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영국의 나는 한국의 나보다 행복한가

민토리_blog 2016. 2. 5. 07:04

어제 저녁에 남편이 스페인 뉴스에 한국에 관한 기사가 나왔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의 젊은 사람들이 한국에서의 삶을 얼마나 불행하게 생각하는지, 그래서 한국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과, 'Hell Korea'란 사이트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한국이 싫어서'란 책이 베스트셀러라더라, 그런 얘길 전해줬다. '헬조선'이란 말은 한국사이트에서 종종 보기 했던 단어고, '한국이 싫어서'란 책은 왠지 제목이 익숙해서 생각해보니 아는 분께서 보내주신 이메일에서 인용되기도 했던 책이다. 책은 구할 수 없기에 일단 인터넷에 있는 리뷰들을 읽어보고.... 처음에는 무작정 한국이 싫어서 호주행을 택했던 주인공, 그리고 두번째에는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다시 호주행을 택한다는 주인공.... 그렇게 글들을 읽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나는 왜 한국을 떠나온건가.. 그리고 현재 영국에서 12년째 살고 있는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을 때보다 행복한가.. 


...


그때가 대학교 4학년 마지막 여름방학이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사실 난 어느 학교에나 어느 곳에나 있을법한 나름 (적어도 대외적으로는) 모범생의 삶을 살고 있었다. 대학생활동안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려보겠다는 다짐으로 과활동, 동아리, 인문학회 모임, 봉사활동, 어학원, 복수전공에 교직이수까지, 정말 미치게 살았다. 그리고 그 때는 나름 졸업 후 계획을 가지고 8개월 동안 준비하고 있던 시험을 앞둔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바로 여름방학 직전에 일이 하나 터졌다. 그 일을 계기로 거의 정신줄 놓고 여름을 맞았다. 공부를 해보겠다고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가끔씩 실제로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답답해져서 사람들이 안보는 외진 바깥 구석에 가서, 마치 방공훈련 들어갔다 나온 군인마냥 캑캑거리며 숨을 내쉬곤 했다. 그러다 못견디면 술을 마시러 갔다. 가끔은 술을 마셔도 취하지도 않고 견딜 수도 없어서 무작정 걸어다니기도 했다. 한번 정신을 놓고 완전히 취했을 때는 내가 무작정 거리에서 소리를 질러댔다고 했다. 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대더란다. 아아악!!!! 하고.. 어떨 때는 집앞 현관에서 책들을 끌어안고 자고 있기도 했다. 밥도 먹을 수 없었고, 그래서 한달 동안 4킬로가 빠졌다. 말을 할 힘도 없고, 사람을 만나기도 싫었고, 그냥 하루가 시작되는 것 자체가 끔찍하고 제대로 잠자리에 누워 잠을 자지도 못했던 시간들... 그러다가 시험 날. 어처구니 없게도 전날 또 퍼마셔버린 술 때문에 속이 뒤집어져서 시험 중간에 뛰쳐나왔고, 그렇게 8개월이 날라갔다..


화장실에서 다 토해내고, 밖에서 멍하니 뭘해야 할지 몰라 앉아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었다. 떠나자. 어디가 되었든 여길 벗어나야 한다. 당장 이 곳에서, 집에서 벗어나서 어디든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버리자... 


그래서 그 길로 바로 아버지 회사에 찾아갔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커피숍에서 마주앉아 내가 한 첫말이 그거였다. 집을 나가겠습니다. .... 아버지는 당황하신듯 했지만, 의외로 화는 안내시고 차분히 이유를 물으셨다. 그 말에 사실 뭐라 대답할 말도 없었다. 그래서 고작 한 대답이, 더는 못견디겠어요. 아버지는 어디로 갈거냐고 물으셨고, 난, 아무 상관 없어요. 그냥 집을 나가서 어디든 갈거에요, 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같이 생각을 해보자고 말씀하셨고, 난 생각은 해보겠지만 조만간 나가겠다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아버지가 아는 분의 자녀들이 영국에 있다고, 그러니 차라리 어학연수를 가서 영어라도 배워오라고 말씀하셨고, 어느 곳이든 상관없던 난 그냥 '알겠다', 라고 대답한 후, 한달 후 예전의 포스트에서 쓴 것처럼 브라이튼에서의 첫 해외생활을 시작했다.  


