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진짜 오전 9시부터 4시까지 메뚜기 마냥 계속 회의장에서 회의장으로 뛰어다녔다;; 그리고 1달넘게 준비해온 문서 하나가 진짜 막판에 갑자기 등장한 누군가 때문에 멈춰버렸고... 진짜 내가 왠만하면 넘어가는데.. 어제는 열이 빡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에게 우두두 말을 쏟아내다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쓰는 영국 공무원 생활 3달만에 깝깝해졌었던 일들..
1. 드럽게 느리다;;
아마 이건 '영국 공무원'의 성격이라기 보다 그냥 '공무원' 사회가 다 그런게 아닌가 싶은데.... 진행 속도가 드럽게 느리다. 사람들이 일을 천천히 한다는 게 아니라, 뭔가가 진행되기 위해 기다려야 하거나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 많다. 내가 하는 일을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맡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내가 있는 정부기관 내에서도 기본 2-3개 업무부서가 얽히고 외부 협력사도 얽히는데... 이렇게 수평적으로 얽히는 관계외에도 수직관계로도 걸리는 committee가 드럽게 많다;; 그렇게 알고 있는 부서들 외에도 가끔씩 어디서 누군가가 툭 튀어나올 때도 있는데, 이런 걸 몇번 겪다보니 이제는 프로젝트 진행 할 때마다 무슨 귀신의 집 지나가는 기분이 된다... 여기까지는 이미 나올거 다 나왔고 지나칠 거 다 지나왔는데, 또 어디서 뭐가 나올지 몰라 긴장상태를 늦출 수가 없다. 그러다가 누가 툭 튀어나오면, 초반에는 '그럼 그렇지, 그래도 뭐 이정도 쯤이야, 훗' 하고 넘어가다가, 나중에 이쯤하면 다 온 거 같은데... 싶은 순간에 누군가 '잠깐!' 하면서 이미 내가 지나온 길들을 다시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해보라고 한다든지 하면 진짜 빡 치는거다 -_- 그리고 그래서 그런지 미디어들도 관심을 두고 있는 주요 정책 문서 같은 게 아니면 마감일이 밀리는 건 아주 태반이다;;
2. 거대한 강철공을 미는 기분이다
커다란 정책방향 같은건 정치상황에 따라 순신간에 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방향에 따라서 부서가 사라지거나 갑자기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걸 따지자면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것 같은데... '공무원'이라는 조직, 집단 성향 같은 걸 두고 보자면 변화가 아주 더디고 변화에 대한 거부감도 꽤 큰 것 같다. 물론 이것도 일하는 정부기관에 따라 다른거지만, 최소한 내가 있는 곳은 정부 정책에 그렇게 크게 휘둘리지 않는 곳인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변화를 말하는 게 거대한 강철공을 미는 것 같은 기분이 들때가 있다. 크게는 부서의 이루고자 하는 비젼을 정하는 것 부터, 작게는 문서를 어디에 저장할 것인가 하는 것 까지... 변화에 따른 서포트가 꽤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주 쉽게 예전에 하던 방식으로 돌아간다. 계속 밀지 않으면 서서히 움직이는 것 자체를 멈추는 거대한 강철공 같이.... 그리고 가끔은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아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새로 교육 시켜야 하기 때문에'일 때가 많은데... 진짜 그럴 때면 '익숙하면 그게 왜 변화냐고! 교육 시키라고! 지금 아니면 도대체 언제할건데!!' 하고 소리치고 싶은 걸 꾹꾹 눌러담는다....
