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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과 한국인의 국민성

민토리_blog 2013. 11. 30. 05:57

요즘 박경리님의 '토지'를 다시 킨들로 받아 읽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다 읽었던 소설이건만 다시 읽으니 새록새록 다시 빠져든다. 난 한국의 역사과 관련된 걸 많이 읽는 편인데, 특히 조선 말기 이후의 역사와 관련된 걸 가능한 많이 읽으려 한다. 아직도 그 진위가 불분명한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우리네 역사의 진실들이 궁금하기도 하고, 지금의 한국/한국인을 이해하는데 그 당시 이후의 역사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믿기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침략과 수탈, 전쟁으로 뒤범벅된 한많은 한인의 역사에 익숙해져있던 내게 가끔 영국인들의 어떤 모습은 퍽 생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주섬주섬 풀어보는 개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 국민성 들여다보기... 


1. 전쟁이 자랑스런 이들과 전쟁이 고통이였던 이들.


언제였던가.. 영국에서 혼자 크리스마스 오전을 맞이하면서 티비를 보다가 영국 애니메이션 한 편을 본 적이 있다. 'War game' 이라고 30분 가량 되는 Dave Unwin이 만든 짧은 애니메이션인데.. 줄거리를 보자면 밖에서 축구를 하고 놀던 소년 3명이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 했다는 소릴 듣고 자랑스레 전쟁에 지원한 후, 프랑스 전방에 가서 싸우다가 크리스마스 아침에 독일군과 같이 축구를 하고, 다시 상부의 지시로 각자의 전쟁터로 돌아가 싸우던 중 다 전사한 내용이다. 내게는 그 짧고 잔잔한 애니메이션이 엄청난 문화충격으로 다가왔는데.. 

그 어린 십대의 소년들이 전쟁 소식에 자랑스레 지원을 한 것도 그렇고, 그들의 가족 역시 어머니들만 간간히 눈물을 훔치며 전쟁이 장난이냐고 얘기하는 걸 제외하면 아버지는 그들을 자랑스레 전쟁터로 보내주고, 전쟁터의 총성 속에서도 차 한잔 나누는 거나, 크리스마스라고 적군과 함께 축구를 한다든지... 

한국에서의 전쟁 때와 관련된 드라마, 영화, 소설, 모든 걸 보자면, 10대의 어린 소녀, 소년들이 강제로 끌려가고, 부모는 울부짖고... 그런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하긴 2차 세계대전인지도 모를 때야 어디 제 나라를 위한다고 전쟁에 나갔던가 말인가... 내 나라도 아닌, 내 나라 집어삼킨 나라 위해 총알받이로 나간다는데 그 누가 제 자식이 전쟁터에 나간다고 축복해줄건가 말이다. 한국전쟁때야 제 이념 따라 인민군/국군에 지원한 이들도 있다지만, 그것도 알고보면 다같은 한국인인데.. 언젠가는 내 이웃이였고 가족이였던 이들을 죽이러 간다고 축복할 것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현충일이고 뭐고 간에 태극기를 잘안단다고 뭐라 하기 까지 하는데.. 여기선 11월 11일 11시에 2분간 묵념의 시간이 되면 실제로 사람들이 거리에서도 잠시 멈출만큼 전쟁에 관해선 숙연한 기분이 된다. 베테랑들에 대한 대접도 상당하고, 전체적으로 병사들에 대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운 이들'이라는 대접을 해준다. 전쟁에 대한 많은 다큐멘터리들이 존재하고, 그 시절을 들추는 것이 고통스럽다기 보다 그저 '역사'라고 생각하거나 어느 순간에는 그 위기를 넘겨 결국 전쟁에 승리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침략당했던 나라 출신인 나는... 그런 영국인들이 아프가니스탄이고 이라크에서고 죽은 병사들을 애도할 때.. '무슨 명목이건 간에 남의 나라 가서 전쟁하러 갔는데 그럼 남만 죽이고 자기들은 멀쩡할 줄 알았나'하는 못된 생각까지 드는거다;;; 


