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일요일에는 그간 친해진 아기 엄마들과 파트너들을 집으로 초대해 바베큐 파티를 열었습니다. 겉으로는 Summer BBQ라고 사람들을 초대했지만, 제 내심으로는 '인간관계 굳히기'라고 이름붙인 파티였죠 ㅎㅎ 어쨌건 20개월에서 7개월 사이의 아기들 6명과 어른 12명이 북적북적거리며 놀다갔습니다. 남자들이 제각각 아기를 돌보고 바쁜 동안 아기 엄마들끼리 모여 영국인답게, 초대해 줘서 고맙다, 집이 좋구나, 이렇게 모이니 좋다, 등등 여러 인사치레와 칭찬의 말들이 오고 가던 중에 아기엄마 D가 말을 했습니다.
D: I am so glad that I got to know you guys. It is difficult to meet mums who have similar mind here (너희를 알게되서 정말 기쁘다. 여기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엄마들을 만나기가 힘들다).
그러자 다른 엄마 C가 말을 받습니다.
C: Yes, I've been to several baby clubs, but sometimes it is so difficult to talk to other mums. (맞아, 몇군데의 아기모임에 가봤지만 어떨 때는 다른 엄마들과 대화하기 너무 힘들어)
H: Yeah, some of them are quite different, aren't they? (맞아, 어떤 이들은 정말 달라, 그렇지 않아?)
그러며 다들 누구도 뭐가 다른지에 대해 직접 얘기하진 않았지만 모두 동조하던 중에 H가 다시 영국인답게 수습을 합니다.
H: Oh, don't get me wrong. I don't mean that they are bad or anything like that. It is just different (혹시 잘못생각할까봐 그러는데, 그들이 나쁘거나 그렇다는게 아니라, 그냥 다르다는 거야)
L: Of course not! They are not bad people. They just have different views on certain things. (물론 아니지. 그들은 나쁜 이들이 아니야, 그저 어떤 점에서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뿐)
... 이렇게 듣고(읽고) 있으면 도대체 'Them'은 누구이며, 뭐가 다르다는 건가, 하고 의문점을 가질 수 있으실거 같은데.. 그 them과 us, 그리고 difference에 대해서 아주 소소히 개인적인 경험담으로 말하고자 합니다.
오래 살수록 느끼는 거지만, 전 선진국들 중에서 영국만큼 계급 (Class)이 극명히 드러나는 사회는 별로 보지 못한거 같습니다. 물론 어느 사회든 부유층, 중산층, 빈곤층 등으로 나눠지긴 하지만, 영국은 그보다 좀더 근본적인 어떤 계급 룰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같은 경우에도 서울 남쪽과 북쪽 어딘가에 몰려 산다는 한국의 몇퍼센트 안에 든다는 사람들은 일반사람들 중에서도 구별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거리를 걸으면서 아, 저 사람 부유층 출신이구나, 빈민층 출신이구나, 하고 짐작하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영국에서는 그런게 가능합니다. 외형만으로 판단이 힘들다면, 그들이 입을 벌리고 말을 몇마디 내뱉는 순간 구별이 가능해집니다. 그 차이는 계급이 높을 수록, 낮을수록 더 선명히 드러나죠. 제가 캠브리지에 있을 때 사람들과 첫 인사 몇마디에 그 사람이 Public school 출신이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이런 계급에 관한 이야기는 영국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터부시 되기 때문에 대놓고 하긴 어렵지만, 전 어차피 외국인이니까 해보는 이야기...
1. Upper/High Class
캠브리지에 있었을 때 Private party에 초대받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알만한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몇년을 살아도 절대 모를 소수의 있는 집 자식들이 모인 Gentlemen's club이였죠. 클럽의 본거지는 캠브리지의 중심가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의 2층이였는데요.. 1층에 레스토랑들이 있어서 2층에 뭐가 따로 있을거라곤 상상도 못한 그런 곳에 있었습니다. cctv가 달린 작은 문을 열고 올라가니, 계단에 말그대로 제인오스틴이 마차타던 시절의 그 클럽 멤버들의 초상화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막상 2층에 도착하니.. 나이가 지긋하신 Butler (집사)분께서 "Sir, Madam"하고 부르시며 정중히 코트나 스카프 같은 걸 받아주시더군요.. 안은 상당히 넓었고, National Trust에 등록된 오래된 집의 거실 축소판에 와있는 기분이였습니다. Bar가 따로 있고, 심지어 어떤 방에는 최신식으로 대형 벽걸이 모니터에 계단식 의자까지 작은 영화관을 연상시켰습니다. 응접실과 바 등 곳곳에 여럿 학생들이 어울려 얘기를 나누며 있었고, 남자들은 시가를 피우고, Bar에서는 따로 바텐더가 음료를 주문받아 만들어주고.. 말그대로 Private party였죠. 뭐.. 굳이 이런 파티에 가지 않더라도, 금/토요일 저녁에 Kings College Bar에만 가도 대략 어떤 분위기인지 아실 분은 아실겁니다.
