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문화적 차이의 수용정도?

민토리_blog 2014. 4. 1. 04:33

어제는 김치찌개를 끓였습니다. 외국 나와 살면서 의외로 아까워서 잘 못해먹는 음식이 있다면, 제게는 김치찌개인데요.. 김치가 아무래도 제게는 귀하다 보니 김치찌개를 한번 끓여먹고 나면 그 양이 확 주는지라 그간 잘 못해먹다가 이번에는 임신을 핑계로 김치를 왕창 사다가 찌개를 끓여먹고 있습니다. 보통 때는 집에서 겨울 무렵에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하긴 하는데, 작년에는 입덧때문에 시기도 놓치고.. 김장을 하더라도 4포기 정도만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아껴먹게 되죠. 근처에 한국 수퍼마켓이 있는게 아니다 보니 매번 사다먹기도 그렇고 말예요.. 어쨌건, 그렇게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일에서 돌아온 남편이 첫마디로, 


"음.. 김치냄새~" 하더군요. 


그 말에 반사적으로 '괜찮냐?'라고 물었어요. 남편은 별일아니라는 표정으로 그저 냄새가 강해서 말했을 뿐 별 뜻은 없다고, 오늘 저녁 메뉴가 김치찌개냐고 묻고는 말았죠. 실제로 남편은 매운건 잘 못먹지만 김치는 좋아하는 편이라 제가 한 김치찌개도 냉큼 다 퍼먹고 말았지만...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치를 가지고 요리할 때마다 제가 민감해지는건 도대체 무슨 연유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었죠. 


처음 영국에 어학연수로 왔을 때, 호스트맘과 2달 정도 보냈었는데.. 어느날 아시는 분이 영국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 분이 가신다는 런던의 한 한인교회에 갔다가 김치가 곁들어진 점심을 정말 맛나게 얻어먹고 온 적이 있죠. 집에 돌아와 다녀왔다는 인사를 함과 동시에 그 영국인 호스트맘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What did you eat outside? Go and brush your teeth now!" 

하고 제게 소릴 치더군요. 영국에 온지 한달도 미처 안되었던 터라 그 표정에 아무 대꾸도 못하고 당장 욕실로 가서 양치질을 하는데, 화가 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하여간 묘하게 울컥거리는 마음이 들었었습니다. 


이런 경우는 김치뿐 아니라 라면에도 적용되었는데.. 아무리 주의를 하려해도 유학생 입장에서 저 혼자만 살 수 있는 집이라거나 독립된 주방을 가질 수 있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어학 연수 때는 물론이고 유학 기간동안에도 가능한 김치나 라면은 먹지 않게 되었죠. 행여 먹게 되면 창문을 열고 거의 창틀에 붙어서 밖을 향해 먹곤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인) 누구는 한국인들과 사는데 걔 근처에만 가도 김치냄새가 나서 못견디겠다' 라고 말하거나, '김치'라는 말을 듣고 바로 'Oh, that smelly food'라고 하는 걸 들으면 어쩔 수 없이 화가 치밀더라구요. 


어쨌건, 그렇게 김치찌개를 먹다가 문득 들었던 생각은.. '만약 이 사람 (남편)이 김치를 싫어했다면 그래도 내가 이 사람과 결혼했을까?'... 즉, 나라, 인종, 환경을 다 떠나서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이 좋아하는 어떤 것 - 예, 음식 - 이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라면, 그래도 나는 그 관계를 유지했을까.. 


또 생각을 하다보니.. 먄약 내 아이들이 자라서 집을 떠나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 자신의 여자/남자친구를 데려왔는데, 그 여자/남자친구 되는 사람이 우리 가족이 해왔던 어떤 음식문화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죠. 


