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212

8월, 여름, 스페인, 바다

8월 스페인의 바닷가 물을 싫어하는 남편 대신 아이들 둘을 데리고 바닷가로 향했다. 쨍하게 내려쬐는 태양. 띄엄띄엄 앉아있는 파라솔 아래에서 혹은 모래 사장 위에 누워 여름을 즐기는 사람들. 그 사이를 가로질러 파도가 바로 닿을 듯한 곳에 자릴 잡았다. 짐을 봐줄 사람이 없으니 바다에서도 수시로 살피기 쉽게. 수영복 차림으로 집을 나선 아이들은 내가 짐을 내려 놓기도 전에 이미 모래사장 위에 앉아서 모래를 긁어모으고 있다. 금세 모래가 섞인 눅눅한 공기가 몸을 끈적거리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입고 온 여름 드레스를 벗을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아이들의 열광적인 격려와 지지로 입고 온 비키니. 그 비키니를 입었던 마지막 기억은 남편과 결혼하기도 전 여자 친구들과 놀러 갔던 영국 브라이튼의 바닷가였던 거 같은..

다시 스페인

영국에서는 3월 말부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그리고 4월 초부터 학교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고. 재택근무와 홈스쿨링 병행을 한 지 3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부활절 휴가가 취소되었고, 크게 넘어져 피멍이 들었다가 사라졌고, 화상을 입은 팔이 까맣게 변했다가 원래 색깔로 돌아왔고, 피부 트러블이 생겼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올해 초에 계획한 스페인 여름 휴가 일정이 돌아왔을 때 항해가 취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계획대로 스페인으로 오기로 했다. 영국 Portsmouth 에서 스페인 Santander를 운행하는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넘어와서 우리가 머물 Valencia 근처에 있는 별장까지 오는 것. 그게 계획이었다. 출발하기 일주일 전에 마스크를 여덟 개 만들었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유로터널을 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익명성의 무게

올해 초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휴교령이 내리기 전) 학교에 학부모 참가 수업이 있으니 가능한 많은 부모님들의 참여를 바란다는 학교 공문을 받은 적이 있다. 주중에 그것도 애매한 오전 10시 혹은 오후 2시에 참여 수업이라니, 직장 다니는 맞벌이들은 어쩌란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둘째네 학년 한 반의 첫 참여 수업 사진이 학교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걸 보고 마음을 바꿨다. 보아하니 그냥 일반 수업을 학부모가 교실 뒤편에 서서 지켜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일대 일로 뭘 하는 수업이었다. 주르륵 올라온 사진을 보니, 여기에 참가하지 않으면 내 아이는 거의 혼자 교실 어딘가에 남아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진땀이 나서 결국 회사 일정을 조절하고 참가신청서를 보냈다. 그리고 첫째 아이 참가..

잡다한 책읽기 2020.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