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다리 타기
벌써 이번 학기를 시작한지도 반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왠만큼 새로운 대학 분위기에 적응도 됐고, 학생들 얼굴과 시간별 요일별 lecture에 들어오는 학생들 분위기도 대강 익혔다. 어떤 반에는 친한 한 무리가 들어와서, 적극적이긴 한데 자칫 전체 분위기를 흐릴때가 있고, 어떤 반에는 다들 어찌나 조용조용한지, 별 반응도 없고, 그래서 진을 빼게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뭔가를 하라고 하면 바로바로 따라오는 편이라 믿음이 가기도 한다. 어쨌건, 보통 나 같은 경우, 강의를 할 때 그 때 주제에 맞춰서 학생들에게 중간중간 뭔가 할 일을 던져주는 편인데, 때로는 토론을 시키고, 때로는 문제를 던져주고 해결책을 찾게 하거나, 주제를 던져주고 자체 조사/연구를 시킨 후 발표하게 하기도 한다. 오늘도 강의 중 조사/연구 과제를 던져주고 그룹별로 조사한 후 발표를 시켰는데... 발표를 할 때만 되면, 다들 마치 몰래 과자라도 훔쳐 먹은 듯 꿀벙어리가 되어서는 멀뚱 멀뚱 '난 모르오'하고 보고 있는거다;;; 그래서 오늘은 '그럼 사다리타기를 하자'라고 제안했는데, 다들 - 대부분 영국인/유럽인 - 내가 뭔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멍해 있는거다. 그래서 내가 직역한 것과 영어로 불리는 이름이 다른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화이트보드에 사다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다 그린 후, "OK, give me a number!" 하고 회심차게 학생들을 돌아봤는데, 다들 마치 신기한 외계생물체라도 보는 표정을 하고서는, "What's that?!" "What are you doing?!!"하고 웅성웅성 떠들며 물어보기 시작하는 거다 -_-;;; 그래서 이런 걸 본적이 없냐, 하니, 다같이 "NO!"한다. 심지어 몇몇 학생들은 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ㅎㅎㅎ ;;
그덕에 알았다. 아, 사다리타기는 한국에만 있는건가?? ㅎㅎㅎ 혹시 다른 나라에 사시는 분들, 사다리타기하는 다른 나라가 있는지 아시나요?? ㅎㅎㅎ
2. 노래
오늘 운동을 하러 가는데, 라디오 BBC2에서 재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재즈 뮤직만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인듯 했는데, 그걸 듣다가 친구 한명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때 만난 친구인데, 반에서 1번인만큼 키가 작았고, 아담했고, 참 예뻤다. 대학 때 선배들과 술자리를 하다가 연락이 왔길래 친구가 술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선배들이 농담삼아 내게 '야, 넌 너보다 예쁜 애를 데리고 오면 어떡하냐, 우린 정말 고맙지~'하는 소릴 할만큼.. ㅎㅎ 조용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책읽기를 좋아해서 그 소극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교내 문예부에서 활동할만큼 때론 고집세고 당당한 친구.. (다니던 고등학교에 특별활동 부가 정말 몇개밖에 없었고, 한 학년에서 많아야 5명정도 밖에 뽑지 않아서, 특별활동부의 위세가 대단했다. 경쟁도 심했고, 그만큼 인터뷰를 할 때면 정말 선배들이 너한번 죽어봐라, 이래도 버틸래, 하는 정신고문의 수준이였으니까...;;;)
그 친구는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그래서 수능이 끝나고도 다들 입시 원서를 쓸 때 근처 편의점에서 알바를 시작했고, 그 후에도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대학 1년 때였나, 2년 때였나... 그 때 친구가 패스트푸드 체인점에서 알바가 아닌 직원으로 일하고 있을 때 보러 간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친구가 그랬다. 요즘 재즈에 빠져있다고... 그 말을 할 때 친구는 정말 멋져보였다. 어찌나 그말이 인상깊게 머릿속에 박히던지, 그 길로 난 레코드점에 들려 재즈 시디를 뒤적거리다 몇개를 선택해 들어봤는데... 솔직히 난 친구가 그렇게 황홀하고 멋지게 서술해주던 느낌의 1도도 맛볼 수 없었다.. -_-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음악은 내게 거의 블랙홀같은 수준이기 때문이랄까.. 난 굳이 구분하자면 양떼같은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그냥 뭐가 들리면 따라가 듣는 수준이다.... ;;; 굳이 찾아 듣는 노래도 없고, 음악장르도 별로 없다. 뭔가 틀어놓고 일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어떤 타입의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기 보다, 몰두하면 어느 순간 주위의 소음이 사라지는 그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이어폰을 끼고 있더라도, 어느 순간 내가 노래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다가 다시 확, 돌아올 때 그 느낌이 좋다. 마치 내 뇌만 잠시 공간이동했다 온 것 같은 기분... ㅎㅎ;;
