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외국이라도 동거와 결혼은 다르다?

민토리_blog 2014. 12. 2. 00:07

여기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고새 만나서 알게된 엄마들과 매주 금요일 오전에 Almuerzo (브런치)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요, 저번주에 다들 만났을 때, 한 엄마가 그런 얘길 했어요. 


요즘 오후마다 몸이 안좋고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다들 그럼 병원을 가봐라, 그랬죠. 그랬더니 병원카드가 없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는 거에요. 스페인에도 영국의 NHS처럼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건강 진료 시스템이 있는데, 영국에서는 대부분 주소 확인 등만 되면 바로 NHS 번호를 받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스페인에서는 한국의 의료보험증같은 Sip (Sistema de Informacion Poblacional) 카드를 발급 받아야 무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돈을 내고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50-100 유로 정도로 꽤 비싸다더라구요. Sip 카드는 역시 개인별로 발급되는데, 한국처럼 의료보험비를 꾸준히 내거나 가족의 일원으로 누군가 내줘야 발급받을 수 있죠. 


어쨌건, 그녀는 아일랜드 출신인데, 벌써 여기에 산지 3년이 넘었대요. 아이가 둘 있는데, 둘째만 현재 스페인 파트너와 사이에서 낳았어요. 3년이 지났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발급받아 가지고 왔던 European Health Insurance Card도 이미 기간이 완료되었고, 더이상 거기 살지 않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유럽용 건강카드를 새로 만들 수도 없죠. 스페인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 의료보험료를 낸 적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도 의료보험증을 만들 수가 없는거에요. 만약 스페인 사람과 결혼을 했으면 법적으로 그녀 역시 배우자로서 진료카드를 만들 수 있는데, 스페인 파트너가 결혼을 원하지 않아서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거죠;;; (아이같은 경우는 부모 중 한명이 스페인 사람이면 - 그게 문서로 증명되면 - 자동으로 발급받을 수 있어요)


그런 말을 듣고 좀 놀라고 있었는데, 영국에서 온 벌써 아기가 3살이 넘은 아기 엄마도 아직까지 Sip 카드가 없어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는 거에요. 그녀의 스페인 파트너 역시 결혼을 좀 꺼려해서 그렇다는 거죠;; 그 얘길 들으면서 '그럼 도대체 그런 남자와 왜 사냐!'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저 다른 사람들과 같이, "That's so hard, I'm sure there is another way" 같은 빈말 섞인 위로만 하고 말았죠.. 


....


여기에 살면서 아기 엄마들과 만나다 보면, 그녀들의 남자는 대략 4분류로 나눠집니다. 


Husband, Partner, Father of my child, Boyfriend


이게 다 같은 거 아니냐 하실지 몰라도, 저 중에 뭘로 남자를 부르냐 하는걸로 그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단숨에 알 수 있답니다. 즉, 


Husband = I'm married (결혼했음)

Partner = We are living together (동거 중)

Father of my child = I'm divorced/ remarried/ still a single (이혼했거나, 지금은 다른 남자와 재혼했거나,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 아빠와의 관계도 정리되었음)

Boyfriend = We don't live together, or We are not sure what to do with our situation yet (아기는 낳았고, 아직 만나고 있긴 한데, 동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 어떻게 할건지 좀 모호한 상태)


여전히 동거중이거나, 아니면 아이 아빠가 따로 있고 남자친구도 있거나, 아직 싱글로 육아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아이가 있으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했더라구요. 사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동거나 결혼이나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유럽인들 중 결혼은 '나'의 결정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결혼은 '가족의 결합'이다, 라고 생각하는 한국처럼 결혼이라 뒤따르는 가족에 대한 의무(?) 같은게 적어서 동거를 하든, 결혼을 하든 별 차이는 없는거죠. 그리고 의외로 위에서 말한 케이스도 그렇지만 영국에서도 그렇고, 유럽남자들 중에 결혼기피증이 있는 남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답니다 (여자들은 아무리 오랜 기간 동거를 했더라도, 은근히 어느날에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하는 걸 꿈꾸는 사람들이 많았구요)


그저 다른 점이라면 아무리 동거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되어있어도,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동거보다 결혼 사실이 좀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특히 나이드신 분들과 얘기할 때). 아무리 동거가 보편적이라 하더라도 전통적인 결혼 문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직은 좀 더 많다고 할까요... 예를 들면, 영국에 사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Labour party leader인 Ed Miliban이 아기가 있음에도 동거 상태를 꽤 오래 이어갔는데, 그걸로 보수파 언론에서는 한때 전통적인 가족형태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게 아니냐, 등의 말을 하면서 공격을 꽤 했더랬죠. 그래서 그런지 결국 에드 밀리반은 2011년에 결혼했어요.  


