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왔더니 금요일 오후에 사람 속을 뒤집는 이메일이 하나 와 있다. 그걸 수습하느라고 주말 내내 끙끙거리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별 소득이 없다.
머리 속을 비우려고 이것 저것 하다가도 다시 생각하면 울컥하고 속이 끓어올라서.. 같이 모아 써보는, 영국 대학에서 일하면서 정말 같이 일하기 싫은 유형들. (물론 일하고 있는 곳이 대학이라 그렇지, 나라를 떠나서, 다른 직장이라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
첫째. 연락 씹는 사람들.
대학의 강의/연구팀들은 보통 일정한 출퇴근 시간이 없다. 연구실/사무실이 따로 있어도, 일하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보통 이메일로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메일의 블랙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좀 이름있다 싶은 교수들. 물론 아무래도 오는 메일의 양이 많다 보니, 제대로 확인을 안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니더라도 나중에 답해야지, 해놓고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 갈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거의 매번 씹는다. 그리고 캠퍼스내에서 보기도 힘드니 그 사람과 엮인 일을 하려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정말 진땀을 뺀다. 그럴거면 아예 일도 같이 하고 싶지 않긴 한데... 이런 경우를 가만히 보면, 코스 담당자나 연구실 책임자, 처럼 이곳 저곳 얼켜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이메일의 양이 많다 보니, 그들도 점점 지쳐가서 그런 경우가 된 거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같이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속 터진다;;
둘째, 무임승차 하려는 사람들.
대학은 아무래도 개인차가 존재한다. 연구 프로젝트든, 논문이든, 개인이 알아서 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 꼭 별로 도와주는 건 없으면서 논문에 자기 이름 올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동료와 같이 학회지 논문을 썼는데... 이 사람이 학회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신입이기도 하고, 사람 좋고, 인상 좋은 '예스맨'인 것도 있고... 어쨌건, 막판 쯤 되어가서 마지막 탈고 미팅을 하자는데, 난데없이 그의 직속인 C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거 아닌가.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아무리 그래도 내 위에 사람인데... 조언을 해주기로 했고, 어쩌고 하며 이름을 넣어야 겠다는 거다. 어차피 그의 분량이 많았던 까닭에, 그가 그리 하겠다고 하니, 그래라, 하고서는 탈고 미팅에 가서... 한참 논문에 대해 이런 저런 피드백을 하고 있는데, C가 너무 조용하길래, "C, what do you think?" 하고 물으니... "Sorry, I haven't read the paper yet" 하는거다!!!! 그 말을 듣고서도 믿기지가 않아서, 순간 내가 일시정지 했다. 뭐 이런게 다 있나 싶어서...;; 그 후로도, 어디서 누가 학회지 쓴다 그러면 기웃기웃, 몇몇이 모여서 프로젝트 기획서 같은 거 쓰고 있으면 또 슬금슬금 끼어들어 자기도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으니 어쩌니... -_- 그런데 C 같은 사람을 여기서만 본게 아니란 게 문제지;;
셋째,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
솔직히 어디를 졸업했고, 어디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던 간에, 이미 그 과정을 통과해서 강의/연구진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로 이미 우리는 같은 라인에 서있는 것과 같다. 물론 연륜이 있고, 좀더 연구경험이 많은 교수들을 존경하고 본받으려 하는 건 사실이지만, 영국대학은 수직적이라기 보다, 좀더 수평적인 관계다. 특히 아무리 학과장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개인의 강의 스타일, 연구 활동 등에 대해 제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동료를 마치 자기 아랫사람, 혹은 학생들 대하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태도는 특히 논문을 같이 쓰거나, 아니면 내부 세미나 같은 곳에서 발표 등을 할 때 나타나는데.... 같은 동료로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정작 글 한 줄 안쓰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만 해대는 거다. 학생들 논문 심사할 때의 태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럼 어차피 공동으로 하는 거니 네가 쓰라고, 그러면 또 쓰기는 싫은지 꼬리를 내리면서, 아니, 이대로도 괜찮은 거 같긴 한데... 하면서 얼버무리기도 하고;; 혹은 특히 젊은 신입 교수들이 발표를 할 때, 대놓고 까내린다던지... 전에 내부 학회발표가 있었는데... 