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영국에서 아기를 낳고 키우는데 얼마쯤 들까?

민토리_blog 2013. 11. 22. 08:04

한국의 육아사이트등을 읽고 있다가 '돈'과 관련된 글들이 꽤 많음을 읽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영국에서 꼬맹이를 낳기 위해 준비하고, 그리고 낳은 후에 내가 쓴 돈은 도대체 얼마쯤 되는걸까... 


1. 임신 중


한국의 경우를 보니, 임신을 한 후 산부인과를 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돈이 엄청 든다는 걸 알았다. 일단 매번 초음파 사진을 찍을 때마다 돈이 몇만원씩 나가고, 거기에 추가 검사항목이 더 생기면 그만큼 돈이 더 나간다는 거였다. 


영국에서는 초음파 사진을 임신 기간동안 딱 2번찍는다. 12주때 한번, 20주때 한번. 나같은 경우는 34주쯤에 다시 한번 찍었는데, 미드와이프가 아기가 제대로된 위치에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예외적으로 보낸 경우였다. 모든 진료가 일단 무료인 만큼 초음파 자체도 돈이 들진 않지만, 만약 초음파 사진을 원한다면 초음파를 찍기전에 밖에 구비된 자판기에서 티켓을 사서 가야 한다 (우리같은 경우는 £3정도였다). 한국에서는 4D 초음파 사진까지 찍을 수 있어 태어나기도 전의 아기 얼굴 생김새도 볼 수 있다는데, 우린 뭐 돈이 싸서 그런지 화질도 그냥 그렇고 무엇보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몰라서 남편과 설명을 들을때만 '아아' 해놓고는 나중에 도대체 아기 얼굴은 어디있는거냐며 서로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는 마냥 뒤지곤 했다;;; 


임신기간동안 처음으로 거의 200파운드가 되는 돈을 쓴 적이 있는데, 그건 다운증후군 검사때문이였다. 다운증후군의 확률을 보자면 만 30세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정말 왜 빨리 아기를 낳으라는지 알겠구나, 싶다. 어쨌건 한국에서는 35세 이상인 경우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어 양수검사 등을 받게 되있는 걸로 아는데, 영국에서는 임신 16주에 혈액검사를 먼저 하고 그 검사결과에 따라 양수검사를 받을지 임산부에게 물어본다. 양수검사에 대한 위험도는 이미 듣고 있는터라 기다리기도 그렇고 해서 우리가 선택한 건 사설병원에 가서 따로 검사를 받는거였다. 사설병원에서는 피검사와 초음파를 통해 아기 목쪽 둘레를 재는데 그걸로 벌써 90%에 가까운 결과를 알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럴 경우 임신 12-13주에 검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평안하고.. 그래서 200파운드 정도의 돈을 내고 검사를 받았다. 


2. 출산과 산후조리


물론 영국에서는 분만과 관련된 모든 과정도 다 무료다. 나 같은 경우는 상태가 안좋아져서 제왕절개를 하고 병원에 4일정도 입원해 있긴 했지만, 역시 돈이 들진 않았다. 한국같은 경우, 분만 후 영양제부터 제왕절개를 하고 입원할 경우 그 수술비와 입원비까지 몇십만원 깨지는건 일도 아니라고 하던데... 


