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올 것이 왔다

민토리_blog 2018. 6. 15. 21:37

그제 저녁에 남편은 출장가고, 둘째는 일찍 잠이 들고, 첫째와 둘이 앉아 책을 읽다가 갑자기 첫째가 말했다. 


"I don't like how I look. I want my hair to be yellow"


혹시라도 잘못 들었나 싶어 읽던 책을 내려놓고 다시 물었다. 무슨 말이냐고. 그러니 다시 말한다. 

자기 모습이 싫다고. 자기 머리색이 검은 것 대신 노란 색이였으면 좋겠다고...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래도 티를 내진 않고 다시 아이에게 별일 아닌 듯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물으니... 제발 아니길 하고 바라던 답변이 나온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Chinese man'이라며 눈 찢어진 제스처를 하며 놀렸다는 것. 

화가 나고 뭐고를 떠나서 잠시 머릿속이 하애졌다.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누가 심장을 칼로 크게 베어낸 것처럼 아팠다. 


아이에게는 티를 내지 않고, 넌 중국사람이 아니다, 그 아이들은 아마 중국이 어디에 있는지, 한국과 중국의 차이점 조차 모를거다. 그리고 엄마를 봐봐, 엄마 머리색도 까만색인데 그럼 넌 내 머리색도 싫어? 하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엄마는 괜찮아보이는데 자긴 싫단다. 자기 모습이 싫다고 말하는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게 상처가 하나씩 생기는 것 같다. 아이에게 네가 네 모습을 싫다고 말하면, 엄마인 내게도 상처가 된다고, 내가 준 몸인데, 그리고 너의 머리색은 날 닮아서 그런건데 그럼 넌 네 엄마가 다른 사람이였으면 좋겠냐고. 그렇진 않다고, 그래도 자기 머리색은 다른 애들처럼 노란색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이. 


아이와 앉아서 한참동안 '다르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머리색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네 아빠는 어렸을 때 완전 금발이였지만 지금은 어두운 갈색이지 않냐고.. 나도 예전에는 머리 염색해서 빨갛고 노란 머리색을 한 적있다고.. 나와 남편의 예전 사진과 다국적인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주면서 세상에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이 있는지 말하고 나니 그제야 웃더니 잠이 들었다. 


아이는 그렇게 웃다가 잠이 들었는데... 난 아이가 잠들고 나서 더 울 것 같았다. 화가 나서 출장가서 없는 남편에게 폭풍 메세지를 보내고, 때마침 안부를 묻는 영국친구들 단톡방에도 메세지를 던졌다. 남편과 친구들은 진정하라고, 학교 선생님에게 얘길 해봐라, 아이들이 장난삼아 그랬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무지한 걸 어떻게 하겠느냐... 뭐 이런 말들을 해줬는데... 솔직히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더 났다. 이게 별일 아니냐고. 장난이든 뭐든 내 아이가 엄마인 날 보면서 자기 모습이 싫다고 말하는데 이게 지금 장난이냐고.... 

더 말하다가는 좋은 의도로 내게 말해주는 사람들한테 도리어 상처주게 될까봐 메신저 창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이틀째 아직 열지도 않았다...;;;)


그렇게 멍하게 잠들지 못하다가 어제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유치원 원장에게 처음으로 그걸 직접 말하는데, 또 자꾸 울컥했다. 운전해서 오는 내내 그 생각밖에 안들었다. 결국 대학에 도착하자 마자 학교 Head Teacher 연락처를 찾아서 긴 메일을 써내려갔고... 남편에게 보내기 전에 보라고 메일로 보내놓으니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미팅룸에 들어가서 내게 진정하라며, 이런 경우는 굳이 내 아이가 아시안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며 말하는 남편과 통화를 하다가 결국 또 열이 나서, "Why do I have to understand? No! It's racism! Now it's their turn to deal with issues!"하고 소리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래, 알고 있다. 이런 일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있을 수도 있지. 굳이 아이가 동양인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안경을 썼다고, 머리색이 붉다고, 머리가 크다고, 작다고, 말투가 웃기다고, 따돌림을 시키기로 마음먹었으면 없던 이유도 만들어내서 할 수 있다는 거,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날 이렇게나 슬프게 하는건, 왜 아직 만5살 밖에 안된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해줘야 하느냐는 거다. 


고작해야 이 세상에서 5년이 넘는 시간을 산 아이가, 왜 누군가의 행동과 말 때문에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모습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하며, 더 나아가 '내 모습이 싫다'라는 말까지 나오게 하는지... 그리고 그 어린 아이에게 왜 세상이 때로는 이토록 불친절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할 수 있는지 설명해햐 하는지... 왜 우리가 가지고 태어난 것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건지, 왜 머리색이나 피부색, 생김새 때문에 아이가 그런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 설명해햐하는 그 상황 자체가 슬프고, 화가 나고 마음 아프다. 


아이는 어제도 집에 와서 '누구랑 놀았어?'하는 내 질문에 'no one'이라고 답했다. 그래도 날 보며, 'but I am OK'하고 대답하는 아이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 지 몰라 그냥 안아주고 말았다. 답답하다. 정말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Head Teacher에게 메일을 보낼 거고, 정식으로 면담을 요청할거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건 다 해봐야겠지.... 


그리고..... 내 아이가 이런 일을 겪는게 마치 나때문인거 같아서...  이런 생각이 득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떨쳐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