그 때 딱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꼭 이제 막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발표할 때마다 마치 이게 논문심사의 장이라도 되는 냥, 그냥 질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이건 왜 그렇게 안했느냐, 왜 저건 그랬느냐, 등등, 발표자가 아닌 청중들이 무색해할만큼의 지적질을 해댔고... 그러다가 본인의 발표를 앞두고 시간이 정체되자, "I only wanted to present my work in front of Professor X and Y, but they are not here. Don't worry about time, I don't have to present here" 하는 막말(!)을 하고서는 나가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고.... 이 사람의 경우 좀 기가 찰 만큼 극단을 달렸지만, 그래도 앞에 든 예에서 처럼 손끝 하나 안하면서 입으로만 뭐라 하는 사람, 생각보다 많다;;
넷째, 학생을 자기 뜻대로 이용하는 사람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그 의미가 좀 모호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건 학생의 일을 자기 것처럼 뺏거나 그런다는게 아니라 (물론 그런 어이없고 기가 차는 경우도 있긴 하다. 특히 박사과정 하는 학생들에게 학회지 논문을 쓰라 해놓고 자기 이름을 첫번째 글쓴이로 넣는다던지... 이런거야 다들 듣고는 뭐 저런 경우가 다 있나, 하고 피하는 정도이지만..)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 가장 곤란한 사람들은 학생들을 이용해서 다른 강의/연구진들을 공격(!)하는 경우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뭔가 문의를 하거나, 불만을 말하면, 자기는 학생들 말에 다 동의하고 이해하지만, 동료 교수 아무개가 안된다고 하니 어쩌겠느냐, 하면서 교묘하게 화살을 돌리는거다..... 같은 학부 내에 그러기로 소문난 V가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일들이 워낙 빈번해서 교수들 사이에서도 그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한데.. 하필 그 사람이 코스 담당자인거다. 그런데 뭘 해야 할 순간에는 아무 것도 안하다가, 학생들이 뭐라고 말이 나오면, 그제야 메일을 돌린다. 교수 아무개가 대답해 줄 거라고.. 그럼 뒤늦게 상황 이야기를 들은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지는거다. 진작에 말을 하던가, 그런데 안하다가 일이 커질 때가 되어서야 뭐라 말을 하고... 그래놓고서는 자기는 최선을 다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려 했을 뿐이라며, 당하는 상대방만 학생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나쁜 사람 만들고... 그런 태도 때문에 이미 동료들에게서 몇번인가 지적을 받은 것 같은데.... 그럼 자기가 뭘 잘못했냐며, 또 학생들 수업에 들어가서 다른 교수 험담을 한다;; 그래서 그 사람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은 간결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증거를 가능한 많이 남겨 놓으려 한다. 뭐라 꼬투리 잡힐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다섯째, 책임도 싫고 분쟁도 싫은 사람들.
때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친구 H처럼, 그냥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한 기류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특히 드러내기 보다 안으로 감추려 하는 영국인들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는데... 조금이라도 문제될 것이 있으면 침묵하거나 잠수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아닌데, 아니라고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받아들이기도 싫으니 그냥 대답하지 않길 택하는 거다. 이런 일 없이 그냥 만나면 정말 좋은 사람들일 경우가 많은데... 뭔가 논쟁거리가 생기거나 하면,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고, 말수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 성격 상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당장 해결을 해야 하는데, 대학에 나오지도 않고, 이메일 대답도 안하고, 그냥 잠시 사라져 버리면, 다른 상대방 입장에서는 정말 괴롭다. 특히 뭔가 조율을 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런 성격이면, 정말 대책이 없어진다. 이미 의견은 갈려서 팽팽히 맞서고 있고, 중간에서 조율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이 그렇게 사라져 버리면, 남겨진 두 입장에서는 서로 알아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보다, '그래라 그럼, 나도 모르겠다'라는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이러다가 편갈리는 것도 순간이다... 그럴 때 제 삼자의 입장에서 사건 돌아가는 걸 보고 있자면 참 답답하다. 한편으론 저 사람과 같은 팀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여섯째, 말뿐이고 행동이 없는 사람들.
