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워킹맘의 쓴맛을 제대로 보고 있는 중

민토리_blog 2016. 9. 15. 21:36

아이를 낳은 후 부터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일주일에 1-3일정도이거나, 그것도 그나마 집에서 일하는 시간들이 많아서 사실 굳이 맞벌이라거나, 워킹맘이라는 인식을 못하고 살았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9월에 내가 풀타임 복직을 한 후 부터 상황이 아~~~주 많이 바꼈다.. 


예전에는 어차피 일주일에 3번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고, 그 동안 난 집에 남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침에 남편을 도와 아이들을 준비시켜 보내고 나면, 나중에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올 때까지 그냥 난 오롯이 일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들이 매일 간다. 거기에 첫째가 초등학교 입학을 했기 때문에 더 알짤없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가야 한다 (영국 학교는 새학기가 9월에 시작합니다). 학교 등교 시간은 9시. 회사가 학교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거나, 일을 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아이를 9시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기에는 꽤나 늦기 때문에 대부분 맞벌이인 부모들은 아이를 조부모나 다른 가족들에게 부탁하거나, 학교내의 breakfast club에 일찍 보내거나, 사립 유치원에 등하교를 맡기는게 일반적이다. 이 학교는 Breakfast Club이 따로 없기 때문에 학교로 등하교를 시켜주는 정해진 유치원에 아이를 맡겨야 한다. 아이들 둘이 같은 곳으로 가는게 적응에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둘째도 덩달아 첫째와 함께 이번에 유치원을 옮겼다. 그렇게 8월 준비/적응 기간을 아이들 울음과 함께 보내고... 첫째는 '큰학교'를 간다는 사실에 들떠 있었기 때문에 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 그래, 그게 착각이였지 -_-;; 일단 9월 초 등교/출근 첫날. 영국 학교에는 입학식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이 보통 그냥 시작하는데, 첫날에는 좀 늦게 시작해서 빨리 마치는 정도다. 등교 첫날이 내 출근 첫날과 맞물리는 바람에 남편에게 첫째를 아침에 등교 시켜달라고 부탁하고, 환하게 웃는 첫째의 배웅을 받으며 둘째를 데리고 출근했다. 둘째는 여전히 유치원에 도착해서 울었지만, 유치원 선생님이 안고 데리고 들어가자 곧 울음을 그쳤고, 그래서 나도 좀 마음 편하게 대학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날 Induction meeting이 한참 이어지고, 마치고 나서 폰을 확인하니 남편에게서 메세지들이 여럿 와있는거다. 집을 나설 때까지만 해도 활짝 웃고 장난치던 큰 아이가 막상 학교앞에 도착하니 겁을 먹었는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고 울더라고... 그렇게 울고 불고 난리를 치는 아이를 학교 선생님에게 맡기고 왔다고.. 미안하다고.... 


그 때부터 마음이 막 심란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오전이 끝났는데.. 그래서 오후에 있었던 미팅을 좀더 빨리 끝내고 하교 시간에 맞춰 부랴부랴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는 다소 시무룩해 보였지만, 그래도 괜찮아보였고, 유치원 적응 기간 때에도 아침에 난리를 치다가 정작 유치원에서는 잘 놀고 오후에는 이미 괜찮아지는 걸 여러번 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된 워킹맘 생활의 첫날. 


예전 유치원은 7시 30분부터 문을 열어서 일찍 출근하는 남편이 데려다줬는데, 이번 유치원은 8시부터 문을 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에 그다지 제약이 없는 내가 아이들을 아침에 데려다주고, 오후에는 남편이 데리고 오는 걸로 결정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갈 필요가 없다보니, 남편은 6시반이면 출근을 해버리고, 난 그때부터 출근 준비를 하고, 7시에 일어나는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첫째 아이 도시락을 싸고, 간단한 아침밥을 주고,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 그런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_- 여전히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학교 가는 날이야?'하고 묻고, 그렇다고 얘기하면 '매일 학교 가기 싫어!!'하면서 떼를 쓰는 첫째 꼬맹이... 옷도 안갈아입으려고 도망다니고, 거기에 둘째도 덩달아 옷을 안입겠다고 도망가고;; 그렇게 어찌어찌 달래서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거실로 도망가서는 오려고도 하지 않고, 아니면 배 고프다고 이걸달라 저걸 달라 떼를 쓰고.. 도시락을 싸고 있으면, 그건 먹기 싫다고 난리 이걸 달라고 난리..인내심의 끈을 단단히 묶어 두고, 그 모든 과정을 넘어서 내 출근가방과 아이들 가방도 다 차에 두고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숨바꼭질을 한다고 어딘가 숨어서 나오지도 않고.. 미꾸라지처럼 와와, 하면서 도망다닌다;;;; 정말 미칠 것 같다;; 그래서 계획은 8시 10분전에 집을 나서는 거지만, 아직까지 8시 전에 집을 나서 본적이 없다;;;; 


