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스스로의 몸에 관대해지기?

민토리_blog 2018. 8. 29. 06:46

스페인 북부를 2주째 여행 중이다. Basque Country의 수도인 빌바오(Bilbao)에 도착해서 북쪽 해안도를 따라서 Cantabria 지방을 지나 Galicia 지방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남편의 스페인 친구 중 한 명이 갈리시아 지방에 위치한 Monforte de Lemos 출신인데 이번에 거기서 결혼한다길래 겸사겸사 잡힌 휴가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다보니, 거의 road trip 수준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해안 쪽을 따라 가게 되다 보니 바닷가에 들릴 때가 많다. 물론 북부는 남부만큼 뜨겁지 않아서 수영하기도 적당하고, 대체적으로 수심이 낮은데다가 모래가 고와서 아이들이 놀기도 딱 좋았다. 그렇게 2주 동안 바닷가의 해수욕장은 물론, 강가, 계곡, 심지어 요트장 정박장에서도 수영을 해봤는데, 어제는 북부의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또 어느 해수욕장을 가볼까 하다가 지도검색으로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바닷가를 하나 발견하고 거기로 가기로 했다.


지도상으로는 꽤나 작아 보여서 아담하니 한적하겠다, 하는 생각에 네비를 찍고 가는데, 마을 입구부터 곳곳에 주차된 차들로 번잡해 보이는 거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되돌아 갈 수도 없어 일단 네비가 가라는 데로 쭉 따라 가다가 운 좋게 주차할 장소를 찾고 내려서 걸어갔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가 했더니, 위의 사진같은 경치가 펼쳐지더니, 작은 푯말이 언덕 아래로 내려가라며 울퉁불퉁한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기 전에 차가 많아서 사람들로 너무 붐비는 건 아닌가, 보니까 꽤 비탈진데 과연 애들과 같이 내려갈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 주저하는데, 밑에서 부터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아이들도 신나 하길래 손을 잡고 서서히 내려가니, 지도에서 봤던 것처럼 고운 모래로 뒤덮힌 아담한 백사장이 나타났다.




아, 정말 예쁘구나. 그런 감탄을 하며 내려가서 백사장을 따라 걷는데, 백사장 초입부터 파라솔 아래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누워 있는 어떤 여자의 등 뒤에 아무런 옷자국도 보이지 않는건 이미 스페인 바닷가에서 topless (여자들 중 비키니 상의를 탈의한 경우)를 워낙 많이 봤기 때문에 별 놀랄 것도 없었는데…. 옆에 덩달아 누워 있는 남자의 엉덩이 선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이는 거다;;; 저 남자 수영복이 너무 살색에 타이트한데…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치다가 옆을 보는데, 함께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커플 역시 지나치게 살색의 타이트한 옷을 입고 있는거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 싶어 무심한 척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자세히 스캔해보니…. 어이쿠… 이게 한 두명이 아닌거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앞에서는 아주 원시 그대로의 인류 모습을 간직한 남자가 아주 버젓이 걸어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쌍쌍으로 팔짱을 끼고 지나치는 커플들도 사과를 먹기 전 아담과 이브같은 모습이였다. 그 때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말했다던 아이처럼, 첫째가 물었다.


“Mummy, why are they naked?”


…..

그래, 왜 그럴까.. 나도 모르겠구나 아이야… 아니, 그것보다 우린 왜 여기 있는걸까. 왜 지도를 볼 때 사람들 리뷰 같은 건 보지도 않았을까, 10분전의 내가 정말 원망스럽구나. 차라리 지금이라도 다시 되돌아 갈까….

속으로 그런 아주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도 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에 괜히 ‘선입견’이라는 먹물을 끼얹을까봐 걱정이 되어서.. 겉으로는 아주 태연하게, “몰랐는데 여기는 사람들이 나체로 수영할 수 있는 바닷가네”하고 대답해줬다. 그러자 아이는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왜 저 람들은 사적인 부분 (private part)을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이는 거냐고 물었다 (성교육의 일환으로 여기 영국 지역에서는 학교나 가정에서 생식기 부분을 private part라고 부르며, 네 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너의 그 부분을 만지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사적인 부분을 만져서는 안된다, 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태연한 척, 이 곳은 제한적으로 알몸인게 허용되는 공간이고, 그렇다고 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하는건 아니라고, 마치 왜 오렌지는 오렌지색이야, 하고 묻는 질문에 대답하듯 설명했다. 선글라스 속으로는 내 주변을 배회하는 타인의 알몸들 때문에 수차례의 동공지진을 일으키면서;;;


