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이방인으로 살기 피곤하다

민토리_blog 2013. 2. 20. 01:31

처음에 캠브리지에 석사를 하러 왔을 때, 대학 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 10에 8은 꼭 내게 

'Did you come to study English?'라고 물었다. 

아니라고 Business와 Engineering을 공부한다고 하면, 다시 

'Are you studying in ARU?'라고 물었다. 

(ARU: Anglia Ruskin University. 캠브리지에 있는 다른 대학)

그럼 다시 난 아니라고, Cambridge University에서 공부한다고 대답해야 했다. 

대학 도시인 Cambridge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당연히 캠브리지대학에서 공부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꼭 이렇게 질문 세 고개를 넘고서야 내가 캠브리지에서 공부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은 박사를 하는 내내에도, 대학 외의 사람들을 만나면 계속되었다. 


캠브리지를 떠나 웨일즈에 와서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같은 센터 외의 사람들을 만나면, 

교수나 조교나 사무나 행정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누구든지 내가 '학생'일거라고 짐작했다. 

(물론 외국인 학생들 - 특히 중국인의 수가 많긴 하지만..) 

심지어 수업 자료에 필요한 용품을 가지러 창고에 갔을 때는, 

어떤 영국 여자가 날 도둑인냥 취급한 적도 있었다. -_-


아기를 가지고 웨일즈의 시골같은 마을에 오니, 

이젠 사람들이 나를 영국인과 결혼해 머나먼 중국에서 여기까지 날라온 중국인이라고 지레 짐작한다. 

내게 영어가 가능하냐고 여러번 묻고, 

영국에서는 중국과 아기를 다루는게 다르다고 친절히 설명해주기도 한다. 

중국인이 아니라고 해도 별 상관을 안한다 (자기들한테 모두 같다고 생각하는 듯..)


근처 베이비 클럽같은 데를 가면 일단 사람들이 자꾸 힐끗거린다. 

내가 먼저 말을 걸면 좀 놀래는 눈치다. 

영어를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좀 나이 있는 분들은 일부러 천천히 내게 대답한다, 

행여 내가 못알아 들을까봐 하는 배려가 고맙긴 하지만 씁쓸하다. 

그래서 일부러 말을 많이 한다. 

'전 당신과 영어로 소통하는데 지장이 없는 사람입니다'라는 사인을 보내기 위해서... 


베이비 클럽이나 플레이 그룹에 모인 맘들은 보통 육아 휴직이나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 

그럴 때 아기를 어디에 맡기는게 좋은지 그런 얘기들을 종종한다. 

거기에 나도 끼여서 말을 하면 또 놀랜다. 

내가 일을 할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 말이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 말에 대학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또 사무직이나 심지어 청소를 하러 다닐 거라고 짐작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가 강의를 한다고 하면 또 놀래는 눈치다. 


영국온지 9년째 임에도 매번 반복해서 겪는 일들이다. 

그만큼 겪었으니, 사실 이제는 누가 날 '중국인'이라 생각하는 것에 그리 반감을 가지지도 않고, 

사람을 사귀는 것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대략 예상하고 내가 더 다가가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유달리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피곤을 느끼는 까닭은... 

베이비 클럽에서 만난 사람집에 다른 맘들과 초대를 받아 갔는데... 

(모두 영국인. 사실 더불어 초대를 받았다는 사실에 '아, 이제야 좀 가까워질 수 있겠구나!'하고 들떴었는데..)

내 아기만 자꾸 혼자 내버려져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 

내가 외국인이라서... 가까워지기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와 내 아기만 자꾸 내돌려져서.. 

속이 상했다. 아니, 속이 상한다. 


이렇게 매번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때,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 영어로 아무 문제없이 대화 할 수 있다는 것, 영국의 문화에 아주 무지한게 아니란 것, 무엇보다, 나 역시 당신의 나라를 이해하고 공통화제로 부담없이 얘기할 수 있다는 것)

각오를 하고, 인내심을 가지려 하지만.. 

그래도 무척 피곤해진다. 


덧.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려 밖에 나가보니 집 근처 Council house (정부에서 제공하는 공영 주택)에서 온 아이들이 또 무단으로 정원으로 가려는 걸 발견했다. 

(정원에 연못이 두 개있는데 이사오기 전에 근처 아이들이 맘대로 들어와 놀길래 이사오고 나서 울타리를 치고난 후, 정원에서 놀고싶으면 먼저 우리에게 허락을 받아달라고 주의를 줬는데, 말은 듣지도 않고 한번은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고치고 나서 다시 주의를 주니 몰래 들어오더니만.. )

정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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