3. 아주 돌다리를 두드리다 못해 정밀 검사를 한다;;
이건 확실히 영국 성향이다!! 모든 곳에 Health and safety가 뼛속까지 묻어있는 것 처럼 아주 아주 조심스럽다.... 이런건 정부기관이 아니라 대학에서도 느꼈는데... 교육하는 방식을 생각할 때도 한국이 상향평준화를 지향해서 잘하는 학생들을 위한 여러 방법이 존재하지만 정작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위한 대책이나 지원이 제한되어 있다면, 영국은 도리어 하향평준화 같은 기분이다. 몇몇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 때문에 다수의 평범한, 혹은 바닥의 몇몇이 느낄 소외감 박탈감을 더 고려하는 것 처럼 말이다 (물론 그래도 상위층은 지들끼리 알아서 다 해먹지만....) 정부기관도 비슷하다. 좋게말하면 포용성이 좋은 건데.... 10명이 예스를 말할 때 1명이 노를 말하고자 한다면, 10명이 예스를 말하면 그 'no'를 말할 1명이 부담을 느끼거나 자기 의견을 제대로 표현 못할 수 있으니 10명더러 너무 대놓고 예스를 말하거나 표현하지 말아라 하는 식인거다. 혹은 새로 A라는 방식이 새로 적용되기로 했는데 50명의 집단에서 2명이 그 방식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거나 적응하지 못할거라고 했을 때, 그 2명 더러 '그럼 다른데로 가라'라고 말하거나, '네가 더 노력해서 적응해라'하고 말하는 대신 그 방식이 정말 최선인지, 그 2명 외에 더 반대세력은 없는지, 2명을 어떻게 교육시킬지, 그 거부감의 이유가 뭔지, 해결방식은 뭔지... 이런 식으로 고민한다는 거다. 그러다가 간혹 불가피하면 그 2명을 제외시킬 때도 있지만, 그렇게 최종결정이 나기까지 역시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계속 낭비되어지고 있는 48명의 효율같은 건 간혹 무시되기도 하는 거다.... 아까 말했듯이 어찌보면 포용성이 좋은 거고, 배려가 큰 건데.... 가끔은 참.... 벼룩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처럼 이게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
4. 일을 많이 하면 손해다
전에 썼던 것처럼 공무원은 정해진 업무시간이 있다. 그리고 4주를 따졌을 때 너무 일을 많이 해서도 안되고, 적게 해서도 안된다. 업무량이 별로 많이 않을 때는 이게 꽤나 괜찮은 방식인데.... 업무량이 많아지면 이게 좀 복잡해진다. 내 예전 직업들처럼 일이 많으면 주말이고 저녁이고 일해서 끝내는 일 중심 방식일 때는 보상도 해내는 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여기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정해진 기간동안 일을 너무 많이 했으면 (최대 연장 근무할 수 있는 기간은 2일) 보상은 커녕 내가 2일이상 연장근무를 했더라도 그 기간동안 쓰지 못하면 그냥 무용지물이 된다는 거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내에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정해진 시간보다 더 많이 투자해서 마감일을 지킨다고 해도 보상이 있진 않다 (내 마감일이라고 해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게 끝이 아닐 때도 많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마감일이 안지켜지는 일도 비재하고, 당장 급한 마감이 다음주에 있어도 이번주가 그동안 내가 모아놓은 시간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주라면 그냥 휴가를 내고 사라지는 거다 (그래서 일이 더 느려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마감이 시간이고 뭘 이겼는데, 여기서는 왠만해서는 마감보다 개인의 시간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물론 그게 정책 관련된 거면 당연히 이게 이기긴 하지만;;) 물론 이것도 직책이 좀더 올라가면 없어진다. 오래 늦게 수시로 일하는게 당연해지는 거다. 그런데 그게 위에서 가능해지면 뭘하나, 당장 그 지시를 받아서 일해야 할 사람들이 사라지고 없는데...;; 하여간 이 시간 배분은 정말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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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기관에서 일한지도 이제 3달이 다 되어가네요. 갈수록 아주 바빠지고 있습니다. 이게 정상인건지, 아니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들 뭐든 끝내려고 미쳐가고 있기 때문인지;;; 출장도 꽤나 많고, 남편과 둘이서 아이들 학교/유치원 시간에 맞춰서 아주 널뛰기를 하면서 보내고 있네요 ㅎㅎㅎ 그래도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정말 사람 속 뒤집어지게 하는 일들도 많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뭔가 움직이고 있는 것 같거든요. ^^ 다음에는 좀더 긍정적인 글로 찾아올게요. 다들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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