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런던
최근에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에 다녀왔다. 영국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분들이라면 아실텐데, BBC CBeebies 아이들 채널에 Andy라는 사람이 공룡이나 야생동물 탐험하는 그런 프로그램이 있는데 거기 배경이 바로 런던의 Natural History Museum이다. 티비 프로그램에서 앤디는 큐레이터인데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다가 뭔가 빠졌다든지, 뭔가 잃어버렸다던지 뭐 그런 이유로 그걸 구하기 위해 박물관의 시계를 통해 시간 여행을 해서 다녀온다. 그래서 이 박물관은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앤디가 일하는 곳으로 유명한데 그런 이유로 지금 시간도 좀 널널하기 때문에 런던 여행을 감행했다. (그리고 원래 그 박물관에는 그 시계가 없는데 이번 주에만 전시를 해놓는다는 소식도 들었고.. 안그랬으면 아마 가서도 그 거대한 실망감을 감당하지 못했을듯;;;)
솔직히 런던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에 그렇게 좋은 도시는 아니다. 일단 내가 사는 곳에서 런던까지 기차표만 100파운드가 훌쩍 넘고 (특히 미리 예매안하면 200파운드까지;; 꼴랑 2시간 거리면서!!) 운전해서 가자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고, 거기다 Low Emission Zone이라고 해서 돈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결국 런던 Zone 4에 있는 주차가 가능하고 런던 Underground에서 가까운 곳에 호텔을 잡고 운전해서 간 뒤 메트로로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간만에 간 런던....
전에도 적었던 거 같은데, 결혼 전 유학 초기에는 런던에서 몇 개월 살기도 했고, 캠브리지에서 런던까지는 기차로 45-50분 정도 밖에 안걸리기 때문에 종종 갔던 곳이였다. 친구들과 놀러 가기도 했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했고, 혼자 볼 일이 있어 갔다가 그냥 돌아다니며 놀다 온 곳이기도 했고... 그 때의 런던은 분주하고, 할 수 있는 것들로 가득차고, 그래서 한국을 향한 향수병따위는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그런 곳. 아이를 낳고 런던에 다시 간 건 첫째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인데, 그 때는 남편 출장 시기와 맞물려서 다른 것 걱정할 필요없이 유유히 차를 타고 런던에 도착해 Covent Garden 근처 호텔에 머무르면서 유모차를 끌고 거의 하루 종일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다지 불편한 걸 못느끼기도 했다. 다만 그 때 생각한 거라면 유모차를 밀고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까페나 가게들이 별로 없구나, 하는 거랄까... (입구가 작거나 아니면 계단들 때문에)
그 후에는 나 혼자 런던을 다녀오거나 했으니 그냥 여전히 사람이 많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이번에 거의 만 5/7세가 된 아이들 둘을 데리고 다녀오니 예전과는 다른 것들이 보였다. 일단... 이번에 날씨가 더웠는데 진짜 에어콘 된 곳이 거의 없구나... 지하철은 복잡하고, 좁고, 덥고, 아이들이 있건 말건 신경도 안쓰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 수가 많아지니 아이들이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휩쓸리기 십상이라 늘 손을 잡고 일단 구석에 섰다가 사람들이 좀 빠져나간 뒤 따라 나가고... (하긴 이런 건 한국에서도 똑같이 경험했다. 아마 도시라서 그렇겠지) 물가는 더럽게 비싸고... 그리고 런던으로 가까이 갈 수록 확실히 많이 보이는 관광객을 포함한 외국인들. 반면에 호텔이 있는 Zone 4로 올수록 확실히 많이 보이는 백인이 아닌 주민들의 수....