Upper class 친구들은 말을 하다보면 대략 감이 옵니다. 먼저 그 특유의 악센트를 듣고 바로 짐작할 수 있고, 카톨릭인 경우도 많습니다. 대부분 보딩 스쿨을 나왔고, 가족에 대한 얘기를 그렇게 많이 하는 편도 아닙니다. 행동이 항상 침착하고 말을 할 때도 서두르는 법이 거의 없죠. 항상 어느 정도의 친절을 보이지만, 그 선을 벗어나 확 친해지기는 힘듭니다. 그리고 정치색이 뚜렷하기도 하며, 대부분 끼리끼리 놉니다.
2. Middle class
중산층도 대략 Upper middle과 Middle middle/Lower middle 쯤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는 곳마다 다르겠지만, 왠만한 마을/타운에서 만나는 점잖아 보이는 영국분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합니다. 중산층 중에서도 Upper 와 Lower는 대부분 직업이나 소득 수준에 따라서 나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사는 집이나 생활 수준, 취향등을 봐도 대략 판단이 되죠. M&S에서 쇼핑을 하고, John Lewis에서 가전제품 등을 사고, 여자분들은 Laura Ashley 같은 숍을 좋아하며, 대부분 차가 집에 2대 이상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친구 같은 경우는 집에 부모님 차 각각 1대씩, 가족 공통용 1대, 근처 사는 동생의 차 1대, 총 4대의 자동차와 동생과 아버지가 모토바이크 2대씩 가지고 있었죠). 젊은 사람일 경우, Upper 로 갈수록 좀 독특한 취향을 가졌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호불호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굳이 명품을 산다기 보다, 빈티지 스타일 가구라든가, 50년대 스타일의 옷들이라든가, 특정한 술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자기 색이 뚜렷하고 그런 경우, 그와 관련된 부분에는 돈을 아끼지 않더군요). 여름 휴가때가 되면 스페인이나 크로에시아, 그리스 같은 곳으로 휴가를 가고, 가족 중 누군가 스페인 어딘가에 별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이 모여사는 마을은 대부분 전형적인 영국의 마을을 연상시킵니다. 녹색지대가 많고, 정원도 나름 잘 다듬어져 있고, 이들 동네의 펍만 봐도 대략 그 마을 수준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그냥 저희가 만나는 이상해 보이지 않는 일반 영국인들은 거의 중산층입니다.
3. Working class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웨일즈의 시골로 이사와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계급층이 이 사람들입니다. 사실 그 극명한 차이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외형으로 보자면, 남자들 같은 경우 추리닝 차림에 후드를 뒤집어 쓰고, 드러나는 살 곳곳에서 문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 같은 경우 대부분 화장이 짙고 나름 최신의 유행을 따르는 옷을 입고 있고, 악세사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혹은 여자들도 추리닝을 입고 다니거나, 왠지 모르게 특이한 옷을 입고 다니기도 합니다. 보통 가격대가 낮은 할인 가게 등에서 쇼핑을 하고, 레스토랑이나 펍에 가서 식사를 하기 보다, 주로 케밥/버거 나 칩스 같은 걸로 식사를 해결하기도 하며, 가끔 맥주 캔을 들고 마시며 길을 걸어가기도 합니다. 대부분 사는 집은 Council house (공영주택)이거나 작고 빽빽하게 붙어서 늘어선 Terraced house에 삽니다.
Upper class 사람들에게 어떤 특정한 악센트나 억양이 있는 것처럼, 이들과도 말을 하다보면 바로 감이 옵니다. 말을 잘라 먹거나 (Cheer(s) Drive 같은 식이죠), 문법에 어긋난 말도 많이 씁니다. 이들 중에는 정부에서 Benefit을 받으며 아무 일 안하고 그냥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 직업의 소득수준이나 안정성은 좀 낮을 수 있지만요... 그런 반면, 그들의 집에 가보면 놀랍게도 최신 티비나 게임기 같은 걸 발견할 수 있고,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폰도 대부분 최신형입니다.
