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물, 자전거, 튤립의 나라, 네덜란드

민토리_blog 2014. 4. 30. 04:52

부활절 휴가로 네덜란드에 10일정도 다녀왔습니다. 제게는 8년간 인연을 이어온 네덜란드인이신 제 2의 부모님이 계시는데요, 이번에 그 분들 댁에 가서 일주일간 잘 얻어먹고 놀다가 남은 3일은 거대한 기차박물관이 있다는 Utrech과 튤립 공원인 Keukenhof가 있는 Leiden에 갔다 왔죠. 네덜란드는 제 2의 부모님이 그 분들 덕에 몇번이고 다녀온 곳이지만.. 이번에 아기를 데리고 저 혼자가 아니라 '가족'으로 다녀오니 뭐랄까.. 좀 다른 것들이 보였다고 할까요.. 


1. Born to be a mother


제 네덜란드 부모님격인 두 분은 벌써 70대에 접어드신 분들인데.. 정말 기분이 넘쳐나시죠;; 지금도 두분이서 캠핑카를 끌고 한달 정도 네덜란드나 독일 등을 여행하시는 건 물론, 작년에는 브라질에 가서 6개월동안 지내다 오시더니 올해에는 프랑스로 2주간 봉사활동 가신다네요.. 두 분은 2년후면 결혼한지 50년을 맞으신다는데.. 두 분 사이에 자식이 9명, 손자/손녀들은 21명. 특히 어머니이신 S는 형제 자매들만 9명이라고 하셨는데, S의 온 가족 (형제/자매, 그들의 자식들과 손자 손녀)이 5년마다 한 번씩 가족 모임을 하면 그 수만 250명이 넘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보통 캠핑사이트 하나를 통채로 빌려서 모임을 한다고;; 도저히 제 머릿속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그림인데.. 그래도 가족 사진을 보니, 어마어마하긴 하더군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 그런지, 그녀를 보면 정말..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났다, 라는 말이 떠오른다고 할까요.. 물론 세상에는 우리가 흔히 '전업주부'라고 부르는 많은 어머니들이 계시지만, 그 분은 보면.. 뭐랄까.. 그게 천직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체적으로 밝으시고 긍정적이시고, 특히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빛이 난다고 할까요. 잘 정돈된 집이라거나, 요리사 뺨치는 요리실력이라거나, 그런 게 아닌데도 그냥 그녀의 집에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절로 들죠. 그래서 사실 전 이런 말 하면 한국의 제 가족들이나 남편의 가족들이 서운해 할지 몰라도, 그녀의 집에서 훨씬 편안하게 잘 쉬다 올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볼 때 마다 저도 모르게 '아~ 나도 저렇게 아기 4-5명 낳고 옹기종기(?!) 모여 살고 싶다'같은 전염된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번에 그녀의 둘째딸이 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방문한걸 보곤 그런 생각을 깡그리 갖다버렸죠 -_- 뭐랄까.. 상상과 현실의 괴리를 직접 목격했달까요.. 전 아무래도 그냥 2명 정도로만 만족해야 겠다 싶었죠;; 


2. 가정적(?)인 나라


마약 등이 합법이고 성에도 개방적이라는 사실과 달리, 제가 본 네덜란드의 가정들은 의외로 보수적인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전에 유럽에서 아이들의 행복지수를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네덜란드 아이들의 행복지수는 Top3에 들 정도였죠 (영국은 뒤에서 5번째 안에 들었던가요;;). 그 사실에 대해서 저의 부모님분들은 물론 다른 나이드신 분들도 공통적으로 말씀하시길, 'Because a mother looks after them'이라고 하셨죠. 의외로 남자가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여자는 집에서 가정과 아이들을 돌본다, 라는 생각이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나서 뭐라 다른 반박도 할 수 없을 정도였죠. 물론 저와 가까운 20대 후반, 30대의 네덜란드 친구들은 그 입장이 대략 반반으로 나눠지는 걸 보면, 그것도 많이 달라지고 있는거겠지만요.. 그래도 도시가 아니라 작은 마을 같은 곳에서는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우루루 자전거를 타고 나와 집으로 점심먹으러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죠 (그 말은 집에 밥챙겨줄 사람이 있다는 거겠죠?)

게다가, 네덜란드의 집들은 어쩌면 그리도 다 잘 꾸며지고 다듬어져 있는 걸까요?? 정원은 물론 대부분 창이 커서 밖에서도 안이 다 드려다 보일 정도인데, 다들 꽃이 만발하고 참 예쁘게 해놓고 살더라구요. 그런게 이들의 생활방식인가, 하고 생각하니 그제야 캠브리지에서 잠깐 렌트해서 사는 집에서도 이것저것 꾸며놓던 네덜란드인 친구가 이해되기도 하고.. 

그래도 큰도시로 갈수록 비슷비슷한 아파트 같은 건물이 많아지는 걸 보면, 도시는 어쩔 수 없이 다 비슷하고 삭막하구나, 하는 생각에 좀 우울해지기도 했지만요;;


