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The Girl with Seven Names] 북한 금수저의 인생 역전

민토리_blog 2016. 7. 22. 04:23

이 책처럼 나를 복잡한 마음상태로 끌고갔던 책은 이제껏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실 혼란스럽다. 도대체 왜 그런지 몰라 일단 쓰고 보자, 라는 마음으로 앉아 쓰게 되는 리뷰.. 


도서관에 갔다가 진열대에 놓여 있는 걸 보고, 정확히는 앞에 빡 박혀 있는 동양 여자의 사진과, 'Escape from North Korea'란 말때문에 관심이 갔다. 사실 자서전 비슷한건 대체로 피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관심이 갔다. 스스로 북한에 대한 무지함을 인정하고 있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고, 그리고 뭐랄까.. 책 안에서의 그녀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고통을 견뎌온 탈출자들과 다른 모습으로, 예쁜 모습으로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못할 말부터 해보자. 책 소개에는, "As a child Heyonseo Lee was one of millions indoctrinated in North Korea by the world's most secretive and brutal regime. And yet, having survived the chaos, starvation and repression of the Great Famine, she dared to escape to China in 1997, aged just seventeen"라고 적혀있지만, 이 소개는, 정확히 마지막 문장은 잘못되었다. 


그녀가 살고 있었던 북쪽 지방 혜산, 그리고 살았던 적이 있는 혜산의 남쪽 도시 함흥이 기근으로 지독히 시달린 것은 맞지만, 그리고 그녀가 그런 생생한 모습들을 직접 목격하긴 했지만, 적어도 그녀의 글에 의하면 그녀는 기근으로 굶주림에 시달린 적이 없다. 그녀는 소위 북한내의 계급 제도인 승분에서 높은 쪽에 위치해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과 가족들은 중국과의 불법 무역으로 짭짤한 소득을 올리고 있었기에, 그녀는 북한을 나오기 전까지도 쌀밥을 먹었고, 때로 고기도 먹었다. 그리고 그녀는 '탈출'한 게 아니라, 소녀의 치기어린 호기심으로 잠시 '외출'했던 거였다. 쉽게 돌아갈 수 없을 거란걸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지.. 게다가 국경을 넘을 때에도 국경수비대의 눈을 피하거나 총탄을 피할 필요도 없이, 그녀 가족들과 친분이 있었던 경비대의 보호아래 넘어갔다 (이건 나중에 그녀의 동생과 어머니가 넘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땅에 도착해 많은 여자들이 중국인의 신부나 정부, 첩, 심지어 창녀로 팔려넘어갈 때, 그녀는 그녀 어머니의 무역 파트너를 찾아갔고, 그 무역 파트너는 그녀를 직접 택시에 태워 산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었다. 그 곳에서도 그녀의 부유한 삼촌과 숙모 덕에 그녀는 새로운 옷을 입고, 외식을 하고, 노래방을 가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한달 후쯤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북한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 그녀는 꽤 괜찮은 중국에서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후의 행적을 읽으면서도...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의 재벌집 자식한테 자신이 참가하지도 않았던 민주화 항쟁에 대해 듣고 있는 기분이였다... 그녀가 그때 잠시의 호기심으로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아니, 그렇게 한달이나 여유롭게 즐기며 쉬지 않았다면, 그녀는 무난히 북한에서 살았을 것이고, 그녀의 높은 계급으로 대학을 마치고, 안정된 직장을 가지고, 그녀 가족들의 부수입으로 기근이 일어나든 뭐가 일어나든 그녀는 북한에서 풍족하게 살았을 거다. 그녀가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배가 고프다고 간식이라도 달라고 요구했을 때, 그녀 친구가 부끄러워 하며 먹을 게 없다고 거절하다가 결국 옥수수 죽같은 걸 내보이자, '우리집에 와서는 늘 간식까지 챙겨먹으면서 왜 나한테는 아무 것도 안주지, 왜 밥을 놔두고 저런 걸 먹지'라고 생각했다는 것처럼..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글에서 보여지는 북한 사회의 모습들보다, 난 그녀의 삶이 더 놀라웠다. 아. 북한이라도 이렇게 금수저 물고 태어나면 저렇게 살수 있구나. 싶어서... 다들 똑같은 머리모양, 똑같은 유니폼 입고 학교 가는데, 혼자 머리에 펌하고 분홍 코트와 부츠를 신고 등교해도, 이미 뇌물을 받아먹은 학교 선생들은 못본척 하는구나. 그저 얌전히 김씨 일가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면, 집에 있는 텔레비전으로 중국 드라마도 보고, 심지어 서태지나 HOT 들 노래나 공연도 보면서 살 수 있었구나... 학교에서 강제로 시킨다는 교육이나 노동도 뇌물 주고 안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거였구나... 돈만 주면 사망진단서도 바꿀 수 있고, 다 할 수 있구나.. 이거 공산국가가 아니라 제대로 퇴폐한 자본주의의 극치인데? .... 


