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나는 육아가 버겁다

민토리_blog 2015. 1. 24. 00:20

오늘도 오전에 집근처 정부에서 운영하는 playgroup에 다녀왔다. 매주 월, 목요일 아침 9시반에서 11시반까지 운영하는데, 요즘 여기에 나처럼 이제 2살 전후인 아이와 6개월 전후인 아이를 데리고 오는 엄마들이 많아서 서로 볼 때마다 하는 인사가, 


"How are you doing?"

"Alright. Surviving"


하는 식이다. 그러다 18개월 된 꼬마와 3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온 엄마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첫째를 낳고부터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약까지 처방받았는데, 그런 후 얼마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하는 바람에 약도 더이상 먹지 못하게 되고, 둘째를 낳고서도 산후우울증에 시달려서 지금은 그룹카운셀링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말하길 아이 둘을 돌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힘든건 주체할 수 없이 우울하고 힘들 때 사람들이 그녀에게, "Look at your children, they are lovely and healthy. You shouldn't feel too bad about yourself"라고 할 때라고 했다. 난 그녀의 그 말에 격하게 공감을 표했다... 사람들이 '육아가 힘들다'라고 말할 때, 보통 아이가 엄마를 힘들게 하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통 '왜, 아기가 어떤데? 아기가 많이 우냐? 힘들게 하느냐? 잠을 잘 안자느냐?' 하고 묻고, 아기에게 별 문제가 없다면, 왜 그 엄마가 그렇게 힘들어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일 때가 많은데... 정.말. 그건 좀 별개의 문제다. 


그래, 아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인내심 레벨이 산속에서 몇년 수련한 스님만 한 수준인 사람이라 해도, 아기가 잠도 안자고 밤에 30분-1시간 간격으로 깨서 울면서 잠고문을 시키면 사람 딱 돌기 직전까지 될 수 있다. 아기에게 Colic이라도 있어서 매일 2-3시간씩 자지러지게 울어대면, 정말 집 뛰쳐나가고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산후우울증은 꼭 아기에게 문제가 있어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나같은 경우도 첫째를 낳고 6주째 정기검진에서 한 산후우울증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둘째 때는 더욱 높은 점수를 받아서 의사를 긴장시킨 케이스다. (심지어 약물을 복용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볼 정도;;;) 산후우울증 테스트에서 뭘 물어보냐면, 예전보다 덜 웃는다, 미래에도 삶이 나아질거라는 생각이 안든다, 현재 생활에서 날 신나게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등등에 대해서 '전혀 아니다, 아니다, 그냥 그렇다, 맞다, 정말 맞다'로 체크를 하고, 거기에 따라 점수를 내는건데.. 어떻게 보면 단순한데, 정말 그 테스트를 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면 또 아이와 씨름해야 하고, 내일도 이런 생활이 반복될거고, 내가 어딜 가고 싶다고 해서 당장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식재료를 사러 가는 쇼핑도 내맘대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더 기대되고 신난다는 거지?.... 


이렇게 얘길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래도 아기가 이렇게 잘 자라는게 얼마나 축복이냐, 이 순간도 금방 지나간다. 아기일 때가 차라리 낫다, 더 크면 더 복잡하다, 이렇게 아기인 순간이 얼마나 짧은 줄 아냐, 이 순간을 즐겨라, 집에서 아기만 볼 수 있다는 것도 축복이다, 다른 사람들은 젖도 안뗀 아기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한다, 집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남편도 일찍 퇴근해서 도와주고 그러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 등등.. 그런 소릴 하는데... 그럴 때마다 좀 답답해지는게... 


