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free story

외국인 남편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고찰

민토리_blog 2016. 3. 3. 06:09

저번주에 만난 T의 표정이 그리 좋진 않았다. 무슨 일이냐고 조심스레 물으니, 남편 C가 요즘 계속 까칠하단다. 그러고보니 몇 주 내내 그녀는 나와 저녁에 운동하기로 간 약속을 마지막 순간에 취소시키곤 했다. 아기가 운다, 너무 피곤하다, 실망시켜서 미안, 등등의 말들과 함께.. 의사인 그녀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풀타임으로 복직한지 거의 2달째.. 남편의 직장도 집에서 꽤 먼 곳이라 둘이 아침 8시 전 부터 나가서 아이들을 6시에 유치원에서 찾아 데리고 오고, 저녁을 먹이고, 재우고, 밀린 집안일들을 조금씩 해치우고.. 그러면서 정말 녹초가 될만큼 힘든 적응시기를 보내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왠만하면 그녀에게 부담을 안주려고 그녀가 먼저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지 않으면 그저 안부만 물으며 지내고있던 차였다. 그러다가 간만에 만나게 된 그녀는 아주 지쳐보였고, 생각이 많아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한말이, 둘다 아이를 재우고 나면 피곤해서 뻗게 되는데, 남편은 그 후에는 정말 아무 것도 안하고 앉아서 티비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깨서 울게 되면 돌보는건 자기 몫이고, 주말에도 계속 자기 쉬는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고 저기압을 유지 하기 때문에, 자기가 또 아이 둘을 데리고 나가 혼자 시간을 보내다 오는데 정말 자기도 피곤하다는 거였다. 그날 오전에도 원래 남편들끼리 스쿼시를 하는데, 바람을 좀 쐬고 다른 엄마들 (보통은 나)을 보려고 남편과 함께 준비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려고 하는데, 남편이 핀잔을 주더란다. '이게 나를 위한 운동시간인거 맞냐?'고..;; 

그녀가 꽤나 피곤하고 지쳐 보여서, 원래 그날 오후에 다른 친구네 가족이 놀러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가족도 T와 안면이 있는터라 괜찮으면 오라고 초대를 했다. 내심 남편과 T의 남편인 C가 친하기 때문에, 둘 사이를 좀 풀어주려는 의도(?)도 있었고... 그런데 그 날 오후에 또 T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왔다. C는 집에 남아서 DIY를 한다나 어쩐다나... 그렇게 우리 커플, 다른 친구네 커플, T, 서로의 아이들 2명씩 총 6명이 북적북적 거리다가 저녁이 되어 아이들이 지쳤는지, T의 첫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면서 T는 내 도움을 받아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걱정이 되어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내자, 피곤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C는 그동안 아주 긴 목욕을 했고, 느긋이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럭비게임까지 봤기 때문에 아주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고..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그럼 넌?!!!!'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어차피 남의 가정사인데.. 싶어서..... 


이번에 둘째를 낳은 다른 영국인과 이라크인 커플 S와 N... 전에 다른 친구 D네 집에서 파티가 있어 다들 모인 적이 있는데, S가 혼자 태어난지 한달쯤 된 둘째와 첫째를 데리고 나타났다. N은 어디 갔냐고 물으니, 잠시 머뭇거리더니 저기 바닷가 어딘가 마을에 가있단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으니, 살짝 한숨을 쉬며 한다는 소리가, 금요일 저녁에 그녀의 남편 N이 와서 그러더란다. "이번 주말에 동생과 낚시 여행을 가기로 했어";; 그러고는 토요일 아침 일찍 사라졌단다;;; 그말에 내가 잠시 어이를 잃어버리고 말도 더불어 잃어버리고 가만히 있자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챘다는듯이, 그녀가 재빨리 남편을 위한 변명을 던졌다. "It's OK. My mum is with me, so I'm not alone, and it's not that hard. I am fine, really"....... 이 착하디 착한 여자는 2주 뒤에 프랑스로 친척 동반 여행을 떠나는데, 그 때도 남편은 프랑스에 있는 친구들을 보러 가겠다고 먼저 차를 끌고 가버리고, 다른 가족들이 도와준다 하더라도 아이 둘을 데리고 남편없이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언제 오게 될지 모르는 남편과 합류하기로 했다고 한다... 