물론 말할 것 없이, 그녀는 강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 사랑받고 예쁨받고, 부족한 것없이 자란 턱에 자존감도 높고, 자신감도 있고, 평양에서 배우하는 고모의 피를 이어받아 예쁘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녀말대로 조상들이 보호하고 있는지, 그녀의 강하고 영리한 판단과 추진력도 한몫하지만, 확실히 운이 좋다. 좋았다. 그리고 재물운은 타고난 듯 하다. 


대부분의 북한 탈출자들이 당장 머물 곳도 없이 일할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고, 제대로 언어를 배우지도 못해 바로 들통나거나 신고당해 감옥에 갇히거나 북한으로 되돌려지는 것과 반대로, 그녀는 부유한 친척집에서 몇년이고 머물며 생계고민없이 중국어를 능숙하게 익힐 수 있었다. 중국에서 다들 가짜 아이디를 만드는 동안, 어쩌다 아이스크림 먹다가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며 접근한 남자에게 몇마디 던지고 연락처 준걸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중국사람의 진짜 아이디도 얻을 수 있었고, 갱들에게 잡혀 보통 험한 꼴 다 보고 바로 밑바닥으로 던져지는 대신 부유한 삼촌 덕에 돈을 내고 아무런 피해없이 풀려나기도 했다. 물론 본인의 능력으로 새로 생긴 아이디를 가지고,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 식당에서 일하던 것보다 4배나 되는 돈도 벌긴 했지만, 거기서 만나게 된 한국 남자가 알고보니 강남출신 부동산 재벌 아들이다;;; 본인이 인정하고 싶어하든 하지 않든, 그 돈줄로 사실 어머니와 동생을 라오스에서 꺼내 오는데 지대한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거기에 난데없이 나타난 호주 남자에게 아무런 조건, 대가없이 몇백 달러가 넘는 돈을 받아 어머니와 동생외에 다른 3명의 북한 탈출자들을 돕기도 한다. 이쯤되면 솔직히 실화라기 보다 무슨 영화같다;; 


그녀는 그런 인생의 우연과 사건들로 한국어, 중국어, 영어도 할 수 있게 되고, 특유의 자신감과 강한 모습으로 북한사람들의 인권을 돕는 봉사단체 활동에도 참여하고, 그러다가 자기보다 여러살 어린 마음 넓고 이해심 많은 미국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 그들은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북한의 인권 문제에 대해 이런 저런 강연들을 한것이 인연이 되어 UN에서도 발표를 하고, 호주의 티비에서 라오스의 영웅같던 그 사람과의 만남도 주선해줘서 이제는 은혜도 갚고... 해피엔딩이다. 진심으로... 