2. 침략함이 익숙했던 나라와 침략 당함이 익숙했던 나라


2005년 7월 7일 난 런던에 내려갈 예정이였다. 아침에 버스터미널에 갔더니 왠일인지 런던행 버스는 모두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로공사라도 하나, 하는 안일한 생각에 버스기사에게 언제 다시 운행하느냐고 물으니, 그는 날 빤히 보며 '뉴스를 못봤냐'하고 물었다. 웅성한 분위기에 기분이 이상해져서 다시 시내로 나오니 곳곳에서 라디오며 티비며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킹스크로스 근처에서 일어난 버스 폭탄테러... 저게 사실인가 싶을 만큼 별로 믿기지가 않았다. 런던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해보니, 자기도 아침에 출근하고서야 알았는데, 여기도 분위기가 좀 산만하긴 해도 그렇게 난리는 아니라고.. 모든 교통수단이 마비된 까닭에 회사들은 사람들에게 일찍 퇴근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오후무렵에는 그저 묵묵히 거리를 걸어 집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빌 뿐,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지거나 그렇다기 보다 그저 숙연한 분위기라고 했다. 

그 저녁에 영국수상은 바로 대국민담화를 열어 '우리는 그들에게 지지 않을것이다'라는 연설을 했고..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영국인들도 애도를 표할 뿐 이렇다할 수선함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뒤에 한국 뉴스사이트를 통해 한국에서 지하철 어딘가에 놔둬진 검정 봉지를 폭탄으로 착각하고 사람들이 패닉상태에 빠져 난리가 났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것뿐이랴.. 분단이래 몇번이고 북한의 위협이 있거나 할 때마다 사람들은 사재기에 정신이 없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내가 영국에서 사재기에 가까운 일을 목격한건 몇일간 최대 폭설 주의보가 내렸을 때다. 하여간, 그 때 런던 테러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건, 한번도 침략당해보진 않은 이들의 여유, 랄까... 

영국의 일반적 집들만 봐도 '담'이라는 개념이 별로 없다. 집이 아무리 도로 앞에 있어도 바로 현관이고 창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창살이 박힌 창문도 아니다. 그만큼 안전하다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누구도 함부로 남의 집을 침입하지 않으리란 자신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영국인들은 자기 공간에 대한 안전의식이 강하다. 테러가 일어났다 하더라도 그게 당장 자기의 신변을 위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반면 한국에서는 가끔 안전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하긴, 전쟁통도 아니면서 한나라의 왕비마저 자기집 안방 (궁궐)에서 다른나라의 잡놈들에게 잡혀 살해당하고 불태워 죽었는데.. 일반 평민들이 자기 집에 있는들 얼마나 안전했을것이며, 처참했던 한국전쟁 와중에는 이웃이든 가족이든 언제 누가 밤중에 처들어와 내 눈앞에 칼을 들이댈지 모를 상황에 시달렸으니... 어찌보면 안전에 대해 민감한 우리네 사람들이 이해가 가긴 한다.. 


