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뚱뚱할 권리

민토리_blog 2016. 4. 4. 20:17

스페인에서 알게된 아기 엄마들과 만날 약속도 정하고, 이런저런 의견도 교환하고 잡다한 안부도 묻는 페이스북 그룹이 있다. 거기에 최근 어떤 아이 엄마가 흥미로운 글을 공유해놨는데.. 제목은, "I dressed so you could see my visible belly outline for a week and it was scary" (Link: http://www.buzzfeed.com/kristinchirico/i-dressed-so-you-could-see-my-belly-for-a-week#.jaQnkdkvd)


간단히 말하자면, 일반 기준으로 보기에도 아주 넉넉하게 배가 나온 여자가 일주일동안 '일부러' 뱃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옷을 입고 지내본 일주일의 경험을 얘기한거다. 튀어나온 배꼽을 보이는 것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거부감을 가지고, 이제껏 바지도 입지않고 일부러 뱃살을 감추는 넉넉한 치마만 입고다니던 그녀가 일주일동안 일부러 그동안 절대 피했던 옷들만 골라 입고 다녔다. 몸에 붙는 가로무늬 일자 면원피스라던가, 탱크탑에 배에서 무릎까지 오는 딱붙는 항아리형 치마라던가, 바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레깅스같은 트레이닝바지도 입었다. 그녀는 그런 시도들이 처음에 그녀가 가지고 있던 공포와 비교했을 때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고, 그녀가 그동안 다시는 입지 않을거라고 말했던 옷들에 대한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게 해주었으며, 다소 뻔하지만 인생은 짧으니 뭐든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으며 살아라 그런 말들로 마무리했다. 그런 그녀의 시도에 당연하게도 많은 여성들이 공감을 표했고, 페이스북 그룹의 반응도 그다지 다르진 않았다. 


문제는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들었던 생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글을 읽으며.. '그냥 운동을 좀 해서 살을 빼면 안되나?'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깨달은 후 흠칫했다. 왜 나는 그녀가 뚱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걸까....


한국에 태어나 자라고 살면서 외모에 대한 지적은 수도 없이 받아왔다. 지금도 한국에 돌아가면 외모에 대해 꼭 한번은 말을 듣게 된다. 칭찬뿐이면 오죽 좋겠냐마는 어딜봐도 흠잡을 거 없이 완벽한 외모를 타고 태어난게 아니라 당연히 지적들도 많다;; 그리고 살면서 많이 들어본 지적들 중 하나는 '몸무게/살'과 관해서다;; 솔직히 난 살면서 그리 뚱뚱해본 적도 그렇다고 막 날씬해본 적도 없는 그냥 그런 보통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살아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는 둔해보인다는 소리를, 뻣뻣해보인다는 소리를 들었고, 학교 다닐 때는 늘 앉아 있어서 그런지 허벅지가 굵다는 소릴 들었고, 그나마 대학가면 다 살빠진다는 소리를 위로처럼 들었고, 대학가서 만난 남자친구의 어머니로부터는 '애가 상체는 괜찮은데 하체는 살 좀 빼야겠더라'하는 소리를, 다른 남자친구에게 직접 만든 쿠키를 선물해준 날 그 친구의 어머니로부터는, '애가 그런 걸 먹으니 살이 찌나보다'라는 소릴 들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영국 나오기 전 괴로운 일들로 밤낮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을 때 인생 최저의 몸무게를 기록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보는 사람들마다 왜 그리 말랐냐고, 밥 좀 먹고 다니라고, 요즘 젊은 여자들은 다이어트 한다고 안먹고 올리고 그런다는데 어쩔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차시기도 하고.. 그러다 영국에 나와 브라이튼에서 지내는 동안 우울증으로 8킬로정도가 쪄서 돌아갔더니, 오빠가 '뭐 이리 돼지가 되서 왔냐?'했다.. 그 후에도 살이 찌면 쪘다고, 마르면 말랐다고... 하여간 내 몸 어딘가 뭔가는 누군가에게 지적할 만한 근거가 되었다. 


물론 문제는 남뿐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있었다. 난 늘 내 몸 어딘가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고, 내 몸을 드러내기 보다는 감추는 옷을 택했고, 거울을 볼 때도 이 정도면 괜찮다, 라기 보다 마음에 안드는 부분들부터 먼저 발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단한번도 내 몸에 대해 만족한 적이 없었다. 정기적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시중에 판매되는 옷들 중 거의 가장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고 있지만, 옷을 입을 때마다 내가 날씬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도리어 뱃살을 잡아보며 이걸 어쩌나 하며 괜히 화를 내고, 늘어지는 팔살을 만져보며 한숨을 쉬거나, 나도 일자로 쫙 빠진 다리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그럴 뿐이다. 그리고 기분이 우울할 때는 내가 뚱뚱하다고도 생각한다.. 아무리 주위에서 '말랐다'라고 말을 해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옷들중 가장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으면서도..... 


