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영국인같은 습관들

민토리_blog 2013. 7. 20. 07:17

얼마전에 파티에 초대받아 갔을 때 일입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몇 명있었지만, 정작 친한 사람은 같이 간 친구 커플 뿐이였죠. 친구는 저보다 거기서 아는 사람이 훨씬 많았지만, 대부분 저와 있어줬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러더군요. 


친구: Hey, you don't have to be with me all the time, you know. If you want to go and talk to other people, it's ok (나와 늘 같이 있어줄 필요는 없어.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으면 가도되)

저: No, no, I'm fine. I should thank you that you are with me, I don't know many people here, you know. (아냐, 아냐, 난 괜찮아. 네가 나와 있어줘서 내가 더 고마워해야하는 걸, 너도 알다시피 내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잖아)

친구: No, you don't have to thank me, it's me who likes to be with you. But seriously I hope that you don't feel that you have to be here. (아냐, 고마워할 필요 없어. 내가 너랑 있는게 좋아서 그러는데 뭐. 그런데 정말 나와 같이 있어야 한다고 느낄 필요 없어)

저: No, no, I really like to be with you, but if you have to catch up with other people, you can really leave me (아냐, 정말 나도 너와 있는게 좋아, 그렇지만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고 싶으면 정말 가도 되)


이런 식으로 둘이서 '아니다, 괜찮다, 네가 안그래도 된다' 등등을 무한 반복하고 있는데 옆에서 보다못한 남편 (영국생할 5년차)이 말합니다. 


"Stop being British!" 


..... 

그래서 적게 되는 저도 모르게 배여있는 '영국인같은' 습관들... 


1. 반복 거절/확인할 때

영국인들은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가능한 남에게 부탁을 하지도 않고, 행여 부탁하더라도 여러번 확인을 하고 지나칠 만큼 고맙다는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호의를 보여도 속으론 좋을지라도 겉으론 몇번이고 거절하거나 정말 괜찮냐고 여러번 확인을 받고서야 받아들이죠. 


 예를 들어, 아기를 안고 큰 짐도 든 엄마가 끙끙대면서 버스에 타려고 하는 걸 보고 짐을 들어주겠다고 제안할 때, 거의 백이면 백, "No, it's ok"하고 먼저 말합니다. 그 말은 정말 '괜찮다'라기 보다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오는 말이죠.. 그럼 이쪽도 말합니다. "No worries, it's not much work for me"하고 짐을 들어줍니다. 그럼 또 그 엄마가 그러죠 "No, don't worry, you don't have to" (그렇지만 표정은 벌써 안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짐을 들어다 주고 나면, 또 "Thank you, you really didn't have to", 그럼 이쪽도 "No, don't worry", 그럼 마지막까지 그 엄마는 "Oh, thank you so much, it was very kind of you, thank you"... 하고 고맙다는 소릴 한 후, 버스에서 내리거나 이 쪽이 버스에서 내릴 때, 다시 보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 역시 누군가 제게 도움을 준다고 할 때, 일단은 거절을 한 후, 그래도 상대방이 제안하면, 'Are you sure it is ok? If it is inconvenient for you,.... ' 등등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반대의 입장이 되어서 제가 남에게 호의를 베풀 때도, 상대방의 그런 말들에 계속 'Seriously it's fine, it's not much work for me, you don't have to feel bad.... ' 등등으로 대답하며 상대방을 안심시킵니다. 어떻게 보면 에너지 소모같고, 나를 못믿나 싶기도 하고, 정말 싫은건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것도 익숙해지니 그냥 자동반사처럼 튀어나오는 것 같네요. ㅎㅎ


2.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할 때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수업시간에 학생 한 명이 질문을 했었죠. 영국인들은 'Two-faced (이중적/위선적)'하다던데, 사실이냐, 하고 말이죠. 영국인 선생은 표정이 새침해지더니, "We are just polite people (우린 그저 예의바른 사람들일 뿐이다)"라고 답하고 말았죠. 외국인들이 영국인과 친해질 때 어려워 하는게 진심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 는 건데요. 아무리 음식이 맛없어도 웨이터가 물으면, "It is lovely, thank you"하고 말하고는 뒤돌아서서 욕하는 태도같은 거죠. 솔직히 영국 생활 처음에는 그런게 잘 이해도 안되고, 정말 이중적이라는 생각을 했는데요...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제가 그러고 있더라구요. 