3. 왕실/귀족이 여전히 건재한 나라와 돈이 귀족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나라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왕실에 대해 대체적으로 호의를 가지고 있다. 내가 아는 영국 노부인들 중에는 왕실의 결혼식이 있을 때마다 기념컵을 사다 장식해놓으시는 분들도 꽤 있었다. 그런 만큼 귀족들도 여전히 존재하고, 매해 영국 사회를 위해 공헌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여왕이 귀족직위를 하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는 귀족은 단순히 '돈많고 집안좋은 사람들'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계급이 올라갈수록 돈에 대해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걸 천박하다고 여기거나, 그 외 품위/품격 등을 훨씬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한국에서 요즘 들어 보는 '귀족'이라 칭해지는 이들을 보면, 대부분 재벌집안이나 돈많은 부유층을 뜻한다. 그들은 자신의 부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고, 그럼으로써 끼리끼리 어울리며, 부모의 재산에 따라 나름의 계급을 자기들끼리 형성하기도 한다. 하긴, 소위 양반/선비들이라 부르던 계층들이 나라가 뒤집히면서 다 망해가고, 남아있던 양반/지식인들이라 한들 존경받을 이들은 전쟁통에 정치싸움에 휘말려 일찌감치 죽었고, 그나마 남아있는 이들은 도리어 나라 팔아먹는데 힘쓴 이들이거나, 나라가 혼란스러운 틈에 자기 이속 챙기려 했던 이들이 많았으니, 거기서 누가 품위를 찾고, 품격을 찾을 거란 말인가... 아니, 나라가 망해서 왕마저 자신의 품위를 지키지 못했는데... 그리고 품위도 내 배부르고, 걱정없이 발뻗고 잘 수 있는 잠자리가 있을 때나 하는 소리지... 몇번의 전쟁통에 살아남는게 최고이던 시대에 어찌보면 돈이 최고가 된 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근데 어찌보면 그 재벌이란 것도 국가에서 만들어준거니, '직위하사' 같은 건가? 그럼 그런 의미에서 한국도 봉건국가인가 ㅎㅎㅎ


4. 늘 집주인 같은 영국인과 눈치보는 한국인


영국인들은 자신의 문화/나라/언어 등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편이다. 미국식 영어를 좀 깔보듯 말하는 것도, 원래 영어가 자기들의 언어이기 때문이며, 최초의 산업혁명을 일으킨 것도 그네들이고, 최초의 철도가 생긴 것도 영국이고, 하여간 뭐든 자랑할 게 많다. 2007년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툭하면 EU에서 자기들은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어쩌냐 하면서 (그렇다고 자신들의 경제적 위치가 좋은 것도 아니면서!) 궁시렁궁시렁 거리는 것도 그런 태도다. 작은 외딴 섬나라면서, Continental Europe이라고 다른 유럽국가들을 싸잡아 부르며 자기들은 마치 유럽이 아닌냥 그런 도도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영국에서 사는 외국인들의 비율이 꽤 됨에도 여전히 고지식한 영국인들은 몇세대를 거쳐 이 땅에 자리잡은 인도인들을 얕잡아 보기도 하고, 모든 동양인들을 'Chinese'라고 부르며 여전히 이제 막 영국에 온 뜨내기 취급을 한다. 어떤 이들은 당신의 억양이나 외모를 통해 나름으로 판단해서, 당신의 발음을 고쳐주려 할 수도 있고, 자질구레한것들을 가르치려 들기도 한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을 대할 때, 그들의 노력에 감탄하고 너그럽게 대해주려 하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당신의 영어실력에 그리 감탄하지도 않고, 당신이 별로 내세울 것 없는 그들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에 고마워하지도 않는다. 대신, 당신이 그들의 음식이나 날씨에 대해 불평하면 기분나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은 좀 다르다. 일단 '선진국'이라는 말에 혹해하고, 특히 하얀피부를 가진 미국/유럽인에 대해 호의를 보인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좀 하면 감탄하고, 친절을 보이며, 그들이 조금이라도 한국의 어떤 것에 대해 불평하는 기색이 있으면 대부분 어쩔 줄 몰라하거나 같이 욕을 하기도 한다. 고작해야 우리와 다른 외모를 가진 외국인이 한국말을 잘 한다는 이유만으로 티비에 출현해서 한국의 문화에 대해 평가하기도 하고, 그들이 마치 그 나라의 외교사절단이라도 되는냥 '와~'한다. 그들이 김치를 먹으면 대단하다고 기뻐하고, 어떻게든 잘 먹이려고 대접한다. 물론 그런게 우리네 정이긴 하지만, 어떨 땐 좀 짜증난다. 특히 나라의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 '선진국' '선진국'하면서 목을 맬 때는 답답하다. 언제쯤 우리도 그냥 '한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랑스러울 수 있는 건지... 언제쯤 우리도 남들이 '한국'을 모른다고 할 때, '그럼 그렇지'라고 한숨을 내쉴게 아니라, '한국도 모르냐'라는 태도를 취할 수 있을지.... 