그리고 그런 나는 다른 이들에게도 때론 관대하지 못한 평가를 내리곤 한다. 다른 이들에게는 대놓고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안하는 편이지만, 예를 들어 최근에 갑자기 살이 쪄버린 내 동생에게는 아주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라는 조언(!) 따윌 하고 있는거다;; 말로는 그녀의 건강을 위한거라고 하지만, 그리고 그녀가 살이 빠졌을 때 모습이 더 예쁜 것도 있지만, 당장 그녀의 건강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전보다 많이 찌긴 했지만, 제대로 걷거나 뛰지도 못할 만큼 살이 찐 수준도 아니고, 무엇보다 살을 빼건 말건 그건 그녀의 선택인데 왜 타자인 내가 나서서 살을 빼라 마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살이 좀 찐 사람을 보면 아주 당연하다는 듯, '게으르다'는 낙인을 은연중에 찍어버리곤 한다. 분명 소파에 앉아 고열량의 디저트나 야식같은 걸 친구삼아 저녁을 보내고 있을거라는 이미지와 함께...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좋은 하루'라는 말보다, '나 살찐 거 같아. 나 운동해야 하는데..'라는 말을 더 많이 입에 달고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드는거다. 도대체 살찐 게 왜 나쁜건가. 우리는 왜 살찌는 것에 대해 거의 죄의식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건가.. 


신체구조상 당연히 먹는 만큼 소비하지 않으면 살이 찌게 되어있다. 그런데, 모든 이들이 매번 식단을 조절하며 쉬는 시간 틈틈이 헬스클럽으로 달려가야 할 필요는 없는거 아닌가. 게으르다라는 것도, 다른 이들과의 공동작업에 있어 게으름으로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닌, 내 자유시간에 헬스클럽 대신 소파를 친구삼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영화를 보는게 내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면, 게으른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살이 찌게 된다 한들 그게 내 삶의 방식이라는 건데 타인된 입장으로 간섭할 권리는 없지 않은가. 즉, 내게도 '뚱뚱하게 살 권리'는 있지 않냐 말이다. 


만약 내가 보건복지부 장관이라거나, 비만으로 인한 성인병 예방 복지회 임원 정도 된다면, 직업적인 사명으로 사람들에게 '건강한 생활방식'을 전파하며 적당한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으로 비만은 좀 피하자는 소릴 대놓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내가 의사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몸무게 증가나 감소로 인한 어떤 증세에 대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몸무게에 대해 적나라한 의견 따윌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내가 당신의 살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지적할 권리도 없는거 아닌가. 


나를 그대로 보고 사랑하기는 꽤나 힘들다. 완벽해도 몇십년간 같이 살다보면 없던 흠도 하나는 발견하기 마련인데, 원래 완벽하지 않으니 흠잡기는 꽤나 쉽고, 거기에 덤으로 끼어져 딸려오는 살들과 주름까지 사랑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참 못났고 늙은 거 같아 보이는 오늘의 나도 5년 후의 내게는 젊은 시절일테고, 오늘 내게 붙어 있는 살들도 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즐겁게 놀던 시간들의 결과물일거다. 그러니 일단 죄의식부터 좀 떨쳐내자. 살이 쪘지만, 난 즐겁게 놀았고, 그 때 먹었던 치킨과 감자탕은 정말 맛있었으니까. 간만에 만난 여자친구들과 신이 나서 최근에 생겼다는 파스타집에 디저트까지 다 챙겨먹었지만, 그 시간은 후회없을만큼 즐거웠다는 사실을 기억해 볼 수도 있다. 그 때 만약 당신이 '미안, 나 다이어트 중이라 안먹을래' 그랬다면, 그 시간들이 그 때만큼 즐거웠을까. 뭐. 먹은만큼 운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헬스클럽 대신 맥주 한캔과 영화를 선택했다고, 30분의 늦잠을 선택했다고 너무 괴로워할 필요도 없는 거다. 우린 안그래도 꽤나 바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니까.. 뭐 그렇다고 다들 뚱뚱해지라는 소릴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뚱뚱하든 날씬하든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고, 설사 그게 가족이라 하더라도, 남의 살에 대해 참견할 권리는 없다는 거. 그리고 이왕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살이 쪘고, 마른지 보다, 그 사람이 얼마나 날렵한 콧선을 가지고 있는지,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눈가의 주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입가에 보일듯 말듯한 점이 얼마나 섹시한지, 귀가 얼마나 아담한지, 뭐 그런걸 살펴봤으면 싶기도 하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