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천으로 BBC one에서 만든 ‘School Swap: Korea Style’이란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웨일즈 고등학교 학생 3명이 한국 서울 강남의 고등학교에 가서 직접체험을 해보면서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겪어보는 프로그램인데.. 이런 프로그램이 생긴 배경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영국에는 중고등학교 과정 (secondary education) 마지막 (대략 만 16세)에 GSCE(General Certificate of Secondary Education)라는 시험을 보는데, 우리처럼 대학입학 시험 그런게 아니라, 그냥 전국적으로 의무교육 과정 마지막에 학생들의 성취도를 성적으로 확인하는 시험이다. 한국에서는 잊을 틈도 없이 닥쳐오는게 시험인데, 이게 뭔소린가 하겠지만, 여기서는 그런게 잘 없기 때문에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전과목을 다 보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국어 (English language), 문학 (English literature), 수학 (Mathematics), 과학 (Science)을 보고, 나머지는 알아서 선택해서 대략 2년 정도 공부하고 시험을 보는 형식인데.. 이 결과가 나오면 마치 한국에서 수능결과 나온 후에 한국의 교육과정에 대한 말들이 들끓는 것처럼, 영국에서는 이때 거의 매일 뉴스에서 영국의 교육시스템에 대한 온갖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가장 나라를 불태우는 건, 지역별 시험 성적인데, 역사적으로, 그리고 평균적으로 England 성적이 가장 좋고, Wales 성적이 가장 낮다;; 이런 결과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이 때쯤되면 Welsh Government 집권당 (대대로 Labour Party -노동당)은 언론의 못매를 제대로 맞는다;; 이런 결과가 도대체 몇년 째 반복되고 있는거냐, 도대체 문제가 뭐냐, 해결법이 있긴 한거냐, 말로는 이번에는 다를 거라더니 도대체 뭐가 다른거냐, 일을 제대로 하긴 한거냐, 등등..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초반에 그런 이야기를 한다. 프로그램의 프리젠터 같은 경우, 한국으로 보내진 웨일즈 학생들과 같은 학교를 나왔지만, 옥스포드에 진학한 케이스다. 그녀는 자신도 이 학교를 나왔고, 당연히 옥스포드에 갈 만한 성적을 가지고 졸업을 했는데, 요즘 보면 뭔가 변했다, 웨일즈 학생들의 성적은 계속 떨어지고, 나아질 기미도 안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세계적으로 교육열이라면 손에 꼽히는 한국에 학생들을 직접 보내보자, 그리고 학생들로부터 직접 의견을 들어보자…. 그렇게 구성된게 이거다.
그래서 웨일즈 서쪽의 고등학교 학생 3명이 한국에서도 교육열로 가장 알아주는 강남, 그 중에서도 꽤 유명하다는 남/여 고등학교에 가서 4일동안 직접 체험을 해보게 된다. 그 학생들은 그 학교에서도 가장 우수하다고 할 수 있는 한국 학생들과 짝을 지어서 그 학생들의 집에 머물면서 같이 학교를 다닌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교육상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대학에서 그렇게 졸업해서 온 웨일즈 학생들을 직접 만나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상황도 모르는 건 아니라, 어떤 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될지 사실 짐작은 하고 있었고.. 그리고 예상대로 흘러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느냐면.. 문득, 한국 학교의 상황이 내가 있을 때와 그다지 별로 달라지지 않았구나, 하는 사실에 다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고… 그와는 다른 이유로 요즘 대학 학생들에게도 충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주섬주섬하게 되는 영국과 한국의 십대 교육상황 이야기..
한번은 남편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은 영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공부를 많이 시키는 편인데, 대학에서 학생들의 성취도나, 취업상황, 현재 경제 상황, 기업들의 성취도를 볼 때 한국과 영국이 그리 다른게 없으니, 그렇게 많이 공부를 시켜봐야 사실 효율적으로는 그다지 낫지 않은게 아니냐..
그 말에 대한 내 반응/생각은.. 한국은 전체적인 교육 성취도가 높은 편인데 비해, 영국은 선택적인 교육 성취도가 높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잣대를 적용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가 있고, 모두 그걸 향해 달려간다. 반면 영국에서는 할 애들은 하고, 안 할 애들은 하지 않고, 그렇다고 공부를 하라고 부추기는 분위기도 없다보니, 할 애들은 그 분야만 집중적으로 파는 경향이 있어서 그 쪽으로는 성취도가 월등히 높지만, 그렇지 않은 애들은 기본 수학도 모를 정도로 전체적인 지식 수준이 낮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학생들 평균을 내면 한국은 월등히 높은 수준을 보이지만, 영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 이런 이유로 가끔 한국의 평균 교육을 받은 성인이 영국의 평균 교육을 받은 성인과 대화할 때 때로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를 수 있지?’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거다.