그렇게 어찌어찌 집을 나서면 나처럼 집에서 시달리다 아이들을 태우고 거리로 나선 사람들로 거리가 붐비고 차가 미칠듯이 막힌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좀 외진 마을에 있는데, 큰도로까지 갈 수 있는 길이 1차선 도로 하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을 잘 못맞쳐나오면 미치도록 차가 막힌다. 그나마 유치원까지는 그리 멀리 않아서 일단 유치원에 데려다 놓으면, 주차장에서부터 둘째는 울고.. 유치원 안에 들어가면 둘째는 내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며 울고, 거기에 덩달아 첫째도 엄마랑 있고 싶다고,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그러면 그렇게 아이들 둘을 안고서 한참 달래는데... 그러는 아이들을 억지로 떼어놓고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맡기고 뒤돌아 나오면 마음이 계속 무겁다.... 물론 그런 마음도 출근길 교통체증에 답답함으로 변해버리지만.. 


대학은 원래 차로 40분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아침 교통체증 덕에 1시간 이상 소요되곤 한다. 이미 몇가지 다른 경로를 시도해봤는데... 결론은.. 8시 10분 이전에 집에서 나오고, 오후 4시전에 대학에서 나올 것... 대학에서 일하는 것의 최대 장점이라면 시간이나 공간에 제약을 덜 받는다는 건데.. 9-5시처럼 정해진 근무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학교에 나가야 할 필요도 없어 좋긴 한데, 그렇다고 일의 양이 줄어들거나 하는 건 아니라서, 어떨 때는 스트레스를 더 받기도 한다. 대학은 다음주부터 학기가 시작되고 그 다음주부터 바로 강의가 시작되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다. 강의가 시작된 다음부터는 크리스마스 방학 때까지 매일 몰아치는 일상들이라 가능하면 지금 왠만한 건 다 준비해두고 싶은데... 왜이리 하루는 빨리 지나가는지... 무슨 미팅이라도 잡혀 있으면 그거 몇개 다녀오면 벌써 하루의 반이 지나간다. 거기다가 이번에 새로 일을 시작했다 보니, 매일 새로 만나서 인사해야 할 곳도 많고, Health & Safety, Diversity 등등과 관련된 온갖 training/induction courses.... 그러다가 오후 3시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초조해진다. 메일 하나만 처리해놓고 가야지 하고 있으면, 누가 찾아와서 노크를 해대고, 그렇게 말을 끝내고 이제 정말 마무리 지어야지 하고, 정리하고 나서면 또 복도에서 누굴 마주치기도 하고.. 차에 도착해서 지도를 확인해보고 Traffic 사정을 살펴보고, 가능하면 빨간 선이 없는 곳을 연결해서 집으로 갈 경로를 선택하고.. 그렇게 차를 몰고 나오면 다시 집으로 도착하기 까지 긴 1시간 남짓의 여정이 시작된다.. 


집으로 도착하면 뭘하나.. 원래 오후 5시쯤에 저녁을 먹고, 6시쯤에 아이들 목욕을 시키고 7시쯤에 아이들을 재우는데.. 요즘에는 다들 집에 돌아오면 5시 반에서 6시쯤 되기 때문에 그 때 부랴부랴 옷도 안갈아입고 아이들 저녁부터 먹이고, 가능한 시간에 맞춰 아이들 저녁 루틴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건 남편과 나의 계획이고, 물론 아이들은 이미 꽤나 피곤해져있기 때문에, 밥도 안먹겠다, 씻지도 않겠다, 놀고 싶다, 난리를 치다가.. 그럼 먹지마라, 그러면 목욕하러 가기 전에 배고프다고 난리, 씻고 나면 이젠 자기 싫다고 난리... -_- 


주중에는 요리 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말에 일주일치 요리를 몰아서 해놓는 편인데.. 저번주 일요일에는 아침 7시에 눈을 떠서 11시까지 4시간 내리 요리만 하고 있었는데... 우와........ 어찌나 피곤하던지..... 거기에 어제는 날이 좋다는 일기예보를 미리 보고, 빨래를 미리 돌린 다음 아침 6시에 남편이 출근하기 전 같이 밖에 빨래를 널었다.... 