.... 그러니 솔직히 말하자면, 난 굳이 한국이 싫어서 나온 건 아니였다. 그냥 그 당시 내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고,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이지만... 그렇다면 나를 한계점으로 몰아넣은 건 한국이라는 사회였던가... 한국에서 나란 사람은, 어떻게보면 무난했다. 겉으로는 딱히 튈 것도, 새삼 기억될 것도 없는, 어디서나 한명씩은 있을 것 같은 그냥 그런 사람이였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고, 가진 것이 많다기 보다는 도리어 평균보다 적었던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살면서 많은 순간 을의 입장에 강제로 던져지기도 했고, 자신감보다는 주눅이 먼저 드는 삶을 살긴 했다. 많은 학생들을 짓누르는 고등학교 시절 때도..  기억나는 건 그저 새벽 2시가 넘어 집에 들어와 그대로 교복을 입고 침대에 뻗어 잤다가 다시 아침이 되면 그대로 세수를 하고 나왔던 기억들. 그런데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들거나 하진 않았다. 못견디게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견뎠고,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나니 좀더 세상의 복잡한 기준에 맞춰서 인생이 들쑥날쑥해졌고, 결국 못견딜만한 상황까지 빠지기도 했지만... 나를 그 상황으로 몰아넣은걸 굳이 사회의 탓이라고 돌리기에는 좀 억지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좀 무지했다. 한국 밖의 세상이 어떤지도 몰랐고, 비행기를 타 본적도 없었으며, 외국 문화를 접할 기회도 없었다. 그나마 외국 문화라고 한다면 책이라고 할까. 제인에어를 좋아했고, 브론테 자매가 쓴 글들을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게 영국에 대한 호기심이나 동경으로는 발전되지 않았다. 그냥 책 속의 세계였다. 그리고 영어를 꽤나 싫어했고, 내가 경험이 없어서인지 외국 다녀와서 꼭 한국과 외국 비교하는 사람들 말을 들으면 재수없어했다;;;; 어쨌든 그렇게 아무 사전 지식도, 설렘도 하나 없이, 교과과정에 충실한 영어만 할 줄 아는 나란 인간이 영국에 뚝 하고 떨어졌다. 한국이 지독히 싫어서 도저히 그 땅에서 더이상은 살 수 있을 거 같지않아 나온 것도 아니고, 외국땅이 내게 주는 어떤 비전이나 환상 (선진국이라든지, 복지국가라든지, 평등이라든지, 주말의 휴식이라든지, 그런...)에 이끌려 나온 것도 아니라서, '그래도 한국보다는 영국이 좋지'라는 결론도 아직 내리지 못한다. 그럼 영국에서 살고 있는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었던 나보다 행복한가. 이것도 잘 모르겠다. 왜냐면, 단편적으로 보이는 영국인의 삶 - 주말에 공원에 나와 산책하거나 누워 책을 읽고 있는 한가로운 모습이라던가, 넓은 정원이 딸린 주택이라던가 - 이 정말 얼마나 단편적인지,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내가 경험한 매일의 영국은 그렇게까지 환상을 주는 곳도 아니고, 한국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며, 때론 눈물나게 한국을 그리워하게까지 만드는 곳란 걸 이젠 알고 있기 때문이다. 


