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학연수겸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유럽은 고사하고 비행기 한 번 제대로 안타본 덕에 별로 아는게 없었죠.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뭘해야 하나 하다가 알게된 일본 친구 두 명이 이탈리아로 여행을 가자고 하길래 그러자, 하곤 같이 갔었죠. 그 친구들도 저랑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아서 한국이나 일본에서의 떠들썩하고 파티분위기의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작 24일부터 26일까지 휑한 거리에서 그저 호스텔에 짱박혀 있었던게 생각나네요. 그래도 25일에는 로마에 머물러서 바티칸까지 가서 교황도 볼 수 있었지만 말이죠.
캠브리지에서의 6년동안 3년은 영국인 친구들 집에서 초대받아 보냈고, 1년은 런던에서, 1년은 캠브리지에서, 또 1년은 스페인 친구집에 초대받아서 보냈습니다. 초대받아 갔던 영국 친구네 집은 전형적인 중산층 집들이였습니다. 다른 게 있다면 한 친구네는 기독교인이였고, 나머지는 교회에서의 사교활동을 더 중시하는, 굳이 따지자면 사교성 기독교인이였다는 거죠.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오전 예배를 드리러 가는 집이 많구요, 보통 오후 2시부터 Christmas Dinner (정확히는 점심이지만)라고 기본 3코스의 식사를 합니다. 전채는 대부분 Prawn Cocktail로 시작하고 본 요리는 다들 알다시피 칠면조 요리 (Roasted Turkey), 그 외 오븐에서 구운 야채들이 등장합니다. 후식으로는 보통 Christmas Pudding을 먹죠 (브랜디를 뿌려서 불을 붙인 다음 먹는게 키 포인트죠 ㅎㅎ). 그 외 Christmas Cake이 나오거나, 치즈 보드가 나오거나, 민트초콜렛등이 나오거나 하는 건 집 마다 다릅니다. 어쨌든 그렇게 배부르게 먹고 나면 보통 좀 지쳐서 뻗죠. 그래도 오후 3시경에는 다들 Queen's speech를 듣습니다 (여왕이 국민들에게 하는 크리스마스 인사 같은 거죠. George 5세때부터 계속되어온 거라고 하네요).
그렇게 좀 쉬고 나면 보통 선물 열어보기를 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옹기종기 모아놓고 자기 이름 찾아서 여는 집도 있지만, 개인이 자기가 준비한 선물들을 들고 하나하나 건네주고, 그 자리에서 열어보고, 또 건네주고, 그렇게 하는 집도 있습니다.
선물 순서가 다 끝나면 가족마다 다르지만, 티비를 보거나 게임을 같이 하거나 하죠. 저녁에는 가족끼리 모여 영화를 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 당일 외에, 기독교인 가족이라면 그 전에 크리스마스 캐롤 서비스에 가는 집도 많을 거고, 보통 26일 (Boxing Day라고 부릅니다)에는 근처 산이나 숲에 같이 산책을 가기도 합니다.
자, 그럼 이제 크리스마스 때 초대받았을 때 뭘 하면 좋을지 소소하게나마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가기 전에 일단 친구에게 그 집의 크리스마스 패턴을 물어봅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뭘하는지, 복싱데이에는 뭘하는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따로 뭘 하는게 있는지 등등... 그리고 짐을 쌀 때 거기에 맞는 것들을 준비하도록 합니다.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친구들과 만나 펍에 간다고 하면, 좀 화려한 외출복 하나는 챙겨주고, 복싱데이에 가족끼리 근처 산행을 한다고 하면 따뜻한 아웃도어 옷과 워킹부츠같은 건 챙겨가는 게 좋죠. 거기가서 손님인데 내 준비물이 부족해서 그들의 루틴을 방해할 순 없으니까요.
2. 초대해줘서 감사하다는 표시의 선물을 준비합니다. 가족들이 다 즐길 수 있는 초콜렛 상자라든가, 가까운 곳일 경우 꽃이나 화분도 괜찮고, 와인도 괜찮습니다. 도착한 날에 보통 친구의 어머니께 초대해줘서 감사하다고 드리면 됩니다.
3. 크리스마스 당일을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합니다. 영국 가족끼리는 선물 주고 받는 것이 상당히 큰 관례로 자리잡혀 있습니다. 그러니 가기 전에 친구에게 친구의 가족관계를 미리 듣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누가 오는지, 누구네 집에 방문하는지 등을 미리 알아놓습니다. 만약 친구네 가족이 4명이라면 작은 거라도 사람 수대로 선물을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보통 선물이 한 두개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선물 하나와 작은 초콜렛 선물 하나, 뭐 이렇게 두 개 정도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친구네 가족이 4명이라도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조부모까지 온다고 하면, 그들을 위한 선물 하나도 준비하는 게 좋죠. 만약, 크리스마스 디너에는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리스마스 당일에 근처에 사는 이모네에도 들렸다 온다고 하면 그들의 선물도 준비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만, 친구의 가족 외 친척들이라면 개인 수보다 전체적인 한 선물을 준비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친구네 가족은 4명이지만, 당일에 조부모가 식사를 같이 하러 오고, 식사 전이나 후에는 근처 사는 이모네와 고모네에 들린다고 합시다. 그럼 친구네 가족을 위한 작은 선물 4개와 조부모를 위한 선물 1개, 이모네, 고모네를 위한 선물 각각 1개씩, 총 7개의 선물을 준비하는 게 좋다는 거죠.