뭐 사회적으로 그렇다 치더라도, 본인들이 좋아서 동거만 하겠다고 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만약 상대배우자가 그 나라 출신이 아니라면, 그리고 외국인인 배우자가 일을 하는 등 본인의 생활 기반이 완전히 마련되지 않은 경우, 동거와 결혼은 아~~주 다르답니다;;;; 위에 말한 엄마의 케이스처럼, 실제로 병원에 갈 수 없다거나, 다른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기도 하고, 당장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면 비자가 문제가 되죠. 즉, 동거만 이어나갈 경우, 그 나라에서 오래 살 수도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동거자체가 오래 갈 수 없는거죠. 그래서 사실 비자가 필요한 외국인과 현지인이 결혼을 하면 도리어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경우도 많답니다;;; 


반대로 동거는 꽤 오래했는데, 여자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고 새로 일자리를 찾기도 쉽지 않은거에요. 근데 그 와중에 비자기간 완료시기가 가까워 온거죠. 그래서 여자는 초조히 직장을 찾으면서 동시에 속으로 '이만큼 살았으면 차라리 결혼을 하면 좋을텐데...'하고 은근히 남자가 프로포즈 해주길 기다렸죠. 그런데 이 남자가 완료시기가 다가오는데, "Don't worry, you will find a job soon" 따위의 위로같지 않은 위로나 하고 있고, 나중에는 한술 더 떠서 "If you really can't find a job before your visa expires, you can go back to your family for a while and come back again"하는 소릴 하더래요. 그런 모습에 도대체 이 남자는 나와 결혼할 마음이 없는건가, 나와 동거만 할 생각인가, 아니면 나와 헤어져도 상관이 없는건가, 뭐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결국 다 때려치우고 비자 완료되기 전에 짐싸 나와서 친구집에 잠시 머물다가 일본으로 돌아가 거기서 일본남자 만나 행복하게 결혼해 사는 친구도 있구요. 


그러고보니까, 반대로 일본에서 어학원 강사를 하던 캐다나인을 만나 동거를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휴가 때면같이 캐나다에 놀러가서 그 남자친구 집에 머물기도 하고, 가족들도 다 만나보고 그랬죠. 그래서 그녀는 조만간 결혼을 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남자친구 아버지가 위독하셔서 남자친구가 캐나다로 가야겠다고 그러더래요. 이미 가족들도 만나봐서, 그녀가 걱정을 하며, 그럼 나도 휴가를 내서 같이 가보자, 했는데.. 그 남자친구가 일단 나 먼저 가겠다, 가서 사정을 보고 연락하마, 하고 떠났죠. 그리고는 안돌아오고 연락두절 ;;; 


한국에서는 동거를 해본적이 없고, 해본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동거와 결혼의 최대 차이점은 그거죠. 진짜 오래 동거하면서 같이 집을 샀다거나, 아기가 있다거나, 즉 어떤 물질적 형태의 투자가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닌 이상, 동거하다가 헤어지는 건 일주일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처럼 한순간에 관계가 끝장날 수 있어요. 그리고 솔직히 아무리 법적으로 보호해준다고 해도, 결혼처럼 혼인신고서가 접수된 후 바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동거같은 경우는 일정 기간이 지나야 (그리고 그걸 증명해야)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거죠. 


그리고 그런 법적인 경우를 떠나서, 현지인들끼리라 하더라도 아기를 낳으면 또 동거를 받아들이는 입장이 달라지는 것 같더라구요. 예를 들면, 제 주위에서 오래 동거를 하던 영국인 커플들을 보면, 예전에는 동거에 대해아무런 불만도 없다가 아기를 낳은 후, 남자가 알아서 프로포즈를 하거나 (바람직한 예), 여자가 남자를 쪼아대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더 크기전에 쿨하게 헤어지고, 자기 부모네 근처로 이사가거나 해서 자기 가족 도움으로 아이를 기르거나 하더군요. 하긴 결혼해도 아기가 태어나면서 틀어지는 관계도 많은데... 이혼도 하는 판에 동거라면야 더 쉽게 헤어질 수 있고.. 그리고 동거할 때는 그저 둘이 좋아, 그리고 사실 막 사랑하는게 아니라도 하우스메이트처럼 서로에게 맞춰져서 무리없이 살아가던 커플들이, 아기가 생겨서 좋던 싫던 서로 생활방식을 양보해야 하고, 또 이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니까, 아예 결혼을 하거나, 아니면 동거라도 아기 출생신고서를 바탕으로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더군요. 


마지막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저역시 동거를 했지만, 결혼을 함과 동시에 관계가 분명하고 떳떳(!)해지는게 좋았어요. 동거 때에도 왠만한 친구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특히 한국인들은 여전히 알게되면 좀 불편한 내색을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약혼 사실을 알렸을 때 부모님이 좋아하셨죠 ㅎㅎ 그리고 아주 현실적으로는 비자 걱정이 없어졌구요;; 결혼 전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비자가 있긴 했지만, 직장이 좀 맘에 안드는게 있어도, 다음 직장을 구하기 전에는 그만둘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다음 직장 구하는게 그렇게 빨리 쉽게 되는 것도 아니라서 좀 스트레스 받았었거든요. 그리고 늘 언젠가는 떠날 준비(?)가 되어있었죠. 뭐 사실 지금도 정착할 준비가 안되어있는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니까 (꼬맹이들까지 넷!!) 미래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부담을 나눠가질 수 있어 좋구요 ^^. 개인적으로는 결혼한 상태가 아니라면 아무리 어떤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 하더라도, 절대 같이 집을 사거나 아이를 낳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아요;; 이런 면에서는 저도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인가요 ㅎㅎㅎ... 


그런데 정말! 동거는 얼마동안이든 괜찮지만 결혼은 절대 싫다!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뭐가 그러는 사람도 있는데, 오랫동안 동거하거나 연애하다 헤어져도 사실 똑같잖아요? 그런식으로 제도의 틀 속에 들어가기 싫다, 그런 사람도 있던데, 그럼 그렇게 해서 자기 배우자가 위에 말한것처럼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래도 결혼만은 하지 않겠다, 하는 건 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다른 분들 생각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