나도 다 안다. 내 아이를 사랑하고, 매순간 그 작은 손짓 발짓에 웃게 되고, 하루하루 조금씩 커가는 아이의 성장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하고, 이렇게 작고 귀한 생명을 내게 맡겨준 어떤 존재에게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답답하고 우울해진다. 일시정지 버튼이 눌러진 내 인생에 대해 불안해지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재생되지 않고 그대로 멈춰있을까봐 두렵다. 이렇게 아이와 집안에서 정체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 밖의 세상은 마치 딴 세계마냥 돌아가고 있는걸 보면 내가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여전히 연애에 대해 고민하고, 오늘은 뭘 입을지, 화장은 잘 먹었는지, 고민하는 다른 젊은 여자들을 보면, 마치 내 여자로서의 시간은 이미 멈춰서 끝나버린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같은 박사학위를 받고 한때 어울려 모임을 가지고 파티를 했던 친구들이 세계 곳곳에 퍼져서 일하는 모습들을 보면, 그 때의 나는 어디가고 집에서 늘어진 추리닝바지에 아이 우유 자국이 남은 낡은 셔츠를 입고 있는 내가 있는 건지, 마치 나만 도태된 것 같고, 이럴려고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공부를 한 건 아닌데, 하는 생각도 들고, 내 지나간 시간들이 그립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난다. 


넓은 창이 있는 거실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를 옆에 두고 정원을 내다보고 있자면, 문득 어디론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미친 척 하고 중고자전거를 산지 이틀만에 영국 브라이튼에서 프랑스 파리로 갈려고 새벽에 자전거 패달을 밟았던 때처럼.. 한달동안 유럽을 떠돌았던 때처럼... 그냥 그렇게 떠나고 싶은거다. 지금은 운전을 하니까, 그냥 작은 가방 하나를 챙겨서 차 트렁크에 집어넣고 그냥 달리고 싶다. 어두워지면 가까운 마을이나 도시에 멈춰 잠자리를 찾고, 그게 안되면 그냥 어디 주차시켜 놓고 잠을 자고, 또 달리고... 가끔은 그런 충동이 커져서 아이 가방까지 챙겨서 갈까 했던 적도 있다. 물론 아기를 차에 데려다 놓기도 전에 지쳐버려서 그만 뒀지만.. (왜 꼭 아이들은 집을 나가기 전에 뭔 일을 벌이는건지... 나가기 전에 올린다던지, 똥을 싼다던지, 배고프다고 울어댄다던지...;;;;;)


특히 지금은 아이가 둘. 왜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에서 사슴이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주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면, 선녀는 얼마나 지상에서 삶이 힘들었으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도 그렇게 떠나고 싶어했을까...) 솔직히 지금도 당장 떠나야 한다면 둘을 데리고 갈 순 있겠지만, 셋이라면 정말 감당안될 거 같으니까... 요즘에는 제일 짜증나는 말이, 집에서 '노니까', 혹은 "At least you have some 'free' time..." 하는 말이다. 그러는 댁이 집에 있어보세요, 그런 '노는' 혹은 'free/자유' 시간이 나는지 -ㅁ-+ 이건 아침에 눈떠서 출근 시간 없이 바로 현장 투입됬다가, 아기가 잠듦과 동시에 퇴근이 가능한,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잠시 차 한잔 마쉴 여유도 없는 12시간 근무를 하는 기분이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숨쉴 틈을 찾겠다고 아이들이 낮잠자는 틈을 타서 내 뇌속을 헤집어 글을 쓰고 있다. 안그러면 정말 일상에 묻혀버릴 것 같아서.. 


나는 아이 돌보는 직종에 일하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내 아이들을 돌보는 것만으로도 때론 이렇게 벅찬데, 남의 아이들까지, 그것도 매일 내 직장으로 여기며 살 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꼬맹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 사랑스럽고 뿌듯하고, 그 모든 변화를 내가 옆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다음달부터는 첫째꼬맹이가 다시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 때가 되면 또 유치원에 보내는 아침마다 괜히 마음이 짠하고 미안해지고 그럴 거다. 그래도 그 시간동안 뭘할건지 결정하며 뿌듯해하기도 하겠지. 그래. 이런 시간도 얼마 안남았다. 그러니 현실에 충실하자!! (물론 이렇게 맘 먹어도 꼬맹이 둘이 깽판을 치고 있으면 또 당장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겠지, 어차피 떠나지도 못할거면서, 아니 떠난다해도 배경만 바뀔 뿐 일상은 그대로란걸 알면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