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가 쨍한 날에는 하염없이 앉아 있었던 브라이튼의 바닷가가 생각난다. 하늘이 유달리 낮다고 생각했던 곳.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바다만 주구장창 바라보며, 한때는 겨울바다를 좋아했는데 이제는 겨울바다라면 신물이 난다고 생각했던 그 때. 이 바다를 따라 가다 가다 보면 한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신파적인 생각을 했다가 문득 몰래 밀항하려다가 반쯤 추위, 배고픔, 학대에 시달려 죽었다는 중국인 불법입국자들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난데없이 이민자들의 삶을 상상하던 그 때...
현재 11년의 시간을 영국에서 보내고 있긴 하지만, 원래부터 영국으로 오려던 걸 계획한 건 아니였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에서는 지방촌놈에 훨씬 가까워서 서울만 가도 살짝 긴장하고, 서울에서 택시는 절대 타지 않고 (혹시지방사람인거 알고 바가지 씌울까봐;;), 다들 비행기타고 가본다는 제주도도 배타고 텐트 들고 다녀왔으니까... 그래서 내게는 영국으로 올 때 탔던 비행기가 생애 첫 비행기 경험이였다.
처음에는 2002년쯤에 영국 브라이튼으로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왔었다. 사실 이것도 내 의사라기 보다 거의 '보내졌다'라고 부르는게 맞아서... 브라이튼이 어딘지도 모른체로 영국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고, 그 길고 길던 줄을 견디고 입국심사대에 갔더니 내 얼굴 한 번 보고 바로 옆으로 가라는 손짓. 그 손짓을 따라 영문도 모른체따라가니 X-RAY를 찍어야 한다고 또 길고 긴 줄을 섰더랬다. 공항에서 x-ray라니... 그렇게 2시간 넘게 기다려서 마침내 게이트 밖으로 나오니 공항 픽업 기사가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었고,
"Where are we going?" "Brighton" "Where is it?" "It's not very far, about 2 hour drive" 하는 짧은 대화 끝에도착한 곳이 브라이튼 (정확히는 브라이튼 옆에 붙어있는 Hove라는 곳)이였다.
그렇게 정말 준비없이 시작된 브라이튼에서의 시간은... 외로웠고, 힘들었고, 궁핍했다. 당시만 해도 환율이 최고를 찍던 때라 1파운드에 2000원 정도였는데... 그 사실만으로도 기가 눌렸는데 실제로 1파운드로 제대로 살 수 있는 음식 같은 게 없다는 사실에, 그 때는 1파운드 동전이 무슨 금화처럼 느껴졌다. 집에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돈을 아끼느라 호스트 집에서 주는 아침, 저녁을 제외하고 점심은 대부분 굶거나 사과 하나 정도를 먹었고, 저녁 때마다 가능한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던 까닭에 음식 저장하는 다람쥐마냥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어학연수 기간동안 12kg 정도 불었다 - 거의 임신한 수준 ㅠ_ㅠ). 거기에 제대로 난방이 안되던 추운 방, 4시면 어둡던 영국의 긴 겨울, 늘 꾸리꾸리한 구름 끼고 비 내리던 영국의 날씨, 늘 내가 그 집의 불청객인냥 대하던 호스트패밀리, 맘편하게 대화할 사람 한 명 없다는 고립감, 등등... 모든게 더해져서 원래 단걸 먹지도 않던 내가 처음으로 초콜렛 중독에 걸려서 (아니, 설탕 중독 이라는게 맞겠다. 초콜렛도 때론 비싸서 못사먹었으니까;;;) 피부까지 다 뒤집어졌던... 아... 그 외모의 암흑기... 그리고 사회생활의 암흑기...
영국은... 확실히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렇게 길었던 겨울에는 정말 모든게 우울해보이고 그랬는데, 해가 길어지고 해 얼굴 볼 시간도 좀 많아지니 확실히 삶의 질이 향상되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다른건 아무것도변한게 없는데도;;)
시간이 지나면서 깡도 생겨서 그 불친절한 호스트 집을 때려치고 나와서 빨간 머리의 동성애자 영국여자의 집으로 이사를 했고, 학교까지 매일 2시간 왕복으로 걸어다녔고. 여전히 점심은 먹지 않았지만 돈을 아껴 틈틈이 Duke of York's Picuturehouse에 들려 독립영화 같은 걸 보기도 하고, 주말에는 역시 Brighton Marina까지 바닷가를 따라 또 걷고 걸어서 영화를 보고 오기도 하고, 브라이튼-호브에 걸친 많은 거리들을 걷고 또 걷거나 그러다 지치면 바닷가에 마냥 앉아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가곤 했다.