다른 친구 D는 아주 꼼꼼하고 이것저것 따지는 성격인데, 반면 그녀의 남편 A는 사람 좋은 대신 아주 아~~주 느긋한 편이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그녀의 집이 가장 큰 까닭에 또 시댁 가족들이 크리스마스 이브때 부터 와있기로 했는데.. 아이들이 아픈 바람에 혼자 집안청소며 크리스마스 만찬 준비며 정신이 없었다고 한다. 시댁 가족들에게 좀 도와달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이라고는 "Don't worry, you don't have to prepare much" (아니, 그 'much'의 기준이 어느 정도란 말인가. 딱 집어서, 이거는 우리가 준비할 거고, 저거는 필요없으니 요거만 해줘, 하고 말하는게 낫지.;;) ... 철저한 그녀 성격에 '많이 준비 안해도 돼' 라는 말을, '그래, 그럼 아무 것도 안할게'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그렇게 난리를 쳐서 시댁 가족들을 맞이했더니, 저녁에 한다는 소리가, 그녀더러 너무 유난을 떤다는 거였다. 그말에 바로 상처를 받은 그녀가 그녀의 남편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며 티비를 보느라 듣지도 못한 눈치였고, 그녀 혼자 방에 올라가 울고 있자니, 뒤늦게 남편이 올라와, '농담인데 왜그래'하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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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나서, 다른 결혼한 커플이 사는 모습을 보다보니, 정말 '외국인'이고 뭐고를 떠나 그냥 '사람'사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가정적인, 로맨틱한, 다정다감한, 아이를 좋아하는, 외국인 남편' 따위의 이미지가 얼마나 허상에 가까운 모습인지...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살다보면, 외국인이건 뭐건 떠나서 다 비슷비슷한 모양새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전에 쓴 포스트에서도 얘기했지만, 외국인이라고 다들 집안일을 도와주고, 여자에 대한 배려도 넘쳐나고, 주말이면 가족과 오붓하게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그런 건 아니다. 그리고 외국인 시댁이라고 해서, 시댁살이 없이 다 쿨하게 너는 너, 나는 나, 하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아주 주관적으로 바라본 내 경험에 의하면.... 외국인 남자들이 연애에서는 꽤 괜찮을지 몰라도, 육아전쟁을 같이 치르기 위한 동료로서는 좀 실격자인 경우도 많았다.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을 중시해서, 결혼 후 돌봐야할 아이가 있음에도 주말에 친구들과 펍에서 술 한잔 하거나, 럭비/축구 경기 보는건 포기하지 못하는 남자들, DIY나 정원일 같은 걸 좋아하는 듬직한 남자친구/애인/(육아전)남편이였지만, 아이가 생긴 후에도 열정을 버리지 못하고 혼자 주말에 차고나 정원으로 틀어박혀야 하는 남자들, 아이 친구의 생일파티 (심지어 자기 아이 생일파티도)를 '여자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서, 그 시간에 도리어 자기 혼자 있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는 남자들, 부인이 자기 가족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말던, '그건 그사람들이고, 그냥 신경꺼' 해버리거나, '네가 너무 민감한거 아냐?' 혹은 이유를 묻지도 않고, '그래, 넌 우리 가족들 안좋아하니까'하는 식으로 덮어버리는 남자들, 혹은 계속 힘들고 피곤하다고 우울증의 마라톤을 달려서 부인을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 남자들....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내가 말하고 있는게 영국남자를 포함한 다른 국적의 남자들인지, 한국남자들인지 잘 구별이 안되지 않는가.. 허허.. 