4. 선물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풀어봐도 괜찮냐고 묻고 풀어봅니다. 그리고 안에 뭐가 들었든 무척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Wow, it's brilliant', 'oh, it's lovely', 'I really needed it (이 말 할 경우는 별로 없을 겁니다..)', 'it's so pretty' 등등을 연발한 후, 선물 준 사람을 보고 'oh, thank you so much'라고 말하며 간단한 포옹을 합니다. 당신이 선물을 준 상대방도 이렇게 할거니, 그 때는 그저 웃으며 'No problem', 'you're welcome', 'I'm glad you like it' 등의 맞장구를 쳐주고 같이 포옹해주며 'Merry Christmas'라고 해주면 됩니다.
5. 게임을 좀 익혀둡니다. 보통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가족들끼리 게임을 많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명절때 윷놀이 하거나 고스톱치는 것과 비슷하죠. 게임에는 Scribble이나 Rummikub 같은 것도 있지만, 인원수가 많아지면 보통 Charade (팀을 둘로 나눠서 말은 안하고 행동 같은 걸로 단어나 문장 맞추기하는 게임. 영화나 노래 제목 맞추기부터 단어 맞추기까지 다양합니다)나 Pin the tail on the donkey (눈가리고 당나귀 꼬리 붙이는 게임), 심지어 Murder mystery 게임을 하는 가족도 있죠. 저는 딱 영어공부하는 듯한 분위기의 Scribble 게임은 죽어라 싫어했고, Charade같은 경우는 룰을 몰라 헤맸지만.. 어쨌건, 미리 친구에게 가족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들은 후 룰까지는 못알아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는 게 좋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버리고 열심히 임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말이죠....
6. 절대 취할만큼 마시지는 않도록 합니다. 친구네 집에 초대받은 거니 당연한 말이겠지만, 크리스마스 쯤에는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마시긴 합니다. 특히 그 전에 펍같은 곳에 친구나 사람들과 놀러가는 경우 2-3파인트 넘어가는 건 순간이죠. 그리고 당일에도 식사와 더불어 와인이 나올 거고, 마지막에 Sherry나 Port, 혹은 샴페인, 위스키 등을 조금 먹는 집도 있습니다. 그러니 알아서 주량 조절하고 먹는게 좋습니다.
그렇게 놀고 난 후 그 가족들과 헤어진 후에는 반드시 'Thank you' 카드를 보내도록 합니다.
작은 팁.
* 크리스마스 선물: 말그대로 자그마한 성의를 보인 거면 충분합니다. 처음 초대받은 이상 너무 비싸거나 부피가 크거나 조크성이 강한 건 피하도록 합니다. 쓸모가 별로 없어보여도 사실 상관없습니다. 가능한 예쁘고 화려한 색감의 것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Ark같은 가게에 보면 아기자기한 그런 것들 있잖습니까? 친구의 친척들에게 주는 선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그 때는 개인이 쓸 수 있는 것보다 무난한 전체 아이템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친구의 동생을 위해 예쁜 작은 지갑이나 목도리같은 걸 주는 건 좋지만, 이모네에게는 예쁜 초 세트같은 게 낫다는 거죠. 식구들 전체를 위해 주는 거니까요.
대신 친구의 선물은 정성을 들여도 상관없습니다. 친하니까요. 마찬가지로 같은 친구네 집에 두번 이상 초대 받은 경우라면, 실용성과 개인의 특성이 겸비된 선물을 준비하는게 좋습니다. 그만큼 친하다는 거고 알만큼 안다는 거니까요.
선물은 받으면 보통 바로 풀어봅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대로 리액션 타임이 이어지죠.
** 크리스마스 캐롤 서비스: 여기서 캐롤은 우리가 아는 캐롤과 아주 다릅니다. 많이 부르는 건 'O come all ye faithful'이나 'Hark the Herald Angles Sing'같은 게 있죠. 'Silent Night'도 포함되긴 합니다. 우리가 아는 징글벨 같은건 정확히는 Christmas songs로 분류되죠. 어쨌건, 크리스마스 전에 많은 교회에서 촛불만 밝히는 캐롤 서비스를 합니다. 캐롤 서비스는 노래와 성경읽기가 반복되는 예배입니다. 캐롤 하나 부르고 누가 나와서 성경 한 구절 읽고, 그런 게 반복되죠. 그 도중에 성가대가 노래할 수도 있고, 예배 말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크리스마스 당일에 Stocking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보통 긴 양말에 귤 몇개, 초콜렛 몇 개가 들어있습니다.
12월도 다가오는데 모두 따뜻한 크리스마스 맞이할 수 있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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