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방 재공사를 하느라고 주방을 쓰지 못해 간단히 밥을 떼우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 저녁의 일이다.
다들 학교, 유치원, 회사에서 돌아와서 저녁을 그렇게 간단히 먹느라고 아이들에게는 밥에 김을 주고, 남편은 빵에 치즈, 햄을 먹고, 난 밥에 김치를 가지고 와서 먹으려고 하는데, 첫째가 갑자기 '이게 무슨 냄새야' 하는 거다. 그래서, 김치통을 가리키며, '혹시 이거? 이거 김치지'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꼬맹이가 그 냄새 싫다며 코를 잡고 밥을 먹는게 아닌가!
그 모습에 순간 뭐랄까, 뭔가가 속에서 끓어올라서, 어디서 그런 무례한 행동을 배웠냐고 아주 크게 혼을 냈다...
아이는 내 달라진 표정과 나무래는 소리에 놀랬는지 주춤하다가, '그래도 냄새가 싫어서 그랬다'하고 대꾸를 했는데, 거기에 다시 난, 이것도 네가 자라가는 환경의 하나라고, 그리고 내 집에서 내 아이에게 내가 자라온 문화의 한 부분을 그런 식으로 대접받는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고 거의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해줬다. 네가 먹지 않는 건 상관없지만, 엄마가 먹는 것에 대해 그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건 아주 무례한 일이라고 다시 말하면서...
아이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 죄송해요' 하고 잘못을 빌고, 우린 그렇게 서로를 안아 주면서 그 '김치사태'(!)는 막을 내렸지만... 마음 속 한켠으로 뭔가 찝찝하게 남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이에게 하는 말이였다기 보다, 그런 상황에 대한 외침이 아니였나, 싶다. 내가 자라온 환경, 나를 키워낸 문화, 내 일부분이 되어버린 내 나라의 어떤 조각. 그런 것들을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받거나, 방어하거나 이해 받으려 하지 않겠다, 하는 내 완고한 고집이라고 할까. ...
테두리 안에 있을 때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던 것들이, 테두리 밖을 나서는 순간 아주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익숙한 입장에서, 뻣뻣하게 허리를 펴고 손 하나 까딱하는 인사법이라든지, 안아서 두 세번의 볼 스치는 키스까지 주고받아야 하는 인사법이 무척 성의없어 보이거나 어색한 것 처럼. 그 반대의 입장에 서서 테두리 안을 들여다 보면, 마치 동물원 우리 구경하는 마냥 신기하고 이상해 보이는 것들도 존재한다. 내가 테두리 안에 있을 때야, 외부에서 뭐라 하든 내 일상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하고 한번의 흥미로 보고 넘기면 될 일이지만... 막상 내가 테두리 밖으로 내던져지면, 마치 동물원을 탈출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고릴라 마냥 때로는 꽤나 신경쓰이는 일들을 겪기도 한다. 좋게 말하자면 1일 외교 사절단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릴라가 되는 거니까... 어떤 이들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질문하고, 어떤 이들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 떼우기로 질문하고, 어떤 이들은 이미 나를 고릴라 취급하며 묻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때로 진짜 정치인이라도 된 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대답하고, 어떤 때는 그저 대답을 얼버부리며 피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정색을 하고 크게 이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미 10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젠 전에 쓴 글처럼 제법 현지인 코스프레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 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를 둘러싼 공동체가 마치 견고한 성 마냥 존재하고 있어서, 쓸데없이 관심을 받을 일은 이제 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제 아이의 그 말은 마치 누군가가 내 성 안에서 폭탄을 터트린 그런 기분이였다....
임신했을 때부터, 그리고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늘 먹었던 한국음식. 매년 김장까지 담궈가며,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조각을 잘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남편도 뭐라 하지 않는데, 이 꼬맹이가 난데없이 김치 냄새가 싫다며, 코를 막다니! 하긴 아이가 잘못한 건 아니다. 아이는 그저 솔직하게 이미 익을 때로 익어버린 쉰김치 의 강한 냄새가 싫다고 말한거고, 그걸 내 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인 건 나니까....