누드비치인 것 뿐 아니라 동물도 허용되는 곳이였는지, 사방팔방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개들도 많았는데… 이것 역시 개인적으로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였지만, 역시나 아이들에게는 ‘개들도 너희만큼 물에서 놀고 싶을 거 아니냐’하고 설명하고는 넘어갔다…. 그런 설명들에 아이들은 나름 납득을 했는지 질문을 그만 두곤, 이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신나게 바닷가로 뛰어갔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기다리라고 말하며, 난 누드비치임에도 불구하고 역시 수건으로 둘둘 감싸서 아래 옷을 갈아입고, 여중/여고 학창시절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겉옷을 벗지 않은체 위 옷을 갈아 입었지만;;


그렇게 아이들 손을 잡고 파도타기를 하다가 파도가 밀려오는 끝자락의 모래사장에 앉아 아이들과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며 내 주변 상황을 잊으려고 노력했지만… 고개를 조금 들기만 해도 사방팔방에서 등장하는 나체들은, 처음에는 어색함과 불편함을 주다가, 나중에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무심한 듯 지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맨 몸들. 나이가 젊은 사람, 많은 사람, 선탠 자국 때문에 아랫도리만 하얀 알몸들, 날씬한 사람, 뚱뚱한 사람, 하얀 사람, 까만 사람, 발갛게 익은 사람, 그리고 그렇게 규정할 수 없는 제각각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알몸들. 그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고, 자유로워 보였다. 역시나 나체인 아이들과 놀고 있는 나체의 부모들도 있었고, 백사장 한 쪽에서는 알몸의 남녀들이 비치볼도 하고 있었다. 사실 영국의 브라이튼에 살 때 가끔 마리나로 가는 한적한 백사장에서 알몸의 사람들을 드문드문 보기도 했고, 밤에 가끔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지만, 그건 내게 친구들과 그랬었어, 하고 얘기할 strange/funny experience 중의 하나였지, 뭐 깊게 생각할 만한 건 아니였다. 스페인의 바닷가에서 가슴을 버젓이 내놓고 누워있거나 산책하는 여자들을 봐도, 자신감이 쩌는구나, 하는 생각만 했을 뿐 더이상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그 바닷가에서 남녀노소 불구한 수많은 알몸들을 접하면서… 문득 ‘부럽다’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본연의 모습을 외부에 드러낼 수 있는 용기?랄까?...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 오기 전에 나름 비장하게 살을 빼야겠다, 몸을 좀 탄탄하게 만들어야 겠다, 그런 다짐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했었는데, 아무리 운동을 해도, 밥을 줄여도 살이 빠지기는 커녕 2킬로가 도리어 쪄서 빠질 생각도 않길래… 여행 오기 하루 전에 혼자 저녁에 비키니를 입어봤다가 좌절하고서는 원피스 형으로만 챙겨왔었다. 그리고 여행 와서는 매일 스페인 스타일로 거하게 점심 정식을 먹으며 매일 저녁이 되면, 아우 피곤해, 또 이렇게 살찌는 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그날 찍은 사진을 보면서 혼자, ‘와, 어깨가 막 우람하네, 배 나와보이는 거 같은데.. 다리 봐라, 장난아니네…’ 하면서 혹독하게 내 몸매 품평회를 속으로 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국 옷 사이즈 6을 입는다 (영국에서 제일 작은 옷 사이즈가 6, 그 다음부터 2 단위로 사이즈가 올라간다. 6, 8, 10, 12, 이런식으로…). 영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6-8을 입었다가, 임신하면서 12사이즈를 입고, 그러다 둘째까지 모유수유를 끊은 다음부터 운동을 시작하면서 다시 서서히 6으로 돌아왔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44, 아니면 xs를 입는데도… 스스로가 말랐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아니, 때론 옷을 사러 갔다가 입어보고서는 왜 이리 뚱뚱해보이냐며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나오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바지…. ㅠ_ㅠ) 그럴 때마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이 드는거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옷 중 가장 작은 사이즈를 입고 있는 내가 어떻게 뚱뚱할 수 있냐고… 이성적으로는 말이 안된다는 걸 아는데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처음 드는 생각은 늘… ‘아, 좀더 말랐으면 좋겠다, 좀 더 예뻤으면 좋겠다’ 하는 것들….. 그렇다고 어딘가 딱 두드러지게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나로 보자면, 무장해제(!)하고 안경쓰고 대중 속에 섞이면 월리 뺨치게 묻혀질 만큼 (그렇다고 빨간 모자를 쓰는 것도 아니니까;;;) 무난한 평균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데 (예쁘진 않은데 딱히 못난 곳을 고르라면 그것도 애매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칭찬보다는 무관심, 혹은 비교로 인한 의문의 패를 거듭하며 지내서 그런지,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거의 없고, 그 덕에 다른 사람 눈에 띄이지 않게 옷도 수수하게 입고, 공대를 다니면서 아예 화장이나 꾸미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보내다 왔더니 스스로의 몸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었다.