저같은 경우, 아기 때문에 여러군데 모임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웨일즈에 낙후된 지역이 많다보니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임신 교실이나 육아 관련 프로그램이 꽤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좀 아이러니 한건, 그런 모임에 오는 엄마들치고 정말 그런 교육이 필요한 엄마들은 별로 없다는 거죠.. 아니면 오더라도,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의 끊임없는 설득에 못이겨 오거나 한두번 왔다가 그냥 안오는 경우도 많구요. 그나마 플레이 그룹 같은 경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많지만 (보통 20대의 엄마라도 2-3명의 아기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거든요), 모유수유 그룹 같은 경우 Working class 엄마들은 거의 없습니다. 모유는 공짜이니, 당연히 경제사정이 안좋은 그들일수록 모유수유를 할 거라 생각하겠지만, 여긴 반대더라구요. 임신교실에서 만난 16살 짜리 소녀는 정부에서 주는 걸로 우유사다 먹이면 되는데 내가 왜 귀찮게 모유수유를 하느냐고 도리어 되묻더군요..
어린 나이에 아기를 가진 경우도 많고, 때로는 어린 아기에게 F와 S으로 시작하는 욕을 해대며 소리를 지르는 엄마/아빠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또래의 아기를 가진 엄마들이라 하더라도 모이면 저절로 그룹이 갈라질 수 밖에 없더라구요. 대화를 하다보면 더이상 어떤 대화도 가능하지 않은 순간이 오니까요... 그러니 'Them' 과 'Us'의 구분이 나올 수 밖에 없죠. 그럴 땐 기분이 좀 묘하기도 하더라구요.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기가 도대체 뭘 알겠냐마는... 대부분 말을 하고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2-3살 때부터 벌써 아이들 행동이나 말투 자체가 달라지니까요.. ... 한국에서는 솔직히 판자촌이든 어디서 자란 아이라고 해도 그 배경만으로 그 아이들의 가정교육을 문제 삼기는 좀 그렇잖아요, 요즘은 도리어 있는 집 자식들이 더 버릇없다고도 하니까요.. 그런데 영국에 살면서는, 그런 사람들이 착하다, 나쁘다의 얘기가 아니라, 뭐랄까요.. 좀더 근본적인 어떤 계급의 특성이 세습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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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재산 수준이나 직업에 따라 클래스가 나눠진다면, 영국에서는 그런 물질적인 것보다 좀더 근본적인 것들이 그 사람의 계급을 결정합니다. 가치 기준이라던가, 행동이라던가, 말투, 취향, 스타일 등등.. 그냥 그 사람을 이루는 것들이 통합적으로 어우러져서 계급을 드러내죠. 또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계층 사이의 이동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대부분 가능하면 어떻게든 상위 계급으로 올라가려고 한다면, 영국 사람들은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구요. 언젠가 만나게 된 영국분은 젊었을 때, 카디프에서 알아주는 호텔의 벨보이였다는 사실을 상당히 자랑스럽게 여기셨죠.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내분이 반하셨다는 얘기도 해주시면서요 ^^ Downton Abbey를 보시면, 거기서 일하는 Butler 와 Housekeeper 같은 분들 경우 자신의 위치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셨을 겁니다. 그런거죠.
그런 태도는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나더라구요. 한국에서는 주로 부모가 자식역시 자신이 속한 계급이나 아니면 그 상위 계급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에 자식에게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죠. (내가 의사면 자식도 의사나 그 정도 되는 수준의 직업을 갖기 바라고, 내가 청소부라도 너만은 공부해서 훌륭한 직업 가져야 한다, 하고 말하며 자식 공부에 올인하는 태도 같은 거죠)
반면 영국에서는, 상위층이라면 자식들의 공부에 신경을 쓰긴 합니다. Public school 같은 곳에 보내거나 괜찮다는 보딩스쿨에 보내는 거죠. 그리고 그런 자식들은 알아서 부모 수준의 교육을 받고 닮아 갑니다. 그런게 아니라 좀 별나게 하고 싶은 걸 하겠다, 하는 자식이라도 집안의 품위를 해치는 것만 아니라면 내버려두죠. 어차피 그럴 여력이 되니까요. 중산층은 Public school 같은 곳에 보낼 경제적 능력은 좀 안되니, 보통 마을 근처의 학교에 보내고 자식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편입니다 (마을 학교의 근처라 해도 어차피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 몰려사는 곳이니 학교의 수준도 믿을만 하다는 거죠. 그래도, 자신의 자식들이 옥스브릿지에 가게 되면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워킹클라스 같은 경우는.... 그냥 내버려두죠;; 자식이 어쩌다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걸 뒷받침 해주기 보다는 무시하거나 깍아내리기도 합니다 (니 주제에 그게 말이되냐,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이렇게 쓰고 나니, 아무리 개인적인 경험담을 바탕으로 관찰한 것이라 해도 너무 스테레오 타입을 만든건 아닌가 걱정되네요. 영국에 사시는 분들의 경험이나 관찰담은 어떠신가요? 아무래도 민감하다 보니, 이런 얘기를 영국인 가족분들과 해보시라고 권하기는 무척 주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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