즉, 예를 들면, 제 아이들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내 자식들이니 당연히 한국음식을 익숙히 받아들이며 자라겠죠. 그러나 한국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그들만이 생활할 때는 한국음식을 접할 경우가 없을테니, 집에 돌아올 때마다 엄마인 제게 김치찌개를 비롯한 한국음식을 해달라고 조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의 여자/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온다고 했을 때도, 전 당연히 김치찌개를 준비하겠죠. 그런데 그 여자/남자친구가 저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인상을 찌푸리는 겁니다. 그리고 무슨 냄새냐고 묻고는 기분나쁜 티를 낸다면... 설사 그런 티를 드러나게 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차려진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고 밥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100프로 전 기분이 나쁘겠죠. 그러나 제 아들/딸들의 입장을 생각해 별 티를 내진 않고, 그저 '입맛에 맞지 않느냐, 뭐 다른 걸 준비해줄까'하는 (빈) 말을 내뱉겠죠. 그리고 속으로 그저 이 관계가 진지한게 아니길, 얼른 끝나길 바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 자식이 그 사람에게 꽁깍지가 너무나 씌인 나머지, 나중에 제게 '이번 주말에 그/그녀와 집에 갈건데, 한국요리, 특히 김치를 이용한 요리는 하지 마세요'라고 말을 한다면 저는 어떻게 할까요? 기분이 나빠도 '그러마'하고 다른 요리를 준비할까요, 아니면 기분이 나쁘다고 솔직히 내 자식에게 말을 할까요? 솔직히 말을 한다 한들, 내 자식이 자기 연인과 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외에 좋은 점이 있긴 할까요?


이런게 연인의 관계라면 한두번 참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만약 결혼한 사이라면 어떨지.. 내게는 내 가족을 이루면서 만들어온 '가족의 문화'라는 게 있는데 - 예를 들어, 음력 설날에 떡국을 끓인다던지, 추석때는 송편을 빗는다던지, 누군가의 생일에는 꼭 미역국을 끓여준다던지, 간만에 가족이 모일 때는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끓인다던지 하는 한국적인 부분 - 그런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라온 내 자식의 동반자가 그 부분을 싫어하거나 부정한다면... 


이건 굳이 다른 나라 문화를 떠나서,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겪을 수 있는 일 같은데요.. 한국사람끼리 결혼을 했다고 쳤을 때, 극단적인 예로 남편의 가족들이 누구 생일때마다 보신탕집에 간다고 합시다. 그런데 당신은 보신탕집 앞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보신탕을 싫어하고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올라오는 사람이라면.. 결혼해서 어떻게 될까요? 그런 당신을 배려해서 남편의 가족들은 그들이 이제껏 유지해온 그들만의 문화를 버려야 하는건지, 아니면 당신은 이제 그들의 일원이 되었으니 코에 솜을 쑤셔넣고 밥만 먹더라도 그 보신탕집에 앉아있어야 하는건지.. 


김치찌개 하나로 생각이 꽤나 번져나간 것 같은데...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런게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부분인데.. (사실 김치를 안먹는다고 죽는건 아니니까요) 그렇게 사소하다고도 볼 수 없는게.. 

김치와 관련되서 사람관계에서 한 번 당해본 저 같은 경우는 그게 은근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더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별거 아닌거 처럼 쌓이던 스트레스는 나중에 심지어, '저 사람은 내 한국인인 부분을 부정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급기야 '김치를 좋아하는 것도 나를 만드는 한부분이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일 수 없다면 넌 나란 사람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거다'라는 말까지 하게 만들었고 말이죠;; 


그 때는 그게 당연하게 생각되었고, 그 관계가 끊어진 것에 대해 후회도 하지 않으며, 암암리에 '나를 이뤄온 어떤 부분을 부정하는 사람이라면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해왔는데요..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어떤 부분을 도저히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건 또 그 나름대로 관계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는데... 요즘에는.. 글쎄요.. 좀 애매모호하게 느껴지네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가요? 어떤 정도의 문화적 차이를 수용할 수 있는지.. 그걸 다 뛰어넘을 수 있는게 진정한 사랑인건지, 아니면 다 뛰어넘으라고 강요하는건 도리어 사랑이 아닌건지.. ?


p.s. 위에서 설정한 미래의 가상적 상황 - 김치를 싫어하는 미래 제 자식들의 남자/여자친구 이야기 - 에 대해서 남편에게 '그럴 경우, 난 한국요리를 포기해야 하는가?'하고 물으니, 간단히 "Nonsense" 하고 대답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