지금까지 말한 타입들 중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분류의 사람들이다. 못하겠거나 하기 싫으면 아예 미리 거절을 하던가, 하겠다고 해놓고서 연락두절, 나중에 연락하면, 미안, 언제까지 해줄게, 그래놓고 또 안하고, 나중에는 일이 밀릴 때로 밀려서 결국 내가 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미안하다, 란 말보다 변명이나 핑계가 먼저인 사람들. 정.말. 싫.다. 이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싫어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게 예전 영국인 남자친구. 재밌고, 로맨틱하고, 좋아하는 것도 잘 맞고, 다 좋았는데, 이 한 부분이 계속 안맞다가 나중에 동거를 하면서 터져버렸다;;; 집안 일을 나눠서 하면서 내가 설거지 할테니 이 쓰레기 좀 밖에 내놔줘, 하면, 어, 알았어, 해놓고는 당장 다음 날 아침 쓰레기 수거 차가 오는데도 내놓지 않아서, 결국 내가 부랴부랴 나가서 내놓게 만들고, 전기세 수도세 등 나눠서 관리했는데, 자기가 관리하는 그런 것도 때로 늦고.. 부탁을 하면, 어, 해줄게, 해놓고는 해주지 않아서 부탁하는 입장이니 조심스레 다시 말을 하면, 미안, 해줄게, 해놓고 안하고, 나중에 다시 말하면, 도리어 내가 보챈다는 식으로 말을 받아서 사람 기분 참 더럽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는 사람 만날 때 말뿐인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겠다! 하고 다짐했고, 지금 남편에게 끌린 이유도 그거였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기억하고 행하는 그 태도. 하겠다고 한 건 꼭 지키는 그 다짐. 그래, 남편을 만났으니 한 시름 놓은 줄 알았지. 그런데, 일을 하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수두룩 하게 만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 해야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몇 배로 받는다. 이런 사람들과의 문제는 결국 한다, 안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믿을 수가 없다는데에 있다. 이 사람이 한다고 말을 했지만, 진짜 할까, 진짜 이 때까지 할까, 하는 의심이 계속해서 드는거다. 그러다 보니 안심할 수가 없어서 초조해지고, 마치 내 의심에 대한 확답이라도 주듯, 그런 사람들은 꼭 마감일을 지키지 않는다;; 마감일이 금요일이라 혹시, 혹시, 하면서 월요일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없고, 월요일에 메일을 보내면 쌩을 까다가 다시 수요일 쯤 메일을 보내면, 아, 미안, 무슨무슨 일때문에 바빴어, 이제 해줄게, 따위의 소릴 늘어놓고, 그렇게 그 주 금요일까지 해주면 양반이고, 보통 그 다음주에 다시 연락을 하고 전화를 하고, 난리를 쳐야 마지못한다는 듯 답을 준다. 제일 짜증나는건 지가 뭘 쓰거나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정보를 넘겨주면서 그 지랄을 떨 때.....
