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The Husband's Secret] '엄마'라서 읽기 힘들었던 이야기

민토리_blog 2016. 4. 19. 19:39

간만에 해가 쨍하게 났었다. 원래는 다른 아이 엄마 둘과 아이들을 데리고 만날 계획이였는데 그들의 첫째 아이들이 감기에 걸려 심하게 아픈 바람에 약속이 그 전날밤에 취소됬었다. 그래도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빨래를 돌리고, 빨래도 널고 아이들도 놀게 할겸 정원으로 나갔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줄넘기 줄을 잡고 기차놀이를 했다가.. 아이들이 놀고, 해도 쨍하니 왠지 기분도 좋아지는 그런 오전. 왠지 뭐든 하고 싶은 생각에 창고를 열어 정원도구들을 꺼내다가 정원 곳곳에 쌓여 있던 마른 잎들을 모아 담기로 했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는 맨손으로 잎들을 잡아다 넣고..  그래, 거기까진 좋았었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정원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연못으로 가기 전까진.. 


정원에 있는 연못은 방치된지 오래 되어 낙엽이며 수풀들로 거의 늪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첫째 아이가 긴 막대기를 주워다가 연못에 막을 형성하고 있는 낙엽들을 건져 내는 걸 보고, 처음에는 위험하다고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가, 문득 아이가 물고기를 키우자고 졸랐던 게 생각나서 (그리고 쨍한 햇볕으로 인해 묘하게 들뜬 기분까지 더불어) 연못 재활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거다. 내가 본격적으로 낙엽의 막들을 걷어내자 밑에 있던 물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첫째는 신이 나서 물고기와 개구리도 키우자며 떠들어댔다. 그렇게 연못이 반쯤 제 모습을 찾아갈 무렵, 옆시야로 둘째 아이가 연못의 반대편으로 돌아가는게 보이고, 어느 순간 아이가 균형을 잃는가 싶더니 마치 앞구르기를 하는 것처럼 바로 물 속으로 아이 몸이 빠졌다..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듯 그걸 보면서 머리가 잠시 멍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 했다. 그와는 반대로 내 다리는 움직였고, 아이 자켓을 잡아 끌어 눈코입으로 들어간 물때문에 제대로 숨도 뱉아내지 못하는 아이를 그대로 끌어안고 집으로 달렸다. 첫째 아이에게 얼른 따라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이층의 욕조까지 단숨에 달려 올라가 아이를 넣고 샤워기를 틀어 아이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첫째 아이에게 얼른 신발 벗고 올라 오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쏟아지는 물세례에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꺽꺽거리는 아이를 씻겨내고, 이까지 다 닦이고 타월로 감싸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제야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걸 알았다. 그리고 이내 몸이 떨려왔다... 그렇게 뒤늦게야 아이가 괜찮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둘째는 금새 차를 가지고 놀고 있는 첫째 아이 곁에 가서 놀기 시작했고, 이따금 내게 와서, '물, 떨어져, 아파' 라는 말을 반복하곤 했다. 


............

솔직히 나란 인간은 스스로의 건강상태나 고통에 대해 대체로 무난한 태도를 유지하는 편인데, 아이들이 생긴 이후로는 마치 마음에 시한폭탄을 하나 달고 있는 듯 가끔은 일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에게 생길/생긴 고통이나 상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괴롭고 고통스럽다. 첫째가 정원에 있는 블랙베리 (복분자?)를 따다가 블랙베리 가시덤불 속에 빠졌을 때라든지, 둘째가 태어난지 2주만에 고열에 시달려 구급차에서 기저귀만 찬 아이를 안고 있었을 때라든지, 그 작은 아기 몸에서 피를 뽑아대고 온갖 주사바늘과 줄들을 연결했을 때 소리지르고 울어대는 아이를 그저 안고 '괜찮다, 괜찮다'라고 속삭여줄 때라든지, 둘째가 넘어졌다 일어났을 때 입에서 흐르는 피를 봤을 때라든지.. 그런 순간들은 마치 각인처럼 내 기억속에 똑똑히 남아있다. 그리고 그런 기억을 재생할 때마다 다시 아프고 눈물이 핑돈다. 이건 뭐랄까.. 유난떠는 엄마라기 보다, 부모라면 크던 적던 다들 안고 살아가는 기본옵션이 아닐까. 세상에 없던 생명을 만들어 내긴 했지만, 그 생명에 대한 온전한 책임과 절대적인 두려움도 함께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 


그런 의미로 이 책은 읽으면서 내내 그리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리안 모리아티, 그녀는 그녀 특유의 필체로 참 현실적이고, 현실적이라서 도리어 재밌고 가볍게 읽을 수 있게 글을 썼고, 매번 느끼지만 여자들의 감정을 정말 공감가게 썼기 때문에 어쩌면 그냥 재밌고 흥미롭고 스릴도 있게 글을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엄마'라서 때로 읽기 힘들었다. 


요약. 

1. 공교롭게도 아이가 연못에 빠진 그날 저녁에 이 책을 다 읽었다. 마지막을 읽으면서, 그래도 아이가 연못에 빠진 정도로 그쳤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드렸고, 반면에 아이들이 아직 2-4살도 안된 어린 아이들이라는 사실에.. 아직도 아이들이 다칠 지 모르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이 남아있는지를 생각하며 다시 기분이 가라앉았다.. ;;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아직 살아있음에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정말 '건강한게 최고의 효도다'라는 걸 부모가 되어서야 실감한다.. 물론 내가 그랬듯 내 아이들은 그런 생각안하겠지;; 


3. 정말 혹시라도 만약에라도 책에서처럼 부모의 죄를 아이가 갚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정말 두려워진다. 진작에 착하게 살걸, 싶으면서.. 아니, 이제부터라도 착하게 살아야지, 하는 다짐도 해가면서.. 


4. 때로 생각하면, 자식이였던 나는 꽤나 이기적이였는데, 부모가 되니 순식간에 자식을 위해 뭐든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이렇게 우리는 균형을 맞추는 건가.. 


5. 이 리뷰는 개인적인 경험에 맞물리는 바람에 상당히 편파적이라 할 수 있다. 책의 이야기 자체만으로 보자면, 흥미롭다. 역시나 세 여자가 주인공이고, 그들의 내면 갈등이 참 적나라하고 공감가게 드러나있다.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통쾌하기 까지 하다 (Tess와 관련된 부분) 중년 부부들의 갈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