오늘 영국인 친구맘과 아기들을 데리고 아기용 야외수영장이 있는 곳에 갔는데요, 아기를 데리고 물에 들어갈려는데 큰 두아이가 모래를 가지고 와서 물에 뿌리며 놀고 있더라구요. 좀 놀래서 친구에게 다가가 물에 모래를 뿌려도 되냐, 하고 물으니, 친구가 주위의 표지판들을 가리키며 'No, they shouldn't. But what can we do?' 하더군요. 그랬는데 그 말을 들었는지, 그 아이들 엄마가 와서 아이를 제지시키더군요. 그러고 해결되면 좋았겠지만, 좀 있다 친구가 다가오더니 그 아이들 엄마가 다른 두명의 엄마들과 우리 욕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저희도 저희끼리 아이 교육을 왜 그렇게 시키냐며 둘이 흉을 봤죠. 그러다가 후에 그 큰 두아이 중 한명이 제 아기가 갖고 노는 장난감을 뺏고, 친구 아기에게 물을 뿌려대는 일이 생겼는데, 그 엄마가 다가와서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며 저희에게 "Oh, I am sorry"하고 말하자, 저희도 웃으며 "No, don't worry"하고 대답한 후, 그 엄마가 애가 클수록 말을 안듣는다, 의 말을 하고, 저희도 이 어린 나이에도 벌써 말을 안듣는다, 그 맘 이해한다, 등등의 대화를 '웃으며' 한참 했죠. 그랬다고 저희가 이제 아까의 감정이 없어진거냐? 그건 아니죠. 뒤돌아서서 그 엄마는 저희의 까탈스러움을 욕할 거고, 저희 역시 아이를 방치해두는 그 엄마의 태도를 욕하겠지만, 정작 겉으로는 지극히 예의바르게 서로를 대할 때, 아... 영국인이 다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죠. 만약 그 상황에서 서로 싫다고 아무 말도 안한다면, 정말 'Rude'한 게 되는 거니까요..


3. 빈말에 익숙할 때. 

이건 우리나라도 비슷한거 같은데요. '언제 한번 밥먹자'라는 말이 정말 밥을 한 번 같이 먹자는게 아닌 것처럼, 영국인들이 'We should meet up sometime', 'You should come to our house next time'하는 말도 정말 만나자, 우리집에 놀러와라, 라는 말이 아니라는 거죠. 또, 누군가가 뭘 하기로 당연히 결정된 것임에도, "괜찮냐, 정말이냐, 도와줄까?" 등등의 빈말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친구가 밥을 사기로 하고 만난 것임에도, 정작 친구가 돈을 낼 때, 저도 돈을 찾는 척이라도 하거나, 'Should we pay together?' 등의 말을 하는 거죠. 친구가, 'No, it's on me'라고 해도, 'Are you sure?' 하며 확인합니다. 그런다고 정말 제가 돈을 낼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제게 돈을 내라고 할 일도 없는데 말이죠. 


얼마전에 한국에서 친구가 왔다 갔는데... 뭘 먹고 싶냐, 밥 한끼는 사줘야지, 하고 멕시칸 요리 전문 레스토랑에 데리고 갔는데요. 음식을 다 먹고, 계산서가 나오고, 제가 계산을 하고 난 후에도 친구가 '맛있었다'라는 말만 하고 별 말이 없더라구요. 그게 어떻게 보면 이상한 것도 아닌데... 뭐랄까.. 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그 기분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보니... 마땅히 있어야 할 어떤 반응, 즉, 계산서가 나왔을 때 괜찮느냐, 내 몫은 내가 낼까, 라든지, 계산 후의 반복된 '고맙다'라는 빈말들이 없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만큼 제가 그런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거겠죠.. 