한국을 '엄마 나라'라고 부르고, 한국말을 '엄마말'이라고 부르며, 웨일즈 국기를 '우리 국기'라고 생각하고, 자기 친구들은 다 영국 사람이고 여기서 살고 있으니 자기도 영국 사람인게 틀림없다고 믿고 있는 이 작은 꼬맹이에게 도대체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매번, 아주 단호하게, 넌 영국인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반은 한국인, 반은 스페인 사람이다, 라고 말해주지만... 아이는 그걸 잘 이해할 수 없어한다. 아직은 다른 것보다 친구들과 비슷한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이니까. 몇번의 교육 끝에, 아이는 몇 발 양보해서 영어를 '내 학교 언어 - my school's language' 하고 부르지만, 여전히 '엄마는 한국 사람, 아빠는 스페인 사람, 나랑 동생은 영국 사람' 하고 믿는 눈치다.... 그리고 나와는 이미 시작이 다른 테두리 안에서 때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하는 한국말의 발음이 웃긴다고 까르르 웃어 넘어가기도 하고, 한복을 보고 왜 이런 옷을 입느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가 한국에 가서 살지 않는 이상, 이 아이는 계속 한국인이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겠지 (아니 어차피 태생 상 완전한 한국인이 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러다 몇번의 나의 진지한 설교에 설득당하거나, 이번 김치사태처럼 나의 과민한 반응을 보며, 이해는 못해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법을 배워갈지도 모른다.
기분이 묘하다. 내 아이인데, 세대 차 뭐 이런 걸 다 떠나서 아예 나와 다른 울타리에 속해있다. 물론 그 말은 나 역시 내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영국의 새로운 단면을 얼마나 많이 알아가고 있는지;;; 남편이야 원래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만난 거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가 그렇게 다른 곳에 속해 커가는 걸 보는 건 좀더 애매한 기분이다. 신기하면서 또 조금은 외롭다....
에휴.. 쓸데없이 생각이 많다. 아이들이 좀더 커서 매운 걸 좀 먹을 수 있게 되면, 매 주말마다 한국 요리를 하거나 김치를 끼니 때마다 줘야 하나 ㅎㅎㅎ;;;;
다들 학교, 유치원, 회사에서 돌아와서 저녁을 그렇게 간단히 먹느라고 아이들에게는 밥에 김을 주고, 남편은 빵에 치즈, 햄을 먹고, 난 밥에 김치를 가지고 와서 먹으려고 하는데, 첫째가 갑자기 '이게 무슨 냄새야' 하는 거다. 그래서, 김치통을 가리키며, '혹시 이거? 이거 김치지' 하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 꼬맹이가 그 냄새 싫다며 코를 잡고 밥을 먹는게 아닌가!
그 모습에 순간 뭐랄까, 뭔가가 속에서 끓어올라서, 어디서 그런 무례한 행동을 배웠냐고 아주 크게 혼을 냈다...
아이는 내 달라진 표정과 나무래는 소리에 놀랬는지 주춤하다가, '그래도 냄새가 싫어서 그랬다'하고 대꾸를 했는데, 거기에 다시 난, 이것도 네가 자라가는 환경의 하나라고, 그리고 내 집에서 내 아이에게 내가 자라온 문화의 한 부분을 그런 식으로 대접받는 건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고 거의 정색을 하며 단호하게 말해줬다. 네가 먹지 않는 건 상관없지만, 엄마가 먹는 것에 대해 그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건 아주 무례한 일이라고 다시 말하면서...
아이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 죄송해요' 하고 잘못을 빌고, 우린 그렇게 서로를 안아 주면서 그 '김치사태'(!)는 막을 내렸지만... 마음 속 한켠으로 뭔가 찝찝하게 남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아이에게 하는 말이였다기 보다, 그런 상황에 대한 외침이 아니였나, 싶다. 내가 자라온 환경, 나를 키워낸 문화, 내 일부분이 되어버린 내 나라의 어떤 조각. 그런 것들을 '다르다'는 이유로 공격받거나, 방어하거나 이해 받으려 하지 않겠다, 하는 내 완고한 고집이라고 할까. ...
