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 살아남기

부모의 수다스러움

민토리_blog 2012. 10. 8. 22:01

토요일에 대학 동문회가 있어 카디프에 처음으로 아기를 데리고 외출했다. 

캠브리지는 동문회 네트워크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어서, 어디를 가든 동문회를 찾을 수 있고, 모임에는 60년대 학번에서 최근의 2000년대 학번까지 골고루 섞여 나온다. 

장소는 분위기 좋은 Tea Room이였고, 우린 모두 Afternoon Tea를 주문한 상태였다. 


젖을 먹을 갓난 아기는 우리 아기 하나 였고, 곧 최근에 웨일즈로 이사왔다는 부부가 2살이 채 안된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 부부의 남편이 나와 같은 컬리지 출신이라 반가웠는데... 그런 것보다 더 반가웠던건 - 그들에겐 미안하지만 - 그들이 아이와 씨름하는 모습이였다. 그들의 아이는 좀체 한자리에 있을 줄 몰랐고, 사라지는 아이를 잡기 위해 아이의 엄마는 분주했으며 'Excuse me, I beg your pardon'을 연발했다. 그에 비해 막 젖을 먹고 잠에 취한 아기를 바라보며 남편과 나는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군' 하는 안도와 미소가 섞인 눈짖을 교환했다. 


날이 좋은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공원을 낀 주거지역이라 그런지 찻집은 아기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새로운 아기가 들어올 때마다 그들의 부모와 우리는 눈으로 인사를 나눴고, 그들도 그랬겠지만, 우리도 그 아기의 나이가 몇일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등을 관찰하곤 했다. 


Afternoon Tea가 다 끝나갈 무렵 화장실에 간 줄 알았던 남편은 어느샌가 저 쪽 테이블에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과 어울려 얘기하고 있었다. 초면에는 낯을 좀 가리고 원래 수다스러운 편이 아닌 남편이였기에, 도대체 뭔일이라도 생겼나 싶을 만큼 놀라운 광경이였다. 그 가족은 이제 갓 2주가 된 아기와, 아기 아빠, 그리고 아기의 조부모로 구성되어 있었고, 익숙한 말, 억양을 듣고 남편이 먼저 인사를 건네고 곧 아기가 주제가 되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고 했다. 


사실 그 날에야 갑자기 깨달은 것 뿐이지, 우리는 부모가 된 후 변하고 있었다. 이 날 뿐 아니라 우리끼리 아기를 데리고 근처 박물관에 산책을 갔을 때도, 남편은 스스럼없이 박물관의 나이든 분들께 아기를 보이며 대화를 했고, 사실 그렇게 스스럼 없어 진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생각외로 아기라는 공통분모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조용하지만, 부모가 된 우리는 수다스러워졌고, 보통이였다면 결코 마주칠 일도 없고, 대화를 할 일도 없을 사람들과도 서스럼없이 어울리게 만들었다. 

참 신기하다.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간단한 단어조차 내뱉지 못하는 이 작은 생명체가 우리 삶에 끼치는 파장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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