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여성의 날 행사에 다녀와서

민토리_blog 2019. 3. 28. 07:45

얼마전 (그러고 보니 거의 3주전;;;)에 International Women's Day (3월 8일)을 맞아 대학과 여러 단체에서 합동으로 준비한 Empowering Women in Business 를 주제로 한 컨퍼런스에 다녀왔다. 정부에서 지방 경제 활성을 위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자영업이나 사업 자금 지원 등을 많이 하고 있는데, 그 연장으로 여러 정부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 사업자들을 초대해 같이 대화하고, 문제점을 토론하고, 독려하는 그런 자리였다. 


주최측 입장으로 토론 진행을 위해 참여했기 때문에 네트워크 보다는 준비쪽에 좀더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컨퍼런스에 가기 전날 (늘 그러하듯) 갑자기 내일 뭘 입고 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성의 날이라는데, 싶다가 경험상 컨퍼런스에서는 무난히 틔지 않는 무채색을 입는 것이 가장 안전한지라 이번에도 고민을 잠깐 하긴 했지만, 무채색이지만 패턴이 있는 정장 치마를 입는 걸로 나름 타협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랬음에도 당장 다음날 괜히 좀 틔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2분정도 고민을 좀 더 하다가 출발했는데.. 


시내 외곽 호텔에서 열린 컨퍼런스장에 마침내 도착했는데... 잠시 놀라서 가만히 문앞에 서 있었다. 놀란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양한 스타일, 색깔들 때문에... Key note speaker 중 한 분은 완전 그리스 여신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여성 사업가 단체 대표로 진행을 맡은 분은 파란색의 칵테일 드레스, 정장에 스니커즈를 신은 여자분, 그냥 청바지에 화려한 무늬의 블라우스를 입은 분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분홍색으로 입으신 분 등등 이제껏 컨퍼런스에 갈 때마다 다수의 중년 남성들이 주도하는 무채색의 향연은 없어지고, 다양한 색깔과 스타일들이 그 자리를 꽉 채우고 있었다. 


총 13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는데 그 중 남자는 정부 대표로 온 남자분 한 명, 그 외 전부 여자였다. 개인적으로 여고를 나온 후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한 자리에 있는 걸 보는건 처음이라서 그런지, 괜히 처음에는 내가 더 어색했다;; 그래도 컨퍼런스가 시작되고 '변화를 위한 시간'이란 주제로 두 분이 나와 강연을 하고, 그룹 토론이 이루어지고, 점심을 먹고, 다시 패널 중심의 질의응답이 오고 가고, 정부측 사람이 나와 마무리 강연을 하고 그렇게 컨퍼런스 자체는 끝이 났다. 


