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에 오프라인으로는 그저 오다가다 인사하는 아는 사이이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친구인 J로부터 단체 메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내용인 즉슨, 그녀가 자신의 생일을 맞이하여 스카이 다이빙을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걸 통해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싶으니, 자신에게 돈을 달라 그런거였죠. 그 친구가 스카이다이빙 하는 것과 내가 그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의 연관성을 찾지 못한 저는 그저 무심결에 넘기고 말았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다시 단체 메세지를 통해서, "Thank everyone who supported me!.." 하며 대략 500 파운드가 좀 넘는 돈이 모였는데, 스카이다이빙으로 쓰여진 200 파운드 정도를 제외하고 남은 300파운 정도를 모두 기부하게 되었다, 하더군요.
이 뿐이 아니죠. 제 친한 여자친구들 몇명은 매년 Breast Cancer Research에서 주최하는 분홍색 옷입고 달리는 짧은 마라톤에 참가하는데, 그 때에도 어김없이 전 위와 같은 메세지를 받습니다. 내가 이번에 이런 행사에 참가해서 달리게 되었으니, 나를 후원해달라, 그런 메세지 말입니다.
10년도 전에 혼자 자전거를 끌고 브라이튼에서 파리까지 여행하는 동안, New Heaven에서 Dieppe으로 가는 배에서는 저와 같은 여행을 계획한 (자전거타고 파리까지 가기) 두 남자가 작은 모금함을 들고 다니며, 이번에 자기들이 이런 이런 자선단체를 후원하기 위해 자전거로 파리까지 가기로 했으니, 자기들을 후원해 달라며 돈을 받으러 다녔죠.
이런 개인적인 것 말고도 영국에서는 종종 티비 등에서 유명인이 어떤 자선단체 등을 후원하기 위해, 달리기 하기, 강 가로질러 수영하기, 심지어 의자에 앉아서 여행하기 등 별의 별 일을 하는 것 등이 소개되고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에게 그런 자신의 행동을 '후원'해서 기부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
그런데 전 지금도 그게 이해가 잘 되지 않더라구요.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왜 다른 사람들이 그 자선단체에 기부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지 말입니다. 한국처럼 불쌍한 이웃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동정심에 기대는 것도 아니고, 그 행동들이 굳이 그 자선단체와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막말로 유방암과 분홍색 옷입고 달리는 것과의 연관성이 뭔가요??), 자신이 그 행동으로 번 돈을 기부하는 것도 아니고 (가수가 콘서트를 열고, 그 수익금을 기부한다던지, 일반인이 어떤 대회에 참가해서 얻은 상금을 기부한다던지), 어떤 일을 하기로 결심한 당사자가 그 자선단체의 직접적인 대상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은 당사자가 교통사고 방지 운동을 위해 특수 자전거로 여행을 하고, 그럼으로서 사람들이 관련 자선단체/운동에 기부하도록 호소하는 것 등)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달리기, 수영, 자전거타기, 스카이다이빙 하기 등등의 행동이 남에게 돈을 달라는 이유가 될 수 있고, 그리고 왜 또 사람들은 그걸 '후원'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지...
가끔은 그냥 기부하긴 싫지만, 네가 굳이 이런 일을 한다니 그럼 내가 돈을 주겠다, 라는 - 일에 대한 대가로서 - 의미인건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그 자선단체가 뭘 하는지는 몰라도, 네가 그런 일을 해서 그 단체를 후원하고 싶다니, 친구된 도리로 돈을 주마, 하는 친목의 의미인건가 싶기도 하고.. 지금도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할까요..
위와 같은 경우처럼 간접적인 기부 요청을 받을 때는 그냥 넘어가곤 하는데요, 영국은 의외로 좀 강압적인 기부문화도 존재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얼마전에 있었던 노르망디 70주년 기념일 때는 회사/대학 등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이 'Help for heroes' 옷 같은 걸 입고 사람들을 한명 한명 찾아다니면서 모금을 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차를 타고 가다가 학생들이 길을 가로막고 기부를 요청한 적도 있었고, 지금도 가끔은 집으로 사람들이 찾아와서 자선단체 소개 등을 하며 돈을 달라고 요구하곤 합니다. 그럴 때는 그저 1-2파운드에 해당하는 돈이라해도, 그리고 아무리 그게 좋은 목적을 가진 일이라해도, 왠지 삥 뜯긴 거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자선 단체들이 존재한다는 영국의 특성상, 이런 기부와 관련된 일은 생활 곳곳에서 찾을 수 있고 접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런 얘기는 영국인들과 하기도 쉽진 않더라구요. 뭐랄까.. 민감하달까요. 굳이 인색해 보이려는 것도 아니고, 좋은 목적이라는데 1-2파운드가 무슨 대수냐 할 수도 있고, 내 아는 사람이 좋은 뜻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한다는데 그걸 후원못할 이유가 없지 않냐 할 수도 있고...
그런데도! 그런데도! 왜 이렇게 뭔가 찝찝하니 이해가 안되는 걸까요?? ㅜㅜ.
혹시라도 영국인 배우자나 주위에 친한 이들이 계신 분들 중, 이런 기부문화가 왜 그토록 자연스레 영국인들 사이에 뿌리내린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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