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때, 한번은 교수님이 우리가 대답을 안한다고 화를 내시다가 한 명씩 꼭 집어 질문을 하셨다. 뱀꼬리 물듯 첫번째 학생이 대답을 못하면, 그 왼쪽, 뒷쪽, 오른쪽, 앞, 이런 식으로 꼬리를 물고 질문하셨는데, 대답을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지자 답답하셨는지, "도대체 그 머리로 어떻게 대학에 온거야!"하고 호통을 치셨다;;;
그리고 우습게도.... 요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에 새로 대학을 옮겨서 맡게된 학생들은 학부 2년차들인데, 막 시작한 새내기같이 좀 멍하니 붕떠있지도 않고, 졸업을 앞두고 바닥에 이제야 좀 발을 디딜려고 준비하는 3년차들도 아니라, 애~~매하다. 특히 맡게된 강의 중 하나는 수학이 접목된 과목인데.... 진짜 돌아버리겠다 -_- 내 딴에는 그래도 지들이 대학생들인데, 이렇게 쉽게 시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하는 생각에 기본적인 건 그저 상기시키는 수준으로만 알려주고, 본격적으로 강의에 들어갈려고 했는데.... 열심히 설명해준 다음, 자, 이제 너희가 한번 해봐, 하고 문제를 던져줬더니 다들 멍하니 있는거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종이와 펜을 꺼내고, 네가 그렇게 주구장창 들여다보고 있던 폰의 '계산기'앱을 꺼내서 풀어보라고 'come on'을 외치며 학생들을 보러다니는데... 마지못해 펜을 꺼내 끄적거리던 학생들이 소심히 던지는 질문들에 하나씩 대답해주다가, 갑자기 머리 속에 경보등이 울렸다.
이 아이들, 귀찮아서, 하기 싫어서 문제를 안풀고 있었던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못풀고 있었던 거구나!!!
그런데 잠깐만, 아니, 이걸 몰랐다고?!! 그럼 도대체 뭘 알고 있는거지?!!...... ;;;;;
그래서 급히 앞에 나가 다시 기본적으로 안다고 전제했던 수준으로 거슬러 올라가, 다시 학생들에게 내가 이렇게 이렇게 말했던게 무슨 말인줄은 알고 있냐고 확인하니, 다들 멍한 표정이다;; 사실 학기 시작 전에 한 학기 분량의 강의는 대부분 다 준비해놓고 시작하는데, 이렇게 시작점이 내 예상과 달라져 버리면, 아주 당혹스러워진다. 흐름이 달라지고, 커버할 수 있는 분량이 달라질 수 있고, 급기야 과제의 수준마저 바꿔야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사실 이 부분에서 영국 대학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적어도 내가 유학하던 10년전과 비교하면.... 내 유학시절에는 강의를 듣고 나면, 그 강의를 이해하고 속도를 따라가는건 전적으로 학생의 몫이였다.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만큼 더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는 것. 물론 박사를 마치고, 학부학생들을 대상으로 supervision/tutorial을 할 때도 우리의 몫은 학생들의 공부와 이해를 돕는 것이지, 수업을 따라가든 아니든 그건 학생의 문제였으니까. 어쩌면 누군가는 이게 캠브리지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지도 모른다. 옥스포드 출신 친구들의 말을 들어봐도, 그들이 경험한건 나와 비슷했으니까. 그러니까, 옥스브릿지는 학기가 짧은 대신 그 동안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몰아치기 때문에... 학생들의 피드백도 중요했지만, 강의 내용이 어렵다고 불평이 들어왔던 적은 거의 없었다. 어려우면 그만큼 공부해라, 하는 분위기였으니까.... (그런데 한국 대학의 분위기도 비슷하지 않나요??)
그런데 전의 대학도 그렇고, 이번 대학도 그렇고, 영국 대학내 등록금 인상이 있은 후부터, 대학이 학생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학생들의 태도라든지, 그런게 조금씩 바꼈음을 느낀다. 영국학생들의 등록금이 연간 3-4천 파운드정도에서 지금의 9천 파운드로 오른 이후부터, 대학들은 학생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돌입하고, 학생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시작했다. 그래, 어떻게 보면 긍정적인 변화다. 결국 대학이란 곳은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니까. 그런데 때로는 적반하장의 모습을 대할 때도 있다. 내가 9천파운드나 냈으니까, 당신들은 내가 졸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봉사해야해, 하는 태도랄까... 마치 9천파운드를 냈으니 졸업장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냥?? 그리고 솔직히 이런 때로 무례하고 막나가는 행동들은 타국 학생들보다, 영국 자국 학생들에게서 더 많이 보인다. 외국인 학생들이야 당연히 예전부터 돈을 내고 배우러 왔으니, 그만큼 어렵니, 어쩌니 하더라도 공부를 하는데, 어떤 영국인 학생들은 공부는 하지 않고, 일단 불평부터 하고든다.
"This is too hard and advanced. We won't understand, this is not what I paid £9,000 for"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정말 말해주고 싶다. 네가 헬스장에 90파운드를 내고 등록했다고 해서, 헬스장이 네가 날씬해지는 걸 보장해주는 건 아니잖아? 헬스장은 네가 날씬해지고 건강해질 방법과 도구들을 제공하는 것뿐이라고.... 그리고 네가 헬스장에 불평해야 할 순간은, 네가 빨리 살이 빠지고 있지 않아서가 아니라, 네가 운동하고 싶은데 그만한 환경을 제공하지 않을때야. 똑같다고. 강의가 어렵다고 불평할 게 아니라, 진짜로 네가 불평해야 하는 순간은, 강의가 너~~무 쉬워서 네가 배우는 게 없고, 대학이 네가 공부할만한 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할 때라고.... -_-
.......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학생들과 애증의 관계를 반복하며 어찌어찌 학기의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올해만큼 크리스마스 휴가가 간절하기도 처음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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