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나란 사람이 그렇게 외향적이진 않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과도 곧잘 어울리고 놀긴 하는데, 그 시간이 길어지면 방전된다;; 그래서 다시 충전하려면 혼자 방구석에 쳐박혔다가 나와야 되는 타입;;), 그래도 장기간 타지생활에 왠만한 인간관계는 무던히 적응/유지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년 째 적응이 되지 않는 관계가 있으니... 바로 학부모들과의 관계다.
둘째가 만 5세가 되면서 나도 이제 초등학생 2명을 둔 엄연한 학부모가 되었는데.. 학부모로서 관계맺기는 늘 어렵다. 특히 주말에 생일파티라도 있으면 갈 때까지는 생각 없다가 도착하면서 부터 그 지루함과 뻘쭘함이 하늘을 뚫을 것 같다;;; 둘째가 생기기 전 첫째 아이가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을 때면 거의 대부분 남편과 함께 갔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걸 못느끼고, 둘째가 있을 때도 어렸기 때문에 거의 가족 외출한다는 생각으로 갔기 때문에 역시 별로 어색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제 첫째는 슬슬 단체 생일 파티가 줄어들고, 대신 둘째가 초대받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보통 남편이 첫째와 있고 내가 둘째를 데리고 파티에 가게 되면서 부터 이 뻘쭘한 시간을 아주 온몸으로 절저리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아는 사람이라도 좀 있으면 다행인데, 첫째 입학 전까지는 이사갈 생각이 컸기에 미리 학교를 알아본다거나 물밑작업(!) 같은건 생각도 하지 않았고, 친해진 엄마들 역시 모두 지역과 개인 선호도에 따리 보내는 학교가 나뉘면서 친한 친구 한 명을 제외하면 별로 아는 학부모들 없이 첫째가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거기다 첫째와 동시에 나 역시 풀타임으로 복직했기에 등하교길을 함께 하지도 못했고, 사실 첫해는 그렇게 각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지나갔다. 그리고 첫째가 첫 해를 힘들게 보내는 걸 보면서, 가능하면 학교 행사에는 꼭 참여 하려고 하고, 생일 파티 같은 곳에도 꼭 참여하려고 했는데... 첫째는 이제 좀 적응이 된거 같아서 둘째는 좀 쉬울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ㅜ_ㅜ
특히 왠만한 다른 엄마인 친구들을 첫째를 키우면서 만났기 때문에 둘째 때는 딱히 둘째 나이대와 맞는 친구들을 새로 사귀긴 힘들었지만 (이미 첫째때 진이 빠져서 의욕도 좀 줄긴 했고;;), 그래도 이젠 '엄마 짬밥'이 있으니 생일파티같은 곳에 자주 데리고 가서 또 사람을 만나고 사귀면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꼭 도착하고 한 10분만에 후회한다;;; 딱히 친한 사람도 없고, 얼굴은 좀 익어도 다들 친한 엄마들끼리 앉아있으니 끼기도 어렵고, 아이가 누구랑 친하면 그걸 빌미로 사교활동이라도 해볼까 했는데, 꼭 그렇게 맘먹고 간 날은 아이도 괜히 낯을 가리며 놀려고도 하지 않고... 이럴거면 도대체 왜 왔나 싶어서, 그래도 2시간 짜리 생일파티 30분만에 나오긴 좀 그러니 시간만 재고 있는데... 꼭 이제 가도 되겠지, 싶을 때는 아이가 적응해서 놀기 시작하고... 그렇다고 옆에 앉아서 주구장창 폰만 보고 있는 다른 학부모에게 대뜸 말걸기도 그렇고... 하여간 애매하고 지루하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 파티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ㅜ_ㅜ (그렇다고 책을 보거나 뭘 하자니 왠지 아이는 신경도 안쓰는 사교성 제로의 부모처럼 보일까봐 괜히 신경쓰여서 그러지도 못한다;;) 이럴거면 가지 말자, 하고 다짐하는데, 또 그럼 괜히 아이가 친구들과 만날 기회를 뺏는거 같아 미안해서 또 데리고 가고.. 하여간 이런 미안함 > 참석 > 지루함 > 후회 > 다시오지 말자 다짐 > 아이가 요청 > 미안함 > 참석 허락 > 참석 > .... 이런걸 계속 반복하고 있다...
학부모들과의 관계맺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일단 정보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만나는 기회가 순전히 내 선택에 의해 이루어 지기 때문에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는데... (예, 나가는 그룹 성격에 따라 대충 부모의 성향도 파악이 된다. 모유수유 그룹이라든지, 돈을 좀 내야하는 음악, 무용, 아이 요가 클라스라든지...) 학부모들은 어떤 성향인지 파악하기가 아주 힘들다. 아이들 등하교라도 시키면 주중에 보기 때문에 대충 전업맘인지, 직장맘인지, 어떤 직장을 다니는지 파악이라도 할 수 있을텐데, 생일파티는 주말에 이루어지니 일상복을 보고는 파악하기도 힘들고... (나만해도 주중과 주말의 갭이 상당히 크니까;;;) 아이들 행동패턴을 보고 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파티라서 대부분 아주 미친듯 뛰어다니고 놀기 때문에 솔직히 누가누군지도 모른다;; 어쨌건 뭐 정보가 없으니 어쩌다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지뢰찾기 게임하는 기분이 된다. 주제 하나 던져봤다가 상대방 반응 보고 안전한지 아닌지 판단하면서 조금씩 대화를 진전시키고, 동시에 머리속에 메모를 하는 식이다. 뭐 가끔은 주제 하나에 벌써 지뢰가 터져서 더이상 대화진행도 안될 때가 있지만... (그럼 다음에 이 학부모를 보면 눈인사만 하는 사이가 된다;;)
이렇게 어찌어찌 해서 좀 말이 통한다 싶은 학부모가 있어도 애들이 안친하면 말짱 꽝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부모가 친하니 아이들이 덩달아 친해져야만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학교에는 아이들이 많다보니 자연히 아이가 친하다고 말하는 친구들 위주로 관심을 두게되고.. 그렇게 해서 어쩌다 만났는데 그 부모도 딱 나와 통하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어떨 때는 아이들이 친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연관점도 찾을 수 없어서 더이상 관계가 진행되기 힘들 때도 많다. 그리고 어쩌다 친해졌는데, 나중에 아이가 '나 걔랑 더이상 친구 안할거야'하고 나오면 그것도 참 곤란하고;;; (예를 들어, 아이들 태권도 수업을 기다리다가 친해진 학부모가 있어서 첫째아이 생일 때 친한 친구 몇명만 초대할 거라길래 그래라, 하고 당연히 그 아이도 포함되겠지 싶어 그 학부모한테 미리 말도 해놨는데... 막상 초대할 때가 되니 꼬맹이가 그 애는 초대 안한다면서 싫다면서 울고 불고 난리를 쳐서 - 내 생일인데 왜 엄마 맘대로 초대를 해!, 뭐 그런 소릴 듣고 포기했다;; - 아주 어색하게 되어버린 관계도 있고 ㅡ_ㅡ;; ) 하여간... 어렵다 정말...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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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려나요? 아이들은 알아서 큰다더니... 그 과정을 어떻게 옆에서 같이 보내줘야 할지... 그것도 참 어렵네요... 좋은 팁같은 거 있으면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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