그리고 가장 다른 거.. 바로 산후조리. 듣기론 한국 대부분의 산후조리원에서 2주정도 머무는데 200-300만원 혹은 그 이상도 더 든다는 말을 들었는데... 영국에서는 그런 개념이 없다. 만약 자연분만했으면 그날 당일로 퇴원하라는 분위기고, 실제로 많은 엄마들이 그냥 자기집으로 돌아간다. 나도 수술 때문에 있긴 했지만, 퇴원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를 돌보고, 요리하고 그랬다. 얼려둔 미역국을 해동시켜 먹은 건 대략 1주일이 지나서였던거 같다 ㅜ_ㅜ 영국에서는 보통 남편에게도 산후 휴가를 2주정도 내주기 때문에 어찌보면 남편과 둘이 있었던 2주가 산후조리였던 셈... 특히 가족이나 친척이 근처에 살지 않는 우리같은 입장에선 방문객도 없었고, 와서 아기를 대신 돌봐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내가 몸이 고되든 말든 젖을 먹이고 아기를 돌보고 그랬다. 한국의 친구들은 한국여자들은 영국여자들이랑 몸구조가 다르다, 따뜻하게 하고 누워서 잘 쉬지 않으면 나중에 고생한다, 뭐 그런 얘기들로 나를 잔뜩 겁주긴 했는데... 하긴.. 누군들 가능하다면 아기낳고 따뜻한 곳에 누워서 누가 차려주는 맛있고 영양가 있는 세끼 밥상 받으면서 아기 걱정도 좀 덜하며 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게 없는걸 어쩌란말인가, 그리고 그런걸 바래봐야 나만 괜히 괴롭지.. 솔직히 몸이 고되긴 했지만, 어찌보면 많이 움직였기 때문에 빨리 회복되기도 했다. 


3. 아기 예방접종 등


영국에서는 아기를 낳고 나면 바로 비타민 K관련된 뭐 예방주사를 일단 설명해준뒤 부모가 동의하면 (사실 아이낳고 나서 정신없음, 그냥 좋다니까 해달라고 끄덕끄덕), 아기에게 놔준다. 영국의 아기들에게 BCG는 필수가 아니지만, 내가 한국인이기때문에 꼬맹이는 BCG 예방접종 해당자에 속했고,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기 때문에 그 동안 예방접종을 바로 맞았다. 물론 무료지만, 좀 짜증났던게... 한국에서는 이제 흉터도 안남는 그런 게 있다는데... 여기는 그런거 없이, 그 거대한 주사바늘을 태어난 지 3일된 아기 팔뚝에 그냥 쑤욱 쑤셔넣고 자국이 나와야 백신이 제대로 들어갔다는 신호라던데... 아.. 진짜.. 그 주사바늘을 쑤셔넣을 때 내 가슴이 어찌나 아프던지.. 남편도 방문자 제한 시간에 걸려 못와서 나혼자 있었는데.. 정말 아기를 안고 펑펑울었다. 한국에서였다면 다 맞는거니까 그런 생각 안했을텐데, 그 때는 '내가 한국인이라서 네게 이런 고통스런 주사를 맞추는 구나' 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울었다;; 그리고 나중에 주사자국이 정말 보기싫게 부풀어오르는 걸 보고 또 속상해서 울고;; 

어쨌건 그렇게 병원에 있는 동안, 아기 청력검사도 하고 그랬다. 만약 자연분만을 하고 바로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경우라면, 집에 온 그 당일이나 다음날 미드와이프나 Health visitor (아이들 건강전용 담당사)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기 몸무게를 재주고, 건강 체크를 다 해준다. 


그 외 예방접종은 6주, 9주, 12주, 16주, 뭐 그런 식으로 있다가 1년째에 다시 맞고 그 다음은 2살이나 3살이 넘어가면서 일년에 한번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때가 되면 NHS에서 알아서 주사맞으러 오라고 편지를 보내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에서는 엄마가 다 체크하면서 알아서 예방접종을 맞추러 다니는 것과는 좀 다른 시스템이다. 그래도 이젠 한국에서 보건소나 지정의료원에서 무료로 예방접종을 할 수 있다니 다행이다 (이건 원래 무료여야 했지 않나, 싶지만...)


4. 아기용품


지금이야 다른 아기를 가진 엄마들을 많이 안다지만, 꼬맹이를 가졌을 때는 우리가 친구들중 거의 처음 아기를 가진 케이스라 뭘 얻을 수가 없었다. 가족들도 다 멀리 있어서 선물도 별로 받지 못했다. 그나마 받은 거라면 한국갔을 때 엄마에게 아기용 천기저귀와 가재 손수건, 두툼한 겉싸개로 쓸 수 있는 담요를 선물 받고, 동생에게 베넷 기저귀를 몇벌 받은 것? 아, 친구가 UV 젖병 소독기를 선물로 줘서 미친척하고 한국에서 영국까지 가지고 왔었는데, 그건 정말 대박아이템이였다. 영국에는 대부분 물 소독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거기에 비하면 얼마나 실용적이고 깔끔하며 믿음직스러운가!! 


