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시간여행은 절대 사양

민토리_blog 2015. 4. 16. 05:21

요즘처럼 아주 정적인 현재를 살고 있자면 자연스레 과거로의 여행을 더 자주 떠나게 된다. 물론 거기에 최근 동생이 몰아서 보내준 한국에서 유행하는 노래들 중 놀랍게도 90년대 유행곡이 많았다는 것도 한 몫 했지만... 

가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그런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그 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때로 돌아가면 그런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했을텐데..." 등등. 


최근들어 과거 생각을 많이 하긴 하는데.. 그런 말을 듣다가 다시 생각해보면. 누군가 아무 부작용 없는(!) 과거로의 여행찬스를 준다고 하더라도 거절할 것 같다. 


일단 그렇게 생각해봐도 아무런 걱정도 없이 좋았던 예전 시절은 기억나지도 않고.. 심지어 사람들이 보통 말하는 '아무 걱정없었던 어린 시절'이라해도, 지금 내 꼬맹이들을 보자면 이제 꼴랑 세상에서 산지 3년도 안되었는데 때론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화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가끔 땡깡을 부리는데 (한국말로 '미운네살', 여기말로 'terrible two'), 그걸 보면 그리 삶이 편해(!) 보이지도 않는다;; 


손에 잡히는대로 다 잡아던지고 싶고, 소리지르면서 뛰어다니고, 지쳐쓰러질지 언정 이왕이면 놀이터에서 계속 그네나 미끄럼틀만 타다가 쓰러지고 싶고, 내 하고 싶은데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그러다가 치우지도 않고 내버려두고, 동생이 맘에 안들면 그냥 밀어버리고, 티비도 마음껏 켜서 머리가 새하얗게 빌 때까지 보고 싶고, 굳이 샤워를 하지도, 장난감을 치우지도 않고 그냥 밥이 깊어가든 말든 놀고 싶은데..... 그 모든 행동을 제지당하고;; 그래서 울면서 소리치며 반항이라도 해볼라치면 그것도 뜻대로 안되니.. 그 삶도 나름 얼마나 힘들건가... 

이제 기고 잡고 서는 둘째 꼬맹이만 하더라도, 뭐든 잡고 빨고 싶은데, 좀 재밌는게 보인다 싶으면 엄마가 냉큼 달려와 '먹음 안돼!'하고 뺏아가 버리고,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라치면 오빠라는 자기보다 좀 큰 애가 와서 뺏아가버리고, 나름 힘을 써서 반항할라 치면 오빠랍시고 힘으로 밀어부치고... 막 잡고 일어선 김에 어찌어찌하면 걸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발 한자국 떼자마자 넘어지고, 어디에 부딪치고, 열심히 기어갔더니 순식간에 잡혀서 다시 원점으로 되던져지고.. 엄마한테 붙어서 안떨어지고 싶은데, 자꾸 다른데에 눕혀놓고, 난 계속 뭐라 말하고 있는데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데도 없고... 하아.. 그것도 답답하겠지... 


그리고 어리면 무슨 소용인가. 앞으로 또 살아가야 할 날들이 그리 많은데.. 지나고 나니 회상도 하는거지.. 막상 그 상황에 있을 때는 얼마나 하루가 평생같았던가. 그 시간으로 지나고 나니까, "학생일 때가 좋은거다. 지금은 그게 네 인생의 전부같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였다는 걸 알게 될거다. 지금은 안꾸며도 예쁠 때다. 청춘일 때 즐겨라, 나중에는 후회한다.." 등등 같은 소리를 해대는거지, 정작 우리들도 그 시간에는 고민스러웠고 힘들었지 않았나.. 


생각해보면, 인생에 후회되는 순간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만약 그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라는 근본된 인간의 바탕이 아예 바뀌지 않는 한, 또 그 때와 비슷한 선택을 할 것만 같다. 그 당시에 분명 난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을 했었고, 그 고민 끝에 나름의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답을 내린 선택을 한거니.. 결과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야 이랬다면, 저랬다면 좀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하는거지, 분명 과거로 돌아간다면 또 같은 상황이 벌어지겠지. 처음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두번째 옵션 역시 미래를 모르고 내리는 결정 아닌가. 그렇다면 그게 완벽한 결정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매일 하루가 반복되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첫날에는 이런저런 실수를 하다가, 그런 하루를 여러번 반복하고서야 나름 완벽(?)한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들어 아무리 과거에 후회되는 일이 있어도 절대 생각만으로라도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이라고 하지 않는건, 꼬맹이들 때문이다. 내가 했던 최선이든 차선이든 최후의 발악이였든 그런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때문에 이 작은 두 생명이 태어났으니까. 

만약 내가 지금 과거로 갈 수 있어서 인생을 리셋시킬 수 있다면, 난 꽤나 불안할 것이다. 그 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가 어떤 선택을 했었는지 도리어 초조하게 기억하면서 같은 길을 따라가려고 할 테니까. 그렇지 않으면, 설사 내가 또 누군가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내 꼬맹이들은 아닐 수 있는거 아닌가. 


어떤 영화였더라... 집안의 남자들만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는데, 주인공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만나기 위해 여러번 과거 여행을 떠나고 결국 그녀와 결혼하게 된다. 첫 아이도 태어나고 나름 행복했는데, 그의 여동생에게 닥친 일 때문에 그는 동생의 행복을 위해 다시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 그 덕분에 현실에서 그의 여동생은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막상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긴건 아내와 다른 아기. 그의 결정으로 처음에 태어났던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태어나게 된거다. 그래서 그는 다시 과거로 돌아가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다시 태어난 아이도 소중한건데... 나라도 그 영화의 남자와 같은 결정을 할 것 같다. 태어나면서 부터 이미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져서, 다른 아이로 대체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안드는거다.... 


난데없이 90년대 음악들을 듣다가 온갖 생각을 다해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서 다행이다. 나름 마음을 좀 다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나.. 정말 요즘에는 가끔 답답해지니까... 이렇게 날이 좋은데, 그 쨍한 햇살을 받으며 드는 생각이 "빨래 해야겠다"라니...;;; 


.......


4월은 Chickenpox (수두)의 달이다. 3월 마지막날 첫째 꼬맹이가 수두에 걸려 부활절 휴가 후까지 계속 집에만 있다가, 잠복기간인 21일이 얼마 남지 않은 오늘 둘째 꼬맹이가 수두에 걸렸다. 또 일주일 넘게 집에만 있어야겠지.. 하아... 이럴 때는 살짝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유혹이 들긴하는데.. 그래도 언젠가는 할거, 차라리 지금 앓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정말 주부에 엄마가 되어버린 내 모습에 살짝 우울해지지만, 그래도 꼬맹이들이 사랑스럽다. 어이구 밉살스런 귀염둥이들~~


...

내 기억력이 절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분야가 바로 영화다. 영화의 장면도, 심지어 대사도 생각나는데, 영화배우들의 이름은 물론 제목도 기억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다. 노래도 마찬가지인데.. 노래도 알고 가끔은 따라부르기도 하는데, 누가 불렀는지, 제목이 뭐였는지 거의 기억을 못한다. 심지어 가사도 따라부르다가 어느 순간, '어? 이게 이런 가사였어?'하고 새삼스레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러는데... 제가 위에서 말한 두 영화 제목 아시는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