마치고 돌아오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International women's day를 기념하는 행사였고 130명이 넘는 여자들이 모여있었지만, 그 중 외국인은 극히 드물어 보였고, 특히 동양인은 나 혼자 였다는 점. 그리고 새삼 내가 생각보다 남성위주의 사회에 꽤 적응되어 있었구나, 하는 것에 대한 자각. 18세의 미혼모부터 시작해서 개인 사업을 시작한 여성, 근 십년 가까이 일한 건축사무소에서 임신을 하자마자 은근슬쩍 주기 시작된 압력때문에 결국 자진사퇴를 하고 지금은 독립해서 개인 건축사무소를 차린 여성, 아이가 세명인데 자꾸만 집에서 '노는 사람' 취급을 받아서 스스로의 장기를 살려 아이들을 위한 공예교실같은 걸 시작했는데 그래도 자꾸 자신감이 위축되는 걸 느낀다는 여성, NHS에서 30년간 간호사로 근무 하고 은퇴했는데, 어느날 문득 이대로 살다 죽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는 여성분 등등, 다양한 사연들이 있었고, 다들 공통점이라면 자의든 타의든 스스로의 위치를 고민하고, 그럼에도 도전하는 사람들이였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보니, 문득 내가 너무 내 자리에 안일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육아휴직 기간중에는 진짜 복귀하면 후회없이 열정적으로 달릴 거라고 다짐했는데... 거의 3년이 다되어 가는 지금... 솔직히 좀 지치는 것도 사실이였다. 그런데도 또 이직을 하자니 준비 생각만 해도 벌써 머리가 아파오는 것 같고... 그래서 마음에 안들어도 어찌어찌 또 한고비 넘기면서 지내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컨퍼런스에 다녀오면서 새로 열정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다른 곳 두 군데에 지원서도 넣었다 ㅎㅎㅎ - 물론 결과야 모를일이지만... 그리고 실패하면 또 조금 우울해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도전했다는 것이 첫 출발점이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또 하나. 좀더 나를 표현함에 있어 자유로워 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난 꾸미는 걸 좀 늦게 시작한 편인데... 한국에서 학부를 다닐 때는 공대에 있었기 때문에 뭐만 좀 해도 꼭 뭐라고 말하는 남자 동기/선배/후배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그 불필요한 관심이 싫어서 거의 꾸미지 않고 다녔다 (그럼 또 안꾸민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_-;;) 그러다 영국에 와서 그 선택지의 다양성에 잠시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좀 난해한 (!) 패션의 굴곡을 거쳤고... 임신/육아기간 동안 고딩때 마냥 우울한 패션 테러 기간을 보냈고, 직장인 생활 3년차인 지금은 나름 정해진 스타일 패턴대로 입고 다니는 편이다. 패션의 질풍노도 시기를 지날 때는 절대 회색이나 무채색은 사지 않겠다, 라고 다짐했는데... 사실 지금은 왠만하면 강한 패턴은 잘 안입는 편이고, 무난하지만 하나씩 강조하는 형태로 옷을 입는다. 디자인도 가능하면 심플한 걸 선호하고, 여성적인 디자인이나 프릴, 리본 같은 장식이 있는 건 거의 사지 않는다. 사실 치마나 드레스도 가능한 안입는 편이고.. 그런데 이번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이미 늙어가는데(!) 이왕이면 좋아하는 것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하고 다닐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 


사실 영국에 온 뒤 부터 사람을 만나는 패턴이 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남자동기/선배들과 어울려 술을 먹고 논다던지 그런 경우가 많았고, 여자보다 남자와 쉽게 친해지는 편이였는데... 영국와서 그랬다가는 남자들에게 다른 신호를 보내는 걸로 오해받기 쉽상이라 여자들과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특히 결혼을 한 후 부터는 '알고 지내는' 남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때문에 자연히 주위에 여자친구들이 훨씬 많아졌다. 그리고 갈수록 '여자친구'의 힘을 새삼 깨닫곤 한다. 예전에 나이가 있으신 여자분들이 여자친구가 나중에 삶의 자산이 될 거라고 말씀해주실 때는 좀 회의적이였는데... 요즘에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 가족이 아니고, 남편도 아니지만, 그래도 삶을 같이 지탱하면서 나가는 때론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 물론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여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번 행사를 다녀와서 느낀 건, 이런 기회가 자주 있다면 좋겠구나,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제 삶을 열심히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활력소가 될 수 있구나, 그리고 가능하다면 멘토나 멘티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 뭐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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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저것 뭘 많이 적었는데, 적다가 글이 막혀 완성시키지도 못하고 저장만 해놓다가 이제야 하나 올리네요 ㅎㅎㅎ 저번 주에는 남편이 호주로 출장를 갔는데, 그 동안 둘째 아이가 아픈 바람에 일주일동안 잠도 제대로 못자고 수요일 밤에는 두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다가 9시간동안 대기도 하고... 하여간 뭔 일이 많았던 한 주였습니다 (왜 이런 일은 꼭 몰아서 일어날까요 ㅠ_ㅠ) 남편이 돌아오고 아이가 낫고 나니 이젠 감기 몸살마냥 제 몸이 아프네요 ㅠ_ㅠ. 

이제 일주일만 좀 넘게 버티면(!) 부활절 휴가를 맞아 한국에 갑니다!! 야호!! 

여기도 이제 봄이 오려는지 해가 쨍한데, 다들 봄 잘 맞이하고 계신가요. 또 안부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