브라이튼 기차역 바로 옆에 있는 펍에서 파트타임으로 일도 시작했고. F 단어를 모든 단어 사이에 집어넣던 주방장과 엉덩이의 반을 드러내는 바지를 입고 다니던 보조주방장, 늘 농담을 던지던 홀 매니저, 키가 작고 단발의 처음에는 좀 쌀쌀맞다가 나중에는 피곤해보인다고 괜찮냐고 물어주기도 하던 바텐더, 등등.. 일이 끝나고 나면 통에 담겨있던 맥주들을 파인트 잔에 다 비워서 탁자 하나 위에 다 올려놓고, 청소가 끝난 뒤 모여앉아 그걸 마시고 있자면, 가끔은 지나가던 학생들이 창문을 두들겨 들여보내 달라고 소리치고.. 어떤 날에는 브라이튼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다는 학생들이 들어와서 자신들이 쓴 시를 읽어주고, 그런 하루의 끝에는 데킬라를 한잔씩 마시며 헤어졌다. 보조주방장이 DJ를 한다고 해서 우루루 몰려갔던 영국의 첫 클럽. 다들 약했나, 술이 벌써 취했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모두 '둠칙둠칫' 하는 리듬에 한 손에는 병맥주를 들고 흐느적 흐느적거리던 곳.
키가 크고 가슴도 큰데 때론 노브라로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던 일본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가본 하우스파티. 지금 생각해보면 Fancy dress 파티였던 것 같은데 집주인과 그 친구인 여자들이 물랑루즈에 나올법한 코르셋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복작복작거리던 건물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앉아있다가 손가락도 길고 머리카락도 길었던 다른 일본 여자를 만났는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아주 적극적인데다가, 전화번호도 물어보고, 실제로 다음날 언제 다시 만나자며 연락도 해와서, 두번째로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혹시 그녀가 게이인지, 그렇다면 어떻게 정중하게 거절을 함과 동시에 그냥 친구로 지낼 수 있는건지, 그런 아주 그 때는 심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혼자 드라마를 썼었던 경험이 있다. 물론 그녀는 내게 고백(!)따윌 하질 않았고, 대신 현란한 손놀림으로 뜨거운 우유를 저어서 카푸치노를 만들어 주었고, 채소로만 된 피자를 대접했고, 그녀의 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서식하고 있던 Magic Mushroom을 소개시켜줬다. 그렇게 특이했던 그녀와의 인연은 그녀가 네덜란드로 거주지를 옮기고 나서도, 일본으로 돌아가고 나서도, 문득 강한 바람이 불다가 내 문을 두드리듯 드물지만 뜬금없고 강렬하게 이어지고 있다.
