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그래,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

민토리_blog 2016. 11. 5. 07:24

며칠째 인상을 찌푸리고 신경성장염으로 시달리고 있는 너를 오늘은 그냥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 역시 며칠째 계속 힘이 들었고 피곤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일은 많았기에, 네 상태까지 신경쓸만큼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다. 그래서 오늘은 나도 힘들다고 화를 냈다. 그런 날 보고 넌 세상에서 가장 상처받았다는 표정을 하고서는 내게 소리를 쳤다. 네가 내 고통을 알긴 하냐고. 넌 네가 이런 고통을 겪고 있지 않다는 걸 다행으로 알라고 말하면서...


그래, 난 정말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너의 고통과 괴로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그저 속으로 견뎌내는 것에 익숙한 나는, 그 모든 과정을 다 드러내며 대놓고 괴로워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 견디는 것에 익숙한 나는, 도저히 못견뎌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이라도 가면을 쓰고 대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가족이건 누구건 친하다는 범주 안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렇게 마음놓고 짜증을 부려대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고통에 대해서는 왠만큼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네 어떤 짜증과 투정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이렇게 표출할 수 있다니, 속으로 견뎌내는 것보다는 건강한 방식이겠지, 이렇게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뭔가 도움이 된다면 나쁠 것도 없지, 하면서...


그런데 말이다. 나도 지칠 때가 있다. 나도 힘들어서 그냥 주저앉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나도 사람이라서, 이기적이게 '네가 아프건 말건 네 할 일은 네가 했으면 좋겠어'하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난 이런 짜증조차 부릴 수가 없다. 내가 좀 안좋은 표정을 하고 있으면, 넌 금새 나를 보며 '왜? 나한테 화났어? 내가 이런 사람이라 싫어?' 하기 때문에... 그럼 마치 내가 네 아픔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아 차마 그런 내색조차 하지 못해 또 나만 답답해진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나도 모르게 너로부터 벽을 쌓는다. 그냥 너는 원래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애써 너를 위로하려고도 하지 않고, 애써 너를 외면하려 하지도 않으면서, 그냥 적당한 선을 두고, 그렇게 지내려 한다. 그렇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적당한 선이 굳어지면서 정체를 서서히 드러내면, 민감한 너는 그 선을 알아채고서 다시 내게 말을 건다. "요즘 넌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하면서..


그 말 한마디에 나는 다시 죄책감을 느끼고, 그게 아니라고 말하며 얼른 선을 지우려고 바둥거린다. 그런데 우습지. 그렇게 내가 또 가까이 다가가면, 다행이라는 듯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미소를 짓던 넌, 너와 나의 사이가 다시 가까워진걸 확인하자마자 다시 토라지지. 난 다시 너의 민감한 세계 안에 들어가는 거야. 매일은 불확실한 일들 투성이고, 넌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너의 몸 어딘가는 그런 민감한 너의 마음에 반응해서 하나씩 문제를 일으키지. 넌 매일 피곤한 표정을 짓고, 또 어떤 날은 아예 아프다고 말하며 문을 닫고 네 세계 어딘가로 들어가버려. 그냥 그렇게 들어가버리면 괜찮지만, 꼭 넌 내게 뭔가 일을 하나씩 던져주고 가지. 여전히 흘러가고 있는 네 세계에서 쌓이고 있는 어떤 일들은 마치 이제 내 세계의 것인것 마냥 책임을 떠넘기고 간단 말이야.. 그 때부터 또 악순환이 시작되지. 난 견디다 못해 지쳐버리고, 넌 그렇게 지친 내게 화를 내고, 난 그런 네게 다시 화를 내거나 아니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다시 견디고 넘어가는 식으로...


있잖아, 난 분명히 너라는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지만, 네가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난 견디는 것에 익숙하지만, 나를 망칠 만큼 견디지는 않아. 그런 짓은 이미 많이 해봤거든. 그러니 이제 좀 적당히 하고 나와줄래? 내가 이러다 어느 순간 네 세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사라지기 전에 말이야. 정말.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