물론 그러다가 영국에 나와 살면서 많이 변하긴 했다. 특히 캠브리지에서는 거의 매주 formal hall에 드레스를 입고 가거나, 파티 같은 행사에 따라 드레스 코드가 변해야 했기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외모와 패션에 관심을 둬야 하기도 했고… 그리고 이 때 한번 고생하면서 확 빠졌던 40대의 체중이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자신감도 늘게 되었다. 무엇보다 영국에서는 무슨 옷을 고르던 점원들이 일체 간섭을 하지 않기 때문에 쇼핑하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제일 가기 두려웠던 건 사실 옷가게들, 특히 작은 옷가게… 점원분들의 일차 스캔/코멘트/검열이 무서워서;;;) 내가 무슨 옷을 입던 사람들이 평가하지 않는게 좋았다. 그래서… 외국생활 14년차에 접어든 지금 왠만하면 나름의 스타일을 가지고 자신있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뭘 배부르게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배가 나오진 않을까 신경쓰고, 다리가 부어서 완전 뚱뚱해진 것 같다고 한숨 쉬며 종아리를 문지르고, 소매가 없는 티를 입으면서도 끊임없이 팔뚝이 너무 두꺼워 보인다고 외출하기 전에 몇번은 고민하고..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면서 이해가 안된다고, 당신은 뚱뚱하지 않고, 여전히 처음처럼 예쁘다고 말해주지만, 난 그런 사탕발림은 집어치우라며 손을 휘젓고 만다;;


스스로를 향한 검열이 다른 누군가에서 인정받기 위한 것도 아니라면 도대체 뭘 위한 건가… 스스로에 대한 만족? 아니, 내 경험상 이제껏 내가 내 몸매에 만족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한국에서 헌혈할 수 조차 없을 만큼의 몸무게를 가졌을 때도, 입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작은 사이즈의 청바지에 내 다리를 우겨넣고 허리까지 잠글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딱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고 파티에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도, 사실 난 끊임없이 걱정했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그러니 비키니를 실제로 입고 해변가를 활보한 적은 극히 드물고, 당연히 누드비치에 진짜 알몸으로 활보하는 일은 내 현생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거다. 집안에서 조차 꼭꼭 숨어서 옷을 갈아입는 나니까…


그런데 문득 예전 남자 친구의 전 여자친구였던 핀란드인 그녀의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의도치 않게 당시 남자친구의 책을 보다가 발견한 그 사진에 그녀는 바다 위 나무로 된 선착장 같은 다리 위에 샌들을 벗어놓고 투명한 물에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전 여자친구니 뭐니 하는 걸 다 떠나서, 그저 ‘와아’하면서, ‘얼마나 시원하고 자유로운 느낌일까’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혼자 속으로 아무도 없는 외딴 곳이면 나도 그래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누드비치에 다녀오고 나니 새삼 깨닫는다… 다른 사람들이 있고 없고 간에 이미 내가 스스로에게 입혀놓은 굴레가 꽤나 두껍다는 것. 그리고 벗고 말고는 몸매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몸에 대한 애정, 혹은 자신감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것. 그렇다면 스스로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될 거 아닌가, 싶은데... 이것도 쉽지 않은게, '스스로의 모습'이 원래 어떤 건지 잘 모를 뿐더러, '그대로 인정'하자니, 머리속에서 자꾸 '살 좀만 더 빼고 인정해'하고 속살거리는거다;;; 더 불안한건.... 왠지 난 평생 내 몸에 만족하지 못할 거란걸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


스페인에 있는 동안 인터넷이 안되서 저번주에 썼던 글을 올립니다. 간만이네요! 하고 싶었던 말들이 여럿 있었는데, 글이 왠지 풀리지 않아 썼다 지웠다를 많이 반복했어요. 그래도 이번에 갔던 스페인 여행은 여러 면에서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북부는 처음이였는데... 그동안 스페인 남부, 동부, 중부를 다니면서도 막 '와' 한 적은 별로 없었는데, 북부는 완전 반했습니다. 특히 산이 정말 좋았어요. 한국에서도 산을 정말 좋아했는데... 영국의 언덕들은 지가 아무리 높아봤자 산이라는 느낌이 안들어서 아쉬웠거든요. 특히 숲이 있는 산! 곳곳에 풍부한 해산물 요리들도 좋았구요... 물론 그렇게 들뜨다 영국에 도착하니 여름이 훌쩍 지나가있네요;; 저는 다시 복귀했는데, 다음 주 부터 아이들 개학이다 뭐다 하니까 괜히 맘이 심란하네요. 남은 여름 모두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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