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한국엔 뽀로로 영국엔 페파피그 스페인엔 뽀꼬요

민토리_blog 2013. 7. 3. 00:33
 스페인 친구 결혼식에 참석할 겸 여름휴가를 길게 잡아 스페인 발렌시아에 와있습니다.

16도에서 30도를 오가는 좀 뜨겁지만 그래도 그늘안에선 선선한 여름 날씨, 구시가를 끼고 도는 뚜리아 강을 시외곽으로 돌려버린 후 조성한 거대한 공원 덕에 조금만 분주한 시내를 벗어나도 전혀 다른 곳에 온 듯 여유있는 산책을 즐길 수 있고, 스페인 어느 도시든 그렇지만 아랍과 카톨릭 문화가 적절히 혼재되어있고 온갖 양식의 건물들을 한 곳에서 다 구경할 수 있으며, 언제든바나 카페에 들어가 시원한 caña(작은 생맥주)와 tapas나 cafe con leche (라떼)와 pastry를 즐길 수 있는 곳...

발렌시아에 대한 걸 적자면 아예 관광 포스팅을 해야겠지만... 글을 쓰겠다고 맘을 먹은 건 다른게 아니라 영국과 한국과는 또 다른 육아 관련된 문화를 봤기 때문이죠. 한국에선 뽀로로가 갑이고 영국에선 페파피그(peppa pig)가 짱이지만, 스페인에선 뽀꼬요(Pocoyo)가 최고이듯, 알게모르게 다른 세나라의 육아 관련 비교입니다.

워낙 목소리 크고 시원한 성격의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 스페인이긴 하지만, 그 진가는 아기와 같이 있을 때 확연히 드러나더라구요. 아기와 함께 어딜 가면 남녀노소 할 것없이 무척 친절합니다. 내 아기에게 인사해 주고 말걸어주고, 머리나 얼굴을 살짝 쓰다듬거나 손발을 만지작 거리며 ' Hola, guapo'하며 말걸고 장난치고, 심지어 첨보는데 안아보겠다는 사람도 있으며, 과자를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두살된 아기를 키우는 벨기에에서 온 친구는 자신이 괜찮다고 해도 왜 안되느냐며 아기에게 과자를 쥐어주는 사람들때문에 스트레스 엄청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저역시 가끔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냥 무던히 넘어가고 있습니다. 어차피 전 여기서 사는게 아니니 말이죠...

솔직히.. 영국에서는 아기가 있기에 난데없이 말걸어 오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나이가 좀 있으신 아주머니들 -  정확히는 할머니뻘-이죠. 그래도 많은 경우 아기와 눈이 마주치면 살짝 같이 웃어주거나 아기와 사소히 장난쳐주는 정도지, 아기를 만지거나 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예전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아기도 봐주고 했다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게 있나요.. 저번에 한국 갔을 때 지하철에서 어떤 아주머니는, "요즘엔 아기 좀만 만져도 병균옮는다고 싫어하는 엄마들이 많아서 아기가 예뻐도 아는 척 하기도 무섭다", 그러시던데... 그래서 그런지 가끔 아주머니들이 ' 아고, 아기가 예쁘네'라고 그냥 크게 소리내 말하시거나 아님, "더운데 아기를 저리 꽁꽁 싸맸네, 애한테 물을 좀 주지, 요즘 엄마들은..." 등등 나름 혼잣말이지만 대놓고 잔소리(!)를 하시기도 하구요... 

식당 같은 곳에 가도 스페인에서 아기는 일단 종업원 등 모두에게 환영을 받습니다. 작은 식당이나 바에는 여전히 아기의자가 구비된 곳이 적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도와주려 하죠. 그러다 아기가 울거나 하면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안타까워하며 아기를 달래는데 힘을 보태려고 하더라구요. 어떤 분들은 와서 아기한테 "Que pasa?"하고 말거시면서 아기를 웃게 하려거나 아기가 가지고 놀 수 있는걸 주시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다보니 스페인에 오기 전에 갔었던 영국인 친구의 결혼식이 생각나더라구요.
카디프에서 열린 결혼식은 간략하게 lunch, ceremony로 구성된, 가족들과 정말 친한 이들만 초대한 간소한 결혼식이었는데요.. 아기를 따로 봐줄 사람이 없는 저희 입장에서는 도리어 잘된 일이었구요. 결혼식을 갔더니 꼬맹이가 가장 어렸고, 아이들은 대부분 5살이 넘은 큰 아이들이더라구요. 이제 기는 아이를 바닥에 둘 수도 없고 주구장창 안고 있다보니, 20개월쯤 된 아기를 데리고 다른 부부가 오더군요. 역시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안다고 저흰 첨 만났지만 급격히 친해져선 구석에 아이들을 데리고 서로 놀게 하며 있었죠. 그러다 점심식사가 시작되어 테이블로 가는데... 8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저희랑 그 부부가 아기들을 데리고 앉으니 아무도 저희 테이블로 오는 사람이 없더군요 ㅠㅠ

사실 예상한 일이라 저희 부부도 그 부부도 자조적 농담을 해가며 그냥 넘겼는데... 그 얘기를 스페인 친구들에게 하니 다들 놀래면서 아주 마음아파하더라구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저 대신 화도 내주면서...ㅡㅡ 스페인에서는 그럴 일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구요.