하여간 그렇게 진을 빼면서 Natural History Museum에서만 4시간, 그 옆에 있는 Science Museum에서 또 2시간, Hyde park에서 또 1시간 그러고 나니 아이들은 공원에서 뻗어서는 아무데도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렇게 런던에서의 꽉찬 하루가 지나갔다. 그 다음날에는 윈저에 갔는데.... 가기 전에 외곽에 즐비하던 보기만 해도 멋져 보이는 집들과 윈저 성 근처에 즐비한 테라스 집들. 아주 비싼 입장료에 비하자면.... 솔직히 성이라고 해도 그 정도 규모의 성은 유럽 곳곳에 있기 때문에 그다지 색다르진 않았고, 안에 가볼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고 (하긴 아직도 사람이 사니까..), 그나마 가고 싶었던 Doll house는 공사한다고 닫혀있고, 내부라고 하더라도 다른 National Trust에 속한 집들에서 본 것과 별반 다르진 않아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돈아깝다는 생각을 하고 왔다 (하긴 그래도 가봤으니까 이런 소릴 할 수 있는 거겠지만;;). 그러니까... 좀 뒤틀린 심사이긴 한데.... 성안에 있는 채플을 구경하다가 아이들이 거기 서있는 관광 안내분들에게 질문하길, "How do you become a king and queen?" 혹은 "What does a prince do?" 그랬을 때 대답이래봐야 "You born to it" 이거나, 왕자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 때 '그저 왕자'다, 라는 걸 듣자면 새삼 생각하게 되는거다. 출생으로 정해지는 신분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직업이든 뭐든 하면서 스스로를 세상에 증명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신분'이면 모든 설명이 끝나는 그런 사람들이 아직도 이 21세기에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아니여도 돈이라면 넘쳐날만큼 많은 사람들의 집을 유지해주기 위해 그 비싼 돈을 내고 그 집 앞마당이라든지 예전에 쓰던 공간이나 구경하고 있다는 거.
어쨌건 그렇게 복잡한 심정을 가지고 3일간의 런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운전해 오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예전에는 런던을 꽤 좋아했는데, 아니, 정확히는 도시에서의 삶을 꽤 좋아했는데.... 아이들 데리고갔다 와보니, 좀 진빠지는 도시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 요즘에는 솔직히 저녁에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면 거의 하루 일과 끝, 밖에 잘 안나간다;;;) 관심을 두는 거라면, 주변 환경이 좋은가, 학교 수준이 어떤가, 근처에 아이들을 데리고 놀 수 있는 괜찮은 공원이 있는가, 낮동안에 사람들을 만나거나 가족끼리 혹은 아이들과 괜찮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마음에 드는 카페 같은 곳이 있는가, 주변에 아이들을 데리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가, 아이들이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있는가, 운전하기 편한가, 접근성이 용이한가, 안전한가, 뭐 이런 걸 보게되는데... 특히 이번에 갔다 온 동안 영국에 새로운 수상으로 뽑힌 사람을 보자면.... 그냥 전체적으로 이 나라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게 맞는 건가 하는 회의적인 생각도 들고.... 좀 복잡한 마음이 드는 요즘이다. 그런 걸 보자니 확실히 내가 세상을 혹은 공간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구나 싶기도 하고....
2. Leaving do
얼마전에 지금 있는 대학사람들과 송별 파티를 했다. 저녁에 근처 도시 중심가의 펍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집에서 운전하면 거의 40분이 넘는 거리라서 이번에는 아예 맘을 크게 먹고 남편과 얘기한 뒤 도시 중심가에 호텔을 잡았다. 저녁에 만나는데 괜히 이것저것 걱정할 거 없이 맘편히 마시고 놀다가 쉬고 오자, 그런 생각으로 계획한 거였다. 그날 일정을 마치고 기분좋게 호텔에 도착했고, 마음에 맞는 친한 사람들 2명이 미리 와줘서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저녁을 시작했다. 예약한 테이블 5개가 꽉찼다가 빠지고 또 뒤늦게 사람들이 오고, 그렇게 자정에 가까워 지도록 파인트를 들이키며 정말 간만에 신나게 놀았다.
