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이를 임신했을 때, 이 아이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사람으로 자랄까,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늘 한가지 다짐했던 게 있었다. '밝게' 자라도록 키우고 싶다. 구김없고, 트라우마 없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않고, 스스로의 존재 그 자체로 당당한 그런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면 좋겠다...
... 그런데 요즘에는 내가 잘 하고 있는건지 회의가 든다. 아니, 요즘에는 잘 키우기는 커녕 이미 아이에게 구김 몇개는 새겨놓은 것 같아 괴롭다..
내게는 대학에 풀타임으로 복귀한 후 생긴 고질병 같은게 작년부터 생겼는데... 다름 아닌 지독한 기침/목감기와 후두염... 원래 목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였지만, 작년에 갑자기 늘어난 강의 일정 때문에 작년 이맘때에 심하게 후두염에 걸려서 일주일 동안 아예 목소리를 잃은 적이 있었다. 목소리가 완전히 가버렸지만, 영국의 의사는 내게 '말을 가능한 많이 하지 말고, 물을 많이 마시고, 쉬어라'라는 처방만 내려줬다;; 내가 말을 안할 수 없는 내 직업을 말하자, 그저 쿨하게 sick note를 대학에 제출하라며 써줬을 뿐이고;; 그렇게 직장 생활한 후 거의 처음으로 병가를 내고 강제로 쉬게 되었는데... 마치 몸이 그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병가를 낸 다음날 부터 지독하게 아팠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를 앓은 후에 목소리가 돌아오긴 했는데... 계속 잔기침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후 크리스마스 휴가동안 잠잠하던 목상태는 다시 2학기가 시작되면서 서서히 나빠지다가, 학기말에는 다시 기침과 함께 목소리는 잃지 않았지만, 후두염 진단을 또 받았다. 그러다 강의가 없는 여름 학기동안 건강상 별 문제없이 지냈던 내 몸 상태는, 새 학기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 후 부터 서서히 또 나빠지기 시작하더니 얼마전부터 또 기침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기침이 심해서 밤에 잠도 잘 못자고.. 거기다 남편은 저번주에 이어 이번 주까지 연달아 출장이 잡혀 집을 비우고 있고... 그래서 거의 제대로 쉬지도 못한체 매일을 버티는 수준으로 보내고 있다..
거기에 저번 주에 있었던 강의 시간 도중 학생들 태도가 너무 좋지 않아 열받았던 것 하며, 매니저와 또 한바탕 했던 거 하며... 하여간 이런 것들이 쌓여서 그런지.. 아무리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려봐도 어느 순간에는 정말 지쳐버리는 거다.
오늘이 그랬다.... 며칠째 밤새 기침 때문에 잠을 설쳐서 피곤한 상태인데... 남편도 출장이라 쉬지도 못하고 계속 육아와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늘은 원래 강의가 없는 날인데 미팅이 여러개 잡혀 있어서 아침부터 계속 이곳 저곳 옮겨 다니며 미팅에 참석해야 했고.. 마지막 미팅 장소가 다른 도시였기 때문에 회의가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다시 차를 끌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퇴근시간이 맞물리는 바람에 오랜 시간 차 안에서 기다려야 했고, 그래서 늦게 도착했다. 이미 늦었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가게 하려고 아이들을 거의 양 몰듯 몰아서 차에 태우고 태권도 도장으로 향했고... 꼭 이렇게 맘 급하고 늦을 때마다 등장하는 아이들의 '나 가기 싫어' 땡깡 때문에 또 한참 실랑이를 해야 했다... 집에 와서 급하게 있는 거 없는 거 꺼내서 저녁을 차려주니, 이거 색이 이상하니, 이거 말고 그냥 토스트를 달라는 둥, 반찬투정에 깨작거리기 까지... 인내심이 바닥을 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참았다... 거기에 전자렌지까지 말썽을 부려 진짜 다 부셔버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았다. 그런데 두 아이가 밥을 안먹고 계속 딴짓하면서 놀다가 결국 옷이고 탁자고 음식을 엎어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는 나도 폭발해버렸다 .. -_-..
내가 화를 내며 아이들 보고 당장 욕실로 올라가라고 소리를 지르자, 두 아이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다가 둘째는 울어버리고, 첫째는 내게 도리어 화를 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난 더 화가 났고... 내가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아이들을 씻기자, 아이들은 그제야 내게 매달리며 잘못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화가 나서 대꾸도 안하고 아이들을 다 씻긴 후 방으로 데려와 옷을 갈아입히는데.... 첫째가 내게 화를 내며,
'엄마는 내가 늘 말도 안듣는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지! 엄마는 내가 엄마를 싫어해서 그런다고 생각하지! 내가 미안해 라고 해도 듣지도 않잖아' 하며 소릴치다가 서러웠는지 펑펑 울어버리는 거다....
... 솔직히 말하자면 그 말에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였지만, 아이를 달래주기에는 나도 너무 지쳤기 때문에... 아이에게 물을 가져다 주려고 아랫층으로 내려왔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너무 힘들었다. 몸이 아프고 지친데, 도저히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서러웠고, 내 아이가 그런 생각까지 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도대체 난 뭘 하고 있는건지... 구김없이 밝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이미 여러번 상처를 준 건 아닌지... 그렇게 혼자 서서 숨죽여 울고 있는데... 아이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첫째가 나를 봤는지 단숨에 달려와서, '엄마, 왜 그래' 하며 아주 걱정스런 목소리로 나를 달래며 의자를 끌어와 올라서더니 나를 안아주는 거다... 그러자 둘째도 덩달아 올라와서 나를 안아주며, '엄마 사랑해'하는데...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내 가슴이 아플 정도 였다. 그 순수함과 아낌없는 마음이 도리어 창이 되어 내 심장을 쑤시며 내가 얼마나 나쁜 엄마인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것 마냥...
요즘엔 정말 모르겠다.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아이들이 조금 컸다는 이유로 나도 모르게 방치했던 건 아닌지... 은연중에 아이들 안 굶기고 이런 저런 걸 해주고 있으니 이정도면 잘 하고 있는거다, 라며 합리화하고 잊으려고 했던 건 아닌지... 아니면 내 아이니까 알아서 잘 클거야,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지... 그런데 한편으론 정말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딱 하루만이라도 정말 방해 받지 않고 그냥 침대 위에서 하루를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점심/저녁 메뉴를 고민하지 않고, 아이들의 루틴을 걱정하지 않고, 다음 강의 준비를 걱정하지 않고, 미친듯이 몰려오는 이메일과 회의 일정 따위를 걱정하지 않고... 그냥 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편으론 그냥 다른 걱정 다 버려두고 아이들과 어딘가로 놀러갔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랍탑을 꺼내서 일할 순간을 찾거나, 이메일을 확인하는 그런 게 아니라, 온전히 같은 공간에서 같은 걸 경험하면서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고.. 이제 11월 초. 아직 한달도 더 남았다... 매일을 버티기 같은 식으로 보내면 안되는데... ....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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