그러다 보니, 누군가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하고 물어보면, 그냥.. 어... 음... 하고 얼버무릴 때가 많다. 그리고 영화와 비슷하게, 후렴구같은 걸 흥얼거리기는 하는데, 노래 제목도, 가사도, 가수도 잘 모른다;; 그래서 어떤 음악적 취향이 확고한 사람을 보면 부럽다. 동경하기 까지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보니 만났던 남자친구들 중에 음악쪽으로 뭔가 하는 친구들도 몇명있었는데... 그들 덕에 포크, 컨츄리, 재즈, 클래식, 락, 심지어 헤비메탈도 접해볼 수 있었다 (물론 헤어지고 나면 그 쪽 음악들과도 안녕;;; ) 예전에는 나도 어떻게든 음악으로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예, 저 XX의 YYY좋아해요) 이것저것 좀 유명하다 싶은건 들어가며 노력해봤는데.. 이제는 그냥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전 굳이 말하지면 잡다하고 양떼같은 그저 그런 음악적 취향 (이것도 취향이라고 부르자면)을 가졌습니다. 굳이 노래를 찾아 듣기보다 누가 골라 틀어주는 라디오를 듣는 사람이죠;;
3. 정말 세월에 장사없구나.
원래 페북을 잘 안하는 편이다. 그냥 폰에 있는 앱을 켜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그러다 얼마전에 누군가의 이름을 확인할 일이 있어서 들어갔었는데, 간김에 새로 올라온 지인들의 소식을 내려 보다가, 사진 하나를 봤는데, 도대체 이 두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겠는거다. 분명히 내가 아는 누군가가 tag되어 있으니 이 사진이 내 알림창에도 뜨는 것일텐데, 도대체 이 사람들이 누군지 몰라서 가만히 보고 있다가, 이름을 확인하곤 흠칫 놀랬다;;
알고 보니 예전에 사귀었다가 이제는 온라인상으로만 유지되는 친구 녀석의 부부 사진인거다;; 이녀석도 아이가 둘이고, 내 꼬맹이들과도 거의 나이차이기 나지 않는지라, 사실 이 녀석의 소식은 대체로 아이들 사진으로 대체되고 있다가 간만에 부인이 올린 부부 사진이 나타난건데, 거기서 난 어이없게도 이 녀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1년쯤은 사귀였던 사이임에도.. 아니, 그전에 이미 몇년동안 오래 친구였던 녀석인데... 남자들만 득실거리던 공대에서 여자들보다 예쁘다는 소릴 듣던 꽃미남 녀석이, 아이 둘의 아빠가 되고, 가장이 되고, 이제는 서른을 훌쩍넘긴 중년이 되더니, 세월이 '네게 돈과 자식, 아내를 주마, 대신 네 미모를 다오'하고 흥정이라고 하고 간 것 마냥 훅 하고 변했다;;;; 거기에 몇년간 보지 못했던 친구의 야심찬 클로즈업 사진에서 적나라하게 '자, 네가 날 전에 만난 후 몇년의 시간이 지났는지 계산해봐라'하는 마냥 드러난 주름을 보고도 세월을 실감했다 (포토샵이 있는데 왜 쓰질 않았니 ㅜ_ㅜ) ...
하긴 나도 요즘에는 내 사진 찍어 보는게 좀 겁이 난다. 뭐랄까, 거울은 거짓말을 하는데, 사진은 정말 솔직하달까...;; 깜짝 놀래긴 했지만, 그래도 좀 짠했다. 정말 우리 이제 이렇게 살아가고, 늙어가고 있구나 싶어서... 그 당시에는 마치 구름위에서 세상 구경하듯 참 천진하고 마냥 시니컬할 수도 있었던 우리가, 이제는 그 구름 밑 바닥에서 정말 매일 처절히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구나... 그래서 마지막에는 친구에게 짧게 메세지를 보냈다.
친구야,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힘내자 우리, 화이팅!!
....................
여전히 적응기간중인지 매일이 꽤나 바쁘고 피곤하네요 (저도 이러다가 순식간에 세월에게 훅, 하고 먹혀버릴지도요? 아니, 벌써 먹혔는데 self-denial중일지도?!!). 이번주는 half term (학기 중간 방학)인데도 왜 쉬질 못하는 걸까요 ㅜ_ㅜ 그래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나 소식 뜸한 블로그에 잠시라도 들려주시는 분들을 위해 안부남깁니다. 잘 지내시죠? 모두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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