 한명은 런던의 잘사는 모 지역에, 부모 집 따로, 자기 오빠 집 따로, 심지어 자기 집도 따로 있는데다가, 할머니가 스코트랜드 출신임에도 그 분의 생일잔치에 BBC에 나오는 런던의 왠만한 유명인들이 왔을 정도의 집안 출신임에도, 그녀는 바로 대학 가기가 싫어 몇년간 런던 바에서 일하다가, 여행 좀 다니다가 그러다 뒤늦게 캠브리지에 왔었다 (여기서 중요한건, 그렇게 몇년 놀았어도 캠브리지 왔다는거다;;).
그렇다면 이런 이들이 다 교육을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만났을 때는 어떨까??
결론을 말하자면.... 말했듯이 영국에서는 계급별로 일하는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별로 학벌을 가지고 부딪힐 일이 없다.
한국은 공고 졸업자도, 대학 졸업자도, 석사 졸업자도, 박사 졸업자도, 모두 결국에는 대기업에서 일하길 원한다. (요즘에는 공무원인가??) 모든 학벌의 사람들이 한 곳을 원해서 몰리니 다시 경쟁이 발생하고, 그들 사이에 차이를 두자니, 대학 비졸업자는 대학 졸업자보다 같은 일을 해도 보수가 딸리거나, 승진의 기회가 적고, 같은 대학 졸업자라 하더라도 그 대학 출신에 따라 또 나뉘는거다. 하긴, 모두들 같은 걸 (좋은 대학) 위해서 학창시절부터 미친 듯 경쟁해서 대학을 통해 그 계급을 나눠놨는데, 사회에 나오니 또 같은 곳에서 부딪쳐야 하니 또 계급을 나누기 시작하고, 그러니 학벌이 계속해서 언급될 수 밖에 없는거다. 그게 사람들을 나누던 최초의 계급이였으니까...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럴 일이 별로 없다. 왜냐면 벌써 학벌에 따라 직업들이 나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그들이 같은 직장에서 일한다 하더라도, 그 구분은 대략 확실한 편이다. 예를 들어, 대학 같은 경우, Academic staff, Technical staff, Administration staff 등 구분이 확실하다. Academic staff라 하더라도, 출신 대학을 가지고 사람들 패가 갈리는 일은 좀 드물다. 물론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다 보니 패가 갈리는 건 분명히 있지만, 같은 대학이라는 것만 가지고 그런 일은 별로 없다는 거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좀 얕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질이 안되는 사람이다. 즉, 교수/강사/연구진이라면 다들 박사 정도는 가지고 있거나, 그게 아니면 오랜 실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어느 것도 충족이 안되는 경우, 그리고 제대로 맡은 일을 안하는 사람은 여기서도 따를 당하거나 무시 당한다.
질문해주신 이웃분이, 영국에도 어떤 분야에 특정 대학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곳이 있느냐고 물으시면서 금융권을 예를 드셨는데.... 솔직히 금융권 쪽에 옥스브릿지 쪽 사람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긴 하다 (캠브리지 쪽 친구들을 보면 대학, 금융권에 최다 포진해있다). 그런데 금융권 쪽은 정말 전공안가리고 뽑는 편이라서, 굳이 옥스브릿지 출신이 아니라도 성적, 스펙 등이 괜찮고, 그들의 테스트에 통과하면 들어가는 문은 잘 열려있는 편이다. 그리고 들어가면 학벌이고 뭐고 없다. 그냥 개처럼 죽어라 일하는 거다;;;; 그리고 그 동네에서 원하는 건 학벌이 아니라, 스스로를 잘 팔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본인이 특별히 수적 계산에 뛰어나거나 말빨이 세거나 자신감이 특출나다면 가서도 잘 살아남을 수 있을거다.
영국에서 굳이 학벌로 몰리는 분야가 있다면.. 정치권이랄까.. 실제로, 캠브리지에서 임원활동을 하는 동안, 난 학생들이 그토록 전문적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정치적 성향으로 나뉘는 것에 대해 깜짝 놀랐으니까...
어쨌건, 한국에서는 대학이름만 보고 이력서가 갈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영국에서는 보다 전체적인 경우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직업에 대한 공고가 뜰 때도 대부분 지원자에게서 원하는 부분들을 세세하게 제시해 놓기 때문에, 자신이 거기에 적합하다고 증명할 수만 있다면 대학 이름같은 건 별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그대신, 학벌이 너무 높아서 탈락되는 경우는 있다;;)
물론 어딜 가도 학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재수없게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랑하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 학벌에 열등감을 가지고 자기보다 괜찮은 대학 출신에게 날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그건 그냥 사람따라 다른 거고, 소수이기도 하니 영국에서 자기 학벌을 가지고 굳이 걱정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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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이게 일반적인 영국에서의 학벌에 대한 인식이고.... 경험상, 예외가 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옥스브릿지 출신이다. 머리를 써야 하는 곳 (대학, 학교 등)에 지원할 경우, 옥스브릿지 일 경우 절대적으로 플러스가 되는 경우가 많다. 박사를 할 때도, 학회 등에 지원할 때 거절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직장에 지원할 때도 대학 이름만으로 일단 면접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쪽은 워낙 동문활동이 활발한데다가 외부의 사람들은 대부분 이해할 수 없는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에, 그 쪽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빨리 가까워진다. 내가 캠브리지를 떠난지 3년이 지나감에도 이 먼 타지에서 처음으로 빨리 친해진 사람들이 대부분 캠브리지, 옥스포드 출신이란걸 감안하면... 결속력이 상당한 편이다. 그렇다고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건 아닌데,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좀 거리가 느껴질 수도 있다.
덧2. 옥스브릿지 출신들이 옥스브릿지를 떠나 정착하게 되는 경우, 암묵적인 불문율이 있는데... 대부분 일반 대화중에 자신이 옥스브릿지 출신이란 것에 대해 입을 열지 않는다. 굳이 누가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면, 이력서처럼 자기 출신을 밝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나 여기 출신이야'하고 먼저 나서서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 실제로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좀 재수없는 사람이거나, 실제로 공부한게 아니라 잠시 머물렀던 사람 일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캠브리지를 벗어난 이후 대학에서 일하면서도 가능하면 캠브리지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출신들끼리 만나면 더 빨리 친해진다고 할까, 왜냐면 그냥 편하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
덧3. 한국인이면서, 영국/한국의 학벌에도 불구하고 직업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1) 외국인이기 때문이거나 (비자 문제 - 대부분의 경우), 2) 설사 비자가 되더라도 한국에서의 학벌은 너무 낯설거나 (한국 대학은 그게 서울대라 하더라도 여기선 몰라준다, 그리고 이름자체만 봐도 너무 exotic하고, 한국의 대학들은 미국 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학점이 4.5중 4.3이라 하더라도 영국인들 입장에서는 그게 어떤건지 잘 감이 안잡힌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이들은 그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을 더 알길 거부할 수도 있다), 3) 너무 고학벌이거나 (대다수의 한국인들이 학부를 마치고 석사 정도를 하러 오는데, 석사는 일반직에 지원하기엔 너무 높은 학력이고, 전문직에 지원하기엔 좀 못미치기 때문이다)
....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쓰긴 했는데, 실제로 다른 대학을 나와서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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