이런 타입은 처음에 쉽게 발견되지 않아서 꼭 시간을 두고 같이 일을 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서서히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위에서 말한 타입들은 사실 대부분 초반에 알 수 있기도 하고, 대학이라는 개인 활동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왠만하면 알아서 피해갈 수 있는, 이미 위치가 파악된 지뢰들 같은데.... 이 마지막 타입은 교묘히 숨겨져 있어서 처음에 딱 드러나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도 모르는 지뢰같아서... 정말... 지나가보지 않으면 그게 지뢰밭인지 모를 때도 많다. 나도 처음에 일하면서 이런 지뢰들을 몇번이나 밟아봤던가...;; 아니 사실 요즘에도 경험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머릿속에 지도 마냥 펼쳐놓고 표시를 해둔다. X과에 M 지뢰, Y과에 A, B 지뢰, 이런 식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다시는 같이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미리 마감일을 앞당겨 잡거나, 지뢰가 터질 때를 대비해서 그 부담이 최소가 되게 하고,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이미 터진 지뢰 너도 죽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달달 볶기 시작한다. 네가 내 연락이 귀찮아서라도 일을 하게 만들겠다, 하는 심정으로...;;
금요일에 날아온 이메일이 위에서 예를 든 몇가지 타입의 완벽 조화였다;;; '휴가 갔었니? 잘 쉬다왔으니 어디 밀린 스트레스 한번 받아봐'하는 식으로 누가 깔깔 거리며 지뢰 종합 선물 세트를 던져놓고 간 것 마냥.... 그런 의도였다면 정말 성공적이였다. 그 덕에 금요일 저녁 부터 일요일 오늘까지 정말 스트레스의 한계치를 왔다 갔다 했으니까... 뭐 그래도 끈질기게 쪼아댄 끝에 이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 시점에는 대충 일이 해결 되긴 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머릿속 지도에 거대한 엑스 표를 긋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X 대학의 A 교수!!! 정말 더이상 상대하지 않겠다!!!!!
..........
이제 또 월요일이네요 ㅎㅎㅎ;; 때로 정말 속 뒤집어 놓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의 속을 뒤집어놓는 일이 없도록 새삼 다짐하게 만드는 일요일입니다 허허;;
좋은 한 주 보내세요~~~
머리 속을 비우려고 이것 저것 하다가도 다시 생각하면 울컥하고 속이 끓어올라서.. 같이 모아 써보는, 영국 대학에서 일하면서 정말 같이 일하기 싫은 유형들. (물론 일하고 있는 곳이 대학이라 그렇지, 나라를 떠나서, 다른 직장이라도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
첫째. 연락 씹는 사람들.
대학의 강의/연구팀들은 보통 일정한 출퇴근 시간이 없다. 연구실/사무실이 따로 있어도, 일하는 시간이 제각각이라 보통 이메일로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메일의 블랙홀 같은 사람들이 있다. 특히 좀 이름있다 싶은 교수들. 물론 아무래도 오는 메일의 양이 많다 보니, 제대로 확인을 안하는 사람들도 많고, 아니더라도 나중에 답해야지, 해놓고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 갈 수 있는데.. 그게 아니라 거의 매번 씹는다. 그리고 캠퍼스내에서 보기도 힘드니 그 사람과 엮인 일을 하려면,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정말 진땀을 뺀다. 그럴거면 아예 일도 같이 하고 싶지 않긴 한데... 이런 경우를 가만히 보면, 코스 담당자나 연구실 책임자, 처럼 이곳 저곳 얼켜서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래도 이메일의 양이 많다 보니, 그들도 점점 지쳐가서 그런 경우가 된 거 아닌가, 싶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같이 일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속 터진다;;
둘째, 무임승차 하려는 사람들.
