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블로그는 도대체 왜 하나

민토리_blog 2019. 12. 28. 08:18

연말이 되면 하는 일 중 하나가 한해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뭘별로 정리하고 다음해의 계획을 또 대충 월별로 정하고 큰 목표 몇개를 정하는 거다. 그리고 몇년 째 그 큰 목표 중 하나는 좀더 자주 주기적으로 블로그를 쓰자, 하는 건데.... 이 블로그를 그나마 정기적으로 오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매년 실패하고 있다;;; 

지금도 왠지 올해가 지나기 전에 뭐라도 써야 할것 같아 랍탑을 켜고 그새 보지 못했던 답글에 다시 답글을 달고 이렇게 글쓰기 창을 켰는데... 문득 좀더 본질적인 생각이 드는거다. 난 도대체 이 블로그를 왜 하고 있나, 하는 그런 물음. 


저번 달이였나, 스페인에 있는 친구 한 명이 내게 메세지를 보내왔다. 네가 한글로 쓰고 있다던 블로그 아직도 하고 있냐고.. 그럼 그 주소를 좀 알려줄 수 없겠냐고... 한글을 전혀 알지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외국인 친구라서 어차리 봐도 알지도 못할 거 왜 묻느냐고 다시 물으니... 최근에 어디 모임에서 스페인에 온지 얼마 안된 한국인을 만났는데, 그 친구에게 도움이 될까해서 물었다고 했다. 그 말에 내가 그동안 블로그에 쓴 글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데... '이걸 읽는다고 외국생활에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그래서 아주 어색하게... 블로그를 아직도 하고 있긴 한데... 외국생활 가이드 같은 게 아니라서... (그러면서도 내 블로그를 도대체 뭐라 정의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이런저런 것들을 써놓는거라서 과연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장문으로 설명을 하고 나니 친구는 웃으면서 오해를 했다며 도리어 미안하다고 하며 주제를 바꿨다. 

그런데 의외로 이 대화가 내게 꽤 오래 남아있었다. 도대체 내 블로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실 블로그를 하자고 마음 먹었던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였다. 처음에는 영국생활 초기에 있었던 문화 충격이라든지 그런 걸 기록하고, 나도 멋진 사진첩 같은 블로그가 갖고 싶어서 시도를 했다가, 사진을 올리는 건 정말 귀찮은 일이구나,내가 사진 찍는 일에는 별 소질이 없구나 싶어서 한번 포기했고, 문화차이라는 것도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딱히 충격이랄 것도 없어서 소재를 몇개 모으다가 블로그를 온라인에 올리기도 전에 접어버렸고.... 두번째는 영국인 남자친구와 한창 알콩달콩 할 때 였는데.... 그 때 온라인에서 본 국제커플의 경험담이 인기를 얻는걸 보고 나도 그런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는 넘쳐난다고, 내 남친도 아주 귀요미라고, 이런 마음에 아주 귀엽고 핑크한 블로그를 준비하고 몇 개 그림도 곁들여서 글을 썼었는데, 이것도 내가 적다가 스스로가 왠지 위화감(!)이 느껴져서 때려치웠다 (그 때 때려치웠던 과거의 나를 칭찬하고 있다. 그 때 블로그 시작했으면 지울 수도 없는 흑역사를 온라인에 남겼을 듯;;; 사실 웃긴 건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 그때도 사귀던 남친이 거의 싸이 초창기 때부터 썼던 사람이라 나보고 만들라고, 재밌다고 꼬드겨서 만들었는데... 그렇게 만들어놓고 거의 커플 사진첩으로 쓰다가 헤어진 뒤 다시는 남자와 사진을 찍어 남기지 말자, 라고 다짐했었으면서... 또 블로그의 유혹에 빠지려 하다니 -_-;; 그리고 그 때는 온라인에서 보여지던 국제커플들이 너무 알콩달콩 해보여서... 나도 국제연애를 한다면 이 사람이 지구의 반을 돌아서 만난 내 운명(!)일 것이다, 라는 대단한 착각에 빠졌있었던 것같다. 물론 그 연애가 끝이 난 다음에 생각해보자면, 국제연애가 운명이라서 사람들이 안헤어지고 그렇게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이는게 아니라, 이미 안헤어진 사람들이라서 그렇게 온라인에 자랑(!)한게 맞겠지만.... 어쨌건 연애담은 온라인에 남기는게 아니다, 그런 뜬금없는 교훈;;;) 그리고 세번째는 그동안 틈틈히 그렸던 그림들과 만들었던 것들을 올리려고... 이건 사실 그동안 모아놓은게 꽤 있어서 블로그를 온라인으로 열어서 한달정도 꾸준히 했는데.... 그러면서 덩달아 접하게 된 다른 미술관련 블로그들을 보고 내 것들이 너무 초라해 보여서 활동을 접어버렸다;;; 


어쨌건 그렇게 목적에 나름 충실했던 블로그 계획을 세번 접고 나니 별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들었었다. 이미 타지 생활 한지 꽤 오래 지나서 그다지 새롭다고 뭘 올릴 것도 없었고, 여행기같은 걸 올리기에는 사진 찍는 재주도, 부지런함도 없었고... 나란 인간의 삶에 다른 사람의 흥미를 불러일으킬만한 것도 별로 없었고.. (도리어 암울하게는 만들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거의 결혼이 확정지어진 외국인 남자친구도 있었지만, 연애담을 올리기에는 역시 좀 떨떠름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굳이 온라인에 뭘 올릴 필요도 시간도 없었다. 주중에는 일하느라 바빴고, 주말에는 어떻게든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바빴으니까;;; 