테두리 안에 있을 때는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던 것들이, 테두리 밖을 나서는 순간 아주 이상하게 보일 때가 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이 익숙한 입장에서, 뻣뻣하게 허리를 펴고 손 하나 까딱하는 인사법이라든지, 안아서 두 세번의 볼 스치는 키스까지 주고받아야 하는 인사법이 무척 성의없어 보이거나 어색한 것 처럼. 그 반대의 입장에 서서 테두리 안을 들여다 보면, 마치 동물원 우리 구경하는 마냥 신기하고 이상해 보이는 것들도 존재한다. 내가 테두리 안에 있을 때야, 외부에서 뭐라 하든 내 일상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 '아,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하고 한번의 흥미로 보고 넘기면 될 일이지만... 막상 내가 테두리 밖으로 내던져지면, 마치 동물원을 탈출한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고릴라 마냥 때로는 꽤나 신경쓰이는 일들을 겪기도 한다. 좋게 말하자면 1일 외교 사절단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릴라가 되는 거니까... 어떤 이들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질문하고, 어떤 이들은 그저 지나가는 시간 떼우기로 질문하고, 어떤 이들은 이미 나를 고릴라 취급하며 묻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때로 진짜 정치인이라도 된 마냥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대답하고, 어떤 때는 그저 대답을 얼버부리며 피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정색을 하고 크게 이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미 10년 넘게 이방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젠 전에 쓴 글처럼 제법 현지인 코스프레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 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를 둘러싼 공동체가 마치 견고한 성 마냥 존재하고 있어서, 쓸데없이 관심을 받을 일은 이제 잘 없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제 아이의 그 말은 마치 누군가가 내 성 안에서 폭탄을 터트린 그런 기분이였다....
임신했을 때부터, 그리고 모유수유를 하면서도, 늘 먹었던 한국음식. 매년 김장까지 담궈가며, 아이들에게 '한국'이라는 조각을 잘 전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남편도 뭐라 하지 않는데, 이 꼬맹이가 난데없이 김치 냄새가 싫다며, 코를 막다니! 하긴 아이가 잘못한 건 아니다. 아이는 그저 솔직하게 이미 익을 때로 익어버린 쉰김치 의 강한 냄새가 싫다고 말한거고, 그걸 내 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인 건 나니까....
한국을 '엄마 나라'라고 부르고, 한국말을 '엄마말'이라고 부르며, 웨일즈 국기를 '우리 국기'라고 생각하고, 자기 친구들은 다 영국 사람이고 여기서 살고 있으니 자기도 영국 사람인게 틀림없다고 믿고 있는 이 작은 꼬맹이에게 도대체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매번, 아주 단호하게, 넌 영국인이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반은 한국인, 반은 스페인 사람이다, 라고 말해주지만... 아이는 그걸 잘 이해할 수 없어한다. 아직은 다른 것보다 친구들과 비슷한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나이니까. 몇번의 교육 끝에, 아이는 몇 발 양보해서 영어를 '내 학교 언어 - my school's language' 하고 부르지만, 여전히 '엄마는 한국 사람, 아빠는 스페인 사람, 나랑 동생은 영국 사람' 하고 믿는 눈치다.... 그리고 나와는 이미 시작이 다른 테두리 안에서 때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하는 한국말의 발음이 웃긴다고 까르르 웃어 넘어가기도 하고, 한복을 보고 왜 이런 옷을 입느냐고 묻기도 한다.... 우리가 한국에 가서 살지 않는 이상, 이 아이는 계속 한국인이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겠지 (아니 어차피 태생 상 완전한 한국인이 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러다 몇번의 나의 진지한 설교에 설득당하거나, 이번 김치사태처럼 나의 과민한 반응을 보며, 이해는 못해도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법을 배워갈지도 모른다.
기분이 묘하다. 내 아이인데, 세대 차 뭐 이런 걸 다 떠나서 아예 나와 다른 울타리에 속해있다. 물론 그 말은 나 역시 내 아이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영국의 새로운 단면을 얼마나 많이 알아가고 있는지;;; 남편이야 원래 그렇게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만난 거니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가 그렇게 다른 곳에 속해 커가는 걸 보는 건 좀더 애매한 기분이다. 신기하면서 또 조금은 외롭다....
에휴.. 쓸데없이 생각이 많다. 아이들이 좀더 커서 매운 걸 좀 먹을 수 있게 되면, 매 주말마다 한국 요리를 하거나 김치를 끼니 때마다 줘야 하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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