5. 다양성이 당연한 나라와 다양성이 죄가 되는 나라


영국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인종 등을 떠나서) 다양한 모양으로 다양한 생각을 하고 살아간다. 하긴 사람이 원래 다 고유한 모양새를 하고 태어났으니, 다양한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데.... 한국은 다양성이 '징을 맞는' 나라다. 특히 '사상'에 대해서는 아직도 자유스럽지 못하다. 정치적 발언이 곁들어지면 사람들은 긴장하고 눈치를 본다. 그리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뭐가 아니다 싶으면 '빨갱이'란다. 도대체 그게 언제적 표현인가... 누가 신랄하게 공개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면 어떤 이들은 그들의 신변을 걱정하기도 한다. 아무리 봐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라 하기는 좀 의아한거다. 

왜 그런지 이해는 간다. 한국전쟁을 통해서 툭하면 누가 내 목에 총/칼을 겨누며 '너 누구편이야'하고 묻고, 그게 무슨 대답이든 간에 죽을 확률이 더 높았는데.. 그렇게 몇년을 시달리면 도대체 누가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겠는가... 그게 한국전쟁 3년으로 끝난 일인가... 그 후에도 몇십년을 독재정부에 시달리면서 말 잘못하면 잡혀간다는 분위기 속에 살았는데... 어찌보면 그 당시 집권층은 민족정기 잘라먹겠다고 말뚝받고, 언어금지시키고 했던 식민시대 일본인들보다 더 독하고 효율적이게 민족정기 끊어먹은 거다. 말도 못하게 혀를 자르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제 나라 사람들을 제대로된 생각도 못하게 바보만들고 벙어리 만든거 만큼 나라 망쳐 먹은게 또 있단 말인가.. 어쨌건 그래서 그런가... 사람들은 남과 다르면 좀 불안해 한다. 끊임없이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확인받으려 한다 - '나 괜찮아? 너무 튀지 않아? 이상해?' 하고 물으면서... 

그래도 요즘에는 공개적으로 이말 저말 꺼내는 이들도 많아지는 거 같은데... 그런 이들이 '이상한 사상/불온한 사상/튀는 사상을 가진 사람/집단'으로 인식될 게 아니라, 그냥 다양한 생각을 가진 집단 중 하나, 라고 받아들여지진 않는 거 같다. 그래도.. 느리긴 해도 변해가고 있다는 게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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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브리지에 있을 때 만났던 한 영국 학생이 나와 역사에 관할 걸 한참 얘기하다가 그런 말을 했다. 


"Sometimes I am ashamed that I am White English"


 그말이 내게는 좀 충격적으로 남았다.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늘 침략자였던 영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에 대해 내가 너무 신랄하게 말했던 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도 했다. 그러고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다. 돈많고 편안하게 살아온 부잣집 또래 아이를 시샘하듯 바라보며, '네가 그 고통에 대해 알긴 뭘 알아!'하고 알 수 없는 증오를 키워온 가난한 집의 아이같은 심정이랄까... 이제와 역사를 들춰본 들 뭘 하며, 당신들이 지금 이만큼 올 수 있었던 건, 그만큼 다른 이들의 피를 흘리고 다른 이들이 가진 것들을 빼앗았기 때문이야! 하고 말한들... 달라질 건 뭐란 말인가.. 중요한 건 현재임이 틀림없고, 여기서 어떻게 나은 미래로 가느냐가 더 중요하긴 한데... 그래도 때로는 현재를 있게한 근원지를 뒤져보는 것도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놀랍게도 아직도 그런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현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