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돌 반이 지난 첫째 꼬맹이는 사교성이 꽤 좋은 편이다. 부모인 우리가 환영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첫째 꼬맹이도 거부감없이 환영하는 편이고, 붙임성도 좋아서 좀 안면이 익었다 싶으면 애교도 부리고, 가서 안기기도 하고.. 설사 처음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위협(!)이 느껴지지 않으면 미소도 잘 짓고, 심지어 꺄르륵 웃기도 한다.
그런 반면, 둘째 꼬맹이는 낯을 많이, 아주 많이 가린다. 처음 보는 사람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내게 안겨서 안떨어지며, 내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수줍게 손가락을 빤다;; 그러다가 나와의 접촉이 끊어지면 (잠시 내려놓고 내가 일어선다든지) 그 즉시 울음을 터트린다. 울먹임이 아니라 아주 세상이 끝장난다는 듯한 울음을;;;; 좀 안면이 익고 나면, 내가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서는 그 사람과 장난도 좀 치고, 슬쩍 미소도 지어주고 그러는데.. 그러다가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아니나 다를까, 사무치게 운다.. 어떤 사람과는 눈만 마주쳐도 울 때가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시부모님을 뵙고도 울고.. 심지어 어떨 땐 남편과 있다가도 내가 나타나면 아주 다급하게 내게 기어오다가, 다시 내가 없어지면 목을 놓아 통곡하며 울기도 한다 -_-
그러다보니, 꼬맹이 둘을 데리고 밖에 나가면 처음에는 둘째가 아무래도 어리니까, "Look at the baby, she's gorgeous" 하며 관심을 끄는데.. 결국에는 둘째의 울음어린 표정이나 울음에, "Oh, sorry, you don't like me"하는 식으로 물러서고, 마지막에까지 호감을 사는건 대부분 첫째 꼬맹이다. 처음보는 사람뿐 아니라 시부모님이나 네덜란드인 부모님같은 경우에도 역시 첫째에 대해서는 칭찬이 끊이지 않는데.. 둘째는 좀 까탈스럽다, 라는 반응을 보이신다.
이번에 네덜란드인 부모님이 영국에 놀러오셔서 같이 Dorset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다녀왔는데, 이틀째부터 둘째 꼬맹이가 열이 나기 시작해서 난 3일동안 집에 같혀 있어야 했다. 막 아파하는 건 아닌데, 열이 내렸다가 다시 오르고, 열이 좀 내리는가 싶더니 자꾸 밤에 깨서 울고, 열이 다 내리고 나니 이젠 밥을 먹지 않으려 들고... 남편은 첫째를 데리고 네덜란드인 부모님과 놀러가 있는 동안, 난 내 품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 둘째를 돌보느라 휴가같지도 않은 휴가를 보내고 집에 왔다. 그랬는데... 집에 도착한 후 다음날부터 거짓말처럼 둘째는 멀쩡해는거 아닌가. 밥도 잘먹고, 다시 밤새 잠도 잘자고 -_- 이런 꼬맹이시키...
확실히 둘째 꼬맹이는 환경변화에 민감하다. 세비야 갔을 때도 하루는 열이 오르고 다음에는 변비인지 이앓이인지,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며 울고 그러더니.... 둘째를 데리고 오랜 시간동안 밖에 나가 있으면 (그래봐야 3-4시간) 약하게 올리기도 한다.. (오늘은 수퍼마켓에서 두번이나 올려서 내 신발이 엉망이 되었더랬다 ㅜ_ㅜ) 그런데 첫째는 밖에 놀러나가면 아주 끝장을 보며 논다;; 그래서 둘째를 생각해 집에 오려고 하면 첫째가 울고, 첫째를 위해 좀더 놀게 하면 둘째가 난리를 피우고, 정말 win-win situation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으아!
그런 둘째 꼬맹이를 보노라면 좀 마음이 짠하기도 하면서.. 왠지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난다. 내게도 두 살 위의 오빠가 있는데, 우리가 그랬다. 오빠는 붙임성도 좋고 개구쟁이같은 성격이라, 어딜가도 인기가 많았고, 주위 어르신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반면 난 내성적이여서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하지 않고, 애교와는 아주 거리가 멀었더랬다. 명절때가 되면 집에 친척들이 오는게 싫어서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자는 척 하며 누워 있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몸이 저절로 아파왔다, 이런 인체의 신비같으니..), 하교길에 이웃 아주머니들과 마주치거나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대부분 그냥 '안녕하세요' 하면 '오냐, 그래, 학교다녀오냐', 하고 끝이지만, 가끔 이것저것 말을 시키시는 아주머니들도 계셔서 그 경우의 수를 완전 봉쇄하고자), 일부러 땅만 보며 걸어서 집에 오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도 신경성 장염에 걸려 있어서, 툭하면 배가 끊어질 듯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여행을 가거나 하면 줄곧 멀미와 두통에 시달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오빠와 비교당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는데, 약하게는 그냥 오빠 칭찬만 하고 넘어가고, 가끔은 "둘째는 낯을 많이 가리는가봐" 하는 정도로 넘어가지만, 어떨 때는 "오빠는 애가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이 좋네. 근데 둘째는 왜 이러니? 어른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안녕하세요, 큰 소리로 인사도 하고, 그래야 성격도 밝아지지. 이렇게 낯을 많이 가리면 나중에 중/고등학교 가서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등등 온갖 참견과 조언을 들어야 했다. 영양가 없는 제 삼자의 조언의 탈을 쓴 잔소리가 그러하듯, 그런 말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정도는 심해지고... 그럴수록 난 더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제발 날 좀 내버려둬, 하는 심정으로...
물론 지금은 성격이 완전히 변했다. 피하기 보다 부딪치기로 했고, 고개를 숙여봐야 내가 투명인간이 되는게 아니라는 걸 알고 도리어 고개를 빳빳이 들고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 그런다고 성격이 무던해지진 않았고, 도리어 까칠한 성격이 이젠 대놓고 드러나게 되었지만 ㅎㅎ;; 그리고 혼자서도 빨빨거리고 잘 돌아다닐만큼 여행도 좋아하고, 노숙도 해봤고,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도 쉽게 말을 틀만큼 뻔뻔해졌다 허허
어쨌건.. 둘째 꼬맹이를 보면 자꾸만 그런 어린 시절의 내가 생각나는데... 그래도 다른 점이라면... 지금의 꼬맹이에게는 그런 나를 부끄럽게 여기고 몰아치던 어머니 대신, 그런 것과 아무 상관없이 꼬맹이를 사랑하고, 주위에 혹시라도 그런 식으로 내 꼬맹이를 몰아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대신 나서서 손을 벌려줄 엄마인 내가 있다는 거다.
둘째야. 정말 나는 눈꼽만큼도, 네가 네 오빠처럼 사교성이 좋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낯선 이들 앞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내게 숨어버리는 네가 부끄럽지도 않다. 그냥 그게 너구나, 하고 생각한다. 너라는 사람은 그런 성격이구나, 하고 알아가고 있다. 너라는 사람을 다 알지는 못해도 (너를 만난지 아직 일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것과 아무 상관없이 너를 사랑하고 있다. 너는 그냥 너라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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