어쨌건, 아기가 뭘 입고 사는지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던 우리는 그냥 짧은 소매 베스트, 긴 소매 베스트, Sleepsuit 각각 5-6벌 정도를 사놓고는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생각은 아기가 태어난지 바로 하루만에 무참히 깨졌다. 난 신생아가 그렇게 많이 토해내는지 몰랐다;;; 그래서 부랴부랴 다시 남편을 수퍼마켓으로 보내서 긴급쇼핑을 하고... 어쨌건 우리는 그냥 하얀색으로 된 가장 기본적인 것들만 샀다. 그런것들은 대부분 3-5개 묶음에 5파운드 안팍이면 살수 있는데, 아기 옷의 대부분을 그런 식으로 장만했던 거 같다. 물론 예쁜 걸로 입히고 싶다면 여기서도 돈은 한정없이 쓸 수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 솔직히 가장 필요없다고 느낀 건 베넷저고리... 다리가 허하니 도대체 어떻게 왜 입히는건지 잘 모르겠던데.. 어쨌건 나중에는 추울때 슬립수트위에 카디건처럼 입혔다. 한국에서는 속싸개, 겉싸개 같은 것도 파는 것 같던데... 영국에서는 아기를 도리어 너무 따뜻하게 감싸지 말라고 하는 편이라 (Overheating이 영아 돌연사의 주된 원인이라고..), 그냥 가벼운 담요를 몇개 사고 말았다 (하나에 5파운드 정도).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기용품으로 베이비크림, 목욕용품 같은 것도 따로 사는 것 같던데... 영국에서는 아기가 어릴 때는 더럽지 않기 때문에 그냥 물로만 씻기라고 한다. 그래서 물로만 계속 씻기다가 아기용 샤워젤을 사서 쓰기 시작한건 아기가 기기 시작하면서인거 같다. 그 때부터는 밥도 자기가 알아서 먹느라 얼굴이고 머리고 간에 난장판이 되는 건 일쑤고 손이며 발이며 잘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15개월이 된 지금도 샴푸같은 걸 따로 쓰진 않는다. 그냥 하나로 통일 (1-2파운드면 살 수 있음)... 그나마 따로 돈을 쓰는 거라면 아기 칫솔과 치약 (총 2-5파운드정도).. 

베이비크림 같은 것도 따로 없이 여기서는 그냥 올리브오일 같은 천연오일을 쓰라고 한다. 그래서 식용으로 쓰는 천연올리브오일을 사서 아기용으로 따로 용기에 담아 발라주는게 끝;;; 

기저귀용 크림은 따로 사긴 했는데 (1-2파운드), 어차피 무료샘플로 나눠주는 Sudo cream을 써도 오래 쓸 수 있으니 따로 살 필요도 없었던 거 같고... 


한국은 혼합수유를 권장하는 분위기인거 같던데.. 여긴 모유수유를 권장한다. 뭐 안되면 분유하는 거지만... 나 같은 경우는 모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따로 분유같은 걸 걱정할 필요는 없었는데, 모유 유축기를 살 때 젖병이 딸려오는 걸 사서 그걸로 따로 젖병을 안사고 때웠다;; (30-40파운드; 정작 젖병에 모유를 담아줄 때 꼬맹이가 극도로 거부했기때문에 한편으론 미리 준비해서 젖병을 더 안산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5. 정작 돈드는 것들.. 