주말에 Brighton Marina까지 해변가를 쭉 따라 걷다보면 가끔 나체로 자전거 옆에 누워서 "Hello!"하고 인사하던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저녁에는 불을 피워놓고 모여있다가 나체로 바닷가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언젠가 Brighton Pier 근처의 해변가 벤치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자니 어떤 영국 남자가 다가와 옆에 앉아 말을 걸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간단히 말대꾸를 하고 있자니, 나중에는 자기 집이 근처라며 같이 커피를 마시러 가자는 둥 수작을 거는거다. 그래서 나름 영국식으로 아주 정중하게, "Thank you for the invite, but sorry, I don't think I have time" 이렇게 돌려돌려 거절했는데, 이 사람이 꽤나 끈질기게 예전에 사귀던 일본인 여자친구가 자기에게 말도 없이 일본으로 돌아가버렸다는 둥, 그래서 상처받았고 슬프다는 둥, 그런데 넌 괜찮은 사람같다, 얼굴선이 예쁘다 (한국에서라면 사각턱이라고 놀림받고 심지어 남들 맘대로 성형수술의 가능성까지 불러일으키던, 그래서 미용실에서도 머리를 다 넘겨서 얼굴선을 드러내는 것보다 층을 내서 얼굴을 감싸면 - 숨기면 - 어울릴거라던 그 얼굴선을!!) 등등 별 소리를 다하길래, 또 나름 정중하게 위로한답시고, "You seem to be a nice person, I am sure there is somebody for you" 그랬다가, "You don't even want to go with me, why do you say I am nice?!" 하며 절규(!) 하길래 그냥 그 자리에 그 남자를 혼자 두고 일어서서 다른 곳으로 걸어갔었던 적이 있다. 그 때 깨닫게 된건, 어차피 상대방에게 호감도 없고, 뭐 어떻게 할 생각도 없으면 그냥 단호하게 "Sorry"하고 자리를 피하는게 낫겠구나. 그리고 걸어가면서 드는 생각은... 저 남자는 또 얼마나 많은 여자들에게 저렇게 작업을 걸까, 분명 나라는 사람이 정말 마음이 들어서 그랬다기 보다 외국인 - 동양인 - 이라는 생각에 유럽여자들에게 처럼 바로 거절 당하거나 뺨 맞을 위험이 적어서 그런거 아닐까, 정말 국적이나 인종을 떠나 그 사람 그자체로 좋아져서 연애를 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허허.. 사람이 미래를 모른다는 말이 정말 맞다;;)
그렇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브라이튼에서의 시간동안 General English를 공부하는게 지겨워져서 IELTS 공부를 시작했고, 이왕 영국에서 지내본거 영국을 좀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에 돌아간뒤 유학을 준비해서 2004년에 다시 나왔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난 여전히 영국에 살고 있고, 외국인 남편을 만났고, 아이까지 둘을 낳았다. 브라이튼에 있을 때는 진짜, 내가 먹고싶은대로 먹고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남 눈치볼 것 없은 내 공간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랬는데... 이제는 정원이 딸린 집에서 온갖 식재료를 사다가 요리도 하고, 심지어 김치도 담궈먹는 삶을 살고 있다.
브라이튼에는 그 뒤 4년전인가 캠브리지에서의 친한 여자친구들과 다시 놀러 간 적이 있다. 그 때의 브라이튼 역시 해가 쨍했고,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카페나 음식점이 많아졌으며 (어쩌면 예전부터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있었을 때는 그런 곳에는 가볼 엄두도 안났기 때문에 아예 신경을 안썼을수도;;), 해변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곳에서 난 이제 내게 가장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친구들과 빈티지한 가게들을 들락거리며 쇼핑을 했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에 케익까지 주문해 먹었으며, 해변가에서 심지어 비키니를 입고 나란히 누워있기도 했고, 저녁에는 괜찮은 음식점에서 와인까지 곁들어 식사를 했다. 브라이튼에 있을 당시 내게 가장 럭셔리한 식사 공간이였던 중국음식점 China China는 사업이 잘되었는지 예전의 작은 공간을 벗어나 거대한 음식점으로 변해 있었고 (그래도 음악은 여전했다), 10파운드가 넘던 입장료가 부담스러워 나중에 브라이튼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가보자, 하고서도 가보지 못했던 Royal Pavilion 안에도 친구들과 갔었더랬다.
그렇게 친구들과 브라이튼의 거리를 걸으며 그 당시 정말 관광온 것 처럼 즐겁게 보냈지만... 그래도 길거리에서 종종 보게되는 동양인의 어학연수생으로 보이는 이들을 볼 때마다 난 2002-3년의 나를 생각했다. 무작정 걷고 걷고 또 걷고,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않고, 아무 것도 사지 않고, 그저 걸으면서 주위 모든 것들을 보기만 하던 나를.
.......
해가 쨍하고, 아이들이 잠들어 아주 간만에 조용한 혼자만의 시간이 생기니 별 생각이 다든다. 참.. 언제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된건지... 분명 언젠가는 이 조용한 웨일즈에서의 시간도 추억하게 될 날이 올거다. 어쨌건, 영국은 날이 좋을 때 맘껏 즐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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