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정확히는 그 커플을) 알고 지낸지는 벌써 몇년째 되었다. 그는 다정한 사람이고, 적어도 내가 아는 남자들 중에 가장 아이라는 보편적 존재 그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가 전에 일하던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고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지는 동안, 내가 그에게 이참에 차라리 선생이 되어 보는 건 어떠냐고 꽤 심각하게 물어볼 만큼... (그는 선생이 되지 않았고, 지금은 운전을 엄청 하고 다녀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처음 그들 커플에게 아이가 생겼을 때, 주위 사람들 모두 그들이 그들 아이에게 최고의 부모가 될 거라고 축하해줬다. 남자는 다정다감하고 아이 자체를 좋아해서 남의 아이도 자기 자식마냥 데리고 놀아줄 정도였고, 여자는 초등학교 선생님답게 엄격함과 친절함, 인내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의 부인이 임신 7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그녀는 이상한 진통을 느껴서 병원으로 실려갔고, 오랜 수술 끝에 칠삭동이 아들을 낳았다 (아니, 꺼내졌다, 라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거다). 아이는 인큐베이터에 넣어져서 오랜 시간동안 의료진들의 보살핌을 받아야했고, 마침내 아이가 퇴원할 수 있게 되자 엄마가 된 그녀는 유달스레 아이를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다들 아이가 살아난 걸 기적이라 불렀으니, 행여 그 기적이 사라질까봐 두려워, 아이를 품에서 놓을 수 없는 마음은 엄마로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였다.
그렇게 잘 자라던 아이에게서 뭔가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한 건 아이가 두살이 넘으면서부터였다. 아이가 소리를 낼지언정, 말이라고 부를 수 있는걸 하지 않고, 으레 그 또래 아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관심이랄까, 그런 걸 보이지 않는거였다. 그래도 아이의 부모는 그저 말이 늦을 뿐이라고, 그래도 우리 말을 알아듣긴 한다고, 우리 아이에겐 어떤 문제도 없다고 거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듯 늘 말했다. 아이의 지각발달에 좋다는 책이나 장난감을 사다 모으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인 유아용 만화와 연관된 모든 책, 장난감, 디비디를 사다주고, 아이가 반응을 보인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고…
아이의 엄마인 그의 부인이 점차 대외적으로 말이 없어지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반면, 그는 여전히 침착했고 긍정적이였고, 한순간도 집중하지 않으려는 아이를 안고 책을 읽어주거나 아이 뒤를 열심히 따라다니며 놀아주었다. 3살이 넘어서도 아이는 나아지기는 커녕, 도리어 커진 몸 때문에 더 행동통제가 힘들어졌다. 4살이 되어 유치원 학교에 갈 시기가 되자 아이의 다름은 더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이상 사람들은 "말이 늦게 트이기도 한다더라"하는 위로섞인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고, 동시에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거냐"하는 염려담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의 부모인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매번 볼 때마다, 아이에겐 아무 문제가 없다, 그저 시간이 좀더 걸릴 뿐이다, 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런 그들의 말에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그럴거다, 라고 해주는 것밖에...
그래도 처음에는 아이 엄마의 얼굴을 봐서 아이 엄마가 일하는 일반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아이 반의 담임을 포함한 동료 선생들에게서 조금씩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그들은 아이를 데리고 전문적인 유아 상담사를 만나거나, 언어장애 치료 수업 등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길 몇달이 지나고도 아이가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자 마지막으로 그들은 뇌 전문 병원을 찾아갔고, 거기서 그들은 아이가 태어날 때 뇌에 약간의 손상이 갔다는 것과 정도는 약하지만 자폐증 증세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걸 인정하고 그들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또 한편으론 안도해하는 듯도 보였다. 이젠 언제 응답받을지 모를 기도를 하지 않아도 되어서인지, 아예 다르다는건 인정함에서 오는 안도함인지... 조금 지쳐 보이던 그들의 관계도 다시 생기를 찾는 듯했고, 정체된 듯한 관계가 진전되는가 싶더니, 그해 그들은 둘째 아이가 생겼노라고 내게 연락해왔다.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내가 첫째 꼬맹이를 임신하고 있던 시기라서 나역시 들떴고, 우리는 나중에 아이들끼리 친한 친구가 될 수 있게 자주 만나자, 뭐 그런 얘길 하며 신나했다. 후에 나는 꼬맹이를 낳았고, 그녀의 둘째 역시 남자아이란 소리에 잘됐다며 웃었는데...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그들이 궁금해 나중에 내가 연락했을 때, 그녀는 나와 통화조차 하고 싶지 않아했고, 대신 그는 아주 지친 목소리로 그녀가 유산했음을 알렸다. 공교롭게도 또 임신 7개월이 되었을 때 다시 병원으로 실려갔는데, 이번에는 시기를 놓쳐 이미 심장이 멈추었다고 했다...
