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야 한다

민토리_blog 2017. 9. 15. 23:00

영국은 내가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보고 간 곳이다 (한국에서 제주도도 비행기를 타보고 간 적이 없다).

낯선 언어,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영국을 오고 싶어 온 게 아니라, 처음에 한국을 떠나고 싶어 오게 된 곳이였기 때문에 설레임도 없었고, 기대도 없었다. 그나마 영어를 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영국인의 강한 악센트는 적응하기 힘들었고, 독해나 문법, 간단한 영어회화 정도 수준의 영어 교육을 받은 내게 어학원 수업 역시 꽤나 낯설고 적응하기 힘들었다. 거기에 세계 온나라에서 온 사람들. 다른 성향, 다른 생김새, 다른 태도... 묘한 기분이였다. 내 존재가 그냥 이렇게 섞일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동시에 내 다름이 주는 고독감. 한국인들 사이에 어울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딱히 외국인들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좀 익숙하게 지내나 싶었을 무렵에,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다가 자동차와 접속 사고가 생겼다 (내가 멈추려다 차쪽으로 넘어져서 문에 약간의 마크가 생긴 상태). 운전자는 내게 화를 냈고, 내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묻고 사라졌다. 차가 지나간 후, 다시 자전거를 탈 엄두를 못내고 걸어가는데, 눈물이 펑펑 나면서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나 이러다가 어디 잡혀가면 어쩌지, 엄청난 수리비를 요구하면 어떡하지, 내게 해꼬지를 하면 어떡하지, 등등... 그래서 처음 보이는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한국에 있는 아빠에게 전화를 했었다. 펑펑 울면서... 그 얘기를 호스트맘에게 하자, 진짜로 주소를 알려주면 어쩌냐고 내게 화를 냈고... 그 이후 내리 4일간 난 방에 쳐박혀서 나오지 않았다. 혹시라도 누가 찾아올까봐.. 나를 알아보고, 수리비를 내 놓으라고 뭐라고 할까봐... 호스트맘을 만나기가 두려워서 밥도 먹지 않았고, 대화도 하지 않았다... 그게 2003년.


캠브리지에 와서 2009년인가. 다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의 차가 급정차를 하는 바람에 내가 뒤에서 차를 들이박고 튕겨나갔다. 아픈 팔을 붙잡고 일어나 보니, 차 뒤에 자전거 바퀴때문에 검은 자국이 남았다. 그런데 하필 차가 포르쉐.. 잘차려입은 운전자는 차에서 내려 나를 보고 차를 보고는 역시 화가 난 표정으로, 내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적으라고 했고, 난 또 무심결에 집주소를 쓰다가 이번에는 학교 주소를 적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명함도 요구해서 받았고..  아무리 봐도 자전거 타이어가 부딪힌 거라 약간의 까만 자국밖에 없어서 뭔 일이 있을까.. 했는데.... 그날 오후에 별일이 일어났다.

그 남자는 내게 메일을 보내서 차를 정비소에 보내서 범퍼를 다 갈아야 한다며 내게 500 파운드 정도를 요구하는거다!

기가 차는건 둘째 치고, 머리를 뭔가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에 멍해졌다. 이건 뭔가, 도대체 이건 뭐하자는 개수작인가. 어쩌자고 이런 미친 개에게 물렸나... 그런 황당함, 분노와 동시에 두려움도 같이 왔다. 상식적으로 보면 내게 사기치려는게 분명한데, 내 연락처를 알고 있으니 또 찾아오거나 해서 나를 협박하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 그 때 같이 박사과정을 하던 친한 친구가 커피마시자고 왔다가 내 하얗게 질린 표정을 보고, 뭐냐고 물어줬고.. 그녀 품안에 안겨서 덜덜 떨리는 몸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그리고 좀 진정되었을 때 주위에 조언을 구하고 해서, 다음 날 바로 경찰서에 사고 등록도 하고, 병원에도 진료를 받으러 가는 둥, 만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 미친넘이 한달 넘게 집요하게 연락하고 괴롭힐 때는, 경찰서에 가서 상담하고 신고도 했다...