4. 돌려돌려 말할 때

제 생각에는 이게 미국인과 영국인을 구분짓는 최고의 특징이 아닐까 싶은데요... 미국인이 직접적으로 좋다, 싫다,의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라면, 영국인은 상당히 두리뭉실하게 말합니다. 똑같이 화나는 일이 있어도, 미국인이 "This is nonsense!"하고 소리를 친다면, 영국인은 (less educated British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국인) 거의 화난 표정없이 "I understand that.... but this is not acceptable..." 등등으로 돌려돌려 말하는 편입니다. 영국에서 이의제기, 라는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대놓고 화를 내버리면 영국인 상대방은 모욕당한 얼굴로 보통 입을 닫아버리거나, 그런 무례함을 참지 않겠다, 라고 단호히 말을 하죠. 


이런 돌려돌려 말하기는 일상 대화법이라기 보다는, 좀 말하기 껄끄러운 주제를 꺼낼 때, 상대방이 기분 상할 수도 있는 얘기를 해야할 때, 부탁을 해야 할 때, 그런 순간에 많이 나타나죠. 그러다 보니, 가끔 남편과 서로 맘에 안드는 걸 얘기하다 보면, 남편이 그러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ㅎㅎㅎ 


5. Give and Take에 익숙할 때

영국인과의 관계는 정말 철저하게 주고받기가 바탕이 됩니다. 이번에 내가 커피를 사면, 다음에는 그 친구가 커피를 사고, 펍에서 내가 파인트를 사면 다음 라운드에서는 상대방이 사고... 내가 상대방 집에 초대받았으면 다음에는 상대방을 내 집으로 초대하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밖에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선물을 받았으면 감사하다는 답례의 카드를 보내고, 이웃이 케익을 구워다 주면 다음에는 내가 쿠키를 구워다 주는 것 등등.... 그렇게 주고받기를 통해서 관계는 더 돈독해지게 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아기를 낳은 후 집에 돌아와서 처음 한 일이, 선물이나 축하한다는 카드를 보내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카드를 다시 보낸 거였으니까요.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는데, 제가 미처 챙기지 못한 경우, 늦더라도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작은 답례의 선물을 보내기도 하고, 친구가 약속장소까지 차를 태워주면 제가 커피를 사고, 뭐 그런 거죠. 그러다보니,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을 보냈는데 상대방에게서 아무 소식이 없으면, 'rude'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하고 그러더라구요.. 


..... 


이렇게 쓰다 보니, 영국인들의 특징을 나타내는 Main theme이 보이네요. 바로 '예의 (Politeness)'가 아닐까 싶은데요. 예를 들면, 영국인들이 정말 화났을 때, 신경질적으로 내뱉는 소리가 f나 s로 시작하는 욕이 아니라, "So rude!!"라는 것만 봐도, 영국인들이 '무례함'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죠. 물론 그 예의라는 것도 나라에 따라 기준이 다르지만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솔직히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안한다고 굳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그대신 아이가 어른에게 말대꾸하거나 반말을 하면 무례하다고 하죠. 높임말이 없고 나이에 따른 상하관계가 그렇게 철저하지 않은 영국에서는 어린 아이가 어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고 말대꾸를 한다고 무례하다고 생각하진 않죠. 한국에서는 차라리 마음에 안드는게 있으면 앞에서 말하는 게 낫지 뒤에서 욕하는건 더 비겁하고 무례한 짓이라고 생각하구요.. 반면, 선물같은 걸 받았을 때 감사하다는 호의를 표시하는게 예의라는 건 한국이나 영국이나 비슷하구요 (그럼에도 불구, 한국인들이 '감사하다'라는 표시에 좀 더 인색한거 같아요. 하긴 영국인처럼 빈말로 주구장창 고맙다고 하는게 굳이 더 예의를 차리는 건 아니지만요). 


다른 분들은 어떤 영국인같은 습관을 가지고 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