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당신들을 서양인이라고, 아니, 유럽인이라고 다 비슷할거라고 두리뭉실 엮어 생각한 내가 잘못이다. 내가 따뜻한 아래 동네에 별로 살아보질 않아서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마냥 믿어버린 내 무지함이다. 또 굳이 따지자면, 입을 열기 전까지는 전혀 스페인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고, 스페인 사람같지도 않지도 않은 내 남편의 탓이다. 하긴,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스페인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몰랐으니까... 그냥 남편을 보고, 스페인도 그냥 유럽의 한 나라군, 하고 믿어버렸다... 그리고 두달정도 그들의 일상을 혼자 접하면서, 참 다르네, 하는 걸 느낀다.
1. 유럽인들은 개인공간을 중시한다던데, 너흰 마구 침범하네?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다가, 줄을 서고 있는데, 뭔가 뒤에서 닿는 느낌이 들길래 깜짝 놀라 돌아보니, 나이드신 스페인 부인께서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냥 서계셨다. 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가까이 서있어야 하는걸까, 좀 당황스러워서 어떻게든 틈새를 만들어 보려 했는데, 사람도 많고 공간도 좁다보니,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게 한두번 있는게 아니고... 자주 있다;;; 길을 가다가도 보면, 아주 여유롭게 길의 중간을 차지하고 걸어다니는 스페인 사람들을 꽤 볼 수 있는데.. 영국에서는 어떻게든 옆으로 붙어서 미리 비켜가거나, 누가 뒤어서 온다는 느낌을 받으면, 바로 'Sorry'하고 비켜주는 것과 달리, 이들은 아~~주 여유롭다. 길도 정말 내가 뒤에서 유모차로 그들의 뒤꿈치를 찔러댈 정도가 되지 않으면 안비켜준다. 그건 가게에서도 마찬가지라서, 진열대 사이의 중간에 떡하고 버티고 있으면서 내가 오든 말든 신경도 안쓰다가, 내가 'Perdona'를 몇번씩 말해야 그제야 눈치챘다는듯, 'Ah, perdona'하고 비켜준다.
2. 스킨쉽이 아주 거리낌없구나
첫번째로 말한 개인공간 침범(!)의 연장선으로 어떨 땐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훅, 하고 들어온다;; 보통 스페인에서는 처음 보면 볼 양쪽에 한번씩 두번 가볍게 키스를 하는데, 그래, 그건 그렇다치자 (네덜란드인들은 3번 키스하니까). 그런데 같이 얘기를 하다가 뭐 농담을 했는데 내가 못알아듣고 있으면 막 웃으면서 어깨를 감싸 안는다던지, 팔을 잡는다던지, 뭐 그런 스킨쉽이 들어온다;;; 얘기하다가 팔꿈치나 발이 닿는 것 정도는 예삿일이고... 영국에서 탁자 아래로 신발이 조금만 닿아도 바로 'Sorry'하면서 개인공간 보호를 하는 영국과는 완전 다르달까... 그러다가 가장 놀랄 때는 가족들끼리의 스킨쉽... 그러니까, 남편의 조부모님들 같은 경우는 인사를 할 때, 꼭 내 볼을 두손으로 감싸면서 두 볼에 뽀뽀를 해준다. 부모님도 얘기를 하다가 팔을 쓰다듬어 준다거나, 어머님은 무릎도 쓰다듬어 주시고;; 남편의 형은 머리도 쓰담해주시거나 볼을 가볍게 잡기도 하시는데... 한국의 내 가족들과도 잘 안하는 스킨쉽을 여기서 받고 있으려니 난 때로 어색해 죽을 지경이다;;;; 이거 혹시 이 가족만 이러는 건가, 싶어 스페인 남자와 결혼한 영국인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정도는 달라도 비슷하다고 한다;;;
3. 가끔은 싫어도 좋은 척을 해주면 안되겠니
거의 매주 금요일마다 여기서 알게된 엄마들과 만나서 브런치를 함께 먹는다. 사람이 적을 때는 3-4명 정도 모이지만 지난 3주 정도 만날 때마다 대략 10명 남짓되는 인원이 유모차까지 끌고 모이는데.. 그럴 때 가장 문제되는건, 도대체 어디로 갈 것인가!! 그래도 스페인이라 다행인게 보통 거리에도 탁자와 의자들이 놓여져 있어서 가다가 공간이 좀 충분한 곳에 탁자를 몇개 붙이고 주위는 유모차들을 두고, 거의 요새의 형태(?)로 자리를 만들어 앉아 커피를 마시며 얘길 하는 편인데... 처음으로 갔던 곳의 그 웨이터는 도리어 우리가 그렇게 온게 귀찮은냥 아주 불친절했다. 주문을 받다가, 우리가 생각하는 기미가 보이면 금새 사라지고, 또 다시 불러야 나타나서는, 사람이 많아 바쁘다고 빨리 말해줄 수 없냐고 했다. 그 때는, 뭐 이렇게 대놓고 '나 불친절해요'하는 웨이터가 있나, 하고 넘어갔는데.. 이런 경우가 사실 한 두번이 아니였다. 전에 영국식 크리스마스 디너를 먹자고, 엄마들 7명이 모여 찾아간 아이리쉬 펍에서의 웨이트리스도 쌀쌀맞기 그지 없었고... 그냥 우리에게 그런거라기 보다, 그냥 원래 성격이 저런건가, 아니면 오늘 뭔 안좋은 일이 있었나, 내가 궁금해질 정도였는데..
