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재택 근무령이 내린 지 4주, 휴교령이 내린 지 3주가 넘었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재택근무에 홈스쿨링을 병행하는데, 아이들이 7시 정도에 일어나는 까닭에 우리의 하루 일정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짜여있다. 남편은 아침형 인간이고 나는 저녁형 인간이라, 내가 8시 홈스쿨링 담당이 되면 어차피 9시나 9시 반까지는 아침 먹이기, 간단 아침 체조하기 등이 일과라서 나는 대놓고 늦잠을 자거나 아이들이 일어나도 나랑 같이 침대에서 대굴 거리며 놀 게 놔둔다. 그러다 지난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미리 내 방에 와서 뒹굴거리고 있는 첫째에게 "자,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오자"하고 말하니, 첫째가 싫다며 엄마가 갈아입고 나면 자기도 가서 갈아입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왜, 하고 물으니, '엄마는 항상 옷을 늦게 갈아입으니까'하고 대답했다. 내가 옷을 늦게 갈아입나, 싶어 또 왜, 하고 물으니, '엄마는 아침에 옷 갈아 입고 화장도 한다고 늘 오래 걸리니까' 하고 대답한다.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엄마는 출근 안 하니까, 이제는 그렇게 오래 안 걸려, 하고 대답했는데 아이가 물었다.
"Why do you put on makeup? You look the same anyway"
그래, 어차피 똑같아 보이는데 이 엄마는 왜 화장을 하는 걸까? 사실 내 눈에는 똑같아 보이지 않으니까 하는 거지. 그런데도 똑같아 보인다고 말하니 이건 칭찬인지 욕인지;;; 이 소리는 예전에 남편도 비슷하게 한 적이 있다. 나는 출근할 때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가는데, 남편은 왜 렌즈를 끼냐고 물었다. 역시 자기 눈에는 똑같아 보인다며;;;;
다시 아이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저 질문에 내 안에서 즉각 나왔던 답은, 내가 더 나아 보이기 때문,이었다. 화장을 한 얼굴이 안 한 얼굴보다 더 나아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화장에 대한 재주가 없는 건지, 사실 나는 꽤 했다고 하는데도 별다를 것 없어 보인다는 소릴 듣긴 한다...), 렌즈를 꼈을 때 눈이 더 커 보인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을 아이에게 하자니 주저되었다. 그렇게 말하자니, '더 나아 보이려면 화장을 해라'하고 마치 그게 당연한 것인 것처럼 생각하게 될까 봐 주저되었고, 아이들에게 늘 너는 너 있는 그대로 가장 아름답다,라고 말하던 엄마라는 사람이 '나는 사실 내 얼굴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한단다'하는 메시지를 주게 될까 봐 주저되었다. 그러고 나니 내 안에서 바로 튀어나왔던 저 답에 다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래, 나는 왜 화장을 하는 걸까?
나는 화장을 굳이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화장을 하는 건 둘째 치고, 씻는 과정이 아주 번거롭고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아무 데도 나가지 않아 굳이 씻어야 할 필요가 없는 날들을 아주 좋아한다;;; 기초 스킨케어 제품을 제외한 화장품들을 처음 접한 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엄마가 자신의 화장품을 사면서 샘플로 추천받은 대로 내 책상에 화장품을 하나씩 놔두곤 했다. 도대체 어디에 어떤 순서로 쓰는 건진 몰라도 있으니 되는대로 써보긴 했다. 그러다가 귀찮아서 잊고 가고, 스스로가 어색해서 안 하고 가고... 거기에 여학생들이 별로 없는 공대생이었기 때문에 괜히 주목받는 게 싫어서 치마도 안 입고 화장도 안 하고 다니는 게 편하기도 했고... 그렇게 대학 내내 몇 안 되는 여자 동기들이 깜짝 변신을 하고 나타날 때도, 남자 동기들에게 선배들에게, 심지어 나중에는 후배들에게도 '왜 화장을 안 하냐?'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그렇게 보냈다. 거기다 유학 와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도, Formal Hall이나 어디 파티, 모임, 행사가 있는 게 아니면 또 그냥 그렇게 보냈다.
그러다가 좀 더 본격적으로 화장을 하기 시작한 건 내가 대학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처음에 교직원들에게, 행정직원들에게, 심지어 학생들에게도, 학생으로 오해받아 심기 불편한 경우들을 여러 번 겪은 후부터, 좀 차려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화장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하이힐도 신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육아휴직 때 아주 패션의 암흑기로 접어들었다가 다시 복직하면서 지금의 형태로 굳어진 거다. 물론 지금은 나이가 들기 시작했으니, 노화 방지 차원으로 관리를 해야겠다는 (정확히는 어떻게는 노화의 징조들을 숨겨야겠다, 라는 의도지만;;) 생각에 더 꾸준해진 거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내가 이토록 꾸준히 출근할 때마다 화장을 하는 이유는 아마도 가능한 젊은 모습인 양 유지하고 싶어서, 가 맞을 거다. 그리고 은연중에 화장하고 렌즈를 낀 내 모습이 더 나아 보인다고 믿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외부의 시선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는 기초 케어를 제외한 다른 제품을 얼굴에 바르는 걸 좋아하진 않으니, 개인 만족을 위해 화장을 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니 내 화장은 전적으로 외부의 시선에 대비한 내 준비작업 같은 건데... 그걸 안다고 해도 당장 내 모습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화장을 하지 않겠다, 하는 다짐은 쉽사리 들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남편은 늙어가는 게 자연의 섭리 같은 건데 그냥 놔두라며 쿨하게 말한다. 나 역시 어차피 늙어가는 걸 굳이 멈추려 인위적인 노력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래도 아침에 거울 앞에 비친 내 맨얼굴을 그냥 인정하고 출근하기가 쉽진 않다. 도리어 예전보다 더 꼼꼼히 얼굴을 매일 검사하고 있는 건 아닌지...
뭐 요즘에는 집 밖을 나갈 이유가 없으니 매일 그대로다. 화장품의 양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고, 거울 앞에 선 나도 내 얼굴에 많이 관대해졌다. 이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난 이 느슨함이 익숙해질까? 아니면 또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 돌아오고 나면 다시 검사하게 될까... 모르겠다;;
'baby-free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그는 도대체 왜 하나 (0) | 2019.12.28 |
---|---|
영국 공무원] 깝깝한 것들 (0) | 2019.11.24 |
[영국 공무원] 처음 한달을 보내고 (0) | 2019.09.28 |
여성의 날 행사에 다녀와서 (0) | 2019.03.28 |
영국대학) 대학원 탐구생활 (0) | 2018.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