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유달리 민감한 건가?
어제 친구 둘과 같이 운동을 한 뒤 자쿠지에 들어가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가 가는 클럽에는 수영장과 작은 자쿠지, 큰 자쿠지, 스팀룸, 사우나가 같이 있는데, 작은 자쿠지는 3명이 들어가면 딱 맞는 그 정도 사이즈다. 거기에 셋이 들어가 대화를 하고 있는데, 좀 덩치 있는 남자가 오더니 옆에 걸터앉았다. 아니 한적한 큰 자쿠지 놔두고 여기 굳이 걸터 앉는건 뭔가 했지만 못본 적 그냥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데 기어코 이 남자가 자쿠지 안으로 첨벙하며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에게 더 가까워져서 마치 그 남자가 없는 듯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좀 있다가 남자가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그 말에 친구 둘이 차례대로, "Columbia", "France"하고 대답했고 이윽고 내 차례까지 왔는데, 난 그 남자에게 "Why?"하고 되물었다. 내가 되묻자 당황했는지, 아니, 그냥 신기하고 궁금해서 물었다, 고 대답하다가 내가 그래도 빤히 보고 있자, 대화를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며 일어났다. 내가, 아니, 우리도 나갈 생각이었으니 우리가 나갈게, 너 더 앉아 있어, 하며 빈말(!)을 하니, 그래도 괜찮다며 결국 일어나 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콜롬비아 친구인 J는 너 이런 거에 민감하구나, 하고 말했고, 난 도리어 '아니 내가 왜 내 국적을 지한테 말해야 하냐'고 더 울컥했다. 친구는 아니 그런게 아니라 국적을 묻든 말든 자기는 어차피 말해줘도 상관없지만 네가 말해주기 싫은 것도 이해 한다며 나를 다독거렸다.
솔직히 나는 운동하러 가서 이렇게 사람들이 내게 말거는게 싫다. 보통 이런 일은 스팀룸이나 자쿠지, 사우나에서 혼자 쉬고 있을 때나 다른 여자친구들과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일어나고, 그렇게 말거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남자들이다. 멤버쉽 회원이라 종종 같이 운동을 하러 다니는 콜롬비아 사람인 J와 영국인인 T는 둘다 사교성이 좋아서 그런 말들에도 서스럼없이 대답하는 편인데, 난 그럴 때 보통 입을 닫고 필요할 때만 거의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맞장구 치는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사교성이 없느냐면 그건 아니고, 운동하러 가서 종종 만나는 여자분들과는 안면도 터서 대화도 서스럼없이 하는 편인데, 이렇게 쉬러 갔다가 말걸어오는 남자들이 싫은 것 뿐이다. 일단 난 눈이 안좋아서 안경을 안끼면 잘 안보이는데, 수영을 할 때나 사우나를 하러 갈 때는 장소가 익숙하니 렌즈도 안끼고 안경도 안끼고 그냥 간다. 그래서 이렇게 대화를 해도 상대방의 얼굴 생김새가 잘 안보일 때가 많다. 그러니 나중에 괜히 생깐다는 오해를 사기 싫어 대화를 피하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그냥 모르는 남자가 국적부터 시작해서 이름을 묻고, 뭘하는지 묻고 그냥 그러는게 싫다;;;
어쨌건 위에서 말한 그 일이 있고 나서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그 얘길 했는데, 남편도 웃더니 그냥 그 사람은 궁금해서 대화를 할려고 한 걸 수도 있는데 네가 너무 철벽친거 아니냐, 하는 소릴 했다.
그러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드는거다. 내가 너무 민감한건가? 하긴 그래도 내 행동이 달라지진 않겠지만... ;;
2. 영국인 친구들과 '기생충'을 보고 왔다.
이 영화는 사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스페인에서 남편과 같이 영화라도 볼까 해서 국제영화를 전문으로 상영하는 독립영화관의 상영작들을 보다가 처음 알게 되었다. (스페인에서는 아직도 많은 경우 스페인어로 더빙을 해서 상영하기 때문에 더빙되지 않은 버전을 보려면 따로 영화관을 찾아야 한다;;). 그 때는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수상 한 뒤 영국 일반 상영관에서 기생충을 상영하기 시작한거다! 기생충이 수상한 뒤 영국인 친구들이 먼저 축하한다고 내게 연락을 해왔고 (내가 받은 것도 아닌데!), 같이 가서 보자며 약속까지 바로 잡았다;; 그렇게 아이들 학기 중 방학을 맞아 월요일 저녁 8시에 상영하는 걸 보러 갔는데, 평일에 늦은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많은 사람들이 영화관을 채우고 있어 좀 깜짝 놀랐다;;
그렇게 친구들과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를 본 게 처음이었는데, 볼 때야 영화에 푹 빠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다가 끝나고 나서야 친구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해졌다. 대체적으로 아주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이키는 영화였다, 새로웠다, 그런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그 중 친구들이 가장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건 바로 그 '냄새'에 관한 거였다. 그게 사람을 죽일만큼 강한 자극을 주는 말이였나 하는 거다.
한국인인 내가 영화를 볼 때는 아무런 위화감도 주지 않던 표현이 영국인 친구들이 그 얘기를 하니, 새삼 한국말에는 냄새로 표현하는 감정들이 생각보다 많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즉, 한국말에는 모욕적인 말들 중 하나로 '거지냄새 난다', '어디서 무슨 냄새 안나냐, 00냄새' 등등 그렇게 쓸 때가 많은데, 생각해보니 영어에는 그런 표현이 별로 없는거다. 하긴 그러니 그 감정선이 생소할 수도 있겠구나.... 하여간 괜찮은 경험이었다. 영국 생활 초기만 해도 '한국'하면 다들 'North Korea, South Korea'정도의 이해밖에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젠 노래에 영화까지... ㅎㅎㅎ
3. 사실 요즘 다른 걸 쓰고 있다;;
보통 일상생활에서는 한국 사이트를 잘 들어가지 않는 편이다.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 대개의 일상이 아침에 기상, 출근, 직장, 퇴근, 아이들 밥먹이고 씻기고 재우기, 그러고 나면 대략 잠자기 까지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는데, 그 때 운동을 하거나 남편과 대화를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거나 하다보니 이렇게 글 쓸 때가 아니면 한국걸 딱히 찾아보거나 할 시간이 없어서다. 그러다가 BBC뉴스 같은 곳에서 한국 소식이 들리거나 한국의 가족들이 뭔가 소식을 전하면 일부러 찾아들어가 보거나 하는 정도이고.. 그러다가 연말에 2020년은 도대체 무슨 동물의 해인가 싶어 찾아보려고 다음에 들어갔다가 흥미로운 플랫폼을 하나 발견했다. Brunch. 이게 뭔가 하고 보니 글쓰기에 중점을 둔 블로그 같았다. 그래서 혹 해서 브런치를 시작했다;; 블로그도 좋긴 하지만 뭔가 좀더 계획적으로 글을 쓰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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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블로그 문을 닫거나 하고 싶진 않고... 아무래도 블로그는 이렇게 좀더 개인적인 글들을 올리는 공간으로 남겨두고 브런치에는 가능한 주제를 가지고 매주 글을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런치의 닉네임도 블로그의 닉네임과 똑같답니다. 그냥 들려주시는 분들한테 제가 아주 글을 안쓰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요 ㅎㅎㅎ;;; 아직은 별다른 정체성도 없긴 한데, 그래도 꾸준히 글을 쓰도록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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