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한인사회, 그 애증관계에 대하여

민토리_blog 2012. 10. 1. 03:19

달이 환하게 밝은 것이 한가위인가 보다 했다. 추석이라 집에 전화를 하고 생각하니, 한국에서 가족과 명절을 못보낸게 벌써 10여년 가량이 된다. 다른 해에는 나름 요리도 하고 해서 명절 기분을 냈을텐데, 매끼 차려먹기도 힘든 아기와 처음 맞는 명절은 그런 것도 사치였다. 가라앉아 있던 내 기분을 알았는지 남편이 한국 식당에 가자고 했다. 추석이라 영업을 할 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전화부터 했다. 전화를 받은 분은 점심 때 영업을 하냐는 내 말에 좀 주저하는 듯 했지만, 오후 2시부터 행사가 있으니 그 전에 오면 괜찮다고했다. 아기를 차에 태우고 대략 한시간을 달려 도착했더니, 왠지 가게가 문을 닫은 듯 조용했다. 들어가니 예약하신 분이냐며 식당으로 인도 하는데, 한 구석에서는 히터가 고장났다며 고치는 일이 한창이었다. 우리가 앉아도 히터 고치는 일은 그칠 지 몰랐고, 그 소리에 아기는 잠에서 깨어 울며 보채기 시작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날라오고, 먹는 그 동안에도 히터 고치는 일은 계속 됬고, 남편은 아기를 달래며 한 손으로 밥을 먹었다. 수리가 좀 끝났나 싶었더니, 이제는 음식점 주인집의 아기가 와서 소릴 지르며 자기 아빨 불러댄다. 그리고 좀 더 큰 아이들은 식당을 뛰어다녔다. 주방에서는 주인집 여자인듯한 분이 아이들을 야단치며 큰 소릴 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는 아기를 달래며 묵묵히 밥을 먹었다. 마치 초대받지 못한 군식구가 주인집이 내주는 밥을 축내는 마냥...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한국의 어느 식당에서 이런 일을 겪고 있다면, 난 그대로 묵묵히 참고 밥을 먹었을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이 곳이 한국의 어느 식당이였다면 손님이 있는데도 이럴 수 있었을까.

외국에 나와 사는 이들은 모든게 좀 궁하고 힘들다. 한 나라에서 지역만 달라져도 타지인이라는 생각에 서러운 법인데, 당장 먹는 것부터 말하는 것까지 다른 나라라면 그 정도가 오죽하겠는가. 그럴 때 내 나라 사람을 만나면 왠지 안심이 된다. 한인사회뿐 아니라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모이는 이유다.
특히 여행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민도 아니게 유학처럼 어중간한 기간을 보내러 온 사람들에게 한인사회는 무척 유용할 수 있다. 단기간이기에 얻기 힘든 방도 조금은 쉽게 구할 수 있고, 지역 정보도 얻기 쉬우며, 차있는 이들을 따라 쇼핑이나 관광을 할 수도 있고, 때론 정착한 분들 집에 초대받거나 행사를 통해 그 귀한 김치나 소주도 얻어먹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좋든 싫든 한국 유학생들은 한번씩은 한인 교회에 들린다.

이민간 이들에게 한인사회의 존재는 좀 애매하다. 처음 이민 온 이들에게 한인사회는 거의 구세주 같을 수 있다. 집 계약은 어떻게 하는지 부터 해서, 은행 계좌여는 것이나, 애들 학교는 어디가 좋은 지 등등 모든 정보를 내 발품 안팔아도 얻을 수 있다. 아직 언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나마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좋고, 타지 생활에 외로울 때 이미 정착한 이들 집에서 밥 한 끼 얻어 먹으면 왠지 한국에 온 것 마냥 정겹기도 하다. 그런 반면, 옛날 시골에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안다 할 만큼 그 바닥이 좁아서, 이런 저런 말 돌기도 쉽고, 나는 그 사람을 몰라도 그 사람은 누군가를 통해 나를 아는 경우도 태반이니 사생활 지키기는 더 어렵다. 누군가 아주 밉살스런 짓을 한다 해도 이사가지 않는한 안볼 수가 없으니 참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사가는 건 쉬운 일인가? 모두들 어렵사이 자리 잡은 사람들이니 이사가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니 참아내야 하는 스트레스나, 한번 얼굴 붉힌 관계를 견뎌야 하는 스트레스를 어디 말로 하겠는가.

