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후 4시. 하루종일 아이들과 외출을 했다가 집에 돌아와서부터 마음이 바빠졌다. 아이들이 아랫층에서 노는 동안 얼른 윗층으로 올라와 벌써 이틀전부터 싸두었던 짐가방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미처 빠트린게 없는지 확인하고, 옷을 갈아입고, 렌즈를 끼우고... 그러고 있자니, 첫째 꼬맹이가 고새 올라와서 나를 총총거리며 따라다니다가 빤히 보면서, "엄마 뭐해?"하고 묻는다. 꼬맹이의 그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빛을 슬쩍 피하며, "어, 엄마 옷입지, 어, 엄마 이거 볼려고.."하고 어물쩍 넘기고 있는데, 거기에 꼬맹이가 다시 "왜?"하고 물어댄다.
5시 10분전. 벌써 저녁은 다 준비되어 있고, 남편이 집에 왔을 때 난 이미 둘째 꼬맹이 밥을 먹이고 있었다. 남편은 외출복에 화장까지 한 내 모습에 웃으며, "You are already ready to go"했다. 남편과 첫째 꼬맹이가 앉아서 밥을 먹는 동안, 냉큼 윗층으로 올라가 짐가방을 슬쩍 들고 내려와 내 차 뒷좌석에 넣어두고.. 6시 10분전부터 아이들을 목욕시키려고 서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7시!!! 첫째 꼬맹이도 잠들고, 둘째 꼬맹이도 기특하게 일찍 잠든 후. 입꼬리에 걸린 미소를 남편에게 날리며, "Bye, thank you, love you"를 던지고 내 차에 올라타 출발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별 5개짜리 스파, 수영장, 헬스클럽, 골프장, 등등 모든 걸 갖춘 호텔. 집에서 차로 30분이면 올 수 있는 이 호텔이 내가 거의 3년만에 처음으로 '혼자' 휴가를 떠난 곳이였다.
그러니까 저번 주였나.. 요즘들어 야생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첫째 꼬맹이와 드디어 성질을 드러내기 시작한 둘째 꼬맹이 사이에서 치이고 치이다 그 우울함이 극에 달해서 혼자 저녁에 근처 수퍼마켓에 갔다가 돌아오는길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호텔 같은 곳에 가서, 그냥 편하게 늘어앉아서 뭐하나 먹으며 티비를 보다가, 아주 긴 목욕을 하고, 책을 읽다가 다음날 아침에 대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느긋히 잠들었음 좋겠다... 그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이 대뜸 '그럼 근처 호텔에 가서 하룻밤 머무는건 어때?'하고 제안하는 거였다. 처음에는 'ㅎㅎ 농담해, 돈이 얼만데 나 혼자를 위해 그런 사치를 부린단 말야?' 했는데, 남편은 의외로 심각하게, '아이없이 당신이 휴가를 가저본게 언제냐, 그걸 생각하면 그정도는 사치가 아니다'하고 말하길래, 슬쩍 설득당하기로 했다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이왕이면 싼 호텔 따위를 알아보고 있자니, 남편이 이왕 갈거면 모든게 갖춰진 최고 호텔에 가서 하루밤 푹 쉬다 오라며 그 호텔을 추천해서 예약해줬다. 거기에 다음날 호텔에 딸린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수 있도록 실장과의 약속까지 잡아주고...
그래서 나의 아주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하룻밤의 휴가가 시작된거였다. 솔직히 토요일부터 설레여서 짐을 싸기 시작하고.. 당일인 월요일에는 심지어 심장까지 떨렸다. 운전해 가는 동안에는 그동안 지겹게 듣고 있던 동요씨디 대신 시끌한 팝이 나오는 라디오채널을 크게 틀어놓고 달렸더랬다.
도착하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바로 돌진. 나중에 덩달아 내 휴가에 참가한 여자 친구가 자기 아이도 재우고 호텔에 도착한 후에는 같이 스팀룸에 들어가 실컷 수다를 떨다가, 나중에는 둘다 옷을 차려입고 바에 내려가 와인 한 잔씩 시켰다. 그리고 "Let's not talk about pregnancy, labour, and babies"란 룰을 정해두고 바 영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수다.. 나중에 방에 돌아와서는 여유롭게 씻고, 얼굴에 마스크 팩도 붙이고 책도 읽다가 새벽 1시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아침에는 일어나서 드랍커피를 내리고.. 여유롭게 아침을 즐기다가, 일어난 친구와 함께 헬스클럽에 갔다가, 다시 여유롭게 샤워를 즐기고, 풀메이크업에 모유수유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드레스를 입고, 힐을 신고 아침을 먹으러 내렸갔다. 먹고 있자니, 근처에 있던 아이가 밥을 먹다가 '아아~~~'하고 소리를 지르니 부모가 '쉬~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저게 원래 내 모습인데.. 싶어 기분이 묘해졌다. 하긴 전날 밤에도 꼬맹이 둘이나타나는 바람에 새벽에 '내가 지금 어디지?'하는 생각에 놀라 깨서 잠을 설치긴 했다. 그리고 늦게 잤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보통 일어나는 6시 반이 되니 눈이 번쩍 떠졌다. 눈을 뜨자마자 혹시 남편이 전화나 문자라도 한 건 아닌지 걱정되어 폰을 살피고... 아이들이 다 깼을 7시쯤에는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Is everything OK"하는 문자를 날렸더랬다. 내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은 다들 무사(?!)했고, 남편도 여전히 건강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ㅎㅎ;;;
아주 느긋하고 여유로운 아침 식사. 기분 좋게 친구와의 대화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 체크 아웃을 한 후 갔던 미용실에서 받았던 아주 만족스러운 헤어손질과 달라진 헤어스타일...
24시간도 되지 않았던 짧은 휴가였지만.. 정말 온전히 내게만 주어진 시간이 좋았고.. 잠깐이나마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나일 수 있던 순간이 좋았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난 내 아이들을 생각했고, 혼자 아이 둘을 돌보고 있는 남편을 걱정했지만...
.....
그 후 오후에 돌아와서 내게 안겨서 안떨어지려는 아이들을 달래며, 힐을 벗고, 코트를 다시 고이 걸어 옷장에 넣어두고, 방으로 올라가 스타킹과 드레스를 벗고, 오래된 추리닝 바지와 모유수유용 낡은 티셔츠를 입고, 안경을 쓰고, 잘 손질된 머리를 다시 틀어올리고, 주방으로 내려와 저녁을 준비하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신데렐라가 이런 기분이였겠구나..... 허허허;;;
어쨌건, 마법은 풀렸고, 난 다시 내 두아이와 남편이 있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왠지 예전처럼 갑갑하진 않다. 다시 내 안에 에너지가 채워진 기분이다. 그래. 힘들게 일한 엄마들이여, 가끔은 당신도 당신만의 온전한 휴가가 필요하다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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