2011년에는 대학에서 자꾸 월급이 밀려서 변호사까지 찾아가면서 대학을 상대로 한바탕 했고... 2012년에는 말도 안되는 집주인과 부동산의 요구에 또 법률 상담을 받고, 몇주에 걸친 치열한 싸움끝에 결국 이기고 이사 나오고... 2014년에도 빌려사는 집의 부동산 담당자가 집에 전기가 안들어 오고, 보일러가 고장났는데도 지 파티 간다고 내 연락을 생까고 해서, 결국 집주인 등 모두를 엮어서 문제를 말하고 그렇게 해결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2017년. 현재 대학의 내 라인 매니저와 또 마찰이 생겼다. 강의 시간표를 지랄같이 만들어놔서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냐고 물으니 계속 생까다가, 문제가 있으면 인사과에 이야기하라고 해서 했더니, 이제는 나를 크게 문제를 부풒리는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자기는 내 문제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걸 내가 몰라주고 자기한테 불만만 많은 것 같다고... 나를 이런 식으로 몰아넣은게 누군데... 기가 찬다. 더 기가 차는건, 또 혼자 싸워야 한다는 거다. 그냥 대화로 했어도 풀릴 걸, 그렇게 말 좀 하자고 할 때는 생까더니, 내가 못하겠다고 하니, 이런 식으로 망치로 사람을 친다. 돌아버리겠다. 정말 지랄같다.


영국 생활 13년차, 아니 어학연수까지 치면 15년차. 배운게 있다면, 한번 당하고 그냥 참고 넘어가면, 이것들은 내가 그냥 전형적인 얌전하고 거절할 줄 모르는 동양 호구인 줄 안다는거. 그리고 계속 건드리고 내 말도 안듣고, 마치 내가 영국 방식을 몰라서 그런다는 듯 취급하면, 그 때는 절대 다시는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게 강하게 맞받아쳐 줘야 한다는 거.


안그래도 그리 순하지는 않았는데, 여기와서 확실히 더 독해졌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야 한다.


이건 언어의 차이가 아니라고, 이건 문화의 차이도 아니라고. 이건 당신이 나라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그리고 난 그냥 그걸 참고 넘기지 않겠다고.


... 나라고 그런게 좋은 건 아니다. 강한 척 하고 있을 뿐이다. 개인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감정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사회생활에 있어서, 공적인 관계에 있어서 감정적으로 호소하면 '나는 약한 사람'이라는 걸 드러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너무 부정적인거 아니냐고? 내 경험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울며 호소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시니컬하게 웃으며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 말을 더 들어준다.

물론 어떤 이들은 힘들어 하는 내게 공감해주기도 하고,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하고, 괜찮냐고 물어도 봐주고, 우는 나를 다독여 주거나, 도리어 조심하라고 조언해주기도 하지만, 결국 맞서 싸우는 건 나 자신이다. 개인주의 사회인 영국에서 누군가 나를 대신해 나서줄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착각이다. 그들은 분명한 명분이 있거나 원칙이 우선인 사람들이다. 그러니 나도 똑같이 해줘야지.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당장이라도 그냥 주저앉아 울고 소리치며,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선 안된다. 겉으로 쿨하게. 그래, 알았다고, 그 대신 나도 이대로 있진 않겠다고, 그 온갖 원칙에 따라 내 권리를 주장하고 따지겠다고.


지친다. 정말. 학기는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 진이 빠지고 심지어 당장 때려치우고 옮기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가장 힘든 건 이 싸움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것이라는 것. 적은 많은데, 그들과 맞서 서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남편이라고 해도 해줄 수 있는건, 내말을 들어주고, 내 감정를 다독여주는 것 뿐. 결국 무기를 들고 서서 싸우는 건 나밖에 없다. 다음 주에 전투 계획이 벌써 두개나 잡혀있다. 정말 멋지다. 삶이 너무 다이나믹해서 소리를 지르고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고 싶은 심정이다.


....

제가 좀 미쳐있어요 지금. ㅎㅎㅎ

우리 독해집시다. 나는 당신에게 그 따위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이 아냐! 하고 다같이 크게 소리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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