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아침부터 아이 둘을 어르고 달래가며 겨우 차에 태운 후 진입로 (driveway)를 따라 올라갔는데, 정문 앞에 차 한대가 버젓히 주차되어 있는거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단독주택 - detached house - 로 도로보다 집이 낮은 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도로쪽에 있는 차량용 정문을 열고 내리막길로 된 진입로를 따라 내려와서 정원 근처에 차를 주차할 수 있게 되어있다) 정문이 닫혀있던 것도 아니고, 버젓하게 열려 있는데 도대체 그 앞에 주차하는 이 심보는 무엇인가 싶어 둘러보니 왠일인지 한적한 도로가가 차들로 빽빽했다. (주택가인데다가 대부분 차고가 딸린 단독주택이 있는 곳이라서 거리가 주차한 차들때문에 그렇게 번잡할 경우가 거의 없음) 일단 차를 진입로에 세워두고, 밖에 나와 주위를 살피다가 차안에 타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 물어보니 집 바로 근처에 있는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다고 했다. 아하, 그렇구나. 그래도 그렇지 정문도 열려있는 남의 집 앞에 주차는 왜 한단 말인가!! 장례식이 이미 시작되어서 그 차의 주인을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속이 부글부글거리는데.. (이미 아이들은 차 안에서 인내심을 잃고 울기 시작;;;;) 다른 차안에 타고 있던 사람의 도움을 어찌어찌 받아서 몇번의 후진과 직진 끝에 겨우겨우 차를 빼낼 수 있었다.
이미 이 일로 시간이 꽤 흐른지라 다급하게 다시 운전을 시작하고.. 집에서 운전 장소까지 갈려면 고개(?)하나를 넘어야 하는데, 여긴 보통 한산한데다가 최고 60마일 (시속 96km 정도)로 달릴 수 있는 곳이라서 금방 가겠구나,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차들이 거북이 모양새를 하고 가고 있는거 아닌가. 평일 오전에 이렇게 차가 막힐리도 없고, 뭔 사고라도 났나, 또 어디 공사를 하는건가... 그런 생각에 조바심이 생길 무렵, 앞에 트인 시야가 확보되었을 때 보인 건 저기 5대 앞에 혼자 유유자적 40마일 (64km)로 가고 있는 차 한대! 아... 그 인내심의 무한 테스트.........;;;;;
보통 영국은 '신사의 나라'라고 여겨지는 만큼 한국보다는 운전하기 쉽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일거다. 차가 그렇게 많지도 않고 (사실 많다, 한국처럼 거대한 대도시가 없어서 분포되어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거지, 여기도 출퇴근 시간되면 막히고 사람 미치게 한다 - 무엇보다, 내 가족을 포함,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중산층 가족들은 집에 차가 2대 이상이다), 급하게 끼어들기나 꼬리물기 같은 것도 별로 없고, 빨리 안간다고 경적을 울리는 사람도 거의 없고... 난데없이 창문을 열고, 내게 욕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도 좀 마음에 안드는 순간들은 생긴다.