필요하고 유용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기는 껄끄럽고, 그렇다고 한 번 발들이면 발을 뺄 수도 없는 그런 관계. 그런게 한인사회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이들과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한국인들 관계는 좀더 복잡하다. 한국인이 많은 뉴몰든이나 런던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한 지역에 한국 수퍼마켓 하나, 한인 식당 하나, 한인 교회 두 개 정도가 있다. 그러다 보니 아예 한국관련한 것들과 관계를 끊거나 한국에 사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물자조달을 받는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그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들의 태도가 마음에 안들어도 뭐라 할 수가 없다. 아쉬운 놈이 참는다고, 오늘 내가 그들에게 쓴소리 하더라도 다음에 또 볼 수 있는 이들이니 그저 참고 얼굴 붉힐 일을 안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정말 싫으면 음식점에는 안가거나, 수퍼에 가서는 필요한 것만 사고 말 안섞고 금새 나오려 한다. 한인교회의 영향력은 조금 더 커서, 초반부터 아예 발 안들인게 아니라면 벗어나기는 더 힘들다.

그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이들은, 정말 배째라는 생각으로 그리 한국인들에게 불친절할 수 있는 건가. 한인 수퍼에 유통기한이 지난 걸 버젓하게 ‘세일'을 붙여 팔고는, 유통기한이 지난걸 어떻게 파냐는 말에 세일해줬지 않느냐 반문하고, 다른 종류는 없냐는 말에 그게 싫음 딴데가라고 하거나, 꼴랑 라면 하나밖에 안산다고 핀잔을 주고, 한인 식당에서는 내가 손님이건 말건 당신 하나라도 가게문을 열어 당신에게 음식을 서빙해주는게 어디냐며 도리어 고마워하라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오늘 식당의 주인은 내가 마지막에 이럴 거면 차라리 영업을 안한다고 하지, 왜 괜찮으니 오랴 했냐고, 차라리 안올 걸 그랬다고 하니,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묻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바쁘고 힘든 일들을 얘기했다. 변명이다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그를 보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도 오랜 타지 생활을 견딘 사람이구나.

한인사회에서는 그 곳에 산 기간이 오래 일 수록 그 사회에서의 위치도 높아지곤 한다. 그만큼 아는 게 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인교회의 목사나, 수퍼마켓이나 식당의 주인같은 경우는 한인사회의 중심을 이룬다. 그들은 이민이나 유학 온 이들을 상대로 먹고 살지만 그만큼의 대가도 치룬다. 목사 같은 경우는 봉사가 일의 중심이라 그런지 집 보증도 해주고, 이사도 도와주고 집수리까지 해주기도 한다. 한인 수퍼나 식당을 하다보면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뭐 공짜로 안주나 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거다. 공짜를 받으려는 이들에게는 사탕 하나 라면 한봉지 일 지 몰라도 장사하는 이들에게는 하루 매출일 수도 있었을 거다. 또 무슨 행사가 있으면 식당 한다는 이유로 사람들 대접하는 일을 울며 겨자먹기로 떠맡을 수도 있다. 그래도 매일 얼굴 볼 사이들이고 좋으나 싫으나 그들이 내 밥줄과 연관되 있으니 내 손해감수하고라도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매일, 몇년을 보내다 보면 인심 사납다 소리 들을 수도 있고, 아는체 하고 가까운 체 하는 한국인들을 보면, 그들이 아무리 손님이라도 경계심 부터 들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가끔 외국인보다 한국인에게 더 쌀쌀한 그들의 태도를 무작정 탓하고 비난할 순 없지만, 그래도 그런 태도를접할 때면 씁슬하고 불쾌해진다.

한인 사회에서 모두가 상부상조하고 인심넘치면 얼마나 이상적이겠냐마는, 사람 사는 곳에 이상적인 일들만 일어나는게 가능하긴 한가. 특히 내 삶만으로도 버겁고 퍽퍽한 타지에서의 생활에서 남까지 챙기는 여유로움을 기대하기란 사막에서 내 물도 부족한데 나눠먹자는 것과 같다. 그래도, 당신 물마시잔 소리도, 안준다고 실망도 안할테니 적어도 상식적인 선에서 지킬 거 지키며, 돈 안드는 웃음이나 좀 나눌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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