3. 물, 물, 물


네덜란드 하면 역시 물이 많은 나라죠.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 그래서 개간지가 많은 나라. 전 물을 좋아하는 까닭에 canal로 둘러싸인 녹색의 평지가 많은 네덜란드를 상당히 좋아하는 편인데요. 심지어 산을 포기하더라도, 강과 숲을 얻을 수 있다면 네덜란드에서 살고 싶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특히 그 분들이 네덜란드의 북동쪽에 있는 말그대로 네덜란드의 전형적인 전원 마을에 살고 계신지라, 그 정경에 듬뿍 빠진 것도 사실이구요. 그런데 이번에 좀더 현실적인 남편과 함께 간 까닭에 네덜란드의 숨은 부분들을 좀더 많이 알 수 있었죠. 네덜란드의 해안 간척지인 Polder를 유지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력이 소모되고 있고, 혹시라도 만약의 전력 사태가 일어날 경우 네덜란드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땅이 물에 잠길 수 있다는 것과, 그 전력 소모때문에 세금을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낸다는 것 등등...  물론 그런 모든 불리한 지형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를 이루어 낸 곳이니 위험부담은 적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정착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10% 정도 감소된 걸 느낄 수 있었죠;;


4. 자전거


네덜란드는 대부분의 나라가 평지인만큼 자전거가 교통수단으로 많이 사용되는데요, 저 역시 자전거의 도시라 할 수 있는 캠브리지에서 왠만한 자전거 문화는 봤다, 라고 생각했지만, 네덜란드는 그 수준이 다르더군요. 영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전거 뒷자석에 아기용 좌석을 달고 태우는 거라든가, 따로 아기를 태울 수 있는 수레(?)를 다는 것과는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대부분 자전거 한대에 모든 걸 해결하더라군요. 일단 앞에 유리로 창이 달려있고 아기가 탈 수 있는 좌석이 있고, 뒷자석에도 아기 좌석, 바퀴에 걸 수 있는 가방은 물론 심지어 자전거에 유모차를 접어서 걸고 달리는 엄마도 봤죠;;; 앞에 아기용 좌석이 딸린 건 영국으로 가져오고 싶을 만큼 탐나더라구요. 

그런데 또 의외로 헬멧을 쓰는 사람들은 본적이 없어요. 아기들도 헬멧같은 건 안쓰더군요. 그리고 안전용 형광색 조끼를 입거나 발목등에 형광띠를 달고 달리는 사람도 본적이 없구요. 치마든 구두든 그냥 일상복 차림에 자전거를 타고, 비가 와도 따로 우비같은 걸 쓰고 달리지도 않고 말이죠. 영국에서는 Health & Safety 컨셉이 뿌리깊게 박혀서 그런지, 아니면 날씨가 안좋은 날들이 많아서 그런지.. 그런 안전 도구를 착용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고, 아이들 같은 경우는 헬멧은 당연하고 무릎 보호대등을 착용한 경우도 많이 봤는데 말이죠. 네덜란드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라 그런지 의외로 그런 쪽으로는 무심하다 할 정도더라구요. 


5. 그 직설적임


영국에서 오래 살면서 빙빙 돌려 말하기와 빈말하기에 심히도 익숙해진 저 같은 경우는 네덜란드에 갈 때마다 좀 놀라죠. 가까운 네덜란드인 친구 커플 N과 H가 툭하면 절보고 놀리듯이, "We, Dutch, mean what we say, so just do it/come/take it"라고 말할 때마다 그냥 웃고 넘겼는데.. 네덜란드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또 부모님들과 얘기하다 보면 정말 그렇구나, 하고 느낀달까요. 예를 들면, 도착하고 그 다음날에 아침을 먹고 나서 어머니가 남편을 보고, "Can you cycle?"하고 물으시더니, 남편이 탈 줄 안다고 대답하니 바로 "Good, you go with A (아버지) to town". 남편은 어리둥절해서 언제, 왜 가야하느냐 등의 질문을 담은 얼굴로 그들을 바라봤는데, 아버지가 "We go now"하더니 바로 창고로 데려 가셔서 자전거를 보여주곤 남편에게 사이즈가 맞자 같이 가자며 데리고 가셨죠;;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가 병원에 볼일이 있어서 가셔야 되는데, 남편은 타운을 본적이 없으니 바람쐴 겸 같이 가자, 하시는 거였지만.. 굳이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영국인이였다면 일단 상황설명 다 하고, "If you don't mind/ if you like.." 등등의 말 뒤에 혹시라도 같이 갈래, 등의 돌려말하기가 펼쳐졌을텐데 말이죠 ㅎㅎ 

그 외에도 이웃이나 그분들 가족의 집에 방문할 때도 그냥 전화 한 번에 우릴 데려가 주시고, 생전 처음보는 낯선 이들인 우릴 그들의 집에서 맞으면서도 마치 우리가 계속 알고 지내던 이웃인냥 맞아주는 태도라든지.. 그 와중에서 도리어 안절부절 하며 "Is it OK for us to go as well?/ Should we tell them in advance?"하고 묻거나, 가서도 "Thank you so much for having us/ Sorry that we didn't let you know early" 등등을 남발하며 있는 건 저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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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거기서 몇년을 살았던 것도 아니고, 제가 만난 이들 역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제 관찰들이 상당히 국소적이란 걸 알지만, 그래도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는게 좀 신기하더라구요. 진짜로 네덜란드에서 사시는 분들은 어떨지 정말 궁금하네요 (제 미래 계획을 위해서도요? ㅎㅎ). 


어쨌건, 꼬맹이는 집에서 있었던 것 보다 훨씬 잘 놀고 잘 먹다가 왔고, 말도 타고, 튤립도 실컷 구경하고 (쿠켄호프에 간건 5년만이였는데, 역시나 사람들은 넘쳐나더군요;;;), 기차도 보고, 하여간 잘 쉬다가 왔습니다. 다음에는 아기들 태우고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은데 말이죠.. 


p.s.한국에서 들리는 소식이 놀랄만큼 우울한 소식이여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심지어 네덜란드에 계신 분들도 다 알고 계셔서 부모님을 따라 갔던 교회에서는 따로 세월호을 두고 기도를 해주시기도 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