그런 순간 하나. '나는 여유를 즐기겠소' 타입을 만났을 때
영국에는, 특히 도시나 고속도로를 빼면 1차선으로 된 길들이 많다. 심지어 시골 쪽으로 가면 차가 딱 한 대만 지나다닐 수 있는 그런 길들도 많다 (영국에는 대부분의 땅들이 사유지라서 더 그런듯..). 대부분 영국에서는 마을을 통과할 때면 20-30마일로 주행하고, 그런 속도제한이 없는 1차선길에서는 최고속도가 60마일, 2차선 이상의 도로에서는 70마일 (113km)인데.. 가끔씩 정말 느리게 가는 차들을 만날 때가 있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40마일로 가는 차를 만난 적도 있다;; 이게 2차선 이상이면, 그래, 당신은 여유롭게 가세요, 성질 급한 저는 당신을 추월해 달리지요, 하고 가겠는데.... 말했듯이 영국에서는 1차선 도로가 많기 때문에, 이런 차가 한 대만 앞에 있어도 도로는 완전 뱀꼬리 잡기처럼 변해버린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경적을 울리는게 아주 드물로 거의 무례한 일로 여겨지기 때문에, 빵빵거리지도 못하고 그냥 뒤에서 따라가다보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 -ㅁ- 그나마 가장 공격적으로 불만을 표현할 수 있는 건 뒤에서 바짝 쫒아가면서 깜박 깜박 거려주는 건데... 역시.. 공격적인 행동이라 거의 하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영국의 길들은 쭉 뻗은 도로보다 구불구불한 길이 많아서 추월도 가능하지 않으니.. 이럴 때는 그저 참을 인자를 여러번 새기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밖에... (물론, 그러다가 아이 둘이 뒤에서 서라운드 사운드로 울기 시작하면 그런 공격적인 행동을 하겠지만 허허;;;;)
그런 순간 둘, 'Roundabout 진입이 두려워요'
영국에는 신호등으로 된 교차로보다 로터리?라고 부르는 roundabout이 많다 (유럽 국가 대부분이 그럴듯..). 신호등 없이 동그란 로터리는 차들이 알아서 진입해서 돌아서 빠져나가는 구조... 가장 경제적인 구조라고는 하는데... 문제는 가끔씩 초보 운전자처럼 로터리에 진입할 타이밍을 찾지 못하고 망설이는 차를 앞에서 만났을 때다. 차가 없으면 그냥 진입해서 돌다가 자기가 갈 곳 찾아 빠져나오면 되지만, 차가 많은 경우, 다들 기회를 옅보다가 찰나의 기회를 잡아 확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출퇴근 시간이 되거나, 유독 차들의 통행이 많고 출구가 많은 거대한 로터리 같은 경우, 끼어들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앞에 차가 끼어들지 못하면 뒤에 차들 모두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여기에 1차선 도로라는 특징까지 겸비하면.. 정말 답답해진다. 이 때는 뒤에서 경적을 울리는 차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 순간 셋, '너의 뒤를 바짝 쫒아가 주겠어'
한국처럼 차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꼬리잡기 놀이를 하는 경우를 영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다. 대부분 적정거리를 유지해주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내 뒤를 바짝 쫒아오는 차를 보면, 답답해진다기 보다 불편해진다 -_-;; 내가 너무 늦게 가는건가, 하는 생각에 다시 속도를 체크해보기도 하고, 어떨 땐 속도를 좀 확 내서 거리차를 내려고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덩달아 내 뒤에서 딱 붙어 따라오는 차를 보면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이게 된다.. 그런 차가 특히 싫을 때는 오르막길.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차들이 수동인데, 자동인 차들과 달리 수동인 차들은 차를 출발시킬 때, 클러치를 떼면서 엑셀레이터를 밟는 그 시간 차이동안 차가 잠시 뒤로 밀린다. 최근에 나온 차들은 뒤로 밀림 방지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긴 한데.. 10년은 된 오래된 차를 몰고 있는 내 차 같은 경우는 여전히 뒤로 밀린다. 그럴 때, 경사가 급한 곳에서 잠시 멈춰있다가 다시 출발해야 할 때, 뒤의 차가 그렇게 딱 붙어 있으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물론 내 차가 밀려서 뒷차를 박게 되면 그건 뒤에 있던 차가 안전거리를 유지하지 못한 탓이라서 문서상으로 내 책임은 없는 거지만, 그런 사실을 뒤로 하고서라도 가능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운전하고 싶다고 할까.... (이러다가 한국가면 운전은 어찌할려고!!)