그 일 이후 6개월 정도 후에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었는데, 그들 모두 이년의 시간을 한꺼번에 먹어버린 마냥 지쳐있었고 나이들어 보였다. 특히 그녀는 여전히 임신 상태의 몸이 회복되지 않아 더 힘들어 보였고... 아마 그 때부터 였을거다. 나와 그녀 사이에 보이지 않는 어떤 유리 상자가 놓여진 기분이 들었던건... 우리는 그 상자안에 그녀의 유산 사실과 우리 앞에서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는 그녀 아이의 상태에 관한걸 다 넣어두고, 그저 잘지내냐고 묻고, 그녀는 다 괜찮다고 말하고, 내 꼬맹이의 작은 손짓과 방실거리는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침묵했고, 지금도 나와 그녀는 서로의 중간에 있는 유리상자를 어떻게든 만지지 않으려고 가능한 피상적인 것들만 붙잡고 대화 비슷한걸 하거나, 그저 얼굴에 미소만 띄우고 침묵한다.
다행히도 그가 마음을 닫지 않은 까닭에 우린 여전히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던 그가 이년 전 쯤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지치고 힘들다는 말을 인사처럼 하기 시작했고, 특히 그의 아이와 다같이 만날 일이 있으면 종종 그는 정말 피곤하다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가 제대로 된 얘기를 할 기회가 생기면, 그는 그의 아내가 그에게 늘 화가 나있고, 아이와 유산 문제까지 통틀어 그의 문제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아이에 관해서 어떤 것도 그와 상의하지 않으며, 나아가 그의 가족들을 보는 것조차 꺼려한다며,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작년 연말에 인사차 연락이 닿은 그는 고부갈등이 깊어질 때로 깊어진 그의 부모와 아내 사이에서 괴롭다고 했고, 결국 새해 인사를 갔다가 자신의 부모에게 차라리 이혼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도 그는 이미 자신의 한계치를 넘은 듯 보였고, 갈수록 도대체 그가 어떤 사람이였는지 기억이 안날만큼 부정적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주제넘은 소린줄 알면서도 아주 조심스레, 어떻게 보면 이혼이 낫지않느냐, 하고 물었는데.. 거기서 그가 눈물을 내비칠줄은 정말 몰랐다. 그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그럼 내 아이는 어쩌냐며… 운전을 많이 해야하는 그보다 선생님인 그녀에게 육아권이 갈건 뻔하고, 같은 집에 사는 지금도 그의 아내는 어떻게든 아이를 자기 품으로 감싸려고만 하고, 자기 가족들에게 보여주려고도 하지 않는데, 이혼하면 자기 아이를 더 볼 수 없을건데, 그걸 어떻게 견디냐고… 그 말에 더이상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 내가 섣불렀구나, 하고 속으로 후회하면서, 미안해하면서, 그리고 왠지 해피엔딩의 가능성이 희박해보이는 그의 관계에 답답해하면서…
....
어쨌건, 난 그가 몇 년은 더 견딜거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단단한 자기보호막을 만들거나, 아니면 상처에 못견뎌 너덜해진 모습으로 그녀에게 이혼통보를 받을지도 모른다..
은근히 주위에 아이를 낳고 부부 사이가 틀어지거나 이혼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전에는 이혼할거면 아이 낳기 전에 하지 왜 애를 낳고 해, 애는 뭔 죄야, 하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엔 얼마나 못견디겠으면 애를 낳고 이혼하기로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부부관계라는게 둘만 있을 때는 개인공간이 그래도 있으니까 서로 다른 점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면 서로 도망갈 곳 없이 육아라는 현실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계가 실험대에 오르게 된다. 서로 모난걸 깍아내고, 내 자리도 좀 내줘가며 맞춰 가던가, 전투동지로 변해서 내 할 일에만 충실하고 가능한 총맞지 않도록 알아서 내 몸만 보호해 가든가, 아니면 서로 찌르고 찌르다가 이대로는 내 아이 교육이고 육아고 뭐고간에 내가 죽을거 같아서 그냥 갈라서던가...
그래도 아이를 위해 이혼하는게 나을까, 아니면 그래도 참고 살아야 할까… 여기엔 정답이 없지 않을까.. 이혼이라는 것 자체를 상처로 받아들이는 아이도 있고, 자기를 위해 참고 산다는 그 사실을 느끼면서 고통받는 아이도 있으니까...
그래도 확실한거 하나는 부모가 행복하지 못하면 아이는 그걸 귀신같이 알고, 보통은 그게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러다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혹은 부모를 원망하며 공격적으로 자라거나.. 그렇다고 부모가 행복하기 위해 이혼하고 자기 삶 찾아 가면, 또 어떤 아이들은 그런 부모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원망하면서 자랄 수도 있을테고…. 참… 정답도 없고, 결정은 힘들고, 어떤 결정을 내려도 상처받거나 고통받는 사람은 반드시 있고…
그런데 또 생각하면, 고통없고 상처없는 가족관계는 또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고… 크고 작든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이어져 가는게 가족 아닌가… 그럼 그래도 차선책으로 각자 스스로가 행복할 방법을 찾고 그 책임도 각자 지기, 를 할 수밖엔 없는거 아닌가...
왠지 가족과 부부관계, 아이의 의미 등에 대해 많을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새해의 시작이다. 왠만하면, 가능하다면, 보다 많은 가정들이 올해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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