스페인에서 산지 6년째인 쌍둥이를 키우는 영국인 엄마 한 명이 말하길, 스페인 사람들은 괜찮은 척 하질 않고, 지 기분 좋으면 좋은데로, 싫으면 싫은데로 다 표현을 하니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에 생각해보니, 영국에서 만난 엄마들 중 거의 3명 중 2명 정도는 다들 출산후 우울증 같은 걸 겪었다고 했고, 출산 후 우울증이 아니라도, Anxiety등으로 시달리는 여자들이 꽤 있었는데... 우울증으로 예전부터 고생을 했던 벨기에 친구가 스페인에 와서, 그걸로 상담을 받으려고 하자, 다들 그녀를 낯설게 보더라는 말이 생각나면서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4. 목소리들도 크시고, 표현도 직설적이시고...
스페인에 와서 은근히 한국이랑 좀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몇번 있는데, 하나는 영국에서 둥그스름하고 완만한 언덕들만 보다가, 스페인의 산을 볼 때, 둘째는 은근히 한국의 요리방식과 비슷한 요리를 맛볼 때 - 특히 홍합탕, 셋째는 위에서 개인공간 말했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줄도 다박다박 붙어서 서고, 가끔 줄도 무시하고 들어오는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을 볼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점에 갔을 때.. 한국에서 까페가 아닌, 밥 먹는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보통 사람들이 내는 소리로 늘 시끌벅적한 것과 비슷하게 스페인에서도 한 테이블에 4명정도만 넘어가면 아~주 시끄럽다. 목소리도 좀 크고, 행동도 크고, 웃음소리들도 크시고...
그리고 표현들이 어떨 때 보면 '후아'할 만큼 직설적이거나, 농담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될만큼 그 선이 좀 지나쳐서 왠지 옆에서 보는 내가 조마조마해지기도 하고... 남편의 스페인 친구들이 몰려있는 그룹채팅창에 같이 속해 있는데, 가끔 오고가는 말을 보다가 내가 걱정되서 남편한테, 'A랑 B랑 사이가 별로 안좋나봐?'하고 물어보면 남편은 도대체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리둥절해 하는데, 이유를 설명하면, 그냥 웃으며 다 농담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스페인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그냥 툭 던진 말에 좀 놀래거나 상처받거나, 기분 상하는건 주로 나 혼자뿐이고, 그들은 내가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듯.. 그래도 그렇기 때문에 두번 세번 생각하거나, 행간을 읽어낼 필요가 없어서 편하긴 한데.. 만약 내가 그들에게 부탁을 해야할 상황이 되면, 그게 그들에게 좀 불편하다 해도 일단 자기 속으로 삭히고 겉으로는 "괜찮다"라고 해주는 영국인들과 달리, (개인 나름일 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본 스페인 사람들은) 불편하다는 걸 표현하면서 해주겠다고 하는 편이라 부탁하는 사람 입장을 좀 더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5. 이걸 두고 정이 넘친다고 할지, 아니면 불공평하다고 할지...