그런 순간 넷, '양보는 미덕이요'
그래, 공격적으로 '네 차가 이 도로에 있을 틈 따위는 주지 않겠다'하고 밀착수비 하는 차들에 비하면 이렇게 여유롭게 양보도 해주고 하는게 좋긴 하다. 그런데 가끔씩 그 양보의 기술로 그 차 뒤에 있는 차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운전자들이 있다. 집 근처에 자주다니는 길은 1차선인데 중간에 산업단지로 빠지는 길이 있다. 이 길은 근처에 있는 학교들과도 연결되어 있어, 아침은 물론 학교가 끝나는 3시부터 4시까지 꽤 번잡해지는데... 앞에 차들이 밀려서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 산업단지에서 빠져나오는 차들을 위해 앞 공간을 비워 주는게 맞다. 그리고 어차피 차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방향의 차가 없고, 그 길로 가려고 하는 차가 기다리고 있다면, 내 차를 잠시 멈춰 그 차가 가도록 배려해주기도 한다. 내 앞으로 차가 한 두대 먼저 가게 하는 것도 괜찮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그 앞에 차를 아예 멈추고, 산업단지에서 빠져나오는 모든 차들이 자기 앞을 먼저 가도록 해주는 차를 만나기도 한다. 이 곳이 아니라도 차가 막히거나, 공사중이라서 갑자기 줄어든 차선에 차들이 밀려있을 때, 1-2대를 양보해주는게 아니라 아주 넓은 마음씨로 앞에 차들이 다 가도록 기다려 주는 차들이 있는데.. 그런 차들을 뒤에서 보고 있자면... 솔직히 화가 난다;;
그 외...
운전하는 대부분이 사람들이 나라를 불문하고 공감할 만한... 깜박이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드는 차, 난데없이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는 차, 내 차가 빠져나갈 충분한 공간을 주지 않고 주차해 놓은 차 등을 볼 때, 살짝 열이 받는다;;
....
한국에서는 운전 면허를 딸 때와 그 이후에 아주 짧게 운전을 해본게 경험의 전부라서, 사실 내 운전경력은 영국에서의 경험이 거의 99.8%정도를 차지한다고 해도 좋다. 그래도 하다보면, 내 급하고 빠른 운전 방식에 스스로 좀 놀랄 때가 있고.. 아이가 있으니 당연히 욕(!)은 안할려고 하지만, 그래도 나도 모르게 "What the F"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혼자 말을 삼키는 경우도 많고.. 이러다가 한국에서는 제대로 운전이라도 할 수 있을런지 하아....
......
덧 1.
영국에서는 무조건 보행자가 우선입니다. 그리고 신호등이 없거나, 있어도 보행자가 눌러야 신호등이 바뀌는 횡단보도가 많죠. 신호등이 바뀌면 당연히 멈춰야 하지만,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의 경우, 사람이 횡단보도에서있으면 무조건 차를 멈추고 사람이 지나가게 해주는게 좋아요. 안그러면 보행자로부터 어떤 눈치 (certain look)를 받게 될지도요 ㅎㅎ;;;
덧 2.
좁은 길을 지나갈 때, 반대편에서 오는 차가 멈춰서 내 차가 지나가는 걸 기다려주거나 하면, 보통 손을 잠깐 들어서 고맙다는 표시를 해줍니다. 내가 갑자기 끼어들어야 하거나 해서 미안하다는 표시를 할 때는 백미러로 손을 들어 올려서 뒷차가 보게 해주구요. 한국에서는 차들 사이에서 어떻게 사인을 주고 받는지 궁금하네요~~
덧 3.
저같은 경우는 뭘 하나 할 때, 이왕이면 처음에 고생하더라도 나중에 더 많은 이득을 주는 걸 선택하자, 라는 편이라서 처음에 운전면허를 딸 때도 수동으로 땄는데요. 그 덕에 영국에서 운전을 하는데 적응이 쉬웠어요. 따로 오토매틱 차를 찾지 않아도 되고, 수동으로 면허를 다시 따지 않아도 되고.. 그러니 혹시라도 나중에 외국으로 여행을 많이 할 계획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수동을 해두시는게 도움이 될지도요..
'baby-fre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각인효과? 내 생각은 원래 내 생각이 아닐지도 (0) | 2015.06.02 |
---|---|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는가 (0) | 2015.05.03 |
Spanish, 당신들 참 다르다... (0) | 2015.01.14 |
외국이라도 동거와 결혼은 다르다? (0) | 2014.12.02 |
그많던 이성친구들은 어디 갔을까 (0) | 2014.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