오늘은 대학에 가야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맘을 잡고 강의준비를 할 생각이였는데, 아이 학교에 보내야 할 서류들이 몇개 있어서 아침에 유치원으로 등원시키는 대신 학교로 직접 데려다 주기로 했다. 둘째도 내년에 그 학교로 보낼 생각이라 (영국에서는 만 3세부터 학교에 소속된 유치원에 정부지원을 받고 보낼수 있습니다) 같이 가서 학교도 보고 그렇게 가면 첫째도 좀 괜찮겠지, 하는 마음에 데리고 갔는데.... 

일찍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차가 무진장 막혀서 갈 생각을 안하길래 이게 뭔가 싶어 골목길로 굽이굽이 돌아갔더니, 1차선 도로 앞의 roundabout에 차 하나가 고장났는지 길을 막고 서있는거다;; 그래도 골목길을 돌아서 어찌어찌 그걸 피해 학교까지 갔는데.. 학교 앞에는 또 차들이 어찌나 많이 서있던지... 그래, 그것도 뚫고 가서 어찌어찌 주차도 하고 아이들도 데리고 나왔다. 그런데 막상 학교 정문 앞에 가니 첫째가 멈춰서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거다. 아무리 안아주고, 달래도, 설득하려 해도, 뇌물을 주려해도, 심지어 너 자꾸 이러면 다신 엄마가 학교에 안데려다준다, 하는 협박(!)을 해도 통하지도 않고, 처음에는 떼를 쓰고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정말 서럽게 펑펑 울어대는거다.. 엄마랑 있고 싶다고.. 학교 가기 싫다고.. 거기에 둘째도 울먹울먹거리더니 울기 시작하고....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안으로 들어갔고, 난 우는 두 아이를 붙잡고 달래고 있는데... 내가 울고 싶어졌다. 진심으로. 그리고 그냥 다 때려치우라고, 학교 가지 말라고 하고 싶어졌다.. 정문에서 아이들을 지휘하고 있던 선생님들 중 하나가 나와서 첫째 손을 잡으며 같이 가자고 데리고 들어갔는데.. 중간에 다른 사람과 얘기하느라 멈춰서있는거다. 첫째는 계속 나를 보며 서럽게 소릴 지르며 울어대고, 그 선생은 그런 아이들의 울음에 익숙한지 첫째 손을 그대로 잡고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는데, 정말 짜증이 솟구쳐 올라왔다. 속으로 'Shut up! Just take the kid in!!!!' 하고 소릴 지르면서.. ;; 


그렇게 첫째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로 학교로 들어갔고, 난 여전히 울먹거리는 둘째를 껴안고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다시는 첫째를 학교에 직접 데려다주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 선생에게 여전히 식지 않은 화도 내고, 무심히 날 지나쳤던 다른 학부모들에게 뜬금없이 화도 나고... 아침에 쌩하고 사라진 남편에게 화도 나고... 무엇보다... 도대체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건지... 그런 내게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졌고, 혹시라도 정말 아이들이 이 학교나 유치원이 싫어서 그러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집을 옮길까, 학교를 옮길까, 심지어 이제 막 시작한 대학도 옮길까, 하여간 별별 생각이 다 들고.. 그러다가 도대체 내가 뭘 할 수 있나 싶어 다시 무력해지고.. 하여간 그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 그리고 첫째를 데려다 주고 도착한 유치원에서 둘째는 다시 울기 시작했고... 


진심으로 생각하건데, 아이들의 울음에는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하는 뭔가가 있다. 방어기제라고는 전혀 없이 태어난 인간의 유일한 무기인지 뭔지.. 그리고 난 집에 돌아왔다. 돌아와서 이미 아침에 돌려두었던 빨래들을 꺼내다가 밖에 널어두었고.. 당장이라도 그냥 주저앉아 울고 싶은 기분을 달래며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일을 시작했는데, 한참 하다가 갑자기 컴터가 확 꺼져버렸다. 알고 보니 이쪽 근방 전체 잠시 정전이였단다... 참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날이다...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오늘이 추석이구나. 한국 집에 전화를 했는데, 다들 밖인지 '나중에 전화할게'하는 말만 하더니 전화가 끊겨버렸다...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해 후회는 없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일이였으니까.. 도리어 지금 돌아가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 말로만 듣고 실제로는 그렇게 가슴속에 와닿지 않던 워킹맘이라는 사실, 그리고 맞벌이의 현실. 아무리 다 괜찮다, 라고 말을 해도 어찌할 수 없이 가슴을 짓누르는 미안함, 죄책감.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때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초조하게 다가왔고, 왠지 혼자 고립된 것만 같은 생각에 괴로웠다. 다신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찾지 못할 거 같아서.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아이들의 울음 하나하나가 괴롭게 다가온다. 아이들 인생의 처음 2년을 오롯이 있어줬으니 괜찮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시키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엄마'라는 이름이 나를 누른다. 아이들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일주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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