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책읽기

[What Alice forgot] 엄마인 여자와 엄마가 아닌 여자

민토리_blog 2016. 5. 3. 06:43

리안 모리아티 (Liane Moriaty)라는 작가의 세번째 책을 다 읽었다. 전에 말했듯 반디앤루니스 라는 곳을 새로 알게 되어 북리뷰를 간간히 쓰고 있는데, 거기서 제공하는 무료 체험판으로 먼저 이 책을 읽어보고,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 가서 찾았지만 이 책은 없어 일단 먼저 동일 작가의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 - Big Little Lies', '허즈번드 시크릿 - The husband's secret'을 읽은 후 결국 읽게 된 책이다. 이 작가는 아주 사소한 여자 - 정확히는 어린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의 세계를 아주 세세하게 묘사하는 동시에 크게 무거운 주제를 하나씩 끌고 간다. 사소한 거짓말에서는 가정폭력을, 남편의 비밀에서는 살해당한 자식과 남겨진 부모 이야기를, 그리고 이 책에서는 불임과 이혼 등을 다룬다. 


일단 스토리 설정 자체는 아주 흥미롭다. 주인공인 앨리스가 운동 도중 머리를 부딪쳐 지난 10년간의 기억을 모두 다 잃는다. 그녀가 기억하는 자신은 29살이고, 첫 아이를 임신했고,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남편과 무척 행복하고, 오래된 집을 사서 남편과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보수공사를 한다고 바쁘다. 그리고 곧 깨닫는다. 그녀는 지금 39살이고, 세 아이의 엄마이고, 남편과는 이혼소송 중이고, 보수 중이던 집은 완벽하게 끝나있고 수영장까지 딸려있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관계는 다 달라져 있다. 책에 대한 기본 정보는 이정도이고, 처음에는 읽으면서 앞의 두 책보다 지루한 감이 있어 살짝 흥미를 잃을 뻔 했지만, 막상 끝으로 오니 머리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 쓰게 되는 리뷰... 


1. 엄마인 여자와 엄마가 아닌 여자 


친구 P는 나보다 한살 많지만, 내가 첫째를 낳고 제대로 잠도 못잔체 우울증의 늪에 빠져있을 때 결혼을 했다. 그녀는 아주 밝고 들뜬 목소리로 그녀의 신혼생활을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내가 생각났다는듯, "How are you doing darling? How is the baby?"하고 물었고, 그녀의 들뜬 목소리를 망치기 싫어 내가 그저 "It's all fine. Just tired" 하고 말하면 금새 안됐다는듯 동정심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 Oh, poor you"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신혼생활을 좀더 즐기고 싶기 때문에 아이는 아직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벌써 3년남짓 흐른 지금.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그녀는 1년째 임신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녀는 더이상 들뜬 목소리로 그녀의 결혼생활을 이야기 하지 않고, 때로 날선 목소리로, "Seriously I don't know what's wrong with us!"하고 말했고, 목소리를 낮추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이제 내 몫이 되었다...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도, 우리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는게 문제지, 임신을 하는 것 자체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을거라고, 아주 당연하게 믿고 산다. 그러다가 막상 임신을 하자고 결정하고 그렇게 결정한 그 다음 달, 또 그 다음달에도 생리를 경험하면 가슴 속에서 스물스물 불안감이 피어나오는 걸 느끼게 된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왜 임신하지 않는거지? 배란측정기를 사기도 하고, 매일 아침 체온을 재기도 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몸의 변화를 신중히 살펴보고, 중대한 계약서의 날짜를 결정하듯 부부간에 '오늘 해야해' 하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이 되지 않으면, 살짝 우울증과 패닉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인터넷을 뒤지고, 본인을 포함한 배우자의 가족관계를 뒤지면서 혹시라도 누가 임신과 관련해서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 있었는지 호구조사에 들어가기도 할 수 있고, 그러다 혹시 뭐라도 하나 나온다면 마치 그게 설사 사촌팔촌의 삼촌의 고모할머니의 일이였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탓인냥 의도치 않게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아내는 남편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은연중에 비난하고 있을 수도 있고, 남편은 당신이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니 될 임신도 안된거라고 소리 높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임신이 되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임신이 안되거나, 아니면 임신되더라도 임신 첫 12주 안에 종종 발생할 수 있다는 자연유산이라도 경험하게 되면 그 스트레스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게 크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임신할 수 있고, 입덧을 하고, 배가 불러 오고, 태동을 느끼고, 나중에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이야기 해줄 산통을 겪고, 빨갛고 쭈글쭈글한 작은 생명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걸 '기적'이라고 아주 쉽게 이야기 하지만, 진심으로... 한 생명이 손가락 발가락 열개씩을 가지고, 사람의 형상 그대로 온전히 태어나 무난히 자라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적인지. 

 

이 책을 읽으며, 앨리스의 언니 엘리자베스의 독백같은 일기를 읽으며 절실히 그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생각도 들었다. 나는 때로 아직 아이가 없는 부부들을 꽤나 부러워 하며, 반쯤 농담섞인 목소리로, 'Enjoy now when you can! Because when you have kids, there is no time for yourself!'하고 말하곤 하는데.. 물론 이런 말을 하는 뒤에는, 아주 당연하게 그들에게 아이가 아직 없는 건 그들이 지금 그들의 '부부생활'을 즐기고 싶기 때문이란 전제가 깔려 있고, 그들의 시도가 아직 성공적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엘리자베스가 말한다.