12년 전에 처음 영국땅에 떨어져 지금까지 경험해본 영국이란 곳은... 1년에 길어야 한달/두달 정도 해가 쨍한 날을 즐길 수 있는 곳이고 (그러니 다들 공원에 나와 드러누워 있는거다;;), 그 외의 시간들은 어둡고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안개가 자욱한 곳이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층간소음에 시달린다면, 영국에서 Terraced house라 불리는 양옆으로 따닥따닥 붙어서 늘어서있는 집들 중 하나에 살았을 때는 옆집에서 계단 오르는 소리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의 벽간소음에 시달렸고, 오래된 Victorian house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 때는 보일러를 틀어놔도 전혀 방이 따뜻해지질 않아서 코트에 목도리, 모자, 장갑까지 끼고서 벽에 달린 라디에이터 바로 옆에 모로 누워 잠을 자기도 했다. 잠시 런던에 살았을 때는 매일 지루한 버스 시간을 견디고, 때론 좁은 런던 메트로에 몸을 쑤셔넣고 다른 이들에게 떠밀려 미로같은 지하철 역 안을 발맞춰 행진하기도 했다. 지금은 운전을 해서 좀더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긴 했지만, 여기서도 출퇴근 시간, 학교 등하교 시간이 되면 차가 미칠 듯이 막힌다. 한국에서는 8차선의 도로에 차들이 꽉 들어차 막혀있다면, 여긴 그게 1-2차선이라는 것 뿐이다. 한국에서는 그럴 때 빵빵 거리는 차들로 더 시끄럽다면, 여기서는 그런 걸 할 수 조차 없어 더 속이 뒤집어진다. 박사과정을 마치고 영국회사에서 일했을 때는, 대체적으로 9-5시가 지켜지긴 해도, 회사 특성상 때론 새벽에 깨서 일을 하기도 해야 했고, 어떨 때는 8시까지 남아 일을 할 때도 있었다.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가는 분위기도 아니였고, 회사에 따로 식당이 있었던 것도 아니여서 대부분 그냥 샌드위치를 사서 자기 자리에 앉아 먹기 때문에, 정말 마음먹고 밖에 나가 먹고 오는게 아닌 이상, 정말 말 그대로 9-5시동안 일만 했다. 그래도 그때는 돈이라도 정당하게 받았지만, 유학생활 초기에 펍같은 곳에서 일할 때는 National Insurance Number가 없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고, 행여 시급을 좀 괜찮게 받더라도 어마어마한 세금이 부여되서 정작 손에 들어오는 돈은 얼마 없었다.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는데, 이것도 그럴려면 본인이 직접 전화를 해서 문의하고 신청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도 NI Number가 없다면 거의 불가능..). 그리고 이렇게 파트타임으로 생계를 꾸릴 때는 9-5시 동안 일하는 건 사치다. 때론 주말이나 저녁도 반납한체 그냥 일만 한다. 어떨 땐 그것도 말한마디 안하는 단순노동을.. 그렇다고 저녁에 친구를 만나 가볍게 식사하며 술한잔 하는 건 사치다. 영국에서는 외식비가 꽤나 비싸기 때문에;; 원래 친해지기 어려운게 영국사람들인데, 딱 보기만 해도 외국인인 나를 쉽사리 받아들여주거나 환영해주는 곳은 극히 드물었고, 안그래도 저녁 때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아 사람들 보기도 힘든데, 저녁 때 혼자 거리를 걷자면 마치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들이 마치 넌 혼자라고, 네가 있을 자리는 여기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이때는 차라리 한국이 그리웠다. 그래도 돌아가지 않았던 건 영국에서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절대 한국으로는 못돌아간다, 거기서는 못산다, 라는 절박함이나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이미 시작한 일을 제대로된 끝도 못보고 돌아가기에는 마치 포기한 것만 같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한국에서도 견뎠던 나는 영국에서도 견디기를 선택한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단하나 확실한건 12년 전의 나와 비교해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 적어도 그 때보다는 확실히 행복하다. 내 가족이 생겼고, 이웃의 소음을 걱정할 필요없는 정원이 딸린 Detached house라 불리는 단독주택에서 살며,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김장을 하고, 김치요리를 해먹는다. 원래 씀씀이가 큰 인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매일 어떻게든 적은 돈으로 끼니를 떼우려고, 종이같던 수퍼마켓의 가장 싼 식빵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가 비교적 자유로운 대학에서 일하는게 다행이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차를 끌고 런던이든 어디든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을 확보한 것이 뿌듯하다. 이제는 왠만한 차별과 무시하는 태도에도 고개 빳빳이 처들고 반박해줄 만큼 영어가 익숙해졌고, 낯짝이 두꺼워졌다. 더이상은 그저 착하고 거절할 줄 모르는 small asian girl이 아니라는 사실이 뿌듯하고, 보라색 바지를 입고도 거리를 아무렇지 않게 활보하는 뻔뻔함을 가진 내가 조금은 기특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국이 더 좋은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게 '영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견디고 노력한 시간들 때문인지, 사실 헷갈린다. 한국에서도 그만큼 견디고 노력했다면, 12년이 지난 후에 난 지금의 내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한국에 있었더라면 지금만큼 올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나역시 '헬조선'이라 외치며 '탈조선'을 꿈꾸고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한국이였어도, 그래서 단독주택에서 살고 있진 못하더라도, 그래도 토끼같은 아이들과 사자같은 남편이 옆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생각에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계속 부딪치게 되는 학벌과 나이/성별의 벽에 지치고, 돈으로 인간이 평가받고 무시당하는 상황에 질릴대로 질려서, 이 넘의 나라 진짜 지긋지긋하다, 나도 이민가고 싶다, 하며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