솔직히 내게는 아직도 캠브리지 시절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는데... 그게 뭐냐면 친한 친구들과 보내던 매주 금요일 저녁. 우리는 때론 금요일 오후 3시부터, 보통은 일과를 마치고 5/6시부터 근처 펍에 모여 시간을 보냈는데, 때로는 파티처럼 변해서 밤 늦게 까지 달리기도 했고, 때로는 정말 가까운 4명만 모여 저녁을 먹으며 기분좋게 마무리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친하던 무리들 중 가장 먼저 캠브리지를 떠난 건 나였고, 그래서 아쉬웠다. 새로운 대학에서의 환경은 내 생각보다 훨씬 패쇄적이였고,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웠으며, 임신/출산/육아를 겪으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수도 대폭 줄었고, 무엇보다 외부 활동 범위가 줄어서 힘들었다. 아이가 있으니 그냥 나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게 아니였고, 준비할 건 많았고, 갈 수 있는 곳도 제한적이였고... 그러다가 둘째 임신 때 쯤에야 좀 맘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지금 이 마을에 산지 거의 7년만에 친해진 다른 7명의 엄마들과 매달 주기적으로 만나서 저녁을 먹고, 그 외 따로 시간 틈틈히 만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다들 일을 하고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이다 보니, 매달 만나는 것도 요즘에는 8명 다 모이기도 힘들고, 아이들을 재우고 나오느라 대부분 8시쯤에 만나서 길어야 11시쯤 되면 파장할 때가 많다. 그래서 아쉬웠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시간 걱정없이, 다음날 걱정 없이 마시고 노는 그런 시간들이 그리웠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지나간 대부분의 30대는 나와 관련된 기억보다 아이들의 성장 기록처럼 느껴져서,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다는게 실감이 나지도 않고.... 그래서 괜히 더 아쉽고 미련이 넘쳐났다.
그런 미련들 끝에서 아주 작정하고 즐기기로 다짐한 그 송별 파티의 밤은 즐거웠지만, 새벽 1시가 넘어 호텔방에 들어오자 마자 속이 뒤집어 지면서 현실이 온몸을 흔들었다. 밤에 제대로 잠도 못자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고, 다음날에는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할 상태가 되자 아주 현실에 대한 실감이 제대로 났다. 밤새 그렇게 마시고도 9시 강의에 출석하던 20대 초반의 나나, 9시 세미나에서 발표하던 20대 후반의 나는 이제 없구나. 도저히 속이 울려서 다음날 느긋한 브런치고 소핑이고 뭐고 간에 다 때려치고 차안에서 속을 달래다가 겨우겨우 운전해 집에 도착하니 위화감이 들었다. 쨍한 날씨. 전날 아이들이 놀다가 정원 중앙에 놔둔 자전거들. 익숙한 집안의 풍경들. 이층으로 올라가니 아이들 장난감과 벗어놓은 잠옷 같은게 바닥에 보이고... 다시 속이 올라와서 화장실로 달려갔다가 침대에 누워있는데... 처음 드는 생각이, 나중에 아이들 수영 교실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늦으면 안되니까 알람을 맞춰두고 일단 잠을 자도록 하자, 빨리 괜찮아야지 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런 것들.... 그렇게 잠깐 눈을 붙이고 폰이 울리는 소리에 눈을 떴는데, 그 전날 같이 있었던 친한 동료한테서 괜찮냐며 온 메세지였다. 어제 가장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동료 둘 중 한 명인데, 마지막에 속이 안좋다며 호텔에 들어가는 걸 봤는데 괜찮냐며, 그리고 어제 재밌었다, 뭐 그런 말들. 거기에 속이 뒤집어 졌다, 그렇게 답장을 하며 메세지들을 주고 받았는데 마지막에 그 동료가 그랬다. "Back to being a responsible mummy now!"
그 메세지를 한참 봤다. 그래. 그렇지. 내 20대는 이미 지나갔고, 엄마가 되기 위해, 좋은 엄마가 되기위해, 그리고 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던 30대도 이제 거의 다 지나갔고, 지금 나라는 사람은 저녁에 펍대신 집안에 머무는 사람이고, 새벽에 잠드는 대신 10시 반이면 침대로 향하는 사람이며, 초등학생 2명의 보호자이고, 회사에서도 누군가를 지도하거나 무언가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의 사람이며, 무턱대고 여행을 떠나기 보다 가능한 모든걸 계획하는 사람이며, 하루종일 아이들과 놀고 돌아오면 허리가 쑤시는 그런 나이의 사람이다...;;;
그렇게 그날을 보내고 나서 좋게 말하면 스스로의 나이를 인정하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좀 씁쓸하게도 과거의 젊음을 과거로 놓아주게 되었다. 이제야 챕터 하나를 닫을 준비가 되었다고 하나... 마흔 살 생일 전까지는 절대 닫지 않을거야, 하고 오기부리듯 다짐했는데,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마흔 살 생일 다음날에 속이 뒤집어진 채로 후회와 스스로의 치기에 대한 부끄러움을 마주하며 보내고 싶진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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