발렌시아의 중앙 시장 (Mercat Central)은 건물 내부도 예쁘고, 온갖 질좋은 식재료들이 넘쳐나는 곳이라 유명한 관광명소이면서 발렌시아 사람들에게도 주된 쇼핑공간이 되는데.. 시어머니는 잡화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식재료를 중앙시장에서 사시기 때문에 나도 과일, 견과류를 사거나, 요리를 해야할 상황이 오면 거기서 쇼핑을한다. 내가 혼자 돌아다니다가, 혹은 남편과 함께 다니다가 물건을 사게 되면, 치이는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든 내 차례를 노려서 주문을 하고 해야 하는데... 시어머니와 함께 시어머니의 단골 가게들을 들리니 그 태도들이 사뭇 다르다. 어떨 땐 다른 이들보다 먼저 물건을 살 수도 있고, 친절하기도 하고, 가끔 덤으로 뭘 더 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시어머니와 함께 쇼핑을 몇차례 하다보니, 나중에 나 혼자 가도 점원분께서 내 얼굴을 아시면 여전히 내 시어머니 대하듯 친절히 대해주셨다.
시장 뿐 아니라 음식점도 마찬가지다. 시부모님의 단골 음식점에 가면 주문도 더 빨리 나오고, 가게 문 여는 시간보다 일찍 들어갈 수도 있고, 심지어 메뉴에 없는 것도 재료가 있으면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물론 잘 모르는 곳에 가면, 우리도 그렇게 친분있는 이들의 주문에 치여서 음식도 나중에 나오거나, 옆테이블에서 먹는 아몬드를 따로 돈내고 시켜야 하지만;;;
이런거야 뭐 장사하는 마인드니 그렇다고 하지만, 스페인에서는.. 뭐랄까.. '아는 사람'의 존재가 꽤 크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스페인에서 알게된 엄마들과 얘기할 때도 느끼는 건데, 특히 아이와 관련해서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인데, 그게 조부모나 친척들에게서만 받는게 아니라 조부모의 친구분들, 친척의 아는 사람에게서 받을 때도 있다는거. 우리도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시부모님의 부부동반 모임분들께서 아기들 선물을 주셨고, 다른 친구분들은 꽤 비싼 아기 코트들을 선물해주셨다. 둘째 꼬맹이 팔이 빠져서 크리스마스 당일 오후에 응급실을 찾았을 때, 이모님께서 병원에서 일하시기 때문에 친한 분이 마침 당직 근무시라 그 많던 대기자들을 두고, 내 꼬맹이가 10분만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아는사람'의 힘이였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한국이랑 좀 비슷한데, 물론 내가 아는 사람이 많으면 살기 편하겠지만, 이런 어떻게 보면 정 넘치는 것 같은 사회의 문제는 공평하지 않다는거? 일거다. 즉 입장바꿔 내 아이가 아파서 울고 난리가 났는데, 그런 아길 달래며 몇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몇분전에 들어온 사람이 냉큼 치료받고 돌아가는 걸 보면 속에서 열이 안나겠는가 말이다;;;
.................
어떻게 보면 짧은 시간을 보냈는데, 왠지 단기 속성 이민코스를 밟고 온 마냥 아주 복잡하고 힘들고 지치면서도 아쉬운 기분이 든다. 남편이라는 방어막없이 혼자 부딪쳐보니, 몇년의 방문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고, 동시에 내가 얼마나 영국에 살면서 영국의 사고/생활 방식에 동화되었나, 하는 것도 새삼 느끼고..
이런 느낀점들을 남편에게 얘기해주니, 남편이 웃으며,
"한국인들도 유럽인들이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다 비슷하다, 라고 말하면 기분 나쁘잖아? 유럽도 마찬가지야. 동양인들은 곧잘 '유럽인, 혹은 서양인'이라고 다 묶어 말하는데, 각 나라마다 문화도, 생활방식도, 사고방식도 다 다르다구"
하고 말했다. 그래. 미안하다. 내 무지함이다. 다음부터는 좀 더 세분화해서 바라봐주마.
'baby-fre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 않는가 (0) | 2015.05.03 |
---|---|
영국에서 운전할 때 이런건 좀..;; (0) | 2015.03.19 |
외국이라도 동거와 결혼은 다르다? (0) | 2014.12.02 |
그많던 이성친구들은 어디 갔을까 (0) | 2014.11.25 |
죽음에 대한 기억들 (0) | 2014.1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