그랬는데 왜 이 블로그를 만들었느냐... 하면 초반 글에 썼던 것처럼... 첫 출산 후 육아 초반에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였다. 새로 이사한 곳, 새로 등장한 아주 손이 많이 가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지치게 하는 작은 꼬마, 그리고 아기 울음소리를 제외하면 정적이 흐르는 집. 아기를 제외하고, 저녁에 오는 남편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한 다른 생명체와의 접촉... 그러다 남편마저 출장을 가고 없으면 며칠간 말 한마디 안하고 지내기도 했다. 출산 후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출산후유증 검사에서 아주 높은 점수로 산후우울증 진단을 받고... 뜬금없이 감정적이 되어서 울다가 하는 일들이 잦아지면서 뭐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렇게 시작한게 이 블로그다. 그리고 보면 알겠지만, 초반에는 좀 블로그 답게 사진도 올리려고 했는데, 결국 다 때려치우고... 이렇게 생각나는데로 글만 쓰는 블로그가 되었다...;;; 그것도 뭐 딱히 정해진 주제랄 것 없이 생각나는데로.... 대신 굳이 나누자면 육아와 관련된건, 관련 없는 것, 책리뷰, 정보 관련이랄 수 있겠지만... 사실 정보는 별로 없고;; 책은 읽고 난 후 잔해가 오래 남으면 리뷰를 쓰고;;; 그 외에는 그냥 잡다한 일상생활을 쓰고 있다. (굳이 영국에 관한 것도 아닌데 '해외생활' 주제를 달아도 되나, 하고 고민할 만큼;;; 그런데 일상다반사 주제를 달면 '한국'에서의 생활이 아니라 혹시 '얘는 도대체 어디서 살길래 이런 경험/생활/생각을 하는거야,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까봐 그냥 이 블로그가 써진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여전히 '해외생활' 주제로 올리고 있다;;;) 그러다가 용케도(!) 들어와서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으면 신기하고, 답글도 달려있으면 신기하고;;; 그렇게 종종 오신다는 분들이 있으면 더 신기하고;;; 그래서 더 자주 소식을 올리자, 하고 늘 다짐하지만.... 내가 좀 생각을 숙성시키는 사람이라 그렇게 자주 글이 머릿속에서 나오질 않는다;;; (뭔가 하나 생각이 들면 머릿속 한켠에 놔뒀다가 거기에 서서히 살이 붙고 뼈가 더해지고 해서 형태가 잡히고, 크기가 좀 커지면 도저히 무시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글을 써서 밖으로 내보내야 하는 타입... 그래서 아직도 개인 일기장을 쓴다;; 일기장에 쓰다가 생각이 좀더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여기에 등장하기도 하고;; ) 그러다 보니 글을 올리는 주기가 아주 띄엄띄엄하고... 대신 긴글을 쓴다;; (트위터는 못할 타입;;) 


누가 주제를 나한테 좀 주기적으로 던져줬음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하는데.. (머릿속에 씨뿌리는 기분으로...) 혼자 정해보자 한 적도 있는데... 역시 이런 계획도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오래 가지 못했다 ㅎㅎ;; 무엇보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거의 6년 정도 지난 거 같은데... 그 동안 '아기'가 아니라 '아기들'로 꼬맹이가 2명이 되었고, 그 꼬맹이들이 자라서 더이상 '아기'가 아니게 되었고... 풀타임 복직을 했고, 이직도 했다.블로그를 처음 시작할 때와 상황이 꽤 많이 바뀌어서... 다시 주중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에는 주중동안 밀린 집안/가족/육아 관련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상황이 되었다. 


뭐 사실 다 핑계다;; 글을 이토록 오래 쓰지 못한 것에 대해서... 자주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왠지 이런 패턴이 계속 될 것만 같아서;;; 가끔은 이렇게 띄엄띄엄하게 할 거 그냥 닫아버리는게 안낫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매달 내는 헬스장 회비를 끊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닫지 못하고 있다;; 정말 원해서 운동하고 싶을 때, 글을 쓰고 싶을 때, 쉬고 싶을 때, 뭔가 공유하고 나누고 싶을 때 그럴 기회조차, 공간 조차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니까... 그래서 아직 열어두고 있다 ㅎㅎㅎ;;; 좀 너무 게으른 변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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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변명을 길게 한 것 같은데.... 결론은 내년에도 아마 올해처럼 듬성듬성 잡다한 글들이 올라오는 블로그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죠, 뭔가 생각의 씨앗들이 머릿속에 많이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씨앗 던져주실 분?! ^^) 매년 이런 인사를 한 것 같은데... 이렇게 게으른 블로그에도 들어와 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다들 연말 잘 보내시고 좋은 일 많이 생기는 내년 한 해 되시길 바랄게요!!! 남은 올해의 며칠 안에 뭔가 생각이 갑자기 나지 않는다면, 내년에 다시 뵐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