대학은 아무래도 개인차가 존재한다. 연구 프로젝트든, 논문이든, 개인이 알아서 해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때 꼭 별로 도와주는 건 없으면서 논문에 자기 이름 올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동료와 같이 학회지 논문을 썼는데... 이 사람이 학회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신입이기도 하고, 사람 좋고, 인상 좋은 '예스맨'인 것도 있고... 어쨌건, 막판 쯤 되어가서 마지막 탈고 미팅을 하자는데, 난데없이 그의 직속인 C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거 아닌가.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아무리 그래도 내 위에 사람인데... 조언을 해주기로 했고, 어쩌고 하며 이름을 넣어야 겠다는 거다. 어차피 그의 분량이 많았던 까닭에, 그가 그리 하겠다고 하니, 그래라, 하고서는 탈고 미팅에 가서... 한참 논문에 대해 이런 저런 피드백을 하고 있는데, C가 너무 조용하길래, "C, what do you think?" 하고 물으니... "Sorry, I haven't read the paper yet" 하는거다!!!! 그 말을 듣고서도 믿기지가 않아서, 순간 내가 일시정지 했다. 뭐 이런게 다 있나 싶어서...;; 그 후로도, 어디서 누가 학회지 쓴다 그러면 기웃기웃, 몇몇이 모여서 프로젝트 기획서 같은 거 쓰고 있으면 또 슬금슬금 끼어들어 자기도 그런 쪽으로 관심이 많으니 어쩌니... -_- 그런데 C 같은 사람을 여기서만 본게 아니란 게 문제지;;
셋째,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
솔직히 어디를 졸업했고, 어디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던 간에, 이미 그 과정을 통과해서 강의/연구진에 들어왔다는 것 자체로 이미 우리는 같은 라인에 서있는 것과 같다. 물론 연륜이 있고, 좀더 연구경험이 많은 교수들을 존경하고 본받으려 하는 건 사실이지만, 영국대학은 수직적이라기 보다, 좀더 수평적인 관계다. 특히 아무리 학과장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개인의 강의 스타일, 연구 활동 등에 대해 제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동료를 마치 자기 아랫사람, 혹은 학생들 대하듯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태도는 특히 논문을 같이 쓰거나, 아니면 내부 세미나 같은 곳에서 발표 등을 할 때 나타나는데.... 같은 동료로서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정작 글 한 줄 안쓰면서, 이렇다 저렇다 평가만 해대는 거다. 학생들 논문 심사할 때의 태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럼 어차피 공동으로 하는 거니 네가 쓰라고, 그러면 또 쓰기는 싫은지 꼬리를 내리면서, 아니, 이대로도 괜찮은 거 같긴 한데... 하면서 얼버무리기도 하고;; 혹은 특히 젊은 신입 교수들이 발표를 할 때, 대놓고 까내린다던지... 전에 내부 학회발표가 있었는데... 그 때 딱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 사람은 꼭 이제 막 박사과정을 마친 사람들이 발표할 때마다 마치 이게 논문심사의 장이라도 되는 냥, 그냥 질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이건 왜 그렇게 안했느냐, 왜 저건 그랬느냐, 등등, 발표자가 아닌 청중들이 무색해할만큼의 지적질을 해댔고... 그러다가 본인의 발표를 앞두고 시간이 정체되자, "I only wanted to present my work in front of Professor X and Y, but they are not here. Don't worry about time, I don't have to present here" 하는 막말(!)을 하고서는 나가버렸다;; 남은 사람들은 어이없어 했고.... 이 사람의 경우 좀 기가 찰 만큼 극단을 달렸지만, 그래도 앞에 든 예에서 처럼 손끝 하나 안하면서 입으로만 뭐라 하는 사람, 생각보다 많다;;
넷째, 학생을 자기 뜻대로 이용하는 사람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그 의미가 좀 모호할 수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건 학생의 일을 자기 것처럼 뺏거나 그런다는게 아니라 (물론 그런 어이없고 기가 차는 경우도 있긴 하다. 특히 박사과정 하는 학생들에게 학회지 논문을 쓰라 해놓고 자기 이름을 첫번째 글쓴이로 넣는다던지... 이런거야 다들 듣고는 뭐 저런 경우가 다 있나, 하고 피하는 정도이지만..)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 가장 곤란한 사람들은 학생들을 이용해서 다른 강의/연구진들을 공격(!)하는 경우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뭔가 문의를 하거나, 불만을 말하면, 자기는 학생들 말에 다 동의하고 이해하지만, 동료 교수 아무개가 안된다고 하니 어쩌겠느냐, 하면서 교묘하게 화살을 돌리는거다..... 같은 학부 내에 그러기로 소문난 V가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일들이 워낙 빈번해서 교수들 사이에서도 그 사람을 기피하는 경향이 강한데.. 하필 그 사람이 코스 담당자인거다. 그런데 뭘 해야 할 순간에는 아무 것도 안하다가, 학생들이 뭐라고 말이 나오면, 그제야 메일을 돌린다. 교수 아무개가 대답해 줄 거라고.. 그럼 뒤늦게 상황 이야기를 들은 입장에서는 속이 뒤집어지는거다. 진작에 말을 하던가, 그런데 안하다가 일이 커질 때가 되어서야 뭐라 말을 하고... 그래놓고서는 자기는 최선을 다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려 했을 뿐이라며, 당하는 상대방만 학생 생각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 나쁜 사람 만들고... 그런 태도 때문에 이미 동료들에게서 몇번인가 지적을 받은 것 같은데.... 그럼 자기가 뭘 잘못했냐며, 또 학생들 수업에 들어가서 다른 교수 험담을 한다;; 그래서 그 사람과 관련된 일이 생기면, 모든 것은 간결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증거를 가능한 많이 남겨 놓으려 한다. 뭐라 꼬투리 잡힐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다섯째, 책임도 싫고 분쟁도 싫은 사람들.