가구와 안전관련 용품들은 확실히 돈이 든다. 특히 영국은 한국과 달리 바닥에서 생활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아기와 관련된 가구들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 일단 Moses basket (작은 요람같은 거). 바로 Cot (아기침대)를 쓸 수도 있지만, 신생아에게는 너무 크기 때문에 보통 요람을 먼저 쓴다. 그 담에는 Cot. 요람이야 새걸로 30파운드면 살 수 있다지만, 아기 침대는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거기에 Nappy changing station (기저귀 가는 곳), Safety gate까지 더하고, 카시트, 유모차, 아기의자 (High chair) 등등 생각하면 여기서도 몇백파운드 날라가는건 한 순간이다. 나 같은 경우는 유모차를 제외하고 대부분 중고를 샀는데, 그런건 Gumtree, eBay, Freecycle같은 곳을 이용하면 찾을 수 있고, 운좋으면 집근처 중고가게에서도 살 수 있다. 중고로 잘만 사면 모든 걸 대략 100파운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다. 


유모차 같은 경우, 어차피 개인적인 취향이니 알아서 선택하는 거지만, 나같은 경우는 200파운드 정도 되는 유모차에 카시트를 장착해서 쓸 수 있는 걸로 샀다. 중고 카시트 20파운드에 어답터 20파운드, 유모차 200파운드, 240파운드로 해결본셈.. 


아, 그리고 돈 쓴거.. 아기 방에 온도 센서가 달려서 자동으로 작동되는 히터를 샀다 (40파운드 정도?). 영국처럼 날씨가 좀 변덕스럽고 잘 때 잘 움직이는 아기 같은 경우 아주 유용하다. 보통 18도 정도로 맞춰두면 겨울이든 언제든 아기가 추울까봐 늘 들락날락 거리며 체크할 필요가 없으니 추천하고 싶은 아이템. 그대신 여긴 습도가 높아서 가습기같은 건 잘 사진 않는다. 


..... 

그 외 한국에서 그토록 흔하다는 아기 스튜디오 사진촬영 같은 것도 한 적이 없고, 돌잔치도 그냥 집에서 미역국 끓이고 케익굽고 해서 간단히 마쳤다. 출산 하기 전에 쉬는 기간동안 집에서 색종이와 마분지 등으로 아기 초점책과 모빌을 만들어줬고... 친구에게 선물 받은 딸랑이 5종 세트로 8개월정도 잘 놀았던 거 같다. 장난감 같은 건 선물 받은 걸 제외하면 사준 적이 없고... 가끔 주방 주걱이나 플라스틱 용기들을 가지고 놀라고 주고, 빈 물병에 파스타나 쌀을 넣어서 딸랑이로 쓰게 해 놀게 했다. 


그렇게 아무리 아끼고 중고를 사서 쓰고, 기본적인 것들로만 해도 이것저것 다 따지니 임신과 출산, 아기 돌 때까지 그래도 1000-1500파운드는 족히 나간것 같다. 그래도 한국돈으로 따지면 200-300만원 정도이니, 한국에서는 산후조리 한번으로 나갈 돈인가;;;; 하긴 이건 나같은 짠돌이라 그런거고... 여기서도 엄마들 따라 좋은 것, 새 것, 브랜드 제품들만 준비하려는 엄마들 있는데, 그런 경우는 아기침대 하나에만 300파운드에서 1000파운드까지 쓸 수 있고, 유모차야 말한들 뭐하랴... 친구는 아기방에 필요한 벽지까지 프랑스에서 주문해서 오든데;;; 


아기와 관련된 비지니스라는게... 참.. 묘하다. 아기거라니까 좋은 것만 줘야 할 거 같고... 그러다보니 그 부모속 이용해서 아기용품 가격은 하늘을 찌르고... 은근히 부모들끼리 경쟁심리도 발휘되고.. 난 시장거 입어도 내 자식은 괜찮은 브랜드 입혀야 할거 같은 기분도 들고... 그런 갈등이 올 때마다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건 이거... 


- 아기들은 뭘 입혀놔도 다 귀엽다 

- 아기들은 지가 뭘 입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 내 보기에 예뻐도 최소 몇개월 이상의 실용성이 없다면 사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 내가 평생 그 정도의 수준을 아기에게 제공할 수 있는게 아니라면 어설픈 욕심은 부리지 말자. 


... 

하긴 이젠 아기 보육/교육 관련된 게 닥칠 시기니 그 땐 얼마나 들어가는지 봐야겠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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