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중국 설날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민토리_blog 2020. 1. 25. 06:22

어제 오전에 출근했다가 한국에 있는 동생이 보낸 카톡을 봤다. 이제 설날이라고.. 분명 뉴스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서 중국에서는 이미 명절을 맞이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구이동이 있어서 확산이 우려된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막상 동생이 '설날'이라고 말하니, 새삼 '어, 벌써 그런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줬는데, 문득 뭔가 다 빨갛다, 라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설날이랍시고 유치원 전체에 아주 짙은 중국풍의 장식을 해놨다.... 기분이 싸했지만 아무말 안하고 그냥 나왔다. 


그러고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오는데, 아이들이 물었다. 우리도 이번 주말에 Chinese Dragon을 만들거냐고. 내가 '왜?'하고 물으니 'Because it's Chinese New Year?'하고 대답한다. 그래서 차분하게, '너희는 아직도 엄마가 이제껏 말한 걸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하니, 눈치빠른 첫째가 (이제는 머리가 좀 컸다고...) 둘째 팔을 쿡쿡 찌르며 'It's not Chinese New Year' 했다. 그러자 둘째는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으로 '그럼 새해가 아니야?'하고 묻길래 다시 '설날'이라고, 굳이 영어로 말해야 겠다면 'Lunar (calendar) New Year'라고 부르라고 가르쳤다. 


이런 일들이 영국에 나와 살면서 부터 매해 아주 꾸준하게 반복되는데... 별로 달라지는 건 없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왜 이걸 'Chinese' New Year라고 부르는게 나같이 민감한 이들의 신경을 자극하는지 모른다. 그럴 때는 'You don't call Christmas as 'British' or 'American' Christmas, do you?'하고 대답해주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 인 것처럼 Chinese New Year도 고유명사인냥 생각한다. 원래부터 음력으로 따지는 새해는 중국 새해, 인 것처럼... 


그런데 아이들에게 '설날'이라는 말을 가르치고 나니, 아이들이 다시 물었다. '그럼 우린 뭐 만들어? 한국에서는 용 안만들어?' 용은 안만들지. 그럼 우린 뭐하지? 아, 송편.. 이 아니라.. 떡국을 먹어야지. 그런데 떡이 없는데? 그 외에 뭘하더라... 


솔직히 한국에서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명절은 그 전날 아침부터 신문지가 가득 펴진 거실에 쭈구리고 앉아 전이니 동그랑땡이니 그런 걸 부치고, 그렇게 점심시간도 훌쩍 넘긴 오후에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기름으로 번벅된 거실과 주방을 엄마와 함께 정리, 청소하고... 명절 당일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제기들을 닦고 상차릴 준비를 하고.. 차례가 끝나고 나면 또 음식을 내가서 정리, 밥차리기, 그 후 설거지 하기, 성묘갈 음식 챙기기, 도시락 싸기, 그 다음 대략 1시간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두 곳의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순서대로 들리기 위해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차에서 주구장창 쳐박혀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해 뻗는 그런 날이었다. 특히 설날에는 제사도 여러개 거의 2주 간격으로 몰려있어, 명절이니 뭐니 그냥 반복적으로 돌아오는 노동의 순간들이었다. 다만 다른 건 제사는 그 날 아침부터 준비를 해서 당일날 몰아친다는 거고, 명절은 노동을 이틀 간격으로 나눠서 해야 한다는 것일뿐... 


초등학교 때부터 저래왔기 때문에, 주위 친구들이 명절에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쉬겠다, 하는 이야기를 하면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종일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기름 냄새에 정작 음식은 먹기도 싫었으니까.. 그리고 쉴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끼리 모여 윷놀이 하고 뭐 이런 기억도 없고.. 그냥 명절은 노동의 날. 


이런 기억만 가지고 있는 내가 성인이 되어 작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국의 명절에 대해 도대체 뭘 가르쳐 줄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설날'이라고 하긴 했는데... 집에 뭐 먹을 것도 없고... 내가 명절 음식에 대해 별로 좋은 기억이 없다보니 딱히 이거다, 라고 해주고 싶은 것도 없고... 그래도 아이들에게 '중국 새해'가 아닌 '설날'이라고 뭐라도 더 근사한게 있는 거 마냥 말은 해놨는데... 도대체 우린 뭘하지?;;; 


아니 그 전에 '뭘 해야 한다'라는 생각 자체만으로도 피곤함이 몰려오고 있는 나를 탓해야 하나.... 


..................

외국에 살고 계시는 분들, 도대체 설날에 뭘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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