때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친구 H처럼, 그냥 사람들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불편한 기류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 특히 드러내기 보다 안으로 감추려 하는 영국인들이라 더 그런지 모르겠는데... 조금이라도 문제될 것이 있으면 침묵하거나 잠수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아닌데, 아니라고 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받아들이기도 싫으니 그냥 대답하지 않길 택하는 거다. 이런 일 없이 그냥 만나면 정말 좋은 사람들일 경우가 많은데... 뭔가 논쟁거리가 생기거나 하면,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고, 말수도 급격히 줄어든다. 그래, 성격 상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당장 해결을 해야 하는데, 대학에 나오지도 않고, 이메일 대답도 안하고, 그냥 잠시 사라져 버리면, 다른 상대방 입장에서는 정말 괴롭다. 특히 뭔가 조율을 해야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런 성격이면, 정말 대책이 없어진다. 이미 의견은 갈려서 팽팽히 맞서고 있고, 중간에서 조율을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이 그렇게 사라져 버리면, 남겨진 두 입장에서는 서로 알아서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보다, '그래라 그럼, 나도 모르겠다'라는 태도를 보이게 되는데... 이러다가 편갈리는 것도 순간이다... 그럴 때 제 삼자의 입장에서 사건 돌아가는 걸 보고 있자면 참 답답하다. 한편으론 저 사람과 같은 팀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여섯째, 말뿐이고 행동이 없는 사람들.
지금까지 말한 타입들 중 개인적으로 제일 싫어하는 분류의 사람들이다. 못하겠거나 하기 싫으면 아예 미리 거절을 하던가, 하겠다고 해놓고서 연락두절, 나중에 연락하면, 미안, 언제까지 해줄게, 그래놓고 또 안하고, 나중에는 일이 밀릴 때로 밀려서 결국 내가 하게 만들고, 그러면서 미안하다, 란 말보다 변명이나 핑계가 먼저인 사람들. 정.말. 싫.다. 이런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싫어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게 예전 영국인 남자친구. 재밌고, 로맨틱하고, 좋아하는 것도 잘 맞고, 다 좋았는데, 이 한 부분이 계속 안맞다가 나중에 동거를 하면서 터져버렸다;;; 집안 일을 나눠서 하면서 내가 설거지 할테니 이 쓰레기 좀 밖에 내놔줘, 하면, 어, 알았어, 해놓고는 당장 다음 날 아침 쓰레기 수거 차가 오는데도 내놓지 않아서, 결국 내가 부랴부랴 나가서 내놓게 만들고, 전기세 수도세 등 나눠서 관리했는데, 자기가 관리하는 그런 것도 때로 늦고.. 부탁을 하면, 어, 해줄게, 해놓고는 해주지 않아서 부탁하는 입장이니 조심스레 다시 말을 하면, 미안, 해줄게, 해놓고 안하고, 나중에 다시 말하면, 도리어 내가 보챈다는 식으로 말을 받아서 사람 기분 참 더럽게 만들고.... 그래서, 다시는 사람 만날 때 말뿐인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겠다! 하고 다짐했고, 지금 남편에게 끌린 이유도 그거였다. 사소한 약속이라도 기억하고 행하는 그 태도. 하겠다고 한 건 꼭 지키는 그 다짐. 그래, 남편을 만났으니 한 시름 놓은 줄 알았지. 그런데, 일을 하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수두룩 하게 만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일 해야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몇 배로 받는다. 