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흔한 일상 셋

민토리_blog 2014. 3. 20. 06:42

* 가능하다면 일/이주일에 한번은 그래도 글을 쓰고자 하는데.. 요즘은 글쓸거리가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 이건 이 블로그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영국에서 아기와 살아가는 엄마 이야기'라곤 하지만, 아기에 관한 사진이나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중심으로 올리는 것도 아니고.. - 사실 가능하다면 아기 사진 같은 건 안올리려고 하는 편이다. 얘도 한 명의 개인인데 내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무분별하게 공개하는게 왠지 사생활 침해같아서;; 그리고 무엇보다 꼬맹이야 당연히 내 자식이니 내 눈에야 당연히 예뻐보이고 모든게 신기해보이고 대단해 보이는거지, 남들 눈에야 그냥 한 명의 작은 인간일 뿐 아닌가... 차라리 강아지나 고양이라면 사람들이 더 관심을 보이고 좋아할지도;; 

솔직히 작은 인간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모든게 신기하고 대견하고 그렇다. 하긴 처음에 태어나서 아무 것도 할 줄도 모르고 그저 숨쉬고, 울고, 먹고, 눈 굴리고, 똥싸고, 그게 다 이던 생명체를 보다가, 다양한 표정을 짓기 시작하고 혼자 움직이기 시작하고 말까지 하기 시작하면 그 차이가 너무 커서 대부분 엄청난 감동을 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순간도 안놓칠려고 사진을 찍고 비디오를 찍고 그러는거 아닌가. 그리고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 2-3단어 말할 때 간단한 문장을 말하고, 블럭으로 뭘 만들기 시작하고, 책을 보면서 정확한 사물을 가르키고, 그러면 다들 내 아이가 유달리 똑똑한 거 같고 천재같고 그렇다. 그런데, 나같은 경우 그런 얘기를 그냥 남편과 저녁 시간에 우리끼리 말하면서 '오~', '와~'하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기가~~' 하고 말하진 않게 된다. 사실 부모치고 내 자식 자랑할 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쨌건, 다시 블로그의 정체성으로 돌아와서... 그렇다고 '영국'과 관련된 생활이나 여행 같은 걸 올리지도 않는데... 이건 이제 여기에서의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여기 온저 얼마 되지 않았다면, 영국에서의 생활담이나 영국안에서 여행다닌 건 좀더 알리고 싶어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왜냐면 그게 내 최고의 관심사이기도 할 테니까...), 한국에서 오래 산 사람이 한국에서 장보기나 기차 표사기, 같은 거에 대해 말하지 않듯이, 내게도 그 '일상'과 '새로움'의 경계가 불분명해져버렸다. 그러니 뭔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게 되는거다. 


결론은... 요즘 내 머릿속에 돌이 던져진 일이 별로 없다는 거다. 누군가 혹은 어딘가에서 돌이 하나 뚝 하고 던져진다면 잔잔한 수면에 물결이 일듯 뭔가 생각할 거리도, 글 쓸 거리도 생길거 같은데.. ㅎㅎ 


** 난 대체로 아무 것도 하지 않은체 쉬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하다못해 뜨개질이라도 했는데.. 요즘에는 한창 바느질에 열을 올리고 있다. 친구(지만 연세가 벌써 70세가 넘으신) 웨일즈 부인 M에게서 공짜로 재봉틀을 얻는게 트리거가 된거 같다. 벌써 친구 아기들 생일 선물로 앞치마, 치마, 원피스, 바지, 멜빵 등을 만들었다. 

장기간의 외국생활 끝에 좋은 점이라면 의외로 공짜로 뭘 얻는 경우가 많이 생긴달까... 유학생활 중에는 떠나가는 사람들한테 뭘 많이 얻었는데, 요즘에는 나이드신 분들이 집정리를 하시다가 뭘 많이 챙겨주신다. 특히 나이드신 분들은 뜨개질에도 대단한 솜씨를 가지고 계셔서 꼬맹이 털모자, 점퍼 등은 걱정없이 매해 받고 있다. 아무래도 같은 영국인들끼리는 공짜라고 해도 쓰던 걸 주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가지시는데 반해서,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인지, 대화 중에 '이런 저런게 있으면 좋을텐데 사기도 좀 그렇고, 얻기도 힘들더라' 그런 말이 나오면 기억해 두셨다가 챙겨주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을 걸 알고 깜짝 놀랬다 (아니면 내가 불쌍해 보여서? ㅎㅎ)


*** 요즘에는 서서히 임신 호르몬이 내 뇌와 몸을 잠식(!)해 가고 있음을 느낀다. 하나에 빠지면 거기에 몰입하는 건 변함이 없지만 (아직 일할 수 있는 뇌가 남아있다는게 어찌보면 다행;;), 그 하나 이외의 것들을 종종 잊는다고 하나;; 게다가 둘째 임신 때는 확실히 배도 빨리 불러오고 있고.. 무엇보다 매일 오후 2시경이 되면 몸이 녹초가 되버린다;; 그런데도 꼬맹이의 에너지는 방전되지 않으니 돌아버릴 지경.. 

꼬맹이는 이제 집안의 모든 문을 열 줄 알고, 올라갈 수 있는 모든 것에 올라가고, 심지어 창문/문의 열쇠를 돌려서 열기도 한다;;; 꼬맹이 개인의 발달 과정을 보자면 손뼉치며 축하해 주고 싶지만, 매 순간 행여 아기가 어디서 떨어지진 않을까, 뭘 꺼내서 먹거나 깨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꼬맹이의 뒤를 따라다니는 입장에서는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은 심정이다;; 

 

...

한동안 해가 쨍~해서 삶의 질이 향상된 거 같더니만, 이제 비가 온단다.. 영국에서 오래 살며 좋은 점(?)이라면 '맑은 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이라고 할까.. 예전에는 비 오는 날을 불평하는 때가 더 많았는데, 요즘에는 해 나는 날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