영국에서는 식당같은 곳에 가서 아기와 같이 밥을 먹을 때 아기가 얌전히 예의 지켜가며(?) 밥을 먹는 한 별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아기가 있는 쪽에 아기가 없는 커플이나 일행등이 와서 앉는 일은 잘 없지만요.. 그러고 있으면 가끔 노부인들이 나가시다가 "He's a very good boy, isn't he?, He behaves so well" 하며 아기를 칭찬해주기도 합니다. 그대신 아기가 울거나 난리를 치면, 사람들이 우리쪽을 흘끔거리며 눈치주는게 딱 느껴집니다... 
한국은... 글쎄요, 어떤가요? 저같은 경우는 저번에 갔을 때 고깃집이고 어디고 간에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봤는데.. 부모도 다른 사람들도 그냥 으레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거 같더라구요. 

그리고 날씨가 좋다보니 스페인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아이들과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시에스타가 끝나고 그나마 공기가 좀 선선한 6- 8시에 공원, 놀이터는 아이들로 넘쳐나죠 ^^ 아이들 모두 적당히 그을려있고, 자전거나 미니 유모차 등 밖에서 탈 수 있는 걸 끌고 다니는 아이들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해가 쨍하고 나는 날이 별로 없는 영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광경이죠. 한국에서도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건 별로 본 적 없는데 말예요...

그렇게 아기들 육아천국 같은 스페인이라도 좀 이해할 수 없는게 있었는데요 ... 예를 들면 그 뜨거운 햇빛 아래 아기 유모차 커버도 안씌우고 그대로 다닌다거나.. 아무데나 아기들 용변을 보게 한다든가.. 특히 최고는, 이번에 스페인 친구 결혼식 갔을 때였죠. 발렌시아 근교의 오래된 성을 개조시킨 곳에서 저녁 8시부터 새벽 4시까지 파티가 벌어졌는데... 저녁식사가 끝난 새벽 12시 반까지 15개월 정도된 아기를 비롯, 3- 7살짜리 아이들이 놀더라구요.. 그리고 그 중 6-7살 되던 아이들 둘 셋은 파티가 끝난 4시까지 결혼식장 구석에서 놀거나 뛰어다니더군요....ㅡㅡ 한국에서 돌잔치를 8시에 한다고 이해할 수 없다고 했었는데..  이번 스페인 결혼식에서 본 거에 비하면 정말 새발에 피죠 ㅡㅡ;;;

그 외 공통적으로 볼 수 있었던 건 아기들마다 가진게 엄청나게 많다는거... 아기한테 아낌없이 돈쓰는 건 어딜가나 똑같은거 같더라구요.. 그 와중에 어딜 갈 때마다 다른 아기들 장난감 신기하게 바라보는 꼬맹이... ㅜㅜ 어쨌건 영국돌아가면 언제 이렇게 해를 볼것이며, 언제 이렇게 밖에서 뛰어놀랴 싶어서 아기를 매일 두 번씩 열심히 산책시키고 있습니다!

** 스페인에 아기 데리고 여행가시는 분들을 위한 소소한 팁
1. 아기의자가 구비된 곳이 적으니 휴대용 아기의자 같은 걸 들고 가시면 편합니다 (천으로 된 접을 수 있는거 말이죠)
2. 스페인의 여름은 11시만 되도 엄청 덥습니다.  보통 점심을 2시쯤에 먹고 쉬다가 5시부터 활동을 시작하죠. 아기도 그 때는 숙소로 돌아가 낮잠을 재운 후 움직이는게 좋습니다.
3. 바닷가에 데리고 가실거면 가장 좋은 시간대는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입니다. 모래가 너무 뜨거워 아기들 발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있으니 샌달 꼭 신기시고 파라솔(혹은 우산)을 준비하세요. 스페인에는 한국처럼 파라솔 렌트해주는 곳 거의 없습니다.
4. 스페인에는 곳곳에 분수처럼 버튼을 누르면 물이 나오는 식수대가 있습니다. 어린 아기들 먹이기에는 좀 그렇지만 더운 날 유용합니다.
5. 작은 음식점 같은 경우 기저귀 갈만한 곳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럴 때 종업원에게 문의하면 탁자 위 같은 곳에서 갈라고 배려해주기도 합니다. 아니면 유모차나 공원 벤치도 많이 사용하더군요 (이건 한국과 좀 비슷하더라구요. 영국에서는 ' no nappy changing on the table'하고 붙어있는 곳도 많은데 말이죠 ㅎㅎ)
6. 그 외 물론 선크림, 에프터선크림, 아기모자, 신발, 물병 같은건 다들 아시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