'북한'이라는 나라의 특유성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거대한 영향. 사람을 믿을 수도 없고, 다른 이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지극히 사람을 이기적인 바닥으로 끌고 가게 하는 그 소름끼침. 그리고 언제나 극단의 선택을 하게 몰고가는 그 잔인함.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겪은 고통, 특히 그녀의 가족들이 북한을 나와 겪은 고통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다.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건지. 왜 가족들과 함께 있기 위해서 또 다른 것들에 대한 희생이 강요되는건지..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김씨 일가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하나 기본적인 인권조차 누릴 수 없이 그렇게 평생의 삶을 강요당하는지... 왜 내가 선택한 적도 없는 나라에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그런 인생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는건지... 진심으로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고, 북한사회나 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기회를 준 건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도 독재시대 때 말 한마디 잘못하면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반병신되어 돌아오는 경우들도 빈번했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정부 혹은 힘있는 이들의 입김으로 나라가 좌지우지 되고, 정작 생활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어디가서 뭐라 탈출구도 찾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갈라진 분단 국가의 국민들을 짓밟고 고문한게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그리고 그게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다시 절망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이 드는거다. 그녀가 그런 금수저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를 심문했던 안기부 사람이 말했던 것처럼, 그녀가 상위 1%에 속하는 아주 드문 케이스로 상대적으로 무난하고 평탄하게 자유를 손에 넣었기에, 지금 부러지지 않은 정신으로 다른 이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는게 아닌가... 가장 밑바닥에서 추위와 허기에 시달리고, 기본적인 육체의 자유까지 빼앗기고, 극단의 삶에 서있다가 온 이들에게 도대체 '자유'가 무엇인지, '인권'이 무엇인지 생각할 틈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렇기에.. 어쩌면 그녀의 경우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으레 자기가 경험하고 생각할 수 있는 선에 있는 것들에게 더 관심을 보이니까... 깨끗한 물도 없어 바닥의 흙탕물이라도 마시고, 먹을게 없어서 흙파먹고 살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도 현실감이 없어서 그들의 고통이 와닿지도 않지만, 돈이 없어서 급식도 못먹고, 겨울 코트가 없어서 추워 떨었다는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공감을 하는 것처럼... 


그래서, 이토록 평범하고 예쁜, 남부럽지 않게 자란 것 같은, 3개국어를 하고, 수준도 있고 지식도 있고 교양도있어 보이는 이 동양 아가씨가 던지는 '북한탈출기'가 북한 외부의, 특히 외국인들 눈에는 더 파장있게 다가가는게 아닐까... 


기본목적인 북한의 인권과 실태를 알림에는 그녀의 존재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도, 그녀는 아주 멋지고 강한 사람이라는 것도 인정하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마음 한쪽이 어두워진다. 그렇다면.. 정말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사람이 기대할 수 있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싶어서. 그녀같은 상위 1%가 아닌 나머지 99%들이 선택할 수 있는건... 지금도 그렇듯, 어딘가 어두운 뒷골목이거나, 숨어지내는 그림자 같은 삶이거나, 어딘가 감옥에서의 무한정한 기다림, 그것도 아니면 그저 죽음인가. .. 


....

덧. 책이 작가분의 실화를 다루고 있는 거기 때문에 글을 쓰기가 꽤나 조심스러웠습니다. 

혹시라도 오해의 여지가 있을까봐 덧붙이자면, 작가분이 일반의 북한사람들보다 나은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겪어온 건 사실 별거 아니다, 그것보다 더한 사람도 있었다, 라는 말을 하려는게 절대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외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혼자 남게된 고립과 외로움, 끊임없이 쫒기고 스스로를 숨겨야 하는 불안감과 극단의 상황. 법의 통제가 닿지도 않고, 설사 닿는다 하더라도 내 편이 아닌 법 앞에서 일개 개인으로 그저 견뎌야 하는 무력감, 이 모든게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은, 내가 속해진 나라에서 직접적으로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이 끔찍하고, 저 역시 더불어 비참한 마음까지 듭니다. 동시에 비참해지지 않고 재치와 용기로 삶을 이끌어내고, 가족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며 열심히 싸우고 달려온 모습에서 감동을 받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감동적이다'라고만 리뷰를 쓸 수 없었던 까닭은, 진심으로 마음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작가분께서도 말했듯, 모든 인민에게 평등해야만 하는 공산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나라에서, 실제로 자본주의보다 더 심한 불평등이 행해지고 있고, 당신이 역경에 처했을 때마다 당신을 구원해줬던 돈의 존재에 대해.. 그 돈이 없어 지금도 '자유'보다는 그저 먹고 입을 것이 급해서 자신의 자유를 팔아넘기며 살아남고 있을, 혹은 죽어가고 있을 사람들이 생각나서... 그리고 당신의 상황이 그런 이들의 상황을 대조적으로 더 부각되게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탈출하다가 고생하고, 붙잡히고, 고문받고, 그런 탈출자들의 수기보다 당신의 글이 저를 더 고민하게 만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진심으로 당신이 이제는 좀더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런 작은 변화들이 북한내에도 실제로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