이런 사람들과의 문제는 결국 한다, 안한다의 문제가 아니라, 믿을 수가 없다는데에 있다. 이 사람이 한다고 말을 했지만, 진짜 할까, 진짜 이 때까지 할까, 하는 의심이 계속해서 드는거다. 그러다 보니 안심할 수가 없어서 초조해지고, 마치 내 의심에 대한 확답이라도 주듯, 그런 사람들은 꼭 마감일을 지키지 않는다;; 마감일이 금요일이라 혹시, 혹시, 하면서 월요일까지 기다려도 연락이 없고, 월요일에 메일을 보내면 쌩을 까다가 다시 수요일 쯤 메일을 보내면, 아, 미안, 무슨무슨 일때문에 바빴어, 이제 해줄게, 따위의 소릴 늘어놓고, 그렇게 그 주 금요일까지 해주면 양반이고, 보통 그 다음주에 다시 연락을 하고 전화를 하고, 난리를 쳐야 마지못한다는 듯 답을 준다. 제일 짜증나는건 지가 뭘 쓰거나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미 있는 정보를 넘겨주면서 그 지랄을 떨 때.....
이런 타입은 처음에 쉽게 발견되지 않아서 꼭 시간을 두고 같이 일을 해봐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서서히 그 사람에 대한 신뢰를 무너트리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다. 위에서 말한 타입들은 사실 대부분 초반에 알 수 있기도 하고, 대학이라는 개인 활동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왠만하면 알아서 피해갈 수 있는, 이미 위치가 파악된 지뢰들 같은데.... 이 마지막 타입은 교묘히 숨겨져 있어서 처음에 딱 드러나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지도 모르는 지뢰같아서... 정말... 지나가보지 않으면 그게 지뢰밭인지 모를 때도 많다. 나도 처음에 일하면서 이런 지뢰들을 몇번이나 밟아봤던가...;; 아니 사실 요즘에도 경험한다. 그리고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머릿속에 지도 마냥 펼쳐놓고 표시를 해둔다. X과에 M 지뢰, Y과에 A, B 지뢰, 이런 식으로... 그리고 가능하면 다시는 같이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미리 마감일을 앞당겨 잡거나, 지뢰가 터질 때를 대비해서 그 부담이 최소가 되게 하고, 이것도 저것도 안되면, 이미 터진 지뢰 너도 죽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달달 볶기 시작한다. 네가 내 연락이 귀찮아서라도 일을 하게 만들겠다, 하는 심정으로...;;
금요일에 날아온 이메일이 위에서 예를 든 몇가지 타입의 완벽 조화였다;;; '휴가 갔었니? 잘 쉬다왔으니 어디 밀린 스트레스 한번 받아봐'하는 식으로 누가 깔깔 거리며 지뢰 종합 선물 세트를 던져놓고 간 것 마냥.... 그런 의도였다면 정말 성공적이였다. 그 덕에 금요일 저녁 부터 일요일 오늘까지 정말 스트레스의 한계치를 왔다 갔다 했으니까... 뭐 그래도 끈질기게 쪼아댄 끝에 이글을 마무리 하는 지금 시점에는 대충 일이 해결 되긴 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머릿속 지도에 거대한 엑스 표를 긋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X 대학의 A 교수!!! 정말 더이상 상대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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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월요일이네요 ㅎㅎㅎ;; 때로 정말 속 뒤집어 놓는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누군가의 속을 뒤집어놓는 일이 없도록 새삼 다짐하게 만드는 일요일입니다 허허;;
좋은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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