"We'd travelled, we'd been to lots of parties, lots of movies and concerts, we'd slept in. We'd done all those things that people with children seem to miss so passionately. We didn't want those things any more. We wanted a baby"


2. 이혼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3월 초 어느 날에 일하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오늘 저녁에 Y와 술을 한잔 하고 집에 가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가 미리 약속되지 않은 술자리를 잡는 것 자체가 아주 드문 일이였기에, 괜찮은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목소리를 아주 낮추며, "Y found out yesterday that his wife has been cheating on him"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건 남편과 나, 둘다에게 꽤나 충격적인 소식이였다. 6년의 연애, 6년의 결혼. 두 아이, 이번에 새로 이사한 크고 멋진 집, 닭 4마리, 양 2마리, 이번에 새로 산 작은 망아지 하나. 차 2대, Y가 취미용으로 사서 고치고 있는 빈티지 차 하나,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가족 스키여행, 뭐랄까. 모든게 완벽해 보이던 가족이였다. 가족끼리 만났을 때, 그 부부는 그들의 연애시절을 얘기해주며 웃었고, 유치원이나 학교를 추천해주기도 하는 등.. 뭐랄까.. 우리에겐 마치 롤모델마냥 느껴지던 부부였는데.. 그녀가 그랬다는 것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좀더 놀랬던 건, 알고 보니 그녀가 거대한 사랑에 빠지거나 한 것도 아니였고, 그 사실을 그녀의 남편이 알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이혼을 얘기했고, 그가 견디지 못하고 부활절 휴가를 맞아 다른 나라로 도망갔다 돌아왔을 때는 다른 남자를 집에 불러 며칠 재워주고 있었다. Y가 그녀에게 그 남자를 당장 쫒아내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하니, 그녀가 "This is my house too!" 라고 했단다. .... 

그들은 지금 이혼수송 중이다. 집은 이미 팔기로 결정했고, 그는 이사나왔으며 심지어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 등록도 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I really don't know what's been wrong with her, or us!"... 


이 책에서도 10년 전에는 인생에 단 한명 밖에 없는 완벽한 파트너였던 남편과 10년 뒤의 앨리스는 서로 증오하며 이혼수송을 밟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둘다 외도를 한 적도 없고, 뭔가 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자주 다투기 시작했고, 피곤했고, 어느 순간에는 그냥 포기했다. 그리고 말한다. 


"... in the end your divorce all came down to one thing ..... lack of sleep"

 

수면부족. 생뚱맞을 수 있는 이 이유. 그런데 나는 이해했다. 아이가 어릴 때 모유수유하기 위해 깨어 있던 수많은 밤들. 잠이 살짝 들었는가 싶을 때 아기 울음소리에 다시 깨어 앉아 젖을 먹이고 있자면,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이 그리 얄밉고 미워보일 수 없었다. 그리고 남편의 그 많던 출장들. 바쁜 일정들. 아이들과 혼자 남아 하루를 보내고, 밤을 보내고, 씨름을 하다보면 머리속으로는 그를 이해하더라도 감정적으로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화가 났다. 마치 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남편인 것 처럼. 나만 혼자 아이들과 이 외딴 타지에 버려져 있고, 남편은 마치 세상을 즐기며 여행을 다니고 있는 것 마냥... 그래서 책의 주인공인 앨리스도 이해했다. 세 아이, 제대로 쉴 틈없이 굴러가는 일상, 바빠진 남편, 오랜 근무시간, 어느 순간 틀어진 관계.... 


솔직히 말하자면, 부모가 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운 생명의 기적에 감탄하고 감사하기도 전에, 아이는 온갖 요구를 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절대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서, 내가 아프건 슬프건 힘들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의 요구가 우선이다. 그리고 내 예상에 자식이 진정으로 부모의 사정을 헤아리게 되는건 아무래도 자신도 부모가 된 후가 아닐까... 그런 이기적인 꼬맹이들을 앞에 두고, 부모는 아주 극단으로 내몰릴 때가 많다. 균형이 틀어지는거다. 서로 성숙한 인간인냥 서로의 공간도 중시해주고, 따로 친구를 만나 개인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자유도 보장해주다가,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누군가 한명은, 혹은 둘다 그걸 포기해야 한다. 그나마 아이가 하나면 서로 탁구하듯 핑퐁 의무를 넘겨주며 제한된 자유라도 맛볼 수 있겠지만, 아이가 둘 이상이 되면 그럴 자유도 거의 없어진다. 그나마 부부가 같이 고생하며 가고 있다면 동지애라도 느낄 수 있겠지만, 행여라도 한 사람이 육아를 다 담당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비난, 고통, 괴로움을 다 먹고 자란 어두움의 싹이 자라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그 싹을 제대로 잘라낼 틈도 주지 않고 대화도 없이 일상에 지친체 시간이 흘러가면, 글쎄 나중에는 도대체 뭐가 시작이였는지도 모르는체 쓴맛만 가득 안고 그냥 절벽으로 달려가지 않을까.. 


...............


조금은 우습다. 

이렇게 임신과 부모의 삶, 불임, 이혼 등이 정말 내 삶 어딘가에 아주 자연스런 연결고리를 가지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자체가.. 새삼 놀랍다. 그리고 내가 새삼 나이 들었음을 느끼게 한다. 하하.....;; 


덧1. 한국판 제목은 '기억을 잃어버린 앨리스를 부탁해'

덧2. 해피엔딩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