그리고 물론 결혼의 틀을 깨버리는 개차반(!)인 남자들도 당연히 많다;; 6년 연애, 4년 결혼 생활 끝에 친구 J가 그녀 남편에게 받은건, '나 사실 내 직장동료 X와 연애중이야. 당신이 친정집에 가있는 동안 그녀가 여기서 생활하기도 했어. 우리 이혼해'라는 통보 -_- 다른 친구의 남편은 그녀 생일파티에 버젓이 그녀의 친구 옆에 앉아서 어깨에 손을 올리는 등 추파를 던지기도 했으니까;; (얘도 지금 이혼상태;;;)


반면에... 내 주위에만 많은 건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가 봐온 영국여자들은 의외로 관계에 들어서면 정말 헌신적이고 착해진다;; 이해심이 넘쳐나고, 의외로 왠만한 남자들의 개인주의적인 행동들도 다 이해하고 참고 넘어간다. 위의 개차반 같은 남편을 뒀던 그녀들도, 이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처음에는 계속 그녀의 남편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려고 애쓰면서 기다렸다.. 심지어 베이비클럽에서 알게된 C는 동거관계에서 같이 아이를 가진 애인이 자기 아이가 두돌도 되기 전에 바람을 펴서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그 후 그 여자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다른 여자의 아이 생일도 챙겨주고, 심지어 그 집에 자기 아이가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내라고 일주일에 한번씩 데려다 주곤 했다. 대놓고 자기 아이를 그 집에 볼모(!)로 보내는 셈이니, 그녀가 다른 여자와 그 남자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극진했는지는 말안해도 알거다. 그녀는 나름의 안정된 직업도 있고, 젊고 예쁜 편이였음에도 도대체 왜 그런 남자에게 그리도 착하게 구는지, 단지 아이때문인지.. 그녀와 내가 조금만 더 깊이 있게 친했더라면 정말 딱까놓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 하아.. 


.........


이러고 말하고 나니, 왠지 '외국인 남편은 다 엉망'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런게 아니라, 워낙에 좋게 포장된 것들이 많아서, 환상같은 것 말고 이런 현실도 있다는 걸 그냥 보여주고 싶어서 주절주절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정말 자상하고 가정적이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외국인 남편도 많죠 ^^ 그렇지만, 정말 무턱된 환상을 가지고 외국인 남자친구와 연애할 때, '결혼하면 이렇겠지?'하는 지레짐작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원래 집에서는 잘 치우지도 않고 엄마가 해준 밥만 먹고 사는데, 데이트할 때 한두번 엄마 도움으로 싸갔던 도시락 때문에, 남자친구가 '이 여자는 결혼하면 이렇게 매일 나 회사갈 때 도시락싸주는 가정적이고 부지런한 여자겠지?'하고 속으로 지레짐작하고 있으면, 그 생각만으로도 등에서 식은땀 나잖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콩깍지 씌우기 놀이는 연애 초반에 하고, 연애가 길어질수록, 혹시라도 결혼의 징조가 보일 수록 다 까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 집에서는 이런 사람이야, 이게 진짜 내 모습이야, 나 사실 저녁에 씻는 거 싫어해, 나 사실 양말 개는게 제일 싫어, 나 사실 거실에 먹다남은 물이 담긴 컵이 굴러다니면 보는 것만으로도 두드러기 나는 사람이야. 서랍을 열었는데 속옷들이 각잡고 줄서있지 않으면 미칠 것처럼 화가 나, 등등... 외국인이고 뭐고 다 떠나서, 가감없이, 툭 터놓고! 뭐.. 아무리 그렇게 해도, 그리고 이미 동거까지 하고 결혼한 저도, 아이 낳고 또 싸우니까.. 허허.. 끝이 없는거죠 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