앞에서 얘기한 소설을 실제로 읽어보진 않아서 모르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행복을 찾기 위해 한국을 떠난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도 많은 분들이 비슷한 이유로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떠나왔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정말 이분들이 모두 자기가 원하던 그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능한 이방인으로서 타지에서 겪을 고통은 최소이기를... 


그런데... 정말... 위선적인 것 같아 차마 말을 못하다가 머리속으로만 맴도는 생각이 하나 있는데... 감히, 정말 감히 꺼내보자면.... 그러면 남은 한국사회는 어쩌나.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책임을 지면서 행동으로도 옮길 수 있는 결단력있는 이들은 모두 한국을 떠나버리고, 한국에서 기득권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런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거나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한국에 남아버리면.... 한국은 정말 말그대로 '헬조선'이 되어가는게 아닐까. 솔직히 한국에서의 기본 인권이라던지 복지에 대한 발달이 더딘 이유는.. 여전히 '경제'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 처럼 현혹되어 투표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생각을 하더라도 혹시라도 내 삶에 피해가 올까봐 쉽사리 행동을 하지 못하거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아예 관심없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 아닌가. 그리고 정부는 아주 교활하고 영악한 방법으로 그걸 자기에게 유리한대로 써먹지. 대기업들은 '내가 이 나라 경제발전의 일등공신'이란 메달을 가슴에 달고, 한 손으론 그 기업을 있게 한 열심히 일하는 평법한 사람들의 등을 채찍으로 때리면서 다른 한손으로는 정부에 돈을 건네고 말야.. 이런 봉건영주제같은 사회에서.. 의적 로빈훗이 나타나길 기대하는 건 무리고 (사실 그도 사회를 바꾸진 못했다;;) 의롭고 지혜로운 왕이 나타나서 짜잔하고 나라를 통합한 후 이끌어주면 좋겠지만, 그들과 한통속이 아닌 이상 정치판에 애초에 발도 못들이는 지금 이런 세상에 그런 일은 좀더 판타지에 가까운 것 같고.. 결국은 평민들의 힘이 강해져서, 대표라고 뽑아놓은 인간들이 뻘짓못하게 감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데.. 그렇게 의지있고 결단력있으면서, 타지에서의 고통과 힘듦도 견디려고 하는 내부의 강함까지 있는 사람들이.. 내 땅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그 땅에는 정말 희망이 없어지는 것 아닌가.... 


물론 나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애초에 없는 사람이다. 나는 이미 나와있으니 이런 소릴 해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내 생활이 안정을 찾았으니, 강건너 불구경하듯 이런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소리를 내뱉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무척이나 복잡하다. 도대체 나란 인간은 그럼 뭘 할 수 있는지... 한국정부는 정이 가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이 싫은 건 아닌 내가. 아니, 도리어 나란 인간이 있게한 주된 토양과 영양분을 제공한 곳이라는 이유로 한국이란 곳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뭔가. 그리고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매일 견디고 언젠가 탈출할 꿈만 꾸고 있는 이들에게 난 뭘 바라고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