학창시절에 그러면 뭐하냐, 대학에 가고 난 후부터 한국은 성취도가 점점 떨어지는데.. 하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 한국의 그런 교육열은 이미 한국의 경제개발에 크게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같은 경우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을 일으켰지만, 지금의 경제대국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해보면, 한국은 얼마나 빨리 그 간격을 따라잡았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산업부분은 한국이 훨씬 더 잘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영국보다 작은 땅을 가지고, 한국 전쟁 이후 다 망가지고 파괴된 곳에서, 숨겨진 자원하나 없이 인력만으로 이루어낸 거라고 하기엔 대단한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성취도나 만족도가 낮은 건.. 이미 사람들에게 여러번 지적되어온 창작력 무시, 일괄 교육, 과도한 경쟁, 낮은 복지 수준, 불평등한 사회 구조 등등... 일단 학생들만 보더라도... 한국 학생들은 수업 시간 등에서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아니, 사실 질문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질문을 하려면 지식을 접했을 때, 그걸 내부로 받아들여서 본인의 사고력을 이용해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한국에서는 너무나 방대학 양의 지식이 짧은 시간에 마구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견디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암기하려고 할 수밖에 없는거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마치 뇌 속에 최면효과처럼 각인된 어떤 지식에 대한 정보는 있지만, 도대체 그게 뭐에 관한거였는지 구체적인 지식을 끌어내기는 힘들어 한다. 태종태세문단세, 수금지화목토천해명, 갑오개혁 1894, 같은 것 처럼... 그리고 공부외에 다른 걸 할 틈이 없다. 아니, 할 틈이 없다기 보다, 다른 걸 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니까, 한국의 교육방식을 양치기로 비유하자면, 다 줄을 세워서 대학이라는 공동의 목적지를 향해 가게 하는데, 혹시나 누가 길을 일탈하는 것처럼 보이면 당장 양치기나 양치기 개가 나타나, 다시 길로 돌아가라고 왕왕 짖거나, 잣대기로 등을 탁탁 두드려대는 것처럼....
반면, 영국의 교육방식을 보자면... 상당히 방목한다;; 내가 가끔 출퇴근하는 길에 뜬금없이 만나게 되는, 인도를 산책하거나, 느긋하게 찻길을 건너고 있는 양들 처럼.;;; 분명 양털에 색칠된 문자들과 귀에 달린 표를 보자면, 어딘가, 누군가에게 속한 양인 건 분명한데, 도대체 저 양이 울타리를 빠져나와 이렇게 태연히 산책하고 있는데 주인은 이걸 알고는 있는건가, 싶은 만큼.. 아니, 주인이 관리를 하긴 하는 건가, 의심스러울 만큼 느긋한 방목 스타일처럼 학생들 교육도 비슷하다;; 학생들도 학교에 등록되어 있긴 한데.. 내부에서 진짜로 공부를 하긴 하는건지, 알아듣고는 있는건지, 폰을 단속하지도 않고, 숙제같은 게 있긴 해도, 안했다고 처벌이 딱히 있는것도 아니고.. 성적이 좋든 안좋든 그걸로 딱히 뭐라 하지도 않고.. 화장도 대놓고 마스카라까지 풀메이크업을 하고 오고, 매니큐어에 머리도 각양각색, 교복만 입었고 어려보인다는 것 뿐이지, 도대체 저들을 학생으로 규정하는 건 도대체 뭘까, 하고 의심하게 할 만큼... 물론 여기에도 엄한 학교가 있긴 하다. 대부분 사립이긴 하지만... 공립의 경우 대부분 그렇다. 할 놈은 하고 안할 놈은 안하고... 공부를 잘하면 자칫 재수없다고 도리어 따를 당할 일도 생긴다. 학생들은 9시까지 등교해서 3시반이면 하교한다. 학교를 마치고 Afternoon class나 특별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부분 운동, 음악 등 취미, 특기과 관련된 게 많고, 한국처럼 공부와 관련해서 따로 과외나 수업을 받는 학생들은 드물다. 그러다보니 정말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이 아닌 이상, 기초가 약하다;; 특히 수학이나 과학... 심지어 영어 문법도....
어떻게 보면, 영국 교육의 좋은 점이라면, 이미 그 과정을 통해 공부할 의욕/재능이 있는 학생들과 아닌 학생들이 한번 걸러지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올 때 쯤이면 대체적으로 학생들이 공부하려는 마음가짐과 그 분야에 대해 좀더 집중적인 지식을 가지고 온 학생들이 많다는 거다. (물론 여기에도 그냥 부모가 가라니까 온 학생들도 있다.. 강의도 안 들어오고, 성적도 안좋고, 경고도 몇번 받고.. 그러다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그만 두거나.. 그런 경우도 있고....)
...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의 교육방식은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좋은 시스템이다. 국민 전체의 학력이 올라가고, 아무나 골라도 평균 이상은 하는 인재가 널린거니까...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부담이 크고, 개인성/창조성이 무시된 시스템이다. 같은 잣대로 매겨지기 때문에 다양성이 존중될 틈이 없다. 그리고 빨리 돌아가는 사회분위기와 맞물려 개인은 끊임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결정할 틈도 없이 밀리고 쫒겨서 이 구조, 저 구조를 떠돌다가 흘러갈 위험이 있다.
반면, 영국의 교육방식은 개인이 중시되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지 않은 시스템이다. 능력있는 개인에게는 기회가 주어지고, 자신이 아직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개인에게도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준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개인에게도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돈과 시간을 준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좋을 지 몰라도, 전체 사회를 보자면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 의료보험 시스템인 NHS는 항상 문제고, people on benefit (국가지원을 받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다지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지역 격차는 벌어지고, 영국인들이 하지 않으려는 일은 이민자들이 대신한다. 그리고 어떤 영국인들은 도리어 그들이 원하는 직업이 별로 없는게 이민자들이 그들의 직장을 다 훔쳐갔기 때문이라고 도리어 불평한다.....
그러니 지극히 개인적인 결론을 말하자면.. 한국은 사회적인 분위기와 시스템 자체가 좀더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껴야할 필요가 있고, 영국은 교육제도를 좀더 개인의 성취도 평균을 높이도록 부추길 필요가 있다는 것...
또 한편으로 생각하자면.... 한국의 빠른 변화/적응 속도를 보자면, 이미 문화가 바뀌는게 느껴질 정도이니... 아마도 조만간 변화가 있을 거 같긴 한데... 영국 같은 경우, 이미 사회적으로 굳어지고 무뎌진 교육열을 다시 지피긴 힘들 거 같으니... 장기적으로 보자면 한국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럽고 지